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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이 만난 혁신 리더(26) 이길준 브러쉬씨어터 대표 

세계를 매혹한 ‘K-쇼비즈니스’의 출현 

장진원 기자
전 세계 80여 개 도시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K-아동극’이 있다. 공연예술 전문기업 브러쉬씨어터의 ‘팝 시리즈’다. 십수 년 전 무일푼으로 덤벼든 열혈 청년의 꿈이 지금은 세계 무대를 노리는 쇼비즈니스 기업으로 커졌다.

▎이길준 대표가 이끄는 브러쉬씨어터는 전 세계 80개 도시에서 공연하며 ‘K-아동극’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콘텐트는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중문화와 순수예술을 가릴 것 없이 문화의 주도권은 영미(英美)·유럽권에서 쥐고 있는 게 당연했다. 간간이 들리는 제3세계 아티스트틀의 활약은 주류에 지겨움을 달래줄 양념 정도였지, 특정 지역이나 ‘흐름(wave)’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한류는 이 같은 고정관념을 철저히 파괴했다.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을 가리지 않는 문화·콘텐트의 힘은 어지간한 장르에 모두 ‘K’라는 접두사를 갖다 대도 어색하지 않은 수준이 됐다. 한국 아이돌그룹의 미국 시장 진출이 비틀스의 미국 진출에 비견되고, 보수적 색채가 강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리 감독·작품·배우들이 줄줄이 시상대에 오르는 장면도 더는 어색하지 않다.

한류의 활약상과 반대로, 대중음악과 영화·드라마 등 특정 장르에 치우친 편식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브러쉬씨어터(BRUSH Theatre)는 공연예술계에서 보기 드물게 글로벌 시장을 정조준한 회사다. 연극배우 출신인 이길준 대표가 2013년 멤버들을 모아 시작했다. 처음부터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이 열리는 영국으로 향했다. 잘 짜놓은 사업계획서도 없이 시작한 ‘돌격형’ 글로벌 진출은 어느새 30개국, 80여 개 도시를 섭렵했다. 최근에는 서울과 부산에 전용관도 지었다.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들을 사로잡겠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태양의 서커스’라는 작품 하나가 라스베이거스를 도박의 도시에서 문화 도시로 거듭나게 했다”며 “브러쉬씨어터 작품을 공연예술계의 K-아이콘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서울 성수동 브러쉬씨어터 연습실에서 이 대표를 직접 만났다.

연극배우 출신이라 들었다. 사업에 나선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로에서 배우로 활동할 때 너무 힘들었다. 월급이 아니라 연봉이 몇백만원 수준이었다. 지금도 열악한 환경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런 현실을 혁신할 솔루션 자체가 한국에는 없었다. 그런데 해외라면 어떨까, 해외에서 성공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커졌다. 지금도 함께하는 브러쉬씨어터 멤버들과 영국에 가자고 작정했다. 2013년, 세 번 경유하는 70만원짜리 티켓을 끊어 58시간 만에 도착했다. 현재 레퍼토리인 [두들팝]의 초창기 버전이었다.

처음부터 관객 반응이 좋았나.

일단은 무작정 나간 외국에서 공연을 잘 마쳤다는 것에 만족했다. 사실 공연보다 더 큰 소득이 있었다. 공연예술을 대하는 외국인들의 폭이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였다. 한국은 드라마적 감동을 중시하지만 해외에서는 관객과의 교감, 극적 스마트함도 공연의 중요한 가치였다. 우리 공연을 보고 “브릴리언트(brilliant)하다”며 감탄하는 관객이 많았다. 그런 칭찬이 좋았다.

현지 공연예술계 반응은 어땠나.

