Life

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 아네스 트루블레 

통합 예술 세계를 창조한 메세나 

프랑스 의류 기업, 아네스베(agnès b)는 오너 아네스 트루블레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그녀에게 수집은 작가들과의 뜻깊은 만남이며, 자신의 취향을 밝혀주는 개인사를 대변한다. 각 예술품들을 통해 그녀가 처음 발견하는 것은 ‘감동’이다.

▎portrait of Mrs agnès b. © Patrick Swirc.
아네스 트루블레(Agnès Troublé)는 1941년, 베르사이유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드러운 성격의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밖에서는 상냥했지만 집에서는 의외로 매우 엄격했다. 군인과 법률가를 배출한 집안에서 성장한 아네스는 자연스럽게 조국을 사랑했고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가톨릭 신자인 아네스는 고작 17세 나이에 25세 크리스티앙 부르조아(Christian Bourgois)와 결혼했다. 그녀가 설립한 의류 기업, 아네스베(agnès b)는 첫 남편의 성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혼 후에도 여전히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크리스티앙은 프랑스에서 저명한 출판업계 인물은 아니었지만 이미 생제르맹데프레(Saint-Germaindes-Prés) 구역에서 이름난 예술가들, 지식인들과 친분을 맺고 있었다. 후에 그는 외국 문학계의 위대한 저자들을 홍보하게 된다. 심취할 수 있는 토론을 즐겼던 아네스는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에두아르 글리상(Edouard Glissant), 장뤼크 고다르(Jean-Luc Godard) 같은 인물과 친분을 맺었다. 어린시절부터 그림에 소질과 관심이 있었던 아네스는 17세에 결혼하기 전까지 베르사이유의 보자르에서 그림을 배웠고 결국 운명은 그녀를 패션 디자이너의 길로 이끌었다.

1975년 34세가 된 아네스는 파리 1구의 주르 거리 6번지에 첫 번째 의류 매장을 열었다. 이곳에는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부티크들이 자리하고 있다. 4년이 지난 후 아네스의 부티크는 직원 20여 명을 둔 매장으로 발전했고 파리의 비외 콜롬비에(Vieux Colombie) 거리와 미슐레(Michelet) 거리에 또 다른 매장을 열 정도로 성장했다. 급성장한 아네스베는 1980년에는 뉴욕 소호 거리에 진출했고, 1981년 도쿄, 1983년 암스테르담, 1987년 런던으로 확장됐다.


▎Exhibition views of Out of frame and landscape in the agnès b. collection. © Rebecca Fanuele. La Fab. / collection agnès b., 2021.
아네스 트루블레의 두 번째 남편인 장 르네 클라레 드 플러리우(Jean-René Claret de Fleurieu)는 전체 매출의 반을 차지하는 일본 시장을 개척하는 데 주력했다. 이후 타이완 시장에서도 성공한 아네스베는 중국에 15개 매장을 갖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생의 마지막 3년을 안락하게 보낼 수 있도록 아낌없이 후원했던 예술 메세나, 프랑수아 1세 왕과 같은 불 도마뱀 로고를 가진 아네스베는 검은색 재킷, 프린트 셔츠, 순면 치마 등으로 여성들에게 일상의 편안함과 세련됨을 산사한다. 남성복과 아동복까지 세련된 프렌치 스타일을 갖춘 아네스베는 코스메틱 상품까지 확장하여 더욱더 성공한 기업의 모델이 됐다.

