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강호의 생각 여행(42) 통일 독일과 지속가능한 역사 

 

독일 베를린은 과거 동서독 시절의 분단과 현재 통일 독일의 번영을 아울러 상징하는 도시다. 베를린 여행은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브란덴부르크문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증거하는 현장이다. 나폴레옹에게 패전했을 때는 문 위의 사두마차상은 파리로 옮겨졌다가, 승전 후 다시 찾아왔다. 냉전시대에 닫혔던 문은 독일 통일 이후 다시 열렸다.
학창 시절에 ‘세계지리’ 시간을 유난히 좋아했다. 우리나라 밖에 있는 다른 나라들은 어떤 모습이고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항상 궁금했다. 지금이야 수백만 마일러로서 지구를 수없이 돌고 돌아서 나라와 나라, 도시와 도시를 수없이 방문해보았지만, 학창 시절에는 그저 동경과 호기심의 세계일 뿐이었다. 그 시절 지구상에는 세 개의 분단국가가 있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남북으로 나뉜 베트남과 동서로 나뉜 독일이었다.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이 세 나라 중 베트남은 전쟁을 치르며 통일됐고, 독일은 평화적인 통일을 이뤄냈다. 이제 지구상에 존재하는 분단국가는 한반도에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는 우리나라뿐이다. 그래서일까.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방문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는 참으로 특별한 감동을 주는 여행이다.

예전에는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다가 희생된 많은 독일인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 특별한 느낌을 가지곤 했다. 이제 유럽의 중심 국가가 된 통일 독일의 베를린은 국제 정치 및 경제계에서 중요한 도시가 됐다. 아직도 남아 있는 옛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을 따라 걸어보았다. 자연스레 DMZ가 떠올랐고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베를린장벽을 따라서 옛날 동서독의 상황을 극명하게 설명해주는 여러 사진과 글이 전시되어 있었다. 분단 시절 나라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고 많은 전시물을 보여주고, 수많은 사람이 그 전시물을 따라서 역사를 더듬어보며 교훈을 학습하는 장이 되어 있었다. 장벽이 철거된 곳에도 과거 장벽이 서 있던 자리를 두 줄의 돌로 도로 위에 표시해놓았다. 비록 장벽 자체는 사라졌지만 역사의 흔적을 알려주려는 의도리라. 특히 냉전시대 동서독 분단을 상징하는 ‘체크포인트 찰리’를 찾았다. 당시 군인들이 보초를 섰던 초소다. 한쪽엔 미군 병사, 반대쪽엔 소련 병사들이 군복을 입고 군모를 쓴 큰 초상화가 양쪽에 설치되어 있다. 무척이나 인상적인 장소다.

역사와 평화의 상징, 브란덴부르크문


▎카이저빌헬름 기념 교회는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파괴되었는데, 전쟁의 참혹함을 교훈으로 전하기 위해 그대로 남겨두었다.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 이제 아무런 느낌 없이 자유로이 행보할 수 있는 평화로운 이 나라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서로 나뉘어서 첨예한 냉전의 현장을 상징하지 않았던가?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이 장벽을 넘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던가? 과거의 역사는 잊히고 마는 것인가? 공포스러웠던 그 시절을 마치 다 잊은 듯 많은 사람이 평화롭게 왕래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DMZ를 가운데 두고 아직도 남북으로 대치하고 있다. 많은 젊은이가 DMZ 안 GP나 철책선을 따라서 배치되어 있는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옛날 최전방에서 소대장을 하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며 평화로운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모습을 머릿속에 담아 간다.

여러 역사적 의미가 담긴 ‘브란덴부르크문’도 찾았다. 브란덴부르크문은 프로이센 왕국의 제4대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1788년부터 1791년까지 지었다. 카를 고트하르트 랑한스가 이 문의 설계를 담당했는데,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를 참고했다고 한다. 브란덴부르크문의 역사를 보며 국가의 흥망성쇠에 관한 교훈이 떠올라 정리해보았다.

