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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재 알파 회장 

문구산업의 미래상 

여경미 기자
요즘 대학 강의실에선 펜과 노트를 찾아보기 어렵다. 태블릿PC와 스마트 펜슬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그 흔했던 학교 앞 ‘문방구’도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가장 아날로그적인 문구산업의 쇠락은 필연적이다. 국내 최대 문구 프랜차이즈 기업인 알파는 디지털 문명이 몰고 오는 파도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이동재 알파 회장은 “문구Art박물관과 알파갤러리 등 문구 체험형 산업 구축과 미술재료·제도 용구 전문기업, 친환경 PB 제품 생산, 글로벌 전략은 알파가 100년 기업으로 갈 수 있는 길”이라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에 거주하는 초등학교 1학년에게 입학과 동시에 연필, 지우개, 사인펜, 자, 공책 등 학용품 세트를 선물한다. 이 학용품 세트에는 미래 인재들을 위한 창의적 투자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1970~80년대엔 ‘가난해도 공부해야 한다’는 열망이 강했고, 이런 열망들이 모여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덩달아 문구시장도 빠르고 크게 성장했다. 1971년 남대문시장에서 문을 연 6평짜리 ‘알파문방구’(현 알파)도 그 흐름과 함께했고, 경쟁자들을 따돌리며 문구시장에서 지배자가 되었다. 특히 알파는 1987년 국내 최초로 프랜차이즈 제도를 도입하며 문구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세월이 흘렸고, 환경은 달라졌다. 문구 유통 경로가 다양해지고, 문구 소비 인구도 급격히 줄어들면서 시장 규모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알파도 한때 연 매출액이 1500억원대를 돌파한 적도 있지만, 2022년 997억원, 2023년 958억원으로 연 매출 1000억원 시대가 무너졌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53년을 생존하고 성장해온 알파다. 53년이라는 세월 속엔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수없이 많은 난관을 넘어온 알파만의 강점과 저력이 녹아 있다. 한국 문구업계의 산증인인 이동재 알파 회장을 만나 지나온 반세기를 회고하고 다가올 50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물었다.

문구의 전문화·글로벌 전략으로 활로 터


▎이동재 회장은 한국문구인연협회,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이 참여한 제25회 문구인의 날 기념식에서 ‘문구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한 제언’이란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 사진:알파
알파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태동했다. 그 후 반세기가 넘었다.

알파 본점이 있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50여 년 동안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켰다. 1971년에 시작했으니, 남대문시장에서만 53년을 보냈다. 수많은 물건과 브랜드가 모이는 남대문시장에서 알파를 알릴 수 있었던 계기는 물 나눔 덕분인 것 같다. 1970년대 남대문시장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노점 상인들은 물동이로 물을 길러야 하는 등 생활용수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은 노점상 인근 어디에선가 수돗물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주변 상인들의 열악한 상황을 알게 된 후, 나는 사무실에 있던 수도를 함께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알파는 인근 노점 상인들에게 수도를 무료로 개방했고,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퍼지면서 알파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알파는 문구업계 최초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해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회장님만의 프랜차이즈 전략이 있나.

프랜차이즈를 시작한 이유는 ‘함께 공유하고 멀리 가자’는 우리 기업의 모토 덕분이다. 전국 각지에 있는 고객들이 물건을 사러 남대문시장까지 찾아오기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에 프랜차이즈 아이디어를 냈다. 1987년부터 오랜 기간 근무했던 직원들을 대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외부에서 알파 프랜차이즈를 운영할 점주를 모집하기도 했지만, ‘직원이 다니기 좋은 회사가 최고의 기업’이란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장기근속자나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지원자를 모집했다. 문구업계에서 프랜차이즈를 도입한 건 우리가 첫 사례인 것 같다. 우리의 프랜차이즈 사업 모델이 다른 산업의 프랜차이즈 모델이 되기도 했다. 직원들에게 종종 ‘혼자보다는 여럿이 낫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알파가족이 자영업을 경험하고 지역에서 브랜드 파워를 공고히 하려 했던 서비스 전략은 내부 결속력 강화에 도움이 됐다. 현재 750여 개 프랜차이즈가 있다.

최근 초등학교 인근에 있던 소형 문구점은 물론, 전체 문구점 수가 급격히 줄었다. 편의점, 대형 할인매장, 온라인시장 등에 대항할 해결책은 있나.

