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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환이 만난 혁신 기업가(44) 성우석·박형진 콥틱 각자 대표 

아이웨어의 A to Z 

노유선 기자
의류를 구매할 때는 당연히 사이즈를 확인하면서도 안경을 맞출 때 얼굴 크기를 고려하는 경우는 드물다. 안경다리의 높낮이나 코 받침의 각도만 조정할 뿐이다. 이처럼 국내 안경 시장에서 ‘원 사이즈 안경테’는 당연시되어왔다. “현상 유지를 싫어하고 질문하길 좋아한다”는 두 창업가가 만나 개인 맞춤형 아이웨어의 새 길을 열었다.

▎성우석·박형진 콥틱 각자대표는 “국내 안경시장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세계 아이웨어(eyewear)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179조원.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시장 규모는 연평균 4.37%씩 증가해 2027년 212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 중 안경테(eyewear frames)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5.5%(약 100조원)다. 일찍이 코트라(KOTRA)도 한국 안경 관련 업체의 혁신과 도전을 제안한 바 있다.

“안경 산업은 노령화 시대와 디지털 시대에 더욱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 한국의 안경 관련 업체들은 이러한 시기를 잘 틈 타 독자적이고 우수한 안경 기술력과 뛰어난 디자인, 가격경쟁력 확보 등을 통해 미국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코트라, 『미국 ‘와비파커’ 상장으로 보는 안경시장 전망』, 2021.

이러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뉴스에서 한국 업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소식을 듣긴 어려웠다. 글로벌 아이웨어 시장의 키 플레이어 5개국은 미국, 중국, 독일, 프랑스, 일본으로 수년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 스타트업 콥틱은 3D 스캐닝 기술로 개인 맞춤형 티타늄 안경테 제작에 성공했고, 그해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이후 독일의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와 iF 디자인 어워드에서도 수상하며 기술력과 디자인을 모두 인정받았다.

콥틱은 2017년 회계사 출신인 성우석(44) 대표와 국내 대표적 안경 브랜드 알로(ALO)를 창업한 박형진(49) 대표가 뜻을 모아 설립한 스타트업으로, 아이웨어 브랜드 ‘브리즘(breezm)’을 운영한다. 안경 상담부터 측정, 착용, 제작 등 전 과정에 첨단기술을 도입해 개인 맞 춤형 안경을 판매한다. 3D 스캐닝·프린팅, 레이저커팅, 인공지능(AI) 스타일 추천, 가상(AR) 착용 등 최신 기술을 총망라한 결과다. 지난 2월 기준 누적 판매액은 약 110억원. 2020년 말부터 소비자 거래 건수가 본격적으로 상승 궤도에 진입했다는 후문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안경


지난 7월 5일 서울 강서구의 브리즘 마곡점에서 만난 박 대표는 “콥틱은 단순한 아이웨어 제조업체가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를 모두 제공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성 대표도 “아이웨어의 A to Z를 모두 다룬다는 점은 국내 안경 시장에서 콥틱이 가지는 차별성”이라고 거들었다. 개인 맞춤형 아이웨어와 사후관리 서비스가 특징인 브리즘에서 안경을 맞추기란 간단치 않다. 1시간 남짓한 상담 시간과 최소 8일~최대 2주 소요되는 안경 제작 기간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고객이 찾는 이유는 ‘색다른 경험’ 때문이다. 브리즘 안경테는 480가지가 넘는다. 디자인 6종류와 사이즈 8개, 색상 10가지를 조합한 경우의 수다. 480가지 안경테 앞에서 고객은 ‘결정 장애’를 겪을 법도 하지만 브리즘은 3D 스캐너로 얼굴 형태를 입체적으로 파악해 AI 기술로 어울리는 안경테를 추천한다. 얼굴 좌표 1221개를 인식해 안면 데이터를 추출하고 적합한 안경테 스타일을 추천하는 기술은 특허로 등록돼 있다. 고객은 AR 기술을 활용해 여러 안경테를 가상으로 착용해보며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는다. 일련의 프로세스에 대해 박 대표는 “지난 6년간 표준화 작업에 공들여왔다”며 “국내 안경 시장에서 전례가 없었다”고 단언했다.

