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구인·구직 플랫폼 ‘핸드셰이크’, 고용시장의 판도를 바꾸다 

 

갓 대학을 졸업한 구직자들이 취직에 성공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유명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평범한 가정 출신의 ‘흙수저’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개릿 로드가 나섰다. 그가 ‘대졸 구직자 특화 링크드인’으로 개발한 플랫폼 핸드셰이크는 4억 달러 넘는 투자금을 모집하고 1400여 개 학교에서 학생 1200만 명을 회원으로 확보했다. 그러나 신규 채용은 고사하고 정리해고 칼바람이 부는 시기에도 핸드셰이크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개릿 로드(Garrett Lord)는 22살 나이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냈다. 스탠퍼드나 MIT 같은 명문대 졸업장이나 부모님의 대단한 인적 네트워크가 없었던 그는 기업에 먼저 이메일을 보내 자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한 끝에 당시 실리콘밸리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든다는 데이터마이닝 기업 팔란티어(Palantir)의 여름 인턴으로 합격했다.

그가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학교는 미시간공과대학이다. 미시간주 북부 소도시 호튼 출신이 CIA 투자기업에서 인턴을 하다니, 엄청난 사건이자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는 티켓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벤처투자사들이 앞다퉈 투자하는 기업의 인턴이 됨으로써 높은 연봉과 스톡옵션을 받을 수 있는 탄탄대로 위에 올라선 셈이다.

그러나 2012년 5월 팔란티어의 워싱턴 D.C. 사무실에 출근한 중서부 출신의 청년은 186㎝ 큰 키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주눅이 들었다. 자신을 제외한 동료 인턴 15명 모두 다른 우주에서 온 사람들 같았기 때문이다. 모두 이름만 들으면 아는 명문대 출신이었고, 입만 열면 어떤 유명 실험실에서 연구에 참여했는지, 다음 휴가 때 유럽 어디를 갈지 자랑하기에 바빴다. 그때까지 로드가 해본 해외여행은 10대 초반 하키 경기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가본 캐나다가 전부였다.

“아버지와 통화를 했습니다. ‘네가 그중에서 제일 똑똑한 학생은 아닐 수 있어. 그래도 너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고, 그 애들보다 열심히 일할 거야. 이 아버지가 그것만은 확신해’라고 말해주셨어요. 그게 기억에 남습니다.” 이제 33살이 된 로드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는 뒷걸음치는 대신 “제대로 이겨서” 자신이 “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릴 자격이 충분함”을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기업과 비(非)유명 대학 학생 수천 명을 연결

결국 그는 당당하게 이겼다. 팔란티어 연례 해커톤에서 우승자가 되어 최고경영진에게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경영진은 가장 똑똑하고 능력이 뛰어난 인턴이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 출신임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경영진은 그에게 동료 추천 보너스를 제시했다. 미시간공과대에서 뛰어난 학생들을 데려와서 그 학생의 고용이 확정될 경우 엔지니어 1명당 5000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때 로드에게 전광석화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인재를 절실히 찾는 기업과 미시간공대 같은 비(非)유명 대학 학생 수천 명을 연결해주는 소프트웨어 개발이었다. 로드는 “재능 있는 학생은 어느 대학에나 있습니다. 출신 동네가 졸업 후 커리어를 제한하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미시간공대에 다녔던 저와 동문들은 기업의 눈에 띌 기회조차 얻지 못했으니까요.”

그는 같은 해 가을 미시간공대로 돌아가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동문 벤 크리스텐센(Ben Christensen), 스콧 링웰스키(Scott Ringwelski)와 손잡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착수했다. 세 대학생은 학생과 대학, 고용주를 온라인상에서 편리하게 연결해주는 모바일앱 기반 플랫폼을 설계했다. 2년이 지난 2014년에 3인조는 핸드셰이크(Handshake)를 출시했고, 2017년에는 포브스 ‘30세 미만 30대 기업인’에 선정됐다.

