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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이탈리아 로마(Roma) 

로마제국 최대의 경기장 키르쿠스 막시무스 

약 2800년의 장구한 역사가 흐르는 영원의 도시 로마. 이곳에서는 버려진 듯한 돌무더기도 고대 로마 역사와 관련된 경우가 많다. 팔라티노 언덕과 아벤티노 언덕 사이에 있는 공터는 로마제국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경기장 키르쿠스 막시무스가 있던 곳이다.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옛터. 그 너머는 황궁의 유적이 있는 팔라티노 언덕이다.
네로(재위 54~68)가 로마제국의 제5대 황제로 등극한 지 10년이 되던 서기 64년 7월 19일의 일이다.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 주변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불길은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네로 황제의 저택과 귀족들의 고급 주택이 모여 있는 팔라티노 언덕으로 번지더니 로마 시가지 전체를 덮쳤다. 당시 네로 황제는 로마에서 약 50㎞ 떨어진 해안도시 안티움(Antium: 현재의 안찌오 Anzio)의 고향 별장에 머물고 있다가 화재 소식을 접하고는 즉시 전차를 몰고 로마로 달려와 이재민구호대책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럼에도 항간에는 네로 황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 언덕에서 불타는 로마를 내려다보며 노래를 불렀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런데 ‘키르쿠스 막시무스’가 무엇일까?

로마제국 최대의 경기장


로마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콜로세움은 지금도 로마 시가지의 구심점을 이룬다. 이 거대한 원형극장 바로 서쪽에는 유서 깊은 팔라티노 언덕이 있다. 바로 이 언덕 위에 기원전 753년 로마가 창건되었으며, 기원후 1세기 말에는 로마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황궁이 세워졌다. 팔라티노 언덕 서편에는 현재 로마의 고급주택 지역인 아벤티노 언덕이 있다. 이 두 언덕 사이 골짜기에는 버려진 듯한 넓은 공터가 길게 펼쳐져 있다.

로마에서는 버려진 듯한 돌무더기도 로마제국 역사와 관련된 경우가 많은데, 이 공터가 바로 로마제국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경기장 키르쿠스 막시무스가 있던 곳이다. 1959년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한 유명한 영화 [벤허]에서 압권을 이루는 장면은 땀을 쥐게 하는 전차경기인데, 바로 이 공터가 2000년 전 로마제국 시대에 이런 종류의 전차경기가 열리던 곳이다.


▎세계식량기구(FAO) 로마 본부에서 본 키르쿠스 막시무스 옛터.
한편 영어로 경기장을 stadium이라고 하지만, 로마인들은 길쭉한 경기장을 스타디움(stadium)이라 했다. 반면에 스피나(spina: ‘등뼈’라는 뜻으로 중앙분리대를 말한다)가 있어서 그 주위로 전차가 돌 수 있는 경기장은 키르쿠스(circus)라고 했다. 영어식 발음은 ‘서커스’이다.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문자 그대로 ‘최대의(Maximus) 경기장(Circus)’이란 뜻이다. 우리말로는 ‘대경기장’, 또는 ‘대전차경기장’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현재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것을 치르코 맛씨모(Circo Massimo)라고 한다.

황제들이 애지중지한 키르쿠스 막시무스


▎로마제국 전성기의 키르쿠스 막시무스 상상 모형(로마문명박물관). 스피나 한가운데에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고대 로마의 역사는 3개 시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즉, 로물루스에 의해 건국된 기원전 753년부터 기원전 509년까지 7명의 왕이 통치한 왕정 시대, 기원전 509년에서 기원전 27년까지 공화정 시대,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476년까지 제정 시대, 즉 로마제국 시대이다.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기원은 왕정 시대인 기원전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건국 초기에 팔라티노 언덕과 아벤티노 언덕 사이의 저지대는 테베레강이 범람하면 물에 잠기곤 했다. 왕정 시대의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는 두 언덕 사이 골짜기에 배수공사를 하여 테베레강으로 물을 뽑아내고 터를 다져 종교 행사와 축제를 치를 수 있는 경기장을 만들었다. 당시 경기장은 규모가 아주 작았지만 기원후 1세기와 2세기의 로마제국 전성기에는 규모가 엄청나게 확장되어, 길이와 폭이 각각 약 621m, 150m가 되었으며, 관중석은 15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2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웬만한 도시의 인구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었던 엄청난 규모였음에는 틀림없다.

