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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12) | 양진옥 메이커스비 대표 

스토리가 담긴 공간 디자인 

정소나 기자
최근 공간 디자인은 예술의 한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캔버스나 미디어에 창작의 산물을 구현하듯 자신의 철학을 공간에 오롯이 쏟아내는 공간예술은 인간의 생활 최전선에서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문화예술 장르 간 융합으로 각광받고 있다. 정승우 이사장이 소개하는 이달의 주인공은 공간마다 풍성한 스토리를 담아내는 양진옥 메이커스비 대표다.

과거 공간 디자인은 부유층의 고급스러운 취미 정도로 여겨졌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실내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공간을 통한 힐링과 휴식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보편화됐다. 상대적으로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수요가 폭증하면서 관련 산업 또한 역대급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공간 디자이너의 역할도 덩달아 중요해졌다. 단순히 내부를 꾸미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 속에서 사용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때로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방식까지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정승우 이사장은 양진옥 대표를 “철저히 사용자 중심으로 생각하되 사용자의 취향을 예술적인 감성과 버무려 공간을 브랜드로 만드는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양 대표는 “공간에 이야기를 담고, 그 이야기가 콘셉트가 되어 한 편의 작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정 이사장이 공간 디자인계의 숨은 고수로 불리며 묵묵히 공간 디자인과 업스케일링에 집중하고 있는 양 대표를 만나 공간디자인 트렌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미술을 좋아했다. 우연한 계기로 실내 건축에 매력을 느껴 원래 전공이었던 전자공학 대신 실내 건축으로 전공을 바꿔 졸업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공간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

실내 건축 중에서도 주거 공간에 심취해 우리나라 주거 공간 디자인의 1인자 최시영 디자이너가 이끄는 엑시스 디자인(AXIS DESIGN)에서 6년 동안 실무를 쌓으며 평창동, 성북동, 한남동에 자리한 다수의 고급 주택 및 주거 시장을 두루 경험했다. 작게나마 공간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10년 전 독립해 현재는 메이커스비(Makers B)라는 공간 디자인 회사를 운영 중이다. Makers에 Brand의 머리글자 B를 붙여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인터뷰나 매체 노출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공간 디자이너로서 아직 성장 중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공간 디자인 일은 유독 많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항상 경험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해서 부족한 점을 채우고자 실무에만 집중해왔다. 최근에는 한 회사의 운영자로서 조금씩 생각을 바꿔나가고 있다. 마케팅 시대이고 소통이 중시되는 시대이다 보니 우리가 써 가려 하는 이야기, 철학 등을 기반으로 작업 중인 소소한 작업 과정들을 공유하고 함께 소통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방식으로든 ‘BEST ONE’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만의 작업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서 ‘ONLY ONE’이 되고 싶은 바람이다.


▎공간 안에 집을 모티프로 또 다른 공간을 설치한 병원 인테리어 프로젝트. 세계적인 건축 전문 사이트 아키데일리에 소개되기도 했다.
공간 디자인은 건축의 필수 요소가 아니라 부수적이고 소모적인 취미라는 부정적인 편견도 있다.

공간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다. 기본적 기능이 충족된 이상, 견해에 따라 사치로 보일 수도 있고 개인 소득에 따라 자기 만족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먹고살기 바빴던 과거와 달리 평균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삶의 질’, ‘자기 만족’ 등이 중요한 소비 기준으로 등장했다.

또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거 공간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집 안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인터넷에서 공유되며, 이제는 취향을 담은 인테리어가 대중화됐다. 소득 증가와 주거 공간에 대한 인식 변화는 앞으로도 공간 디자인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소비로 이어질 것이다.

유명 연예인의 주택 설계에도 참여했다.

유명 연예인 몇 분의 주택 디자인을 진행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최시영 대표님과 함께 진행한 서태지씨의 평창동 단독주택이다. 어릴 적 우상이었던 그의 집을 짓는 데 설계부터 참여해 메인 디자이너로서 직접 소통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이후 유명 TV 프로그램에도 그 집이 소개되고 훗날 매도할 때도 뉴스에서도 많이 언급되었다. 디자인에 대한 부분을 굉장히 만족해하셔서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작업이다.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 연출의 차이점이 뭔가.

