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김기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CTO 

글로벌 콘텐트 IP 회사의 꿈 

김영문 기자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웹툰·웹소설 플랫폼으로 시작한 작은 콘텐트 회사가 어느새 국내 3위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성장했다. 막강한 자본력뿐만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에 기술 전략을 담은 덕분이다. 개발 인재도 대규모로 끌어들이며 또 다른 기술적 도전에 대비하고 있다.

▎김기범 CTO는 “콘텐트 IP를 가지고 새로운 파생 콘텐트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데이터와 콘텐트 딜리버리도 중요하다”며 “웹툰·웹소설 IP에 기반한 우리 콘텐트들이 글로벌로 더 뻗어나가려면 어떤 기업보다 막강 IT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
SBS [사내맞선], tvN [군검사 도베르만], JTBC [기상청 사람들]….

올해 상반기 방송가를 휩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 계열사 작품들이다. 특히 [사내맞선]의 경우 스토리 발굴부터 제작까지 콘텐트 관련 사업을 카카오엔터 계열사가 도맡았다. 원작(웹툰·웹소설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 기획(카카오엔터), 제작(크로스픽쳐스)까지 이른바 카카오식 ‘IP 밸류체인의 대표 사례’인 셈이다.

드라마로 거듭난 원작 웹툰·웹소설 [사내맞선]의 인기는 지금도 급상승 중이다. 국내 웹툰 순위 1, 2위를 차지했고, 웹소설 조회수도 10배 이상 늘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슈퍼 IP(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은 킬러 콘텐트) 면모를 보인다. 지난 3월 기준으로 카카오웹툰 태국·대만에서 거래액과 조회수 1위를 차지했고, 대만에서는 열람자 수도 1위를 기록했다. 인도네시아,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는 물론 북미, 일본, 중화권에서도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사업 초기부터 글로벌시장을 겨냥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카카오엔터는 1조5000억원 넘는 자금을 IP 개발에 투자해 현재 8500여 개에 달하는 원천 웹툰·웹소설 IP를 보유하고 있다. 해외에 진출한 작품 수만 해도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2500개가 넘는다.

카카오엔터가 공격적으로 인수합병(M&A)에 나선 덕분이다. 보유 IP가 늘어난 만큼 덩치도 커졌다. 지난해 3월 1일부로 카카오그룹에서 웹툰·웹소설 등 콘텐트 제작을 맡고 있는 카카오페이지가 카카오M을 흡수합병해 탄생한 게 카카오엔터다. 같은 해 9월 음원 플랫폼 멜론컴퍼니까지 합병했다. 웹툰·웹소설 분야만 하더라도 타파스·래디쉬·우시아월드(북미), 네오바자르(인도네시아), 크로스코믹스(인도) 등이 모두 카카오엔터 가족이 됐다. 이 밖에도 영화·드라마 제작사(영화사집, 영화사 월광, 글라인, 사나이픽쳐스, 글앤그림미디어)와 배우 매니지먼트(BH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숲), 음악 레이블(스타쉽, IST엔터테인먼트, 안테나)도 카카오엔터 곁에 섰다. 사실상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됐다. 덕분에 지난해 매출 1조2468억원(금융감독원 공시자료 기준)을 기록하며 CJ ENM(매출 3조5524억원)과 하이브(1조2577억원)에 이어 국내 대형 ‘슈퍼 IP’ 생산자로 올라섰다.

