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NEXT STEP AFTER CES] 진정한 혁신, 스타트업 성공의 조건 

 

노유선 기자
올해 CES 혁신상을 싹쓸이한 K-스타트업은 총 111개사. 이와 대조적으로 MWC와 비바테크에서 주목받은 K-스타트업은 두 곳에 불과하다. 국내 유니콘기업 중에서도 CES 혁신상 수상 이력을 가진 곳은 전무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스타트업 혹한기는 ‘혁신’의 진정한 의미와 스타트업 성공의 조건을 점검하기에 적기다.

스타는 이곳에서 탄생한다. 하드디스크, OLED TV, 태블릿PC, 전기차, 자율주행차, AI 로봇, 5G, 폴더블폰 등. 오늘날 전 세계인의 일상을 바꿔놓은 신기술은 대부분 CES(Customer Electronics Show·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였다. 1967년 미국 CTA(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소비자기술협회)가 첫 문을 연 CES는 매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다. 현시대의 최첨단으로 불리는 기술의 각축전에는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도전장을 내민다. 올해는 173개국 3200여개 기업이 참여해 코로나19 팬데믹(이하 코로나) 이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전 세계의 쟁쟁한 기업 사이에서 혁신상(Innovation Awards)을 수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CES는 카테고리별로 높은 점수를 받은 제품에 혁신상을, 전체 카테고리에서 최우수 제품에 최고 혁신상(Best of Innovation)을 수여한다. 총 87명의 심사위원은 디지털헬스, 모빌리티, 스마트홈, 가전, 소프트웨어·모바일앱 등 28개 카테고리에서 △기능성(Engineering & Functionality), △심미성(Aesthetic & Design), △독창성(What makes the product unique and innovative) 등 3가지 기준으로 출품작을 평가한다. 올해 CES에서 수여된 혁신상은 총 612개, 최고 혁신상은 총 23개였다.

올해는 한국이 유난히 빛났던 해였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혁신상과 최고 혁신상을 수상했다. 총 134개 기업이 혁신상 216개와 최고 혁신상 12개를 얻는 데 성공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101개, 2021년 101개, 2022년 139개, 2023년 216개의 혁신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처음으로 10개가 넘는 최고 혁신상을 획득했다. 다만 한 증권사 관계자는 “미중 이슈로 중국 업체가 대거 불참했고 전쟁 중인 러시아도 참가하지 못했다”며 지나친 자축을 염려하기도 했다.

한국 기업의 쾌거는 글로벌 테크 트렌드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2019년부터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는 꾸준히 주목받아왔으며, 모빌리티(미래교통수단)와 메타버스, 지속가능성 등이 연이어 핵심적인 신기술로 부상했다. 특히 올해 CES에서는 디지털헬스와 모빌리티, 스마트홈, 가전, 소프트웨어·모바일앱 등 카테고리가 전체 혁신상의 42.8%를 차지하며 테크 트렌드의 대세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반면 헤드폰·개인오디오와 컴퓨터 하드웨어·구성품 분야는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4.3%, 3.6% 수상 비중이 감소했다.

특히 올해 K-스타트업의 CES 혁신상 수상 이력은 화려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 수준에 미달하는 기업을 벤처기업으로, 업력 7년 이내의 기업을 창업기업으로 규정한다. 여기에서는 벤처기업과 창업기업을 합쳐 ‘스타트업’으로 통칭한다. 이번 CES에서는 K-스타트업 111개사가 혁신상을 받았다. 국내 수상 기업 전체 134개사에서 82.8%에 달하는 비중이다. 정아봉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정책관 기술창업과 사무관은 “K-스타트업이 디지털 기술이 각광받는 시대를 만나 세계 무대에서 주목을 받았다”며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이전부터 꾸준하게 기술력 향상에 집중해온 스타트업이 빛을 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CES가 옛 명성을 점차 잃어가면서 혁신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냥 반길 만한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올해 전 세계에 뿌려진 CES 혁신상은 총 612개. 2020년 464개였던 점을 고려하면 3년 새 25%가량 증가한 셈이다. 변재극 더브이씨(THE VC) 대표는 “혁신상의 허들이 낮아지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권위도 없어질뿐더러 투자 결정 시 변별력도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CES에서만 유독 사랑받는 K-스타트업