이제 미국에 있는 1400개 단과대학 및 종합대학에서 1200만 명에 가까운 대학생이 핸드셰이크 플랫폼을 통해 75만 개 기업의 구인 공고 검색, 채용 담당자와 메시지 교환, 온라인 채용박람회 참여, 화상 면접 진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들은 연간 이용료로 평균 8000달러를 지불해야 하지만, 학생들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 핸드셰이크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는 1110개 기업은 이보다 많은 이용료를 내야 한다. 추가 금액은 연간 1만5000달러부터 수백만 달러까지 다양하다.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면 구직자의 현재 거주지, 젠더, 사회적 소외그룹 여부, 전공, 평균 학점, (자바스크립트나 파이썬 코딩 등) 특정 기술 보유 여부 등을 기준으로 적합한 후보자들에게 맞춤식 채용 공고를 보낼 수 있다. 과거 흑인 전용으로 설립됐던 단과대학이나 종합대학(HBCU: Historically Black Colleges or Universities)처럼 원하는 학교를 대상으로 기업 마케팅을 할 수도 있다. (기업들이 후보 개인에게 구인 공고를 보낼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앞서 나온 모든 기준을 기반으로 적합한 후보를 물색하되 인종과 젠더 정보는 얻을 수 없다.)

핸드셰이크는 팬데믹 이후 온라인 채용 및 원격근무로 전환되는 시장 흐름과 노동력 부족 현상 덕분에 성장이 가속화됐다. 대학생들은 ‘핸드셰이크 했다’는 말을 동사처럼 사용하기 시작했고, 160만 명밖에 되지 않았던 이용자 수는 2017년 이후 600%나 증가했다. 5년 전 300만 달러, 2021년 7500만 달러였던 매출은 2022년 1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로드는 말했다. 흑자 전환을 하지 못한 2022년 1월에도 라이트스피드, 클라이너 퍼킨스, 코튜 매니지먼트(Coatue Management)를 비롯한 투자사로부터 2억 달러를 모집했고, 그 결과 누적 투자액은 총 4억3000만 달러, 기업가치는 35억 달러에 도달했다. 로드를 포함한 공동 창업주 세 명의 보유지분은 아직 15%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기술시장이 최고 정점에 도달한 지난겨울의 주가를 적용해 계산한 지분가치는 5억2500만 달러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대학이나 구직 사이트와 마찬가지로, 핸드셰이크도 자사 플랫폼에서 구직에 성공한 학생의 수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학생들은 채용 담당자와 연결되고 나면 더는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취직을 했는지, 채용 제안을 받았는지에 대해 피드백을 받기 힘든 구조다. “우리 플랫폼을 완전히 탈퇴한 대학은 지금까지 전체의 1%도 되지 않습니다. 대학은 우리를 통해 더 많은 고용주와 학생들에게 더욱 효율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로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다.

링크드인(LinkedIn), 인디드(Indeed), 집리크루터(Zip Recruiter) 등 거대 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경쟁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심플리시티(Simplicity)처럼 대학 커리어 센터를 타깃으로 한 소프트웨어 스타트업도 많다. 로드는 핸드셰이크가 더 저렴하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다수의 당사자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쟁사들이 함부로 따라올 수 없는 해자(moat)를 구축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링크드인 모회사 마이크로소프트는 시가총액이 1조8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기업이다. 덩치가 큰 만큼, 경쟁우위로 구축한 해자 따위는 언제든 손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경기둔화다. 그중에서도 기술 노동시장의 경색은 심각하다. 최근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 엔지니어 수천 명을 해고했다. 유력 기술기업들은 메타와 아마존, 시스코처럼 정리해고에 나서거나 구글 모기업 알파벳처럼 채용 인원을 줄이고 있다.

그러나 로드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기술적 역량이 뛰어나지만 인건비는 더 낮은 젊은 인재는 고용주 입장에서 언제나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핸드셰이크는 특정 산업에 편중되어 있지 않다. 빅테크가 비틀거릴 경우 석유가스 산업에 주력하면 된다. “코로나 때문에 첫 경기둔화가 시작되고 기업들이 겁에 질려 후퇴할 때도 미국에서 기술 인력 수요는 여전히 높았습니다. 그만큼 충격에서 보호받을 여지가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로드는 핸드셰이크의 은행 계좌에 벤처투자금 2억 달러가 예치되어 있기 때문에 경기침체가 오더라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재빨리 덧붙였다.

로드는 미시간주 블룸필드 힐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누나 1명, 사촌 8명과 항상 어울려 지내는 대가족이었다. 아버지는 건설업자였고 어머니는 사무 비서였다. 로드는 스키를 비롯한 여러 스포츠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컴퓨터를 너무 좋아해서 자칭 ‘너드(nerd)’였다. 10대 시절에는 컴퓨터 수리점 사장이 되거나 삼촌의 성공한 친구처럼 CIO가 되는 것이 꿈일 정도였다.