에든버러에서 [두들팝]을 초연할 때부터 모토가 어차피 한국도 넓게 보면 글로벌이니, 처음부터 글로벌로 나가자였다. 그러니 초연을 아예 외국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그 말은 들은 창작팀의 마인드 자체가 달라지더라. 에든버러 서머홀에서 [두들팝] 첫 공연을 올렸다. 의대 건물을 공연장으로 개조한 곳이라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이 공연되는 공간이다. 운 좋게 가디언에서 우리 공연을 보고 기사를 내줬다. 이후 전회 매진됐다. 에든버러 베스트쇼, 에든버러평론가상, 베스트코미디상, 베스트프로덕션상 등 상도 6개나 받았다. 몇몇 매체에서 별점도 5개를 받았다. 유명 언론사 기자가 와서 공연을 봤고, 요청한 것도 아닌데 기사까지 써줬으니, 운이 좋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공연예술은 전형적인 내수산업이다. 왜 굳이 외국으로 나갔나.

국내에 있더라도 어차피 연극으로 1등 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결혼 생각도 없었다. 실패하더라도 젊을 때 부딪치면 성장하지 않을까 싶었다. 언제 또 무일푼에 꿈만으로 영국에 가보겠나. 이후 런던과 파리, 아비뇽, 에든버러 등 4개 도시를 찾아 길거리공연에 나섰다. [BRUSH]라는 초창기 레퍼토리였다. 배경에 그림을 그러거나 맵핑(mapping)하는 우리 공연의 원조 격이다. 광장에서 공연하면 사람들이 몰려와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나를 포함해 모든 인원 8명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삭발했다. 무조건 성공한다는 결기로 똘똘 뭉쳤다.

이후로도 계속 해외 문을 두드렸나.

2013년 이후로 유럽은 6년간 매년 찾았다. 그러다 두 번째 갔을 때 공연 중 은인을 만났다. 미국 프로야구 구단인 뉴욕 양키스의 광고대행사 대표였다. 마침 그분이 어린이 대상 공연을 기획 중이었는데, 우리 공연을 아내분과 너무 재밌게 봤다며 연락이 왔다.

목숨을 걸고 하는 사람에겐 항상 은인이 나타나는 법이다.

사실 그분이 공연장에 온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예약자 리스트를 보니 뉴욕에서 오는 분이 한 분 있는 게 아닌가. 궁금증에 뭐 하는 사람인지 찾아봤더니 유명 야구단 에이전시뿐 아니라 원래 서커스 같은 논버벌(non-verbal) 공연, 영화 등 문화 콘텐트를 유통하는 분이었다. 이런 분이 오시는 날이니, 정말 죽기 살기로 공연했다. 공연을 잘 보신 후 나를 미국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고, 두 달 동안 그분 집에서 살았다.

배우 출신이라지만 기업가정신으로 충만한 것 같다.

그분이 오신다는 걸 알게 된 게 8월 13일, 공연일이 26일이었다. 전 직원을 모아놓고 “우리에겐 13일밖에 안 남았다. 그 날이 결전의 날이다. 무조건 매진시키고 매료시키자”며 결기를 다졌다. 실제 그날 공연 티켓은 우리가 거의 다 샀다. 그걸 동네 아이들한테 무료로 나눠주니 만석일 수밖에 없었다. 난 공연은 안 보고 같이 오신 사모님의 만개한 잇몸만 봤다. 연신 웃으시더라. 끝나고 나서 에이전시 대표님이 두리번거리며 프로듀서를 찾았다. “내가 프로듀서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계약하고 싶다”며 이튿날 커피 약속을 잡았다.

미국 진출 스토리도 흥미진진하다.

그분이 링컨센터 관계자 등 공연계 주요 인사 여럿을 소개해주셨다. 프로모션, 유통 등 미국 시장 진출 노하우도 많이 알려주셨다. 그 집에서 두 달간 살고 나오는 날, 펑펑 울면서 삼배를 올렸다. “한국식 인사다, 당신이 내 아버지다”라며. 그 뒤로 매년 미국에서 공연을 올린다. 영어 동영상 강의를 두 번 들은 게 준비의 전부였지만 마음은, 진심은 통하더라. 은인 덕분에 링컨센터, 케네디극장 등 좋은 공연장에 많이 섰다. 그동안 80개 도시, 30개 넘는 나라를 찾았다. 이란·사우디 같은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중앙아시아에서도 공연했다.

