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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의 테넷 | 정영준 메타코미디 CEO 

한국 코미디 판의 마블(Marvel)을 꿈꾸다 

방송국과 연출가가 지배했던 한국 코미디 판에 새로운 흐름과 전성기가 열리고 있다. 공중파도 케이블 채널도 아닌 유튜브라는 플랫폼에서다.

▎정영준 메타코미디 대표. 시대정신에 맞는 좋은 농담이 그가 추구하는 코미디의 정석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대학에 다녔던 나는 요즘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피식 웃곤 한다. 젊음이 좋았고, 치열했으며 무모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재미있는 시절이었다. 그런데 마치 내 20대 젊은 날의 이야기 같은 콘텐트가 유튜브에서 크게 유행했다. [05학번 이즈백]. 그 당시 멋지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지금은 촌스러운 패션 아이템으로 한껏 치장하고 나와 2000년대 초중반 있었던 이야기들을 현실감 있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코미디 시리즈였다.

시리즈를 제작한 곳은 ‘피식대학’이라는 유튜브 채널이다. 이 채널은 또 다른 메가 히트작인 [한사랑 산악회](등산을 좋아하는 아저씨들이 모여 벌이는 코미디 시리즈)를 만든 곳이 아니던가? 또 이 채널의 [임플란티드 키드]는 어떤가? 힙합 경연대회 [쇼미더머니] 본선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고 힙합 신을 씹어먹은 캐릭터 아니던가? Z세대뿐 아니라 밀레니얼, X세대를 넘어 베이비부머까지 거의 전 세대를 아우르는 콘텐트가 바로 이 채널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것도 피식대학이 속한 메타코미디라고 하는 신흥 코미디 제국의 일부에 불과하다. 숏박스, 장삐쭈부터 나몰라패밀리까지 이곳에 속한 많은 채널이 유튜브에 한 번 영상을 올렸다 하면 조회 수가 수십만 혹은 수백만을 가뿐히 넘긴다. 바로 이 메타코미디의 수장 정영준 대표를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성공 비결을 물었다.

이상인: 반갑다. 올려주는 코미디들 정말 잘 보고 있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한국 코미디 쪽에서 메타코미디가 원톱인 것 같다.

정영준: 고맙다. 사실 그것보다 아직 우리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이: 정 대표는 코미디로 사업을 하는 코미디 앤트러프러뉴어인데, 대중에게는 생소한 영역인 것 같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

정: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개인적으로 반골 기질이 조금 있는 편이다. 코미디 판에 있으면서 한국에서 코미디로 사업하면 안 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만 눈을 밖으로 돌리면, 미국이나 일본 같은 곳에서는 되는데 왜 한국에서는 안 된다고만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이내 오기가 생기더라. 예전 한국 힙합을 예로 들었을 때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힙합의 정의는 미디엄 템포에 아이돌 같은 곡이 대부분이었다. 많은 훌륭한 래퍼가 그런 음악을 하고 싶지 않지만 대중적 성공을 위해 억지로 그런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이: 맞다. 다들 마음속으로는 나스(NAS, 미국 힙합의 전설) 같은 폭풍 래핑을 하고 싶었을 거다.

정: 그렇다. 한 발 더 양보해서 제이지(JayZ)처럼 조금 더 대중적인 음악을 추구했을 거다. 물론 제이지 스타일도 그 당시 한국에서는 어려웠을 거다. 여태까지 통했던 한국식 힙합 성공 공식이 고착화되며, 이를 깨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하던 시기에 도끼(Dok2)가 ‘연결고리’라고 하는 강력한 정통 힙합을 들고 나왔다. 이 곡이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진짜 힙합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곡의 성공이 바로 도끼의 반골 성향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메타코미디를 시작하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이: 메타코미디가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한국 코미디 신에 도끼의 연결고리처럼 새로운 반향을 이끌어낸 것 같다.