대학 등록금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간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근방 오클랜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강의를 듣고 아르바이트로 컴퓨터를 수리하거나 이웃 주부들에게 아이무비 편집법을 알려주며 돈을 벌었다. 2010년 미시간공과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중고 컴퓨터에서 쓸 만한 부품을 찾아다니다가 선배 한 명과 친해졌다. 부품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로드의 능력에 감탄한 선배는 그해 여름 뉴멕시코 로스알라모스 국립 연구소에서 컴퓨터 펠로십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이력서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그는 끈기와 치열함을 무기로 2012년 팔란티어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운명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필요한 인맥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누구를 알고 어떤 정보를 얻느냐, 즉 가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커리어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6개월간 강도 높은 초기 영업

핸드셰이크 개발 자체는 쉬웠지만, 초기 영업은 쉽지 않았다. 팔란티어의 일자리 제의를 거절한 로드는 막 창업한 회사의 경영에 집중하기 위해 학위 취득까지 몇 학점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자퇴를 했다. 2013년 6개월 동안 공동 창업자 3인은 포드 포커스를 타고 대학교를 돌아다니며 핸드셰이크를 한 번만 이용해달라고 간청했다. 밤이면 맥도날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채 잠을 잤고, 아침이면 대학교 수영장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면서 차 안에서 살다시피 했다. “프린스턴대학에서는 학내 경찰에게 체포될 뻔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팔아보겠다고 커리어 센터에 몰래 들어가는 저희를 보고도 모른 척 기회를 준 경비분께 정말 감사해요.” 로드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결국 이들은 미시간주와 인디애나주에서 아퀴나스칼리지, 이스턴미시간대학, 힐스데일칼리지, 발파라이소대학, 와바시칼라지 등 5개 학교를 초기 회원으로 확보해 소정의 연회비를 받을 수 있었다.

고용주들을 확보하는 과정은 좀 더 쉬웠다. 기업에는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제공하는 결정이 큰 영향을 줬다. 일단 무료로 회원을 확보하고 프로그램을 경험하게 한 다음, 나중에 프리미엄으로 유도하는 편이 더 쉽다고 생각해 모험을 한 것이다. 핸드셰이크를 가장 먼저 이용해보기로 결정한 기업 중에는 P&G와 IBM, 박스, 마스터카드가 있다.

2017년까지 핸드셰이크는 투자자로부터 3000만 달러를 모집했다. 창업주들은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 있는 침실 7개짜리 주택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그곳에서 직원 20명은 합숙을 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술 개발에 전념했고, 그해 핸드셰이크 매출은 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때부터 매출이 급성장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기존 고객들이 추가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매년 소프트웨어 유료 고객의 30%가량이 프리미엄 서비스로 업그레이드했다고 조너선 스툴 핸드셰이크 COO는 말했다. 연방 질병통제센터의 경우, 인력이 필요한 부서들이 인사부를 거치지 않고 핸드셰이크를 통해 직접 채용을 진행하는 서비스를 위해 추가 지불에 합의했다.

대학들도 호의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경쟁사 심플리시티의 고객이었던 마이애미대학이 연간 이용료를 3만 달러에서 1만 달러로 줄이기 위해 핸드셰이크로 갈아탔다.

“(심플리시티는) 시스템이 투박해서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용 방법이 너무 어렵다고 답답함을 토로했죠.” 마이애미대학 커리어 센터의 크리스천 가르시아 행정이사가 말했다. “(핸드셰이크는) 저희처럼 뒤에서 행정을 담당하는 관리자의 편의뿐 아니라 학생들 입장에서도 이용하기 편리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체스터대학의 조 테스타니는 한 번만 이용해달라는 로드의 끈질긴 간청에 설득되어 경쟁사 그래드리더스(GradLeaders)의 자문이사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핸드셰이크를 선택했다.

“저희 대학이 이용 중이던 다른 플랫폼보다 이용료가 낮았습니다. 비용 감축이란 이점이 있었던 셈이죠.” 당시 커리어 센터장이었던 테스타니가 말했다. “저도 커뮤니티칼리지에서 공립대학으로 편입한 경험이 있습니다.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을 가게 된 학생을 보는 것 같아서 한 번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팬데믹으로 핸드셰이크는 창업 이후 가장 큰 시련이자 기회를 맞았다. 2020년 봄 4.2%였던 20~24세 대졸자 실업률은 같은 해 6월 최고 20.4%까지 치솟았다. 로드는 “구상해두었던 상품 로드맵은 그냥 잊기로 하고 온라인 툴 개발에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그해 졸업해서 사회에 나온 학생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줄 기회가 생긴 겁니다.”