정육점을 개조한 ‘오늘의 갤러리’


▎Exhibition views of Out of frame and landscape in the agnès b. collection. © Rebecca Fanuele. La Fab. / collection agnès b., 2021.
1984년, 아네스와 남편 장 르네는 첫 부티크와 가까운 파리 레알 지역의 한 정육점을 개조해서 ‘오늘의 갤러리(la galerie du jour)’를 열었다. 그 후 1997년 아네스가 17세 때 연수생으로 일했던 갤러리의 화상 장 푸르니에(Jean Fournier)는 아네스에게 갤러리 인수를 제안했고 아네스는 칸캉푸아(Quincampoix) 거리에 있는 이 갤러리를 인수했다. 1998년 퐁피두센터 뒤로 이전한 뒤 갤러리는 확장됐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갤러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갤러리라고는 하지만 사물의 윗면과 측면을 보여주고, 그림, 조각, 사진을 소개는 동시에 새로운 방법을 발명하려고 시도하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케치, 스텐실, 세리그래피, 판화 등 모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들의 접근 장소를 창조하려 합니다. 작가들의 작품 전시뿐 아니라 갤러리에서 기획한 전시회도 볼 수 있습니다. 이 특별한 공간은 여전히 거칠고 약간 정육점 같은 곳이지만 다시 방문하고, 멈추고 싶어지는 활기찬 곳이 되길 바랍니다.”

연간 약 10회의 전시회를 기획하는 갤러리는 마틴 바레(Martine Barrat), 카슈히코 히비노(Katsuhiko Hibino), 룰루 피카소(Loulou Picasso), 로망 시즐위츠(Roman Cieslewicz), 넨 골딘(Nan Goldin), 클로드 레베크(Claude Lévêque)와 같은 다양한 화가, 시각예술가, 사진작가의 작품을 선보였다. 갤러리스트로서의 아네스는 1989년 퐁피두센터의 전시 매니페스토 ‘지상의 마술사(Les Magiciens de la Terre)’를 통해 유럽과 북미 대륙을 넘어 현대미술의 영역을 더욱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 그녀는 프레드릭 브륄리 부아브레(Frédéric Bruly Bouabré), 아갸야 야퀼(Acharya Vyakul), 세이두 케이타(Seydou Keïta)와 같은 아프리카 및 극동 예술가들을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과 그라피티가 상징적인 라 갤러리 드 주르(la galerie du jour)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은 매우 신선하고 도발적인 젊은 작가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작품들을 감상할수록 아네스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순수한 영혼을 발견하게 된다.


▎Exhibition views of Out of frame and landscape in the agnès b. collection. © Rebecca Fanuele. La Fab. / collection agnès b., 2021.
1997년은 아네스가 갤러리를 이전하고 확장했던 특별한 해다. 같은 해 생제르망데프레에서 예술가들이 자주 모여 토론하는 브라스리 립(Lipp)에서 예술가 크리스티앙 볼탄스키(Christian Boltanski)와 전시기획자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와 토론하면서 ‘The irony point/Le point d’ironie’라는 이름의 정기 간행물을 출간했다. 이미 60회의 에디션을 넘긴 이 간행물은 전체 8쪽이며 단 한 명의 아티스트에게 헌정된다. 선정된 작가는 마치 백지수표를 받은 것과 같다. 그 작가의 모든 예술세계를 외부의 평론가가 아닌 작가 자신이 스스로 마음껏 자기만의 스타일로 소개하는, 마치 또 다른 방식의 독특한 예술품이라고 해야 할까? The irony point 간행물은 10만~30만 부를 발행해 무료로 전 세계의 박물관, 갤러리, 학교, 카페, 상점, 서점 등에 널리 배포된다.