정: 기본적으로 공급이 있어야 수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수요는 이미 기존 스타일에 지쳐 있었던 상황이라 가능성이 꽤 많이 보였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인 빌 버(Bill Burr), 데이브 샤펠(Dave Chappelle) 같은 사람들의 스탠드업 코미디가 한국어로 번역돼서 올라온 영상들이 조회수 수백만을 이미 기록하고 있었다. 그래서 코미디의 정석이라는 채널을 만들어서 여러 나라의 스탠드업 코미디 영상을 올려봤는데, 수요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한국에서 이러한 코미디를 시작할 만한 사람을 찾기 쉽지 않았지만, 딱 한 명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유병재였다. 그래서 유병재와 함께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기획했다.

이: 사명이 메타코미디다. 회사에 다양한 채널과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캐릭터가 속해 있는데, 메타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명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건가?


정: 메타라는 단어의 뜻은 여러 가지다.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이름을 지을 당시에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나간다는 측면에서 우리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또 메타유머라고 하는 코미디 기법(자가당착형유머)도 좋아하는 단어라서 선택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 회사가 탄생한 것인데, 시작은 어땠나?

정: 샌드박스에서 같이 연구하고 함께 만들어가던 ‘피식대학’, ‘빵송국’, ‘장삐쭈’ 같은 친구들이 조인해주기로 해서 너무 고마웠다. ‘숏박스’와 요즘 ‘다나카’로 핫한 ‘나몰라 패밀리’까지 합류해주어서 운이 참 좋았다 생각한다.

이: 그런데 시작할 당시만 해도 이들이 지상파 코미디 프로에서 인기를 끌던 전통적 코미디 시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분들은 아니지 않았나?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성공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메타코미디의 역할이 그만큼 뛰어난 것인가? 아니면 유튜브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 때문인가?

정: 여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개그콘서트] 같은 제작자 중심의 코미디가 절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외에도 [SNL]처럼 제작자들이 대본을 쓰고 코미디언을 연기자로 기용해 큰 성공을 거둔 쇼가 많다. 다만 한국에는 제작자가 아닌 코미디언이 중심이 된 ‘스탠드업 스페셜’처럼 코미디언이 직접 극을 만들고 퍼포먼스를 하며 사람들의 평가를 직접적으로 받는 형식의 프로는 많지 않았다. 코미디언이 극을 짜더라도 그 과정에서 제작자들에게 검사를 받고 내용이나 방향성이 바뀌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코미디언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시청자가 아닌 제작자에게 받는 것이 현실이었다. 코미디도 음악처럼 일종의 아트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코미디언들이 자신의 아트를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튜브처럼 시청자들과 직접 대면이 가능한 플랫폼이 생기고 나니, 아이디어가 있는 코미디언들이 엄청난 가속력을 받을 수 있었고 대중적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생각한다. 여기서 메타코미디의 역할이 실력 있는 이들에게 이러한 플랫폼을 소개해주고, 이들을 한 집단으로 묶어 시너지를 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메타코미디는 코미디계의 마블(Marvel)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세계관과 스토리를 가진 여러 캐릭터가 한곳에 뭉쳐 있으니 시너지가 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정: 실제로 코미디언들이 회사에 나와 서로 얼굴을 보고 끊임없이 교류한다. 서로서로 ‘이번에 나 뭐 해줘’라며 품앗이를 하며 예상치 못한 다양한 결과물을 뽑아낸다. 성공의 핵심은 결국 코미디언들의 뛰어난 역량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역할은 이들이 한 운동장에 모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 중에 언급한 유튜브의 등장은 한국 코미디계에는 혁명 같은 사건이었다. 코미디 자체나 코미디의 문법, 산업의 형태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만든 사람과 보는 사람의 구조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유튜브가 이 둘을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다리를 놓았다는 점에서 다른 그 어떤 나라보다 한국의 코미디계에 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정 대표가 메타코미디를 운영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시대정신’이라고 들었다. 어떤 의미와 맥락에서 시대정신이 코미디에 중요하다 생각하나?

