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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 센터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사이버 러버 

2000년대 초반 대중가요에 등장했던 사이버 러버는 물리적 공간을 초월한 연인을 뜻한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어도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에 대해 노래했지만, 20년 넘게 흐른 오늘날 메타버스에서는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소통, 관계맺음,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YMCA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혼합현실 키오스크를 통해 강아지 모양 에이전트와 다양한 게임을 즐기고 있다. / 사진:안선주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는 오묘하고 복잡하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조직에 오래 몸담고 있을수록 일보다는 인간관계와 내외부적 세력 다툼이 훨씬 더 힘들고 풀기 어려운 고난도 문제라는 것은 많은 직장인이 공감할 만한 사실이다. 나도 사람들에게 치여 지칠 때는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으니 빨리 은퇴하고 산속에 틀어박혀 혼자 살아야지 싶은 날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실제로 산속에 틀어박혀 혼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는커녕, ‘도인’ 혹은 ‘기인’이라 부르며 신기해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행태는 치료를 받아야 할 문제로 바라본다. 인간은 날 때부터 사회적인 동물이라 버거워하면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맺음을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인간이 타고난 관계맺음에 대한 본능과 (우리가 흔히 ‘사회성’이라고 일컫는) 사회화를 통해 익힌 사회적 규범들이 합쳐져, 인간이 아닌 비생명체로부터 받는 작은 사회적 시그널에도 반사적으로 마치 사람과 교류하듯 반응하게 된다는 부분에 주목해왔다. 가령, 힘든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반려묘, 반려견에게 넋두리 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놀라운 부분은, 컴퓨터나 로봇 같은 기계들이 주는 사회적 시그널에도 사람들은 마치 컴퓨터가 사람이라도 되는 듯 반응하고 관계를 형성해나간다는 것이다.

에이전트 메타버스, 흔들림 없는 존재

우리가 통칭 아바타라고 부르는 가상 인간 혹은 디지털 휴먼은 과학적으로는 두 종류로 나뉜다. 사람이 디지털 개체를 통제하고 있다면 아바타(avatar), 컴퓨터가 통제하고 있다면 에이전트(agent)이다. 흔히 비디오게임 내의 Non-Player Character(NPC)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디지털 에이전트이다. 프로그래밍과 CG의 한계로 사람이 통제하는 아바타와 극명하게 달랐던 과거의 에이전트들과 달리, 오늘날 에이전트들은 인공지능(AI)까지 탑재하면서 IBM의 왓슨이나 삼성의 빅스비처럼 자연스러운 대화는 물론, 농담까지 가능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수익성이 높은 SNS 인플루언서 중에는 AI가 탑재된 가상 인플루언서가 늘고 있다. 가상 인플루언서들은 SNS에서 수백만 명에 달하는 팔로워와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로봇이 샐러드 먹는 거 봤어?’ 같은 자의식 충만한 자연스러운 농담까지 던지는 여유를 보여준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하더라도 현 사회규범으로는 에이전트와 우정을 쌓고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당장 용납하기 힘들 수 있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사회규범은 사회 구성원들끼리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결정되는 것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빠른 사회적 변화를 감안했을 때 오늘날 이상한 것들이 5~10년 후에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이 될 수 있다. 가령, 북미에서는 1967년이 되어서야 인종 간 결혼을 합법화했고 그 전까지는 불법이었다. 결혼에 대한 사회규범 역시 급변하여 요즘은 타 인종뿐 아니라 국제결혼을 한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는 사람이 없다. 둘째, 인간관계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에이전트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지속적이고 흔들림 없는 지원을 보탤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인간과 달리 지치지도 않고, 감정이나 호르몬에 따른 변화도 없으며, 항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가장 친한 친구나 가족들에게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일지 모른다.

필자의 센터에서 지난 5년간 진행한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를 봐도 정교하게 디자인된 에이전트들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의 경우,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들에 대한 인적·물적 자원이 항상 턱없이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1:1 맞춤 케어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센터 연구진은 사회과학적 이론들을 바탕으로 디자인된 에이전트를 활용해 20여 개 초등학교 아이들의 방과 후 프로그램 활동을 지원하게 하여 약 반년 넘게 추적 관찰했다. 물론 이런 에이전트들이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모와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자녀의 학습 상황이나 방과 후 활동 진도 등을 부모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다. 실험 결과 이런 피드백은 부모님들이 더욱 원활하게 자녀를 지원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실험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에이전트 덕분에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심적으로 많은 지원과 위로를 받았으며, 이런 심리적 지지는 본인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힘이 되어줬다고 한다.

AI를 통해 맞춤형 위로를 배우는 에이전트

챗GPT가 세상에 나오면서 요즘은 ‘기승전챗’이라는 말과 함께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고 있다는 일각의 분석도 있지만, 사실 AI의 발전은 메타버스 분야에 반가운 소식이다. 생성형 AI의 발전과 함께 에이전트들은 개인 유저에게 맞춤형 팁과 정보, 더 나아가서는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줄 수 있고 메타버스의 발전과 함께 유저들은 가상과 현실의 공간 모두에서 체화된 에이전트들에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마블 유니버스의 핵심 캐릭터 중 하나인 아이언맨과 함께 등장하는 ‘Just A Rather Very Intelligent System(J.A.R.V.I.S.)’처럼 주인에게 필요한 모든 부분을 가상과 현실의 세계에서 원격 지원해주는 든든한 파트너인 셈이다.

이렇게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 가짜-시뮬레이션-를 만들어내는 생성형 AI와 인간 간 교류의 폭이 넓고 깊어지면서 고려해봐야 할 문제들은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철학과 사회적인 부분이 크다. 인공지능형 에이전트들의 완벽한 심리적 지원과 맞춤형 정보에 익숙해진 인간들이, 불완전한 인간이 비효율적으로 전하는 마음을 하찮게 보게 되지는 않을지, 그래서 기계가 전하는 메시지를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보다 더 우위에 두게 되지는 않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또 이런 기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회취약계층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이들이 넘기 힘든 기술적 장벽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닌지 등이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효율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컴퓨터와 기계를 상대로 인간의 경쟁력은 오히려 우리의 불완전함과 꼼꼼히 채워지지 않는 여백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 안선주 센터장은…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 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304호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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