“브란덴부르크문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처음 건립했을 때는 ‘평화의 문’이라고 불렸다. 문 위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그리스 여신 에이레네와 그녀를 이끄는 사두마차가 조각됐다. 1806년에 프로이센이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나폴레옹에게 대패한 이후, 나폴레옹은 이 문에서 개선식을 했다. 나폴레옹은 개선식 직후 관문 위에 있는 사두마차 상을 프랑스 파리로 옮겼다. 나폴레옹이 1814년에 대패하고 프로이센이 에른스트 하인리히 아돌프 폰 부펠 장군의 지휘 하에 파리를 점령한 이후 파리에 있던 사두마차 상은 다시 베를린으로 되돌아왔다. 돌아온 사두마차 상의 여신은 ‘평화의 여신’이 아니라 ‘승리의 여신’인 빅토리아로 바뀌었다. 또 프러시아의 상징인 독수리와 참나무 잎으로 둘러싸인 월계관도 이때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후 브란덴부르크문은 승리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중요한 행사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명소가 됐다.

브란덴부르크문은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를 면했으나, 포탄과 총알이 기둥에 박히는 피해를 입었다. 또 사두마차 상의 4개 말 조각상 중 1개를 제외한 3개의 말 머리상이 날아가기도 했다. 독일 시민들은 베를린장벽이 세워지기 직전까지 이 문을 통해 자유로이 왕래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이후 모든 출입은 금지되었고 독일이 재통일된 1989년 12월 22일까지 계속되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매년 6월 마지막 일요일에 연주하는 발트뷔네(Waldbühne) 야외 공연장.
1989년 베를린장벽이 철거되고 동독이 무너지자 브란덴부르크문은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문으로 떠올랐다.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장벽 붕괴를 축하하기 위해 수천 명이 이 문 앞에 모였고, 1989년 12월 22일에는 헬무트 콜 총리가 다시 완전히 개방했다. 콜 총리는 한스 모드로우 동독 수상과 만나 완전한 통합을 선언했다. 같은 해 장벽의 나머지 부분도 대부분 철거되었다. 독일은 1990년 10월에 완전히 공식적으로 재통합되었다. 이후 브란덴부르크문 앞 광장은 대부분 자갈로 덮여 포장되었고, 이곳에서 수백만 명이 모여 대규모 행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브란덴부르크문을 돌아보고 광장을 거닐며 복잡했던 역사의 질곡을 느껴보았다. 독일은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국가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사를 반성하는 뜻으로 기념물을 세우거나 역사적인 건물의 전쟁 흔적을 교훈으로 남겨 두고 있다. 그중 두 곳의 현장을 찾았다. 처음에 찾은 장소는 홀로코스트로 살해된 ‘유대인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다. 넓은 부지에 콘크리트 비석 2711개가 격자 모양으로 늘어서 있다. 거대한 공간에 두께 0.95m, 너비 2.38m 크기 블록이 다양한 높이로 세워져 있다. 그 사이를 거닐며 색다른 느낌으로 역사를 생각해보았다.

두 번째 장소는 베를린 중앙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다. 1890년대에 지어진 이 역사적인 교회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크게 파괴되었는데 부서진 건물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교훈으로 전하기 위해 철거하거나 개축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주변에 건설된 최신형 고층 건물들과 대비되어 전쟁의 폐해와 평화를 곱씹어 보게 한다.

리더의 임기와 조직 발전의 상관관계


▎베를린장벽을 따라서 여러 사진과 글이 전시돼 있다. 분단국이었던 동서독 시절의 아픔을 잊지 않으려는 역사 학습 현장이다.
무거운 역사 이야기에서 벗어나 이야기 방향을 문화로 틀어보자.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매년 발트뷔네(Waldbühne)에서 정기 야외 공연을 벌인다. 발트뷔네는 청중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계단식 원형극장이다. 모든 좌석을 꽉 채운 야외극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문화의 감동에 흠뻑 빠져본다. 야외 공연인 만큼 관객들의 복장도 다양하고 분위기도 아주 자유롭다. 1984년부터 해마다 시즌 마지막 공연으로 6월 마지막 일요일에 공연하는데,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언제나 ‘베를린의 공기:Berliner Luft’다. 세계적인 명 지휘자가 지휘하고, 관객이 박수 치며 참여하는 전통이 참 멋지다.

