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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빈 수퍼빈 대표 

아이러니에 도전하다 

노유선 기자
자원순환 스타트업 수퍼빈은 아이러니한 기업이다. 쓰레기를 쓰레기 같지 않게 여기는 것이 첫 번째다. 쓰레기를 버리면 돈을 주고 재활용도 일종의 놀이라고 생각한다. 폐페트병을 가공하는 자체 공장도 공장 같지 않게 꾸몄다. 김정빈 대표는 “쓰레기를 활용하는 순환경제 비즈니스 모델을 성공시켜 순환경제라는 개념의 오너십을 갖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라는 개념의 오너십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12월 6일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플레이크(r-Flake·작게 파쇄된 페트병) 제조 공장을 찾았다. 이곳의 이름은 ‘아이엠팩토리’. 아이러니한 작명이었다. 여느 공장과 달리 커브 형태의 정원 산책로를 지나야 입구가 나타나는 ‘공장 같지 않은 공장’이었다. 정원에는 가을 수국이 가득했다. 계절의 변화 앞에서 시들어버린 꽃이었지만 자태는 여전히 고풍스러웠다. 자원순환 스타트업 수퍼빈은 이곳에서 쓰레기를 쓰레기 같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수많은 투명 페트병이 정밀한 공정을 거쳐 플레이크로 바뀌는 중이었다.

2015년 설립된 수퍼빈은 순환경제 비즈니스를 표방하며 한 단계씩 발전해왔다. 2016년 버려진 페트병과 알루미늄 캔 등을 선별·수거하는 인공지능(AI) 로봇 ‘네프론’을 출시한 데 이어 쓰레기 대면 회수 서비스 ‘수퍼빈모아’를 론칭했다. 이후 폐기물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줄이고자 폐기물 전용 운송 차량 ‘수퍼카’를 마련했으며 2019년 전남 여수에 폐기물 보관창고인 ‘순환자원창고’를 구비했다. 마침내 지난해에는 폐기물을 재활용 소재로 가공하는 수퍼빈의 첫 번째 공장, 아이엠팩토리를 준공했다. 1만3200㎡(약 4000평) 부지에 건평 4000㎡(약 1200평) 규모다.

이로써 수퍼빈은 쓰레기 폐기에서 선별·수거, 운송, 적재, 소재화에 이르는 자원관리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지난해 10월 기준 수퍼빈이 수거한 폐페트병은 약 25억54만여 개에 달한다. 이처럼 많은 양을 회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재활용 참여에 따르는 보상 덕분이다. 수퍼빈은 폐페트병 한 개당 10포인트를 지급하고 2000포인트부터 1포인트당 1원으로 현금화할 수 있도록 보상 체계를 마련했다. 누적 환전 금액은 약 23억5000만원으로 집계됐다.

플레이크 더미에 손을 넣어 한 움큼 집었다. 손톱만한 플라스틱 조각은 무색무취할 뿐 과거 쓰레기였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플레이크는 이제 새로운 쓰임새로 재탄생되길 기다리고 있다. 또다시 페트병이 되거나 옷, 신발 등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공장 견학 후 4층에 마련된 복합문화공간에서 김정빈(51) 수퍼빈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삼성화재와 컨설팅 회사를 거쳐 철강 중견기업 코스틸에서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쓰레기의 새로운 가치를 세상에 증명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창업에 도전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에게 창업가정신과 순환경제 비즈니스의 미래를 물었다.

사회에 대한 애정이 창업을 이끌다


순환자원 비즈니스는 사회의 인식 변화가 수반되어야만 확장성이 있다.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를 제공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자원순환 시스템에 탄력이 붙기 때문이다. 수퍼빈이 문을 연 2010년대 중반, 김 대표가 순환자원 비즈니스의 성장성을 높게 보고 창업에 뛰어든 배경은 무엇일까. 또 사회 인식 변화에 한계를 느낀 적은 없었을까. 김 대표는 “쓰레기에서 재활용품을 분리해서 버려도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봤다”며 말문을 열었다.

“예나 지금이나 창업가는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를 당연시하지 않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서비스를 만들어냈어요. 아이디어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죠. 저는 환경오염 문제를 시장경제 매커니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김 대표는 창업가의 기본 소양으로 사회에 대한 애정을 꼽았다. 사회를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문제가 보이고 해결책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현상일지라도 세상을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에겐 사회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며 “사랑하는 만큼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초심’이라고도 했다.

