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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의 테넷 | 유재현 Studio SAI 대표 

스토리텔링을 담은 게임의 법칙 

영상 디자인 전문가에서 출발해 디즈니와 애플에서 특수효과 전문가로 일하다가 게임 회사를 차렸다. 처음 출시한 게임으로 소니와 계약하며 유저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유재현 Studio SAI 대표가 걸어온 꿈의 이력이다.

▎유재현 대표는 영상 디자이너에서 게임 개발자로 커리어를 옮긴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이가 회사에서의 성공뿐 아니라, 가슴 한편에 자신만의 꿈을 계속 키우고 이어가는 것을 알게 된다. 꿈을 실천으로 옮기고 지속하는 것은 현실에선 이루기 힘든 경우가 많다. 쉽지 않은 업무 강도와 여러 외부 요인에 의해 꿈이 좌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꿈에 대한 열정과 확신으로 잘 다니던 글로벌기업(애플)을 나와 게임을 만든 이가 있다. 처음 선보인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과 독점계약을 맺었다. 출시 한 달 만에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에서 1100개가 넘는 리뷰를 받은 게임 ‘이터나이츠(Eternights)’다. 바로 이 게임을 만든 유재현 Studio SAI 대표를 시애틀에서 만났다.

이상인: 반갑다. 게임의 성공적인 출시를 축하한다.

유재현: 고맙다. 팀원들 모두 열심히 한 결과라 생각한다.

이: 원래부터 게임 개발 공부를 했거나 그쪽 업계에 몸담았었나?

유: 아니다. 원래는 아트센터(ArtCenter College of Design) 출신의 영상 디자이너였다. 학교 다닐 때 영상 디자인과 특수효과 분야에 매료돼 이쪽 분야에서 먼저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 영상 작업이 적성에 맞았던 건가?

유: 그렇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다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시리즈 등을 만든 블리자드(Blizzard)라는 게임 회사에 취업해 VFX(시각 특수효과) 아티스트로 일했다. 이후에는 디즈니에서 FX(특수효과) 애니메이터로 일하며 여러 애니메이션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 [겨울왕국(Frozen)]에서도 여러 메인 특수효과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효과들을 내려면 영상 툴을 넘어 프로그래밍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렇게 프로그래밍을 더 파고 들어가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로그래밍을 통해 특수효과뿐 아니라 모바일앱과 웹사이트, 나아가 게임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앱과 웹을 만들어보는 등 여러 시도에 나섰다.

이: 그렇다면 이후에 엔지니어로 전직을 고려하게 된 건가?

유: 그렇다. 디즈니에 다니면서 엔지니어링 공부를 계속했고, 관련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유명한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를 만든 라이엇게임즈(Riot games)에서 테크니컬 아티스트(Technical artist)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아보니 내가 해온 시각적인 작업과 엔지니어링 모두를 필요로 하는 포지션이었다. 그렇게 라이엇에 들어가 테크니컬 아티스트로 몇 년간 근무했다. 그 후에 댓게임컴퍼니(Thatgamecompany)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았다. 이 경험을 살려 애플 R&D팀에 프로토타이퍼로 들어가 일할 수 있었다.

이: 영상 디자이너로 시작해 애플의 프로토타이핑 엔지니어까지 아주 다양한 커리어를 섭렵했다. 이렇게 훌륭한 경력을 쌓은 만큼 게임을 만들겠다고 회사를 관두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게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유: 개인적으로 스토리텔링에 대한 욕심이 크다. 회사를 다니면서 계속 이런저런 사이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게임이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장 인터랙티브하게 받아보고 즐길 수 있는 이들이 게이머들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게임 플레이 영상을 아주 짧게 만들어 레딧(Reddit)이라는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이: 레딧에 여러 커뮤니티가 있는데, 어떤 카테고리에 주로 올렸나?


▎‘이터나이츠’의 메인 화면과 게임 플레이 장면. 유저의 스토리텔링에 따라 게임 전개와 결말이 달라진다.
유: 게임, 인디게임, 애니메이션, 유니티(Unity) 같은 툴커뮤니티 등에 올렸다. 내 포스팅에 ‘좋아요(Like)’ 수가 1000개씩 달리고 순위도 계속 올라갔다. 신기했다. 그러면서 상황에 따라 게임 개발을 전업으로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그러던 찰나에 영상을 본 투자자에게서 게임 데모 같은 게 있는지 먼저 연락이 왔다. 7~8분 정도 되는 아주 짧은 데모 플레이를 만들어 보냈더니 몇 주간의 평가를 거쳐 투자 제안이 왔다. 엄청나게 큰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는 직장에서 벗어나 게임 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는 충분한 용기를 준 기회였다. 그렇게 애플을 나와 본격적으로 게임을 만들게 됐다. 그때가 2020년 5월이다. 회사를 나와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돌입했다.