핸드셰이크는 대학들이 온라인 채용박람회를 주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출시했다. 고용주들은 핸드셰이크 소프트웨어를 통해 30분짜리 단체 면접이나 10분 세션의 일대일 면접을 진행할 수 있었다. 2021년 핸드셰이크를 통해 6000회에 달하는 채용박람회가 개최됐는데, 이 중 4분의 3은 온라인 박람회였다. 코로나19로 서비스 이용이 탄력을 받은 것이다. 2019년만 해도 총 954개교가 핸드셰이크에 회원으로 등록했는데, 2021년 말이 되자 이 수는 1399개로 급증했다.

핸드셰이크에는 미국 내 총 107개 HBCU 중 66개교, 소외계층 학생을 위한 대학 280개교가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미투 운동과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촉발된 흑인 인권운동 이후 채용 다양성을 약속한 기업들은 핸드셰이크를 통해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로드는 주장한다. 핸드셰이크 등록 구직자 1200만 명 중 흑인은 13%, 히스패닉 또는 라틴 계열은 12%, 아시아계는 15%, 여성은 59%다.

“핸드셰이크는 훌륭한 인재를 찾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업 경영진과 채용 책임자들이 (다양성) 담론을 이끌 수 있도록 돕는다”고 언어학습 앱 듀오링고(Duolingo)에서 대졸직 채용을 총괄하는 르네 데이비스가 말했다.

핸드셰이크 때문에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공개 채용되는 일자리만 정보로 올라온다”고 사모투자사 어치브 파트너스(Achieve Partners)의 라이언 크레이그 전무이사가 말했다. 어치브 파트너스는 멀티버스에서 견습생이 되어 업무를 미리 경험하는 온라인 학습 플랫폼 라이펜(Riipen)에 투자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볼 수 있는 일자리를 큐레이션해서 제공하는 것뿐이라서 학생들 입장에서는 경쟁률만 높아집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학벌과 학위 위주로 채용이 진행되죠.”

핸드셰이크가 불경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 그러나 워낙 광범위하게 보급되다 보니 경기침체 중에도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어느 정도 시장을 독식한 상태”라고 핸드셰이크 대형 고객사 중 하나인 펩시코의 HR 책임자 미셸 밀리탄트가 말했다.

요즘 로드의 우선순위는 해외시장 진출이다. 2021년 4월 핸드셰이크는 독일의 온라인 채용 기업 탤런트스페이스(Talentspace)를 1000만 달러 넘는 가격에 사들이며 해외 첫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미국 본사에서는 채용을 가장 많이 하는 대기업들의 구인 요건을 기반으로 필요한 역량 개발 강의 정보를 구직자들에게 알려주는 AI를 개발 중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직군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데 고액 연봉을 받기에 기술이나 자격이 부족한 구직자가 있다면, 관련 강의가 재학 중인 대학에 개설되거나 외부에서 코딩 부트캠프가 열릴 때 이를 알려서 채용 가능성을 높여주는 서비스다.

링크드인을 비롯한 경쟁 플랫폼들이 과거 이력에 집중하는 반면, 핸드셰이크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미래 지향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로드는 말한다. 뉴욕시에서 거주하며 유나이티드공항 라운지를 제2의 집으로 삼았다는 로드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로프트 모양의 본사 회의실에 앉아 “아주 촌스럽고 인기도 없었던” 핸드셰이크가 캠퍼스 최고 스타로 성장한 과정을 돌아보며 “학생들과 젊은 전문가들에게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할 기회라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를 현실로 이룰 수 있는 자본도 충분합니다.”

- 첫 사무실(좌측부터) 핸드셰이크 공동 창업주 벤 크리스텐센, 스콧 링웰스키, 개릿 로드가 미시간주 호튼에 있는 월세 700달러짜리 주택에 핸드셰이크 첫 본사를 차리고 찍은 사진.

- KRISTIN STOLLER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포브스 코리아 온라인 서비스는 포브스 본사와의 저작권 계약상 해외 기사의 전문보기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202302호 (2023.01.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