정: 평소 내가 좋아하는 말이긴 한데, 예전 인터뷰 때 우연히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런데 유난히 문화 계통에 계신 분들이 그 단어에 꽂혔나 보다.(웃음) 내가 건축 전공인데, 예전에 건축할 때 배웠던 말이다. 수업 시간에 중세시대 뾰족한 건물들이: 왜 나왔을까 하는 질문이 나왔다. 뾰족한 것이 당시 사람들의 미의 기준이고, 이것이 건축·패션 등에 모두 담겨 있다고 배웠다. 영구라는 캐릭터를 보면 한국전쟁 즈음 있었던 동네 바보를 연기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시대의 바보라는 캐릭터를 떠올려봤을 때 영구가 맞는 캐릭터일까? 주변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고, 그러니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대정신의 측면에서 우리에게 현대의 영구는 누구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런 측면에서 엄지윤이라는 친구가 운영하는 ‘엄지렐라’가 이 시대의 바보 연기일 수 있다. 또 요즘 나오는 ‘신도시 아재들’이 요즘의 바보 캐릭터라 생각한다. 코미디란 결국엔 누구를 놀리는 것인데, 사람들이 공감하고 놀릴 수 있는 현대판 영구를 찾는 작업이 우리가 하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코미디에도 시대정신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이: 공감할 수 있는 바보를 찾는다는 것이 이해되면서도 무척 새롭게 다가온다. 코미디 특성상 불편한 말이나 설정을 활용해야 할 때도 있을 텐데, 오해나 논쟁의 소지가 있는 소재들은 어떻게 다루나?

정: 재미있는 것이 코미디의 사회적 순기능을 오히려 더 많이 보게 되는 요즘이다. 예전에 사람들이 등산복 입은 아저씨들, 특히 술에 취해 냄새를 풍기는 분들은 지하철에서 마주하면 피하고 싶은 대상 1순위였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그런 분들을 ‘개저씨’라고 폄하하는 속어 대신, “저 사람 한사랑산악회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무조건 싫기만 하던 사람들과의 단절을 코미디가 완화해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또 요즘 신도시 시리즈에 등장하는 ‘서준맘’이라는 캐릭터가 유행이다. 원래 ‘맘충’이라고, 30대 아이 엄마들을 깎아 내리는 대단히 부정적인 단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 사이에선 그 맘충도 서준맘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고 있다고 한다. 부정적이기만 했던 단어를, 극성이지만 자기 가족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근저에 깔려 있는 서준맘이라는 이름이 대체함으로써 사회적 거리를 좁히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한 시대정신에 의거해 누군가를 놀렸을 때 배척보다 오히려 융화와 화합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맞는 말이다. 이러한 코미디의 순기능 때문에 미국에서는 정치인들이 코미디 프로에 나와 자신을 희화화하는 것을 대단히 즐긴다. 남녀 사이, 세대 사이의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것도 코미디의 순기능일 것이다.

정: 그렇다. 언제나 어떤 말을 뱉기 전이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 생각한다. 적절한 어휘와 어미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면 대단히 위험할 수 있는데, 이걸 잘해냈을 때 코미디의 순기능을 100% 활용할 수 있다. ‘예술은 위험했을 때 비로소 예술이고 안전함을 추구했을 때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Art is dangerous. It is one of the attractions: when it ceases to be dangerous you don’t want it)’는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말처럼 선을 잘 타는, 시대정신에 맞는 좋은 농담이 바로 아트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 이상인은… 이상인 디렉터는 Web 3.0,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및 디자인 전문가로 현재 구글 본사에서 유튜브 광고 디자인 시스템을 총괄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플랫폼 그룹의 디자인 시스템 스튜디오 총괄로 일했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 디지털(Deloitte Digital)의 디자인 디렉터로 일했으며, 디지털 에이전시 R/GA에서 리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베스트셀러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2019년)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뉴 호라이즌』(2020년), 『디자이너의 접근법; 새로고침』(2021년)을 출간한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하다.

202302호 (202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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