아네스는 전 세계에 매장을 두고 있는 기업의 오너이며 여전히 원단에서 단추, 레이스, 지퍼에 이르기까지 모든 옷을 손수 제작하는 디자이너인 동시에 아티스트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갤러리스트이며 메세나로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아네스가 사진, 드로잉, 그림, 조각, 설치, 그라피티, 영상 및 영화 등을 결합하는 미술 컬렉션을 구축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결과이지 싶다. 그녀의 컬렉션은 1984년 갤러리를 오픈할 때 기획했던 ‘레 프레르 리풀랑(les Frères Ripoulin)’ 전시와 함께 이루어졌다.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피에르 휴그(Pierre Huyghe), 크로드 클로스키(Claude Closky)와의 교류가 필수적이었고 그때 작품 몇 점을 구입했다. 이후 장 미셀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의 자화상, 앤디 워홀 드로잉,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와 브라사이(Brassaï)의 사진 등으로 이어졌다. 그녀에게 예술품 수집은 예술가들의 작업 활동을 격려하는 데만 의미를 둔 행위였다. 예술가들이 영혼을 바쳐 완성한 각각의 작품들은 받아들여지기를, 사랑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녀는 수집품이 수천여 점에 이른 2017년, 파리13구의 시장 제롬 쿠메(Jérôme Coumet)와 처음 만났다.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겠다는 열망에 충실했던 아네스에게 13구는 미래를 가진 새로운 젊은 파리, 온전한 문화 및 건축 개발 구역으로 참신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SOA 건축회사에서 건축한 새 건물, 라 파브(La Fab)로 이전이 결정되어 2020년 2월 오픈했다. 1995년 설립된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이 자리한 13구는 그동안 예술 구역으로 높은 인지도를 구축했던 마레 지역, 생제르망데프레, 샹젤리제와는 다르지만 이미 자리한 몇몇 갤러리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흥미로운 지역이다. 이미 만들어진 역사 속에 들어가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뛰어난 감각을 지닌 아네스다운 결정이었다.


▎Exhibition views of Out of frame and landscape in the agnès b. collection. © Rebecca Fanuele. La Fab. / collection agnès b., 2021.
그녀의 갤러리도 2020년에 La Fab 내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현재 갤러리는 La Fab 전체 규모 1400㎡ 중 190㎡를 차지한다. 5000여 점이 넘는 수집품은 La Fab에서 테마별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대중은 그녀의 수집품과 더불어 갤러리의 전시, 서점을 통해 아네스가 창조한 통합 예술 세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녀에게 예술품 수집은 나눔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그런 이유로 아네스는 자신의 수집품들을 대여하는 데 매우 관대하다. 2018년 아비뇽의 ‘랑베르 컬렉션’ 재단에 수집품 400여 점을 대여했고, 2019년 아를르의 국립 고등예술 사진학교 전시, 2017년 국립 이민역사박물관 전시, 교토의 Kyotographie 사진 전시, 2015년 릴의 메트로폴 현대미술박물관 전시 등 1992년부터 현재까지 대여의 역사는 무수하다.

기업 오너이며 예술 메세나로서, 손자 손녀를 둔 80세 아네스의 삶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녀가 할리우드의 저명한 가수들로 시작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의 의상을 디자인했으며 어린 시절, 삼촌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가슴 아픈 과거를 배경으로 단 이틀 만에 쓴 시나리오를 2014년 영화 [내 이름은 음…(Je m’appelle hmmm…)]을 제작해 특별 아동보호 심사위원상을 받았던 것, 피에르 신부가 설립한 아베 피에르 재단의 10명 후원자 중 한 사람이라는 것 등 그녀가 쓰고 있는 명예로운 직위는 10여 가지에 이른다. 그녀는 프랑스 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두고 상품들을 제작하는 것을 꺼리는 애국자이며 기꺼이 세금을 내며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사랑한다. ‘죽기 전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아베 피에르 신부님이라고 했고 결국은 그를 만나 소원을 이루었다. 그가 운명하면서 후임자로 지명했을 정도로 아네스는 아베 피에르의 철학에 이미 가슴 깊이 공감했다. “세상에 있는 돈을 가지고 사람을 만들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Exhibition views of Out of frame and landscape in the agnès b. collection. © Rebecca Fanuele. La Fab. / collection agnès b., 2021.
인류는 코로나19와 2년째 싸우며 역사 이래 가장 큰 인내심과 겨루고 있다. 다시 한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마주한 우리에게 아네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 절충주의를 상기시킨다. 그리스인, 로마인, 유대인과 이집트인들이 모여 토론하면서 아카데미파와 페리파토스파의 철학이 로마 방식의 스토아파와 묶여 새롭게 생겨난 절충파(Eclectic)! 19세기 프랑스에서 부활한 절충주의는 다양함을 한껏 받아들이며 선택하는 삶을 사는 아네스에게 적합한 사상일 것이다.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2107호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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