2019년 CES 혁신상을 수상한 K-스타트업은 7개사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11개사로 퀀텀점프했다. 최고 혁신상을 받은 스타트업도 5개사에 이른다. 대기업 4개사보다 많은 숫자다. 2019년 이후 CES에서 혁신상을 4차례 받은 K-스타트업은 마이크로시스템과 룰루랩, 링크페이스 등이고, 3차례 수상 기업으로는 클로버스튜디오, 위드어스, 테그웨이, 알고케어, 럭스랩 등이 있다. 그 밖에 블루필, 클레온, 버시스, 레티널, 와따, 딥브레인 에이아이, 앤씰, 비주얼캠프 등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혁신상을 수상했다.

K-스타트업의 괄목할 만한 성과에 대해 문혜령 코트라 중소혁신기업팀 대리는 “코로나 시기 디지털전환 바람이 불면서 관련 테크 스타트업으로 자금이 다량 유입됐다”며 “이미 기술력이 확보된 스타트업들은 이를 성장 발판으로 삼아 기술을 더욱 고도화했다”고 분석했다. 대규모 투자 유치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된 역량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 2월에 열린 MWC(Mobile World Congress)와 6월에 개최된 비바테크(Viva Technology)에서 K-스타트업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MWC와 비바테크에서 이목이 쏠린 K-스타트업은 두 곳뿐이었다. ‘CES 혁신상 싹쓸이 현상’과 사뭇 대조적이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에서 GLOMO(글로모) 어워드를 수상한 K-스타트업은 LBS테크, 단 한 곳뿐이었다. MWC를 주최하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올해 모바일기술, 디지털X, 단말기기, 착한 기술, 정부 리더십 등 5개 부문에서 총 27건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SK텔레콤과 LBS테크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2017년 설립된 LBS테크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장애 스마트시티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한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23에 마련된 한국관 부스의 모습. / 사진:KOTAR MADRID TRADE CENTER
지난 6월 개최된 유럽 최대 스타트업 행사 비바테크에서도 K-스타트업의 희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비바테크는 여성 창업자 챌린지, 넥스트 유니콘 어워드(유럽 기업으로 제한), 아프리카 테크 어워드, LVMH 이노베이션 어워드 등 다양한 시상식을 마련해 스타트업의 미래 성장을 독려한다. 올해 비바테크는 일론 머스크가 깜짝 등장한 데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기조연설을 맡아 K-스타트업의 수상 소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K-스타트업으로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린 곳은 아들러가 유일하다. 서울대 자퇴 후 2021년 아들러를 설립한 유리카 오베르뉴 대표는 로딩 속도가 빠른 3D 엔진을 개발해 ‘여성 창업가 챌린지-톱 30인’에 포함됐다.

K-스타트업이 CES와 달리 MWC와 비바테크에서 외면받은 원인으로 ‘기술 쏠림현상’을 꼽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테크 트렌드 전망에 따라 해당 분야 창업이 우후주순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CES에서 다수의 K-스타트업이 디지털헬스(약 27%)와 스마트시티·스마트홈(약 13%), 소프트웨어·모바일앱(약 17%) 분야에서 성과를 거뒀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CES 혁신상 지원서 작성을 위한 쪽집게 강의도 성행하고 있다”며 “한 가지 제품을 여러 카테고리에 중복 지원하고자 스토리를 짜는 기술을 가르친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신생기업) 반열에 오른 국내 기업 중 CES 혁신상 수상 기업 출신은 단 한 곳도 없다. 수많은 K-스타트업이 CES 혁신상에 열을 올리지만 실효성은 그에 상응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국내 유니콘기업은 총 22개사다. O2O서비스, 핀테크, 소프트웨어, 중개 플랫폼, 게임 등 여러 분야에 고른 분포를 보인다.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비바테크(Viva Technology)에서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기조연설을 맡았다. / 사진:중소벤처기업부
코로나 시기 자금 유입이 원활하던 호시절도 끝났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국내 투자업계도 위축되면서 스타트업 투자 한파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 스타트업 생태계 민간 지원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표한 투자 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국내 스타트업 투자 건수는 584건, 투자 금액은 2조3226억원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투자 건수(998건), 투자 금액(7조3199억원)과 비교하면 각각 41.5%, 68.3% 줄어든 수치다. 월별 투자 유치액은 5월(8214억원)을 제외하면 매달 3000억원 안팎이었다. 반면 지난해 상반기에는 매달 1조원이 넘는 투자 유치액을 기록했다.

