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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영국 런던(LONDON) 

헨델의 '수상음악'과 함께 흐르는 템스강 

템스강 변 풍경의 초점을 이루는 세인트 폴 대성당은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성전으로 손꼽힌다. 이 웅장한 대성당은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를 맡아 1675년에 착공, 앤 여왕이 통치하던 때인 1711년 크리스마스에 완공되었다. 그로부터 6년 후, 헨델은 영국 땅을 처음 밟게 된다.

▎테이트 모던 갤러리의 카페에서 내려다본 템스강과 그 너머의 세인트 폴 대성당. / 사진:정태남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안토니오 카날레토(1697~1768)는 풍경화의 대가였다. 그가 그린 도시 풍경화는 마치 사진을 찍은 듯 매우 정교하다. 특히 그가 그린 베네치아 풍경화는 영국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그는 아예 런던으로 건너와 9년 동안 활동했다. 그가 런던에서 그린 풍경화 중에 세인트 폴(성 바울) 대성당을 배경으로 템스강 위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수상 축제를 묘사한 그림이 있다. 이 풍경화는 175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당시 영국 왕은 조지 2세(재위 1727~1760)였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축제는 조지 2세를 위한 뱃놀이 행사처럼 보이지만, 실은 새로 선출된 런던 시장이 왕실 법원을 찾아가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거창한 행사였다. 물론 왕을 위한 행사도 이에 못지 않았을 것이다. 조지 2세의 부왕 조지 1세가 통치하던 시대에 이와 아주 흡사한 뱃놀이 행사가 1717년 7월 17일에 열렸는데 이때 헨델의 [수상음악(Water Music)]이 템스강에 울려 퍼졌다.

런던 땅을 밟은 젊은 헨델


바흐와 헨델은 서양음악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는데, 두 사람 모두 1685년에 중북부 독일에서 태어났다. 바흐는 독일 국경 밖을 넘어가본 적이 없지만 헨델은 역마살이라도 낀 듯, 유럽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명성을 쌓았다.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연주의 대가로 불리는 헨델은 20대 초반에 이탈리아 음악의 선율을 터득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했고, 베네치아에서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크게 명성을 얻었다. 이렇게 이름을 알린 그는 독일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 루트비히의 궁정으로 초빙되었다. 그런데 국경 너머 다른 나라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하노버의 분위기가 따분했던지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오래전부터 동경하던 영국행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하여 얼마 동안은 하노버에 머물러 있다가 마침내 휴가를 얻어서 런던으로 왔던 것이다.

그가 런던에 도착한 것은 세인트 폴 대성당이 완공되기 꼭 1년 반 전인 1710년 6월, 당시 그의 나이는 25세였다. 그가 런던 땅을 밟자마자 아론 힐이라는 런던의 사업가는 그에게 오페라 작곡을 의뢰했다. 헨델은 불과 2주 만에 오페라를 완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리날도]이다. 이 오페라에 나오는 ‘나를 울게 해주오(Lascia che io pianga)’는 가장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세인트 폴 대성당. / 사진:정태남
헨델이 오페라 [리날도]를 지휘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자 그의 이름은 영국 상류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여 하프시코드를 즐겨 연주하던 앤 여왕은 직접 개인 레슨을 받기 위해 그를 궁중으로 불러들였다. 헨델은 영국 여왕까지 가르치게 됨으로써 짧은 휴가 기간 동안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유명 인사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런던 휴가를 마치고 다시 하노버에 돌아갈 때 그의 발걸음은 무척 무거웠을 것이다. 하노버에 돌아간 그는 런던에서 맛본 달콤함을 잊을 수 없었는지, 다시 휴가를 신청하고는 런던으로 향했다.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크 루트비히는 궁정악장 직무를 소홀히 하는 헨델을 아주 괘씸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런던 땅을 다시 밟은 헨델은 영국의 궁정과 귀족들에게 환대를 받았다. 게다가 앤 여왕의 총애를 받아 왕실 음악가가 되었으니 그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는 이제 하노버 궁정 따위는 아예 완전히 무시해버려도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1714년 8월 1일 앤 여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어서 청천벽력 같은 일이 또 닥쳤다. 공교롭게도 앤 여왕 뒤를 이어 영국 왕위에 오른 인물이 다름 아닌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크 루트비히가 아닌가? 그가 영국 왕위를 계승한 것은 후계자가 없던 앤 여왕과 제일 가까운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선제후 게오르크 루트비히는 영국 왕으로 즉위했는데 그가 바로 조지 1세(George I)이다. 헨델은 입장이 아주 난처해졌다. [수상음악]에 관련된 일화는 이러한 상황이 배경이 된다.


▎카날레토가 그린 정교하고 사실적인 런던의 템스 강 풍경. / 사진:정태남


'수상음악' 일화


▎템스 강. / 사진:정태남
국왕 조지 1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어느 날 킬만젝 남작은 템스강 뱃놀이를 기획했다. 이 기회에 그는 곤경에 처한 헨델을 도와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행사 날짜는 7월 17일로 정했다.

드디어 세인트 폴 대성당이 보이는 템스강 위에 왕이 탄 화려한 큰 배와 그 주위에 여러 척의 배가 떴다. 왕이 강변 풍경을 감상하면서 템스강을 유람하는데 어느 순간 가까이에 있는 배에서 아주 낭랑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50명이 연주하는 관현악의 장려하고 웅대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감격한 왕은 남작에게 누가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남작은 헨델이라고 밝히면서 헨델은 하노버에서 왕과의 약속을 어긴 것을 심히 후회하고 있으며, 뱃놀이 행사 소문을 듣고 어떻게든 왕을 즐겁게 하려고 새로운 곡을 작곡하여 연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왕에게 그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탄원했다. 왕은 헨델을 자기 앞으로 데려오도록 했다. 헨델이 오자 왕은 미소 띤 얼굴로, “나는 하노버에서 자네를 잃었는데 런던에서 자네를 되찾게 되어 대단히 기쁘구나”라고 말하면서 그의 잘못을 용서해줬을 뿐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더 우대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누가 반 이상 지어낸 것이다. 왜냐면 연도를 따져보면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즉, [수상음악]이 템스강 위에서 초연된 것은 1717년 7월이고, 조지 1세가 즉위한 것은 3년 전인 1714년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런던에서 헨델이 살았던 집. / 사진:정태남
[수상음악]은 3개 모음곡으로 구성된, 아주 긴 곡이다. 따라서 한 번 연주하는 데 1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런데 당시 왕은 이 곡을 듣고 나서 두 번이나 더 연주하게 했다. 그렇다면 헨델과 연주자들은 나중에 녹초가 되지 않았을까? 왕은 자기를 한때 무시했던 헨델을 은근히 골탕 먹이고 싶어서 그랬을까? 하지만 왕은 이 음악에 아주 흡족하여 헨델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고는 그의 급료를 두 배로 올려주었다. 사실 왕은 3년 전인 1714년 열린 대관식 축하행사 때 무대에 올려진 [리날도] 공연에도 친히 참석했었다. 그러니까 왕은 헨델이 의리를 지키지 않았다고 보복하는 쫀쫀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편 만약 이 뱃놀이 행사 때 카날레토가 런던에 있었더라면 틀림없이 이 광경도 화폭에 담았겠지만 당시 그는 고향 베네치아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런던에 건너온 것은 49세 때인 1746년이었다. 그러니까 조지 1세의 뱃놀이 행사가 있은 지 거의 30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 정태남 -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분야 외에도 미술, 음악, 역사,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로마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유럽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에 여러 권이 있다.(culturebox@naver.com)

202309호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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