철강 중견기업에서 대표이사로 활약했던 그가 돌연 창업을 결심한 데는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초심’이 있었다. 김 대표는 “‘기업도 세상을 이롭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했다”며 “이후에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고 고백했다. 그는 “재활용품을 분리해서 배출한 사람에게도 보상을 해주려면 어떤 방식이 가장 효율적일지 고민하던 차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로봇에서 해답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9년 동안 흔들림 없이 초심을 지켜왔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극복해냈다. 첫 번째 단추는 순환자원 회수로봇 ‘네프론(Nephron)’이었다. 수퍼빈은 2015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 AI 기반 이미지 인식 기술을 이전한 뒤 기술을 고도화했다. 이듬해에는 페트병과 알루미늄 캔 등 여러 폐기물의 재활용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로봇 네프론을 선보였다. 딥러닝을 거친 덕분에 폐기물 형태와 바코드가 훼손되어도 정확하게 작동한다. 네프론은 신장 세포 단위를 뜻하는 용어로, 신장이 혈액을 정화하듯이 수퍼빈도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후 네프론에 폐기물을 넣으면 포인트를 제공하는 보상 체계를 구축했으며, 현재 전국에 설치된 네프론은 총 990여 대다. 지방자치단체와 학교에서 795대, 일반 기업에서 195대를 운영 중이다. 네이버와 SK이노베이션 그린캠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디스플레이, NC소프트, KB국민은행 등이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이에 멈추지 않고 또다시 새로운 문제 해결에 나섰다. 폐기물 운반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줄이기 위해 폐기물을 깨끗한 상태에서 운반하는 ‘수퍼카’를 개발하고, 폐기물 보관창고인 ‘순환자원 창고’를 마련했다. 2019년 폐기물 대면 회수를 위해 이동형 네프론 ‘수퍼큐브’를 개발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투명 페트병을 플레이크로 재생산하는 아이엠팩토리의 문을 열었다.

검도와도 같았던 스타트업 성장기


▎수퍼빈의 아이엠팩토리는 공장 가동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관제 시스템을 갖췄다.
하지만 수퍼빈이 치밀한 계획하에 단계별로 성장했으리란 짐작은 오판이었다. 김 대표는 “계획된 로드맵을 그대로 밟아왔다고 보기 어렵다”며 “지금 이곳, 플레이크 제조 공장도 창업 초반에는 머릿속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시장의 반응을 보고 다음 스텝을 결정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취미인 ‘검도’ 이야기를 꺼냈다.

“검도 고수는 미리 계산하고 움직이지 않아요.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다음 의사결정을 내리죠. 상대방이 공격을 할지, 방어를 할지 섣불리 예견하지 않습니다. 관찰이 먼저기 때문이죠. 저는 검도를 하면서 비로소 경영 방법을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세상이 원하는 수퍼빈의 역할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는 중입니다.”

사회의 인식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변한다. 자원순환 스타트업으로서 한계를 느끼는 순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매 순간 한계를 느낀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우선 플레이크 판매처가 석유화학 업체뿐이라는 허들이 있다. 플라스틱은 원유에서 추출한 합성수지인 나프타(납사)로 만드는데, 문제는 플레이크가 나프타를 온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김 대표가 주목한 물질은 바로 ‘펠릿(r-PET Pellet)’이다.

“현재 3년 내 전북 순창에 펠릿 제조 공장을 건설할 계획입니다. 펠릿은 플레이크를 녹인 뒤 잘게 자른 것을 말해요. 펠릿으로 의류와 신발을 만들 수 있는 섬유를 뽑을 수 있고 새 페트병을 제작할 수도 있어요. 만약 수퍼빈이 나프타와 플레이크를 섞어서 펠릿을 생산하면 판매처가 다양해질 겁니다. 석유화학 업체뿐 아니라 섬유, 패키징 업체 등에 펠릿 수요가 있기 때문이죠.”

김 대표는 한계를 느낄 때 어떻게 마음을 가다듬을까. 그는 패배 의식에 빠져 있기보다 현실을 직시했다고 한다. 그는 “사회 인식을 바꾸려면 그만큼의 에너지와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수퍼빈의 영향력보다 과한 변화를 사회에 기대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단언했다. 이어 “수퍼빈이 더욱 성장해 ‘쓰레기도 돈이 되며 재활용은 놀이와도 같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해내면 된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수퍼빈은 궁극적으로 폐기물을 새롭게 재탄생시켜 순환경제 생태계를 구현하고자 한다. 현재는 페트병이란 하나의 폐기물로 순환경제 사이클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김 대표는 “향후 페트병 제조 과정에서 재생 소재를 일부분 사용해야 하는 법규가 생길 수도 있고, 반드시 의무가 아니더라도 재생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환경보호에 앞장서려는 기업이 늘어날 수도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사용량 감축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펠릿 수요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증가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폐페트병의 순환경제 사이클을 확실하게 구축해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라는 개념의 오너십을 갖고 싶어요. 이후 폐기물 아이템을 늘리면서 비즈니스를 확장할 계획입니다. 재활용 문화 확산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겁니다. 재활용이 새로운 문화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 콘텐트를 만들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나가겠습니다. 쓰레기를 쓰레기 같지 않게 여기고 재활용을 하나의 놀이로 즐기는 세상을 꿈꿉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01호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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