큰 시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

미국에 현지 법인을 세우면 훨씬 많이 공연할 수 있고, 전용관도 지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다. 공연예술을 넘어 공연산업으로 가야 한다는 걸 미국에서 깨달았다. 공연 계통의 여러 미국 회사가 유한책임회사(LLC)더라. 우리도 브러쉬씨어터 LLC를 세웠다. 어차피 해외에서 활동하니 미국 회사처럼 보이고 싶었다. 지금은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우리만의 기술 기반 IP를 들고 해외로 나가자는 결심에 2015년 정식 창업에 나섰다.

기술 기반 IP란 말이 인상적이다. 브러쉬씨어터의 공연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 공연은 크게 세 개 레퍼토리로 나뉜다. [두들팝]과 [폴리팝] 등 팝 시리즈, 일반 가족 뮤지컬, 이머시브 공연 등이다. 무대 뒤 배경을 활용한 드로잉 맵핑, 공연장 전반을 활용하는 서라운드 맵핑 같은 기술에 특화된 오리지널 레퍼토리들이다. 최근에는 관객이 직접 참여해 몰입감을 높이는 이머시브(immersive) 사운드와 공간 연출을 개발했다. 무대 위 배우와 음악, 배경 등이 기술적으로 연결되는 테크 기반 공연이다.

홍길동, 심청이도 아니고, 가족 타깃 아동극을 택한 계기는.


▎무대 배경에서 포즈를 취한 최영찬 대표와 이길준 대표.
대학로 시절부터 쉽고 직관적이면서 편한 공연을 좋아했다. 오프라인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과 행복감을 아이와 어른까지 모두 가져갈 수 있기를 바랐는데, 그게 아동극을 택한 이유다. 또 스태프부터 배우, 엔지니어에 이르는 모든 구성원이 안정적인 현장에서 일하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 전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어라는 장벽을 없앤 것이 세계시장에서 주효했나.

물론이다. 대사가 거의 없으니 외국 관객들도 열린 시선으로 즐긴다. 논버벌 공연은 ‘니치마켓’이기도 했다. 뮤지컬 [라이온킹] 같은 대형 공연이 두드리기 어려운 단단한 건축물이라면, 우리 공연은 아무 때나 훅 들어가기 쉬운 시장이다. 디즈니를 봐라. 어릴 때 좋아한 작품과 캐릭터를 성인이 돼서도 즐긴다. 작품과 팬이 함께 성장할수록 더 프렌디한 문화 콘텐트로 기억된다. 지금 우리 작품을 즐긴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도 또 다른 우리 콘텐트를 즐기게 될 거다. 회사와 관객이 같이 커가는 IP가 되고 싶다.

앞서 공연예술은 산업화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도 인상적이다.

한국은 뮤지컬 3대 강국이다. 팬데믹 때도 유일하게 공연하는 시장이었다. 전 세계 유명 작품부터 창작극까지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연극에 비해 산업 규모도 훨씬 크다. 올해 국내 공연 티켓 시장이 약 1조3000억원 수준인데, 거의 대부분 내수에만 의존한다. 반면 브로드웨이나 라스베이거스는 해외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내수시장 타깃도 자국을 찾은 해외 관광객들이다. 나 역시 기술과 언어를 뛰어넘는 관광형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 관광의 꽃이 쇼비즈니스다. 그 시장에서 성공하는 한국 기업이 나올 때가 됐다. 미국, 영국에선 영화보다 라이브 콘텐트 산업 규모가 더 크다.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이머시브 공연이 글로벌에서 유행이라고 들었다.