디자인적으로는 두 공간에 전혀 경계가 없으나, 지극히 사적인 주거 공간과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적인 공간에 대한 심리적 접근 방식부터 사소한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굉장히 다른 공간이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볼 때 주거 공간 디자인은 굉장히 까다롭다.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면서도,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 또한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거 공간 디자인을 할 때는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성향은 물론 소소한 취향까지 알아야 공간에 반영할 수 있고, 모두가 만족하는 공간이 탄생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요소가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힘들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크고 매력적인 작업이다.


▎중요한 회의가 이뤄지는 세방그룹의 대회의실 대기 공간. 사진작가 배병우의 작품을 배치해 공간에 힘을 더했다.
반면 상업 공간은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특정 공간이 꼭 필요로 하는 기능적 요소만 포함된다면 그 외에는 디자이너의 의도가 온전히 반영된 창의적인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 공간을 캔버스 삼아 개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어 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설치작품과 미디어 작품 등을 활용한 공간 연출이 트렌드다.

공간과 아트는 사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단순히 보기 좋은 작품과 달리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작품은 따로 있다. 작품은 공간이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고, 공간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래서 디자인을 시작할 때 항상 미술작품을 염두에 둔다. 공간에 완벽히 어울리는 작품을 제안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몫이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미술관이나 아트페어를 방문해 미술작품에 대한 안목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AI가 실내 건축의 영역도 넘볼 수 있을까.

최근 가장 핫한 화두가 ‘챗GPT’다. 아직은 미흡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AI가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결론을 내려 정확한 가이드를 준다는 건 정말 대단하다. 어릴 적 공상만화에서 보았던 상상 속 세상이 조금씩 현실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머지않은 미래에는 AI가 건축의 영역도 얼마든지 넘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류 문명의 획기적인 발전이 인터넷에서 시작되었듯이 이제는 챗GPT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내가 실내 건축을 공부할 때 만 해도 손으로 직접 도면과 투시도를 그리며 실무를 배웠다. 물론 CAD라는 도면화 프로그램도 사용했지만, 주요 작업들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해야 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이어서 관련 정보 수집은 해외 디자인 서적을 보거나 직접 해외로 사례 조사를 나가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일반인도 얼마든지 인터넷에서 공간 관련 정보뿐 아니라 가격 정보까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소셜미디어에서 소통하며 아주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속도로 기술이 발전한다면 AI가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해서 판단하고 제안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공간 디자인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아주 정확한 수치가 필요한데, 인간보다는 AI가 더 정확하지 않겠나.


▎정승우 이사장이 양진옥 대표와 공간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공간 디자인을 계획 중인 독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공간 디자인이란 그저 벽면에 어떤 마감재를 쓸지, 바닥 마감은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먼저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어떤 일을 할지, 그리고 그 공간이 나에게 어떤 느낌이면 좋겠는지’에 대해 스스로 깊이 고민해봤으면 한다. 그래야 디자이너와 만났을 때 서로 소통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고, 그렇게 해야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이 연출된다.

가끔 주변에서 “인테리어 하는 사람을 잘못 만나서 돈은 돈대로 쓰고 공간은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하소연을 듣게 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안타깝고,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생긴다. 대부분 전문업체가 아닌 곳에 잘못 의뢰했거나, 예산을 낮추려고 저렴한 곳을 우선 선택해 서로 좋지 않게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고, 각자가 좋아하는 취향이나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함께 작업할 디자이너 선정이 리스크를 줄이는데 무척 중요하다. 무조건 비용을 낮추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전체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디자인과 설계에 힘을 주고, 그다음 과정들은 예산에 맞춰 조절해나간다면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만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정승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사진 임익순 객원기자

202303호 (20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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