카카오엔터가 조만간 1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웹툰·웹소설 자체가 TV, 라디오, 오프라인(콘서트 등)이 아니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 때문에 ‘파급력’ 면에서 앞선다는 논리다. 인터넷 기반 콘텐트 IP는 글로벌로 퍼뜨리기 쉽고, 전통 플랫폼에 태울 콘텐트로 변환하기도 훨씬 수월하다. 실제 카카오엔터가 수년간 IP뿐 아니라 아티스트, 음악, 드라마, 영화, 공연 기획, 제작사까지 유관 산업 가치사슬을 갖추는 데 공을 들인 까닭이다. 최근에는 카카오TV에 오리지널 ‘모바일 콘텐트’를 다량 공급해 ‘제2의 유튜브’가 되겠다는 계획까지 내비쳤다. 결국 최고의 IT 역량이 뒷받침돼야 최고의 콘텐트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콘텐트 회사에서 많은 IP를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 메인입니다. 데이터와 콘텐트 딜리버리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죠. ‘데이터’는 어떤 콘텐트를 확대·재생산해야 할지 시장 수요를 따져보는 잣대가 됩니다. 콘텐트 제작에 아무리 공을 들여도 세계 각지에 잘 전달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무용지물이겠지요. ‘재미를 전달하자’는 우리 회사 비즈니스 모토를 글로벌하게 만들어주는 힘은 ‘기술’에 있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지난 5월 11일 경기도 판교 카카오엔터 본사에서 만난 김기범 CTO가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실제 적자기업이었던 미국 만화 출판사 마블코믹스도 디즈니라는 대형 유통사를 만나면서 글로벌 IP 넘버원 회사가 됐다”며 “우리에게 IT 기술은 디즈니가 마블코믹스에 날개를 달아준 것처럼 웹툰·웹소설과 그 파생 콘텐트가 글로벌로 뻗어나갈 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술로 ‘비욘드 코리아(Beyond Korea)’를 그린다는 김 CTO의 설명이 이어졌다.


▎ 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엔터를 엔터와 기술이 결합된 회사라고 말했다.

[사내맞선]이 대표적인 사례다. 웹소설로 시작한 이 슈퍼 IP는 웹툰, 드라마 등으로 여러 플랫폼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가 콘텐트를 다른 형태의 IP로 파생해 비즈니스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일에만 시선이 쏠리지 ‘왜 이런 역량을 갖추려고 하는지’는 다들 잘 모른다. 데이터를 분석한 덕분에 시장 수요를 잘 알게 됐고, 관련 능력을 다 갖추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 웹소설 반응을 보면서 웹툰이나 드라마를 만들 때 어떤 장면을 강조하면 히트를 칠지 알 수 있는 데이터들을 추리고 분석했다. CTO 산하에 40명이 넘는 개발자가 포진한 데이터팀이 존재하는 이유다. C레벨급 회의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각종 데이터를 참고한다.

모든 구성원이 데이터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텐데.

그렇다. 데이터팀은 데이터를 잘 정제하고 보기 쉬운 리포트로 만드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지만 모든 크루(직원)가 친숙해지는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간단하게 성과지표부터 동향 지표, 독자의 수요를 좇는 다양한 데이터까지 모든 크루가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유튜브처럼 사내 별도 채널을 만들어 데이터를 설명하려고 준비 중이다. 데이터는 우리가 어떤 액션을 취했을 때 전후 결과를 분석하는 동시에 어떤 액션을 취하기 위한 결정에 근거가 되기에 수고스럽지만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 데이터 드리븐(Data Driven, 데이터에 기반을 둔 의사결정)이라는 게 CTO 조직만 주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회사 전체에 기술이 빠진 곳이 없다고 했다.

맞다. IP 데이터뿐만이 아니다. 독자가 서비스를 접하고 콘텐트에 흥미를 느껴 결제한 뒤 스크롤을 내리며 읽어 내려가는 모든 과정에 우리 기술을 담았다. 여기서 ‘딜리버리(전달)’ 개념이 매우 중요해진다. 잠깐 우리가 어떤 사업을 하는지부터 보자. 카카오엔터는 생활필수재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왜 써야 하는지’ 이유를 찾아줘야 하는 사업을 하는 곳이다. ‘심심하면 볼까’라는 욕구는 조금만 귀찮아져도 사라져버린다. 아무리 탄탄한 제작 기술력이 있다 해도 일단 딜리버리를 못 하면 꽝인 이유다. 기술은 잘 전달하는 길을 열고, 이 길에 놓인 각종 허들(장애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허들? 어떤 사례가 있나.