단순히 문구업계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차별화 전략이나 경쟁력이 없으면 커피숍도 오픈했다가 이내 폐업하기 일쑤다. 1960~70년대 제조업, 1980년대 들어 금융과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지며 우리 경제도 급성장했다. 2022년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런 경제 흐름에 따라 문구와 유통업계도 달라져야 한다. 알파는 올해를 ‘문구생활 산업의 시대적 전환기’라고 본다. 포괄적으로 ‘문구생활 산업’으로 명명한 것은 문구 영역을 확대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연필, 펜, 노트 등 단순 문구에서 나아가 이제 IT나 소형 가전기기 등 대형 가전 외에 모두 취급함으로써 문구 범위를 확장하려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과거 문구류를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은 문구점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편의점, 대형 할인매장, 온라인 시장 등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온라인 시장에서는 어제저녁에 주문한 물건이 다음 날 아침이면 배송된다. 문구 유통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알파 역시 고객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온라인 시장보다 더 빠른 배송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가령 전국 프랜차이즈 750개에서 1~2시간 내 고객이 있는 장소로 직접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우리 기업이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몇십 년간 연을 이어온 협력 업체가 많다. 이 업체들과 제작한 PB 상품만도 2500여 개다. 저렴한 가격으로 무장한 해외 이름 모를 브랜드가 몰려온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된다. 우리가 판매하는 PB 제품은 검증된 상품일 뿐 아니라, 이물질 등이 없는 친환경제품이다. 해외 유명 브랜드 필기구 등도 판매하지만 알파 프리미엄 브랜드인 네쎄(NeCe)의 스티브 유성펜 등도 지속적으로 알려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알파가 가야 할 길은 문구의 전문화인 것 같다. 편의점, 대형 할인매장 등 그 어디에서도 취급할 수 없는 미술 재료, 제도 용구, 전문지류 등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

문구Art박물관과 알파갤러리 등 체험형 관광 모델 지점도 개발 중이다.

알파는 문구업을 문화 체험형 산업으로 바꾸려고 한다. 6평으로 시작했던 서울 남대문시장에 문구Art박물관과 알파갤러리를 오픈했다. 스토리가 있는 체험형 관광모델을 만들기 위함이다. 문구Art박물관에서는 문구와 함께해온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고 알파갤러리에서는 1세대 만화가 6인의 전시인 ‘만화는 살아있다’ 전을 기획했다. 대전의 대표 베이커리인 성심당이나 강릉의 대표 커피전문점 테라로사 등은 지역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스폿으로 통한다. 문구Art박물관과 알파갤러리가 문구산업 지식 보고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본다. 또 건대본점, 안국역점, 강남본점 등 다양한 캐릭터 상품을 볼 수 있는 문구 체험형 매장을 확대해나갈 생각이다.

나눔과 상생에 솔선수범인 알파

해외 진출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알파만의 글로벌 전략은 무엇인가.

알파 생존 전략 중 하나는 글로벌 동행이다. 베트남 하노이, 캄보디아 프놈펜, 몽골 등에 프랜차이즈 직영점을 열었고 인도네시아에도 프랜차이즈를 준비 중이다. 독일, 두바이, 세네갈에는 PB 상품 등을 수출하고 있다. 앞으로 해외 프랜차이즈를 확장하고 수출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유럽이나 일본 제품보다 단가가 낮고 동남아에서 제조한 제품보다 품질이 좋아 알파 제품의 경쟁력이 높을 것으로 생각한다.

알파는 연필장학재단을 발족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알파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나눔이다. 알파의 첫 나눔은 1970년대 초반 물 나눔이었다. 알파문방구를 알릴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던 물 나눔 이후, 2006년 연필장학재단을 발족해 지속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자신을 깎아서 남을 이롭게 하는 연필처럼, 모든 이에게 나눔의 기쁨을 알리고자 꾸준히 장학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필장학재단에서는 단순히 형편이 어렵거나 성적이 우수한 학생보다는 좋은 인성과 바른 사고로 남을 위해 봉사하는 학생들을 선발한다. 학교 추천을 받아 유학생들도 선발하는데,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도와줬던 국가의 유학생이 우선순위다. 연필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나 알파 직원들도 나눔에 동참하는데, 매해 이렇게 기부하는 금액이 2억~3억원에 달한다.

문구업계 차원에서 다양한 생존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앞서 말했듯이 어떤 상황에서든 혼자보다는 여럿이 낫다. 뭉쳐야 힘이 되고 살길을 모색할 수 있다. 문구류 생산, 도매와 유통, 소매의 연합 단체인 한국문구인연협회,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등 세 단체가 지난 5월 14일,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 남산룸에서 ‘제25회 문구의 날 기념식’을 열어 성료했다. 이 자리에서 문구유통업계가 힘을 합쳐 문구 전시형 매장인 플래그숍을 오픈하거나 함께 홍보 매거진을 발행할 것 등을 제안했다. 문구업계는 과거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전통 산업군이다. 화합, 단합, 통합이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이므로, 이 세 단체가 어려운 상황일수록 한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2021년 아들 이종호 대표가 2세 경영에 뛰어들었는데 별도의 승계 전략이 있는가.

이종호 대표에게 알파 규모를 현재보다 더 크게 확장할 것을 주문했다. 언뜻 보면 문구업계는 위기처럼 느껴진다. 위기를 타계하려면 다양한 도전은 필연적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을 줄 아는 것,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나가는 혁신의 기본이다. 적게 판매하더라도 퀄리티를 높이고 서비스 질을 향상하는 것, 문구 체험형 산업 구축과 전문기업, 친환경 PB 제품생산 등은 알파가 100년 기업으로 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이 대표가 이 길을 잘 헤쳐나가리라 기대한다.

- 여경미 기자 yeo.kyeongmi@joongang.co.kr _ 사진 임익순 객원기자

202407호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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