창업 당시 두 대표 모두 제조업과 거리가 멀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힌지(안경테와 안경다리의 연결 부분), 브리지(좌우 안경테의 연결 부분), 경첩, 코 받침 등 전문용어부터 익혔다. 국내에서 안경테 디자인은 주로 2D로 이뤄지고 제작 과정은 수공업 장인(匠人) 의존도가 높다. 3D 설계 데이터가 부족하다 보니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 단단하면서도 탄성이 있는 소재를 찾는 일부터 안경 무게중심을 맞추고 최적의 염료 비율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지난했다.

시장의 페인포인트는 무엇인가.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과 콥틱의 두 대표가 브리즘 제품을 착용해보고 있다.
박형진(이하 박): 안경 구매 과정에서 소비자는 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얼굴 사이즈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역으로 얼굴을 안경에 맞춰왔다. 객관적인 안면 데이터보다 안경사의 추천에 의존하다 보니 안경 구매 시 충분한 정보를 얻기도 힘들었다. 깜깜이 시장에서 흥정은 다반사였다. 소비자는 ‘안경 구매는 원래 이렇다’고 여기며 불편을 감수해왔다. 이런 언맷니즈(unmet needs), 다시 말해 소비자조차 자신이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모르는 상태를 해결하고 싶었다.

언맷니즈 공략은 다소 모험적이다.

성우석(이하 성): 향후 브리즘의 고객이 될 잠재적 소비자를 중심에 두고 제품·서비스를 기획한다면 성공하리라 확신했다. 원래 안경이 가야 할 방향은 패션이 아니라 기능에 있다. 그동안 아이웨어 산업이 패션 브랜딩에 쏠려 있었던 이유는 제작 기술의 혁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차별화 요소는 오로지 패션뿐이었다. 하지만 기술 발전에 힘입어 이제는 ‘왜 안경을 쓰는지’를 생각할 때다.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라는 말을 모토로 삼고 신뢰감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자 했다.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무엇인가.

성: AI 안경테 추천 기술을 개발할 때 ‘추천’이라는 개념부터 새롭게 정의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정하는 기준’을 두고 직원들이 다 같이 머리를 맞댔다. 직원들이 여러 스타일의 안경테를 착용하고 서로 점수를 매기면서 AI 머신러닝을 시켰다.

박: 3D 프린팅이 가능한 소재는 수백 가지가 넘지만 그중 안경테로 적합한 소재를 찾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강성과 탄성을 두루 갖춘 소재로는 폴리아미드(polyamide) 12번이 최적이란 판단하에 제품 제작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식 출시 전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힌지가 약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소재에서 성공을 거뒀다.

박: 지난해 매우 가벼운 티타늄을 활용한 5g 안경테를 제작한 결과 CES 혁신상을 수상했다. 기존 안경테 제작 공정은 30가지에 달하지만 티타늄 안경테는 공정을 간소화해 5가지에 불과하다. 그동안 안경테 제작 공정은 부속품을 수공 용접하고 손수 연마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노동집약적이었다. 콥틱은 티타늄 플레이트를 레이저로 가공해 일체형으로 만들기 때문에 세부 부속품 결합이 불필요하다.

성: 소재는 계속 개발하고 있다. 투명한 느낌을 주는 소재는 단단하지만 탄성이 약해 쉽게 깨진다. 이러한 소재를 티타늄과 적절한 비율로 조합하는 데 전념하는 중이다. 이에 더해 제작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기술도 고도화하고 있다. 이미 브리즘은 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는 3D 프린팅 기술 덕분에 폐기물을 80~90%가량 줄였다. 이제는 제로 웨이스트 달성이 목표다.

가격정찰제를 도입했다.

성: 안경 구매 시 흥정이 빈번한 탓에 고객은 ‘호갱’이 될까 불안해한다. 이를 해소하고자 가격정찰제를 마련했다. 선주문 후제작 시스템이고 중간 유통 채널이 없기 때문에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브리즘은 특약점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브리즘 제품과 서비스에 포커싱된 가맹점을 말한다. D2C(Direct to Customer·소비자 직접 판매) 구조다 보니 유통 단계 마진이 빠지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원가절감을 토대로 가격대를 낮출 방침이다.