글로벌로 눈을 돌리면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건 국가마다 다른 통신 환경이었다. 한국에서 접속하면 당연히 스마트폰에 순식간에 뜨는 게 웹툰이지만, 해외는 상황이 좀 다르다. 일부 유럽의 경우 클릭해서 웹툰 한 페이지가 뜨는 데 10초가 걸렸다. 이런 상황이면 독자 유인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물론 코로나19 이후 통신 환경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이 있었기에 상황은 많이 좋아졌지만, 한국만큼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국가도 드물다. 그래서 웹툰의 경우 데이터 크기와 용량을 최적화하거나 압축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이걸 퍼블리싱하는 웹페이지 환경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에 공을 들인다.

서비스하는 국가가 점점 늘고 있다. 각국의 통신 환경을 체크하기도 쉽지 않겠다.

그렇다. 일단 우리는 직접 움직인다. 베타 테스트용 페이지를 만들어 현지에 공식 서비스하기 전에 개발자를 파견한다. 직접 써보고 어떤 허들이 있는지 느껴보라는 것이다. 데이터상에서는 웹툰 정도는 충분히 볼 속도가 나온다고 뜨지만, 실제 가보면 계속 끊기는 일이 허다하다. 직접 그 불편함을 느껴야 개발 방향도 명확해진다. 실제 싱가포르 기반으로 인도네시아 시장으로 확장하려고 할 때 클라이언트와 개발자를 다 데리고 자카르타를 돌아다녔다. 여기서는 뜨는데 저기서는 왜 안 뜨는지 수백 번 테스트해봤다. 어떤 곳에서는 지역 통신사가 웹툰 페이지를 광고로 도배해버리기도 했다.

국내 서버로는 한계가 있겠다.

그래서 글로벌 인프라 환경에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AWS 클라우드사와 함께 지역 공략에 나서고 있다. 카카오엔터도 20년간 IDC를 구축·운영해왔기 때문에 기술만 보면 글로벌 회사에 절대 뒤지지 않지만, 글로벌 환경은 수많은 변수가 상존하는 곳이다. 글로벌을 아우르는 파트너와 전략적으로 함께해야 시장에 진입하는 리드타임(진입 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최근 시장에서는 거물급 종합 엔터사로도 자주 거론된다. CTO의 어깨도 그만큼 무거워졌겠다.

지난해 초 CTO를 맡았다. 사실 나조차도 카카오엔터가 이렇게 빨리 몸집을 불릴지 몰랐다. 카카오페이지 시절 해외 웹툰·웹소설 업체를 하나둘 인수했고, 멜론도 가세했다. 더불어 각종 제작사, 기획사, 음반 레이블사까지 우리 회사에 들어왔다. 흩어져 있는 기술 조직을 어떻게 통합하고 이어 붙일지 난감했다. 우리가 엔터사인지 기술사인지를 묻거나, 왜 또는 뭘 해야 하냐고 묻는 후배 개발자도 종종 있었다. 20여 년간 개발자로 살아온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나.

개발자들마다 관점이 조금 다르다. 개발자들 특징이 일단 다니고 있는 회사에 로열티가 굉장히 높다. 단순히 대우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 회사가 뭘 하려는지를 충분히 공감했기 때문이다. 카카오엔터가 뭘 하려는 건지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개발자를 채용해도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 이런 경우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CTO 산하에 개발자들이 어떤 관점에서 일해야 하고,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하고 소통하는 기술기획팀을 둔 이유다.

통합도 어려웠겠다.