평화적으로 통일된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방문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부처의 누가 통일에 관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나가는지 궁금해졌다. 원대한 평화 통일 전략을 위해서는 오랜 경험과 경륜을 갖추고 글로벌 상황에 대한 해박한 이해, AI와 우주시대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모두 모여야 할 것이다. 글로벌 무대에서 리더십과 협상력을 발휘하면서 이루어가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업을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임기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CEO로서 경영에 참여하면서 오랫동안 생각한 것은 핵심 책임자의 임기와 조직의 지속가능성이다. 사기업의 경우 연말이 되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할 것 없이 경영 사장이나 임원들이 자기 자리가 연장될지 아니면 사표를 내야 할지 전전긍긍하곤 한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말에는 거의 한두 달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라고 한다. 연임될지 퇴직할지를 몰라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자리를 순환하고 새로운 수혈을 통해 생산성 있는 조직으로 활기를 불어넣거나, 반대로 부조리가 싹트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전문가의 기본적인 임기가 너무 짧은 것 같다. 기업 CEO의 경우도 3년 내지 4년이 고작이고, 고위급 공무원이나 군 주요 보직에 있는 장군들도 임기가 1년에서 2년에 불과하다. 너무 짧다. 1~2년이라는 시간은 업무를 파악하고 무엇인가를 시작하려고 하면 이미 다른 보직으로 떠나야 되는 상황임을 뜻한다. 이렇게 짧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장기 전략과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면서 결과를 창출해내고, 나아가 조직이 지속가능하도록 운영하기 쉽지가 않다.

예를 들어보자. 올해는 나의 모교인 육군사관학교가 개교한 지 77주년이고, 우리 동기생이 졸업한 지 50주 년이 되는 해다. 지난 5월 열린 개교기념일 행사에서는 명예롭게도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념식 행사를 위해서 실로 오래간만에 학교를 몇 번 다녀오면서 옛 추억을 돌이켜보았다. 우리가 육군사관학교에 처음 입교했을 때 교훈은 지·인·용(智·仁·勇)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교장이 부임하면서 교훈을 바꾸었다. 그리고 순수한 한글로 된 교훈탑이 새로 생겼다. 졸업 후 여러 해가 지나 모교에 가보니 다시 지·인·용, 즉 원래 교훈으로 바뀌어 있었다.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후 남은 일부에 그려진 ‘형제의 키스’ 그림.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전 동독 서기장의 입맞춤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유명한 작품이다. 러시아 화가 드미트리 브루벨이 그렸다.
좋은 변화를 시도해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긍정적인 노력이다. 그러나 어떤 책임을 맡았을 때 짧은 임기 동안 무엇인가를 남기려고 하면 여러 혼란이 올 수 있고 지속가능한 역사를 이뤄가기도 쉽지 않다. 육군사관학교의 역사가 77년인데 학교 교장이 59대째다. 육사 교장의 임기가 평균 1.3년이라는 뜻이다. 국가의 간성을 양성하는 육사 교장 임기로는 턱없이 짧다. 백 년 천 년의 국가 역사를 설계하고 장기 전략과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최고 책임자의 임기라고는 믿을 수 없다.

미국의 육사인 웨스트포인트는 221년 역사에 현재 교장이 61대다. 평균 재직 기간은 3.6년이다. 한국 육사 교장의 임기보다 거의 3배 길다. 엄격히 선발하여 훌륭한 군 교육 및 훈련지도자를 임명하고 최소 5년 내지 10년 임기를 부여해야 세계에 우뚝 서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것이다. 참고할 사례로 미국 원자력 해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리코버 제독은 82세까지 무려 63년간 해군 장교로 근무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현역이다. 그의 비전과 창의적인 추진력은 오늘날 미 해군을 세계 최강의 원자력 해군으로 만들었다. 이는 미국 의회가 리코버 제독의 정년 연장을 허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베를린에서 만난 독일의 사례 같이, 우리도 평화통일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임기가 보장된 리더와 전문가들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기업이나 공공조직,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안목을 토대로 중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 CEO, 정부 고위 공직자, 군 장성들이 오랜 기간 습득한 경험과 통찰력으로 전략을 실행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 즉 여유 있는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 임기만 확보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철학과 역량을 갖춘 리더가 조직의 미션과 비전을 명확히 하고, 지속 발전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펼치는 것이다. 이때 리더의 태도, 자질, 능력이 뒷받침돼야 함은 당연하다. 지구상에 분단된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지속적이고 평화로운 역사는 언제쯤 이루어질까?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306호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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