고객의 사회적 수명 연장

주 고객층은 3040 남성이다. 고객 저변 확대 전략이 있나.

박: 안경을 쓰는 전 연령대로 고객층을 넓혀야겠지만 우선 중고등학생용 안경 시장에 도전하기로 했다. 국내 안경 시장은 크게 어린이용과 성인용으로 나뉜다. 10대 청소년만 겨냥한 시장은 미비하다. 하지만 10대는 학업량이 많아 눈을 가장 혹사하는 연령대다. 또 성장기라 시력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3040 세대 고객이 브리즘 제품 사용 후 자녀의 안경테를 상담하는 경우가 늘면서 학생용 안경 시장 수요를 확신했다.

성: 그다음 스텝은 노인 시장 공략이다. 브리즘의 궁극적인 비전은 고객의 사회적 수명을 연장하는 데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정보 습득력이 떨어지고 사회 활동 범위도 줄어들기 마련인데, 안경조차 불편하면 삶의 질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아무리 고급 렌즈를 사용해도 안경테가 얼굴에 맞지 않으면 교정시력이 기대한 만큼 개선되지 않는다.

단기 목표는 무엇인가.

박: 5년 안에 전국에 특약점 200개를 오픈하고 누적 판매액 1500억원을 달성하는 것이다. 내년 초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일 계획이다. 특약점을 방문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3D 스캐닝을 하고 안경테를 추천받는 비대면 구매 방식이다. 지난해 11월 진행한 베타 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3D 스캐닝 기술을 고도화하는 중이다.

성: 매달 NPS(고객추천지수·Net Promoters Score)를 조사하는데, 이 수치를 ‘Top class(80점 이상)’ 수준으로 높이고 싶다. 현재는 ‘Excellent(50점 이상~80점 미만)’에 머물고 있다. NPS는 고객만족도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활용하는 도구로, 애플과 아마존, 넷플릭스 등 글로벌기업 다수가 이미 도입한 상태다. 고객에게 제품·서비스를 지인에게 추천하겠는지 물어본 뒤 조사 결과를 추천 고객/비추천 고객 비율(%)로 환산해 4단계로 구분한다. NPS 수치에서 고객의 본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해외시장 진출 계획도 있는지.

박: 물론이다. 현재 미국 맨해튼에 있는 공유 오피스에서 매달 2주간 팝업스토어를 열며 고객 피드백을 받고 있다. 연내 직영 매장을 오픈해 언맷니즈를 새롭게 공략할 방침이다. 서양인 얼굴형은 동양인과 비교해 이마가 돌출돼 있고 콧대가 높기 때문에 표준화된 안경테가 맞지 않는다. 안경테가 불편하기 때문에 코끝에 걸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콥틱은 이러한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안경테를 설계하고 이에 맞는 생산방식을 개발했다.

궁극적 비전은 ‘아이웨어의 A to Z’다. Z를 설명한다면.

성: 고객이 인체의 중요한 장기 중 하나인 ‘눈’을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지속적인 관심으로 시력을 관리하도록 이끌고 싶다. 콥틱은 고객을 상대로 ‘퍼스널 비전 리포트’를 제공할 방침이다.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설문조사와 안면 데이터, 시력 히스토리를 총망라한 리포트다. 콥틱은 단순히 안경 판매에 그치지 않고 아이웨어와 관련한 전반적인 영역을 다루고자 한다.

박: 올해 말 론칭 예정인 비전 리포트는 고객의 현 시력 상태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향후 어떤 관리가 필요한지 안내하는 서비스다. 근시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고 원인도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제각각이다. 난시라면 난시 축을 시각화해 설명할 계획이다. 고객 정보를 입력하면 곧바로 비전 리포트가 출력될 수 있도록 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이다.

※ 김익환 - 노동력 위주의 제조업인 한세실업에 IT를 접목해 성과를 내고 있는 혁신 CEO다. 한세드림, 한세엠케이, FRJ 등 패션 자회사들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끌며 지난해 2조2142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308호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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