이: 게임 내용이 궁금하다.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유: 개인적으로 좀비물이나 아포칼립스적인 상황의 영화나 게임을 좋아한다. 내게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정말 호감이 가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에서 시작했다. 게임 장르도 ‘연애/육성 시뮬레이션+액션’이다. 게임 메인 캐릭터가 다른 파트너와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이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강해지는 방법이다. 둘 사이의 연애 감정이나 신뢰가 강해져 그 힘으로 적들을 물리치는 구성을 지닌 게임이고, 누구와 이러한 감정을 쌓는가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게임이 전개된다. 캐릭터가 거치는 종말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한 편의 꿈 같은 경험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영원을 뜻하는 이터니티(Eternity)와 밤을 뜻하는 나이트(Night)를 합쳐서 ‘영원한 밤’이란 뜻의 이터나이츠(Eternights)로 게임 이름을 지었다.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도 한 편의 꿈을 꾼 듯한 경험을 하길 바랐다.

이: 게임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인디게임 카테고리에서 나름 엄청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 가능했다 생각하나?

유: 사실 게임을 만들면 만들수록 계속 부족한 부분만 보였다. 출시가 임박한 시점에도 그랬다. 그냥 다 포기하고 다음에 더 잘 만들어 내보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정말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인 만큼 시장에서 평가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도 동시에 들어 출시를 결정했다. 처음에는 일부러 리뷰도 보지 않았다. 걱정했던 대로 ‘형편없다’는 리뷰가 대부분일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리뷰를 봤는데, 많은 사람이 우리 게임의 스토리와 캐릭터에 감정적으로 크게 동화됐고, 게임이 끝난 후에도 감정이 복받쳐서 펑펑 울었다는 리뷰도 있었다. 결국 게이머들이 플레이와 캐릭터들에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게임은 영화와 달리 실시간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플레이를 하며 캐릭터의 행동에 따라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바뀌고 이것이 결말에도 반영된다. 이런 점들 때문에 유저의 감정이입이 더 잘 이루어진다. 게임 플레이 장면과 리액션을 스트리밍하는 영상의 인기도 그래서 높은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이터나이츠 게임 플레이: 스트리밍 영상에서 플레이어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이: 처음 만든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소니 같은 거대 플랫폼과 독점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유: 첫 투자자가 소니와 계약할 수 있게 다리를 놔주었다. 기쁜 마음에 데모 플레이를 보냈는데, 예상과 달리 응답이 전혀 없었다. 많이 부족한 게임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6개월 후에 많은 부분을 개선한 데모를 다시 만들어 제발 한 번만 더 봐달라고 하는 간절함을 담아 소니 측에 보냈다. 그때 비로소 답이 왔고, 독점적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소니 같은 기업과 독점계약을 하면 어떤 이득이 있나?

유: 게 임 자체가 원래 유명하다면 굳이 독점계약을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독점계약을 함으로써 소니가 미니멈 개런티로 판매량을 잡아주고, 이 게임의 성공을 위해 여러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 게임에 소니의 독점계약은 감사한 제안이었다.

이: 이터나이츠 이후 목표는 무엇인가?

유: 당 연히 후속작 제작이다. 첫 게임을 제작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다. 게임 개발 경험은 물론이고 함께 할 수 있는 팀원들을 얻었다. 또 어떤 부분이 모자라고 발전시켜야 하는지도 배웠다. 이 모든 경험을 살려 다음 게임을 제작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게임이라는 장르에서 스토리텔링이 너무나도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이미 수없이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앞으로도 나올 이야기가 많다. 이에 비해 게임은 아직 다루지 못한 이야기가 훨씬 많다. 게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이토록 다양한 감정을 게임을 하면서도 느낄 수 있구나’라고 알게 하고 싶다. 실제로 이런 게임을 기다리는 사람이 이미 너무 많다. 특히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는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다. 이것이 우리 스튜디오의 시그니처 장르가 되길 희망한다.

※ 이상인 - 이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현재 Google 본사에서 YouTube 광고 디자인 시스템을 리드(Staff designer)하고 있다. Microsoft 본사, 클라우드 인공지능 그룹의 플루언트 디자인 스튜디오를 총괄했고, Deloitte Digital 뉴욕 오피스의 창립 멤버로 근무했다. 디지털 에이전시인 R/GA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저서로는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 외 세 권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202311호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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