카카오엔터로 한데 모아 본격적으로 출범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내가 CTO로서 맡은 임무도 이렇게 산재한 개발 조직을 한데 엮는 것이었다. 역시 ‘납득’이 필요해서 끊임없이 소통했고, 기술 고도화를 하려니 ‘통합’이 필요했다. 외부에서 보면 웹툰, 웹소설, VOD 등 각각의 기술 기반이 다를 것 같지만, 기본적인 아키텍처(구조)는 유사하다. ‘형태가 다른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어떻게 저장해서 전달할 것이냐’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결국 기술 고도화를 이루려면 코어 기술이 뭔지 교통정리를 하고 개발진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나마 운이 좋았던 게 초기 멤버 중에는 다음웹툰 시절 함께 일했던 후배가 많았고, 카카오페이지에서 글로벌 사업을 같이하던 동료들이 내 뜻을 알아줬다. 그래도 소통에 수개월이 걸렸지만, ‘비욘드 코리아’를 하자는 의지만큼은 모두 같았다.

글로벌로 갈수록 기술적 고민은 더 늘어나지 않겠나.

그렇다. CTO로 올라서면서 채용 절차를 더 까다롭게 바꾼 이유다. 예전에 소림사를 다룬 미국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여기에 이런 대화가 오간다. 리포터가 “주지 스님, 왜 이제는 무협영화 속 고수가 없을까요?”라고 묻자 주지 스님은 “(고수인) 사부가 없어서…”라고 답한다. 이 대화에 너무 공감했다. 시니어급 인재를 채용할 때 중요하게 보는 것이 주니어에게 ‘사부’ 같은 영향을 줄 역량이 있는지를 따져본다. 나 또한 인생에서 3명의 사수가 있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개발 조직이라면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을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새롭게 도입할 기술이나 관심 있는 기술 분야가 있다면.

인공지능(AI), 메타버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추천 알고리즘, 랭킹, NFT, 워터마크 등 IP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기술을 개발하거나 준비 중이다. AI 아이돌이나 블록체인을 활용한 글로벌 독자 집계 시스템 등 상당 부분 진척되어 있는 프로젝트도 있다. 하지만 신기술을 무작정 사업으로 벌리기보다는 ‘실현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실질적으로 비즈니스화할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본다. 단순히 우리 ‘이거 한다’고 자랑하는 수준이 아니라 ‘당장 이게 가능하고, 이게 시장에서 이렇게 돌아간다’고 보여줄 정도는 돼야 하기 때문이다.

AI 감성이라고는 하지만 취향을 연계해 추천하는 알고리즘이 전부인 경우도 많다.

맞는 말이다. IP, AI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이고, ‘사람처럼’을 추구한다. 모두 인간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기술을 활용할 인간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좋은 기술은 그냥 툴(도구)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어떤 음악 앱에서 우울한 음악을 들으면 고객의 취향이라고 간주하고 계속해서 비슷한 풍의 음악을 들려준다면, 우리는 우울한 상태를 차라리 바꿔주는 음악을 추천하거나 해당 지역의 날씨나 그가 주로 보는 영상을 판독해 다른 형태의 콘텐트를 추천해가는 방식으로 정교화하는 걸 고민해볼 수 있겠다. 인간의 감성적인 선택을 받아야 하는 우리 업 특성상 감정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콘텐트는 인간의 감정을 끌어당겨야 하는 영역이라 기술적으로 매우 난도 높은 분야라고 생각한다. 데이터를 쌓고, 고객이 생각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추론해가는 과정 덕분에 늘 기술적 영역을 넘어 고민하는 일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카카오엔터는 그 어떤 곳보다도 개발자의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기술적 도전이 충만한 곳이고 생각한다. 실제 세계 어디에도 웹툰과 웹소설, 드라마와 영화 등 모든 콘텐트에 걸쳐 기술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카카오엔터밖에 없다. IP라는 큰 주제에서 기술적으로 더 도전해보고 싶은 개발자라면 언제든 환영한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2206호 (2022.05.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