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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승계와 재산분할, 한 번에 정리하는 법 

 

예전에는 재산을 자녀에게 똑같이 물려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기업이 승계를 잘못해서 망하면 임직원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 많은 기업인이 ‘내가 없어도 회사가 잘 굴러가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유다.

기업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이미 겪었거나 앞으로도 예상되는 주된 어려움이 무엇이냐는 설문에 대한 응답 자료를 보면 대부분 세금 부담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선호하는 승계 방식도 기업 상황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생전 증여를 하다가 남는 재산은 사후에 상속이 이루어지도록 구상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가업 승계 실태조사’에서도 기업승계 어려움으로 조세 부담 98%, 정부 정책 부족(46.7%), 채무·보증에 대한 부담(18.4%), 후계자에 대한 적절한 경영 교육(7.5%) 순으로 나타났다. 올해 응답 자료를 보면 ‘가족갈등우려’가 1.6%로 나타났는데 현실에서는 훨씬 복잡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업승계는 경영자의 고령화로 인한 재산분할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기업을 이어간다는 건 단순히 금융·부동산 자산을 분할하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다. 승계도 그렇지만 재산상속까지 얽히면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최근 상담한 사례를 보자.

젊은 시절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간 김민수씨(가명, 66세)는 혼자 힘으로 삶을 개척해왔다.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기술학교에 다니고 대학을 나온 엔지니어로서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일궜다. 캐나다에서 만난 배우자와 결혼해 딸 셋을 두었다. 머나먼 타지에서 나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족과 소통이 부족했던 탓이었는지 가정에서 아빠의 자리는 없어지고 늘 일만 하는 아빠라는 원망만 남았다. 결국 김씨는 사업과 가족을 뒤로한 채 40대 후반에 한국행을 택했다.

맨손으로 돌아와 회사를 차려 20여 년간 키웠고, 지금은 세계적인 기술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다. 형과 사업 파트너로 달리며 기술을 개발하고 부동산 개발도 순조롭게 진행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어려움을 겪으며 삶을 돌아보게 됐다. 한국에 와서 재혼해 자식은 없지만, 미국에 있는 전처와 시민권자인 세 딸이 떠올랐다. 사업 파트너였던 형도 심장 수술을 받게 되자 뭔가 지금 정리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결국 상속 문제였다.

현재 파악한 자산만 수백억에 이르니 분명 자기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큰 다툼이 생길 수 있다고 봤다. 물론 김씨가 사망할 경우 모든 재산은 일차적으로 현재 배우자에게 상속된다. 이후 현 배우자의 형제자매에게도 상속이 이뤄질 터. 지금부터 상속 플랜을 정교하게 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탁 상담을 하러 온 케이스였다.

일단 회사부터 살펴봤다. 현재 회사는 친형과 지분을 반반씩 보유해 경영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가 갑자기 사망할 경우 현재 배우자와 미국에 있는 세 자녀 간 상속분할 협의를 해야 할 수 있다. 이게 현재 배우자와의 사이에 자녀가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자신의 뜻을 신탁에 남기기로 했다. 유언대용신탁으로 생전에 원하는 생활을 위한 자산관리와 함께 사후에 원하는 대로 상속이 이전되는 플랜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2020년에 신탁된 재산은 1년이 지나면 유류분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업 의결권 행사도 신탁에 명기해

일단 김씨는 한국 내 사업체는 큰조카가 이어가도록 조치했다. 한국에 있는 금전과 부동산은 현 배우자와 미국에 있는 세 딸에게 이전할 방법을 찾았다. 기업이 영속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혹여 회사 지분이 여러 갈래로 쪼개지는 일은 막고 싶었다. 그래서 지분은 사업을 영위하는 형과 큰조카가 가져가고, 나머지 재산은 현 배우자와 친자녀들이 나눠 갖는 구조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신탁은 자신이 보유한 금전, 부동산, 주식 등 다양한 재산을 가상의 재단으로 옮겨놓는 것과 동일하다. 가상의 법인을 만들고 그 법인으로 금전과 부동산, 주식 등 재산을 이전한다는 개념이다. 이전하면서 다양한 옵션을 설정할 수 있다. 한국 법에서는 자녀 중 의결권을 행사하는 자녀와 배당만 원하는 자녀를 구분하여 별도의 기업 운영 프로세스를 정할 수 있다. 바로 신탁계약에 그 내용을 실천하고 제대로 이행하는지 관리 프로세스도 정해놓을 수 있다. 신탁은 마치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법을 별도로 정하고 위탁자와 수익자 간 합의에 따라 원하는 대로 관리방법을 정할 수 있는 제도다.

신탁은 일종의 재산관리를 위한 가상의 재단과 같다. 그 재단을 설정하고 보유한 재산을 이전하고 원하는 대로 관리·운용하고 자신이 지정하는 이에게 상속까지 할 수 있는 플랜이 바로 신탁이다. 고령자라면 노후 재산을 관리하고, 미성년자라면 어른이 될 때까지 안전하게 재산을 관리할 수 있고, 해외에 있는 자녀들에게도 적정한 분배를 고려한다면 신탁제도를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길 권유한다.

김씨 사례는 신탁으로 기업가치를 지켜내면서 복잡한 가족관계로 얽힌 재산 배분을 나름 공정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세한 사항도 명기할 수 있다. 배분을 누구에게 어떻게 할지 정하는 동시에 보유주식의 의결권을 어떻게 행사할지 배당권을 집행하는 과정도 자세하게 기재했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 의사결정이 어려워져도 그 이유까지 기록해뒀으니 의결권 행사에 큰 탈이 없다. 신탁은 단순히 재산을 후대에 이전하는 계약이 아니라 기업이 지속가능하게 사업을 이어가는 제도적 보호막으로 자리할 것이다.

- 배정식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 센터 본부장

202207호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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