실제로 2019년 CES 혁신상을 수상한 K-스타트업 중에는 여전히 시드 투자 단계에 머물러 있거나 고용인원이 2명으로 급감한 경우도 있다. 변 대표는 “CES 혁신상이 레드닷 어워즈처럼 변질되면서 혁신상 수상 이력이 투자 유치 과정에서 무조건 좋은 점수를 얻는다고 보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한 VC는 “혁신상 수상 이후 새롭게 유치한 투자액으로 사무실을 확장하거나 직원 수를 늘렸다가 몇 년 뒤 사업성이 떨어져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스타트업 업계에 혁신상 쪽집게 강의가 있다면 투자업계에는 허수 감별법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지속적인 제품·기술 개발로 진짜 혁신에 임해야 할 때”라며 “수상 실적에 도취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무게를 견뎌라


진정한 혁신이란 무엇일까. 200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에드먼드 펠프스(Edmund Phelps)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경제학과 교수는 “높은 수준의 혁신은 단순히 과학적 발명의 결과물이 아니다”라며 “세계 어딘가에서 새로운 관행이 되는 새로운 방식이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혁신은 아이디어 착상과 신기술 개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품·방식이 사용가치를 인정받아 널리 활용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국내 VC들 역시 한목소리로 스타트업의 성공 요건을 세 가지로 꼽는다. △창의적인 기술·아이디어, △투자자·소비자 설득 능력, △시대적 배경 등 삼박자를 고루 갖춰야 스타 기업이 탄생한다는 설명이다. K-스타트업도 CES 혁신상 수상으로 과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기보다 ‘진정한 혁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그야말로 혁신 중의 혁신,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 스타트업 혹한기일수록 시장성과 성장성을 갖춰야만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6년 전 국내 대기업에서 스핀오프(회사분할)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이라 비즈니스 모델이나 사업 로드맵, 고객 적합성 등에 대해 지식이 부족했지만 모회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단계별 로드맵을 명확하게 정립한 다음 스핀오프했기에 혹한기에도 무리 없이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모델은 △비즈니스가 잘 돌아갈 수 있는지 분석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 가설을 설정하며 △어떤 단계를 거쳐 비즈니스를 진행하겠다는 로드맵을 구축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는 “특이한 아이디어만 믿고 창업에 뛰어든 스타트업이 경영난에 허덕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라고 지적했다.

이홍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도 “기술력과 시장성뿐 아니라 둘을 잇는 연결고리, 즉 설득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많은 스타트업이 혁신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며 “기술력만 있으면 시장이 무조건 열릴 것이란 확신은 혁신에 대한 과한 착각”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대기업, 중견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도 비즈니스 모델을 거울로 삼고 사업 성공 확률을 어떻게 높일지 지속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며 “시장성을 확보했는지, 고객은 충분한 수준인지, 향후 비용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점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투자자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바위를 뚫어내는 도전’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는 “대체로 투자자는 비관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데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과정도 녹록지 않다”며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불안감과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끊임없이 조언을 듣고 인사이트를 얻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스타트업이 개방적인 만큼 시장에 대한 안목도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202308호 (2023.07.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