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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STEP AFTER CES] 정상국 마이크로시스템 대표 

스타트업의 내실 있는 성장 

노유선 기자
마이크로시스템은 2020년 CES 혁신상 수상 이후 성취감에 도취하지 않고 사업 아이템의 시장성과 확장성을 지속적으로 검토했다. 정상국 대표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기술이전 요구를 뿌리치고 시장분석을 기반으로 새로운 아이템과 로드맵을 구상했다. 그는 “코어 기술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가 내실 있는 성장에 가장 주효했다”고 말했다

올해 CES(Customer Electronics Show·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 최고 혁신상(Best of Innovation)을 받은 마이크로시스템은 2020년부터 4년 연속 CES 혁신상을 수상했다. 지속적으로 기술을 고도화해 활용도를 높인 덕분이다. 이번 최고 혁신상 수상으로 마이크로시스템은 스마트시티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보유 특허 수는 45개에 이른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전자식 자가세정(Drop Free Glass·DFG) 기술이 적용된 인공지능형(AI) 영상 감시 CCTV(보안 카메라)다. 전기신호를 이용해 빗물이나 오염물질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빠르게 제거해 다양한 외부 환경에서도 고화질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2017년 마이크로시스템을 창업한 정상국(50) 대표는 “오늘날 대부분의 CCTV에는 와이퍼를 이용한 기계식 세정 방식이 적용된다”며 “하지만 스마트시티에 다량의 AI CCTV가 도입되면서 주기적으로 와이퍼를 관리·교체해야 해 번거로움이 극대화됐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시스템의 DFG 기술이 적용된 CCTV는 국내 관공서와 해안 도시, 국방 철책 감시 영역에 설치되고 있다. 국토부·국방부의 실증분석이 완료되면 보급량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정 대표는 “향후 스마트시티로 발돋움할 인천, 울산, 부산 등 항만도시에 마이크로시스템 제품이 도입될 예정”이라며 “해상에서 카메라에 물방울이 맺히면 백화현상으로 와이퍼가 부식되기 때문에 DFG 기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빅테크의 러브콜도 뿌리친 뚝심

지난 7월 14일 경기 용인 마이크로시스템 사무실에서 만난 정 대표는 “창업 계기는 단순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전기신호를 이용해 물방울의 위치를 바꾸는 연구를 오랫동안 해온 그는 “비 오는 어느 날 지상에 주차돼 있던 차에 탔는데 빗물 때문에 후방카메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후진이 어려웠다”며 “비단 나만의 고충이 아니라는 생각에 창업 아이템을 구상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비가 오면 와이퍼가 기계식으로 빗물을 닦아내지만 마이크로시스템 기술은 표면의 빗방울을 감지해 전기신호를 발생시켜 물방울을 표면 바깥으로 떨어뜨린다. 이른바 ‘전자식 와이퍼’다. 창업 3년 후 정 대표는 전자식 와이퍼가 적용된 차량용 센서로 CES 모빌리티 분야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자율주행 차량을 개발하는 국내외 기업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과의 협상에서 정 대표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B2B 시장에 뛰어들어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개발·납품 관련 논의를 하면서 창업 초창기 무엇을 놓쳤는지 비로소 깨달았어요. 자율주행 차량에는 외부 카메라 센서가 8개 정도 들어갑니다. 비나 눈이 오면 자율주행 차량에 전자식 와이퍼가 필수적일 것이라 예상했고, 예측한 대로 수요도 충분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스타트업이 굴지의 대기업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완제품보다 기술이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 대표는 독자 기술을 적용한 완제품 판매를 원했지만 상대 기업은 공동 프로젝트를 통한 기술이전을 요구했다. 그는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술 고도화에 전념했다. 2021년 전자식 유체 가림막 기술을 개발해 또다시 CES 혁신상을 받았다. 기술개발을 위한 자금 조달은 정부 지원사업의 덕을 톡톡히 봤다. 2020년 일본과의 외교 마찰로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중소벤처기업부는 소부장 100대 창업기업으로 마이크로시스템을 선정했다.

이듬해 아기 유니콘 최우수 기업으로도 선정된 덕분에 마이크로시스템은 지속적으로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정 대표는 “홍보·영업 측면이 다소 부족해도 정부 지원사업 덕분에 완제품을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품화·상품화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정 대표는 “기술을 다르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 특히 기술을 제품화해서 직접 판매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연구했다”며 “지난해 스마트시티 분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상품성을 인정받자 시장의 문이 열렸다”고 회고했다.

시장분석을 통한 사업다각화

정 대표는 “CES 혁신상 수상도 의미가 깊었지만 완제품이 상품성을 인정받았을 때 더욱 기뻤다”고 말했다. 스마트시티 분야에 진출해 기술이 상품화되자 업계의 의심 어린 눈초리가 마침내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고백이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KSC DAY 글로벌 투자 유치 IR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자 B2G 시장의 문이 열렸다.

“스마트시티에 도입되는 AI CCTV는 사람이 쓰러지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인식해 112에 신고합니다. AI CCTV 설치 대수가 늘어나면서 마이크로시스템의 DFG 기술이 각광받기 시작했어요. 국내 관공서와 항만공사뿐 아니라 미국 일부 지역의 항만에도 제품 수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스마트시티로 사업을 다각화한 건 ‘신의 한 수’였어요. 실적도 대폭 향상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시스템의 전략은 DFG 기술이 적용된 AI CCTV를 캐시카우 삼아 해외 진출을 가속화한 뒤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동차·선박의 자율주행(운항) 카메라와 라이더 센서에 DFG 기술을 접목하는 것이다. 이때 IPO(기업공개)도 고려하고 있다. 최종 지향점은 카메라뿐 아니라 전면 유리에 DFG 기술을 적용해 와이퍼가 불필요한 자동차 시대를 열고 이 기술이 적용된 건물 유리를 개발하는 등 대형화에 성공하는 것이다.

정 대표는 마이크로시스템의 지속성장 비결에 대해 “코어 기술(원천기술)을 기반으로 킬러 역량을 갖춘 덕분”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코어 기술 없이 그저 좋아 보이는 타사 기술을 엮어서 디자인만 번지르르하게 하면 경쟁업체로부터 순식간에 따라잡힐 수 있다”며 “시장을 면밀하게 분석해 코어 기술의 활용성을 연구하고 제품을 만든 다음 마케팅 수단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일련의 순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타트업 혹한기’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가 줄었다고 무조건 힘든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내실 있게 성장해왔다면 투자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해서 금세 경영난에 허덕이진 않아요.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네트워크로 초기 투자를 받았을 때 내실 경영보다 외형 성장과 고용 확대에 치중했던 스타트업은 지금 힘들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엔 사업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는 것이 관건입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 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308호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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