이곳에서는 매년 9월 4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로마 대제전을 비롯해 대규모 축제들이 열렸는데, 로마 대제전에서 절정을 이룬 행사는 전차경기였다. 이것은 옛날 로마 시민들이 광적으로 즐기던 최고의 볼거리였다. 이 경기에는 말 4마리가 이끄는 전차 12팀이 경합을 벌였고 그중 가장 빠른 속도로 스피나를 7바퀴 돈 아우리가(auriga: 전차경기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네로 황제는 66년에 몸소 전차경기에 참가했는데 그가 몰던 전차는 4마리가 아니라 10마리 말이 이끌었다고 하니 처음부터 반칙이었던 셈이다. 또 심판들은 황제를 위해 편파 판정을 했다고 하니 네로는 당연히 우승할 수밖에 없었다.


▎포폴로 광장의 오벨리스크. 원래 키르쿠스 막시무스에 세워져 있었다.
한편 유명한 아우리가들은 오늘날의 축구선수처럼 대단한 인기를 누렸으며 돈도 엄청나게 벌었다고 한다. 당시 유명했던 아우리가에 관한 기록은 지금도 자세히 전해 내려온다. 이를테면 스코르푸스는 1043번, 에파프로디투스는 1467번이나 우승했고 투스쿠스는 24살 때 56번이나 우승한 후에 죽었다고 한다.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수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이다 보니 그 주변에는 상점과 음식점이 즐비했고 또 그 주변에 있는 시장에는 불에 타기 쉬운 물질도 많았다. 따라서 화재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었다. 기원후 64년 이곳에서 번지기 시작한 대화재는 9일간 계속되어 로마 시가지는 반 이상이 초토화되었다. 당시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남쪽 관중석 부분이 피해를 봤고 네로 황제는 이를 빠른 시일 안에 복구한 것으로 보인다.

네로 황제뿐만 아니라 전임 황제나 후임 황제들도 키르쿠스 막시무스를 확장하거나 더 멋지게 장식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일례로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이집트 정복을 기념하여 이집트 헬리오폴리스에서 거대한 석조 오벨리스크를 가져와 스피나 한가운데에 세웠다. 이 오벨리스크는 1589년에 포폴로 광장 한가운데로 옮겨졌다.


▎관중석 폐허 너머로 본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옛터.
이처럼 황제들이 키르쿠스 막시무스를 애지중지한 까닭은 이곳에서 민심을 잡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국정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사실 2세기 초 수에토니우스는 이것을 ‘빵과 키르쿠스(Panis et Circus)’라는 표현으로 꼬집었는데, 오늘날에도 국민을 축구경기나 축제에 미치게 하여 국정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는 나라가 적지 않다.

로마 도심 속 거대한 공터


▎2006년 월드컵 우승 축하행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오랫동안 사용되다가 서기 6세기 중반부터 황폐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남쪽에 폐허가 된 관중석이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웅대했던 옛 모습은 모두 사라졌다. 다만 이곳에서 전차경기가 열렸던 흔적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날 이곳은 가끔 대규모 야외행사장이나 야외공연장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때 울려 퍼지는 관중들의 함성은 그 옛날 이곳을 메운 수많은 관중의 함성처럼 들린다.

보통 때 이곳은 그냥 공터로만 남아 있다. 빈 땅이라면 마구잡이로 무엇인가 세워 채워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에게는 도심의 금싸라기 같은 땅을 개발하지 않고 그냥 공터로 둔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또 이 공터 주변에는 앉아 있을 만한 작은 카페조차도 없다. 사람의 손길이 간 흔적이라곤 별로 보이지 않으니 혹자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조상이 물려준 유적이나 팔아먹고 사는 게으른 국민이라고 속단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로마 역사를 음미하면서 이곳을 산책하다 보면, 손을 거의 대지 않은 채로 그대로 두어서 역사의 자취를 상상해보게 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유적 보존 원칙과 또 채우려고 하지 않고 비워둘 줄 아는 그들의 ‘동양적인 지혜’가 새삼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분야 외에도 미술, 음악, 역사,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로마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유럽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에도 여러 권이 있다. (culturebox@naver.com)

202206호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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