관객들은 스토리를 넘어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 수천 년 전 그리스 때부터 지금까지 무대와 관객이라는 하드웨어는 똑같다. 즉, 공연과 관람이다. 우리는 이를 엔터테인먼트화했다. 최근 영미권의 이머시브 연극처럼 관객이 극에 참여한다기보다는 영상, 음향, 진동, 향기 등으로 효과를 줘 몰입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가령 특수효과로 한강 세빛둥둥섬을 바다로 가라앉혀 전 세계를 여행하게 한다. 관객은 실제로 그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착시를 경험하며 극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스피어(구)처럼 전면을 영상화해 처음부터 스토리를 같이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 모든 게 기술 기반이다.

명확한 비전이라지만, 직원들의 의구심이나 반발은 없었나.

운 좋게도 공연 횟수가 늘수록 소소한 성공이 쌓여갔다. 그러다 보니 말도 안 되는 걸 해보자 해도 종교처럼 믿고 따라주더라. 이길준이 시키면 맞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맵핑 아이디어가 나오면 담당 배우가 하루 종일 벽에 그림을 그릴 정도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홍보도 열심이었다. 지금도 너무 고마운 동료들이다.

기업화·산업화를 결심한 계기이기도 했겠다.

처음부터 외국에 나간 이유도 연봉 200만원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결혼도 못 할 것 같았다. 사실 성공하고 싶어 회사를 만들었고, 믿음직한 가장도, 존경받는 사업가도 되고 싶었다. 처음 합류해 지금까지 함께한 직원들 중 4명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나도 마찬가지다. 생활인으로서 그들에게 필요한 걸 알지 않나. 내게 공연예술의 산업화는 숙명이나 압박감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닌데, 자체 IP로 꾸준히 매출을 내고 성장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공연예술의 꽃은 쇼비즈니스다. 국내를 찾은 해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 공연을 9월 말에 선보일 예정이다. 연간 100억원 매출은 충분할 거라 기대한다. [태양의 서커스]와는 전혀 색깔이 다른 테크 기반 쇼가 될 거다. 서울 시내에 올해 한 곳, 내년에 한 곳 전용극장도 오픈하겠다. 한국은 창작자 등 문화 인프라가 너무 훌륭한 나라다. 브로드웨이 대형 공연은 저작권이 작가, 의상, 메이크업 등으로 완전 세분화돼 있어서 해외에서 공연을 올리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반면 우리 레퍼토리는 모든 저작권이 브러쉬씨어터에 있어 중국, 싱가포르, 두바이, 아프리카 어디든 진출하기 쉽다.

최근 중국에도 진출했다. 한한령 등 쉽지 않은 분위기인데.

[두들팝] 공연은 한마디로 양산이 쉽다. 공연 ‘레시피’를 영상으로 만들어놨을 정도다. 그걸 보고 중국에서 현지인이 그대로 따라 하면 공연이 가능하다. 실제로 가서 봤는데, 너무나 훌륭하게 해내더라. 공연 독점 판권을 7년간 수출했다. [두들팝], [폴리팝], [하이팝]은 스크린, 악사, 영상 오퍼레이터, 배우라는 기본 구조가 똑같다. 모듈화하면 하루 만에도 공연을 올릴 수 있다. 팝시리즈 판권을 팔면 우리가 소프트웨어를 언제든 개발해 제공하는 셈이다. 그러면 언제든 새로운 공연이 가능해진다. 브로드웨이 대형 공연은 공연 준비에만 최소 3주가 걸리는데, 우리는 4시간이면 끝난다. 80개 도시에서 공연한 [두들팝]도 배우와 악사, 스태프를 합해 공연에 필요한 인원은 7명이 전부다. 화물도 없어 기내 수화물로 운반한다. 목재 패널과 스크린은 현지에서 제작하면 된다.

기술의 핵심은 축적이다. 브러쉬씨어터는 어떤가.

단기간에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듈화와 산업화도 수많은 시행착오가 쌓이고 쌓인 덕이다. 특히 이머시브 분야는 더 그렇다. 자본이 충분하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도 지난 2018년부터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교수 등 전문가들과 함께 계속 연구하고 만들어왔다.

새로운 레퍼토리의 해외 진출 계획도 궁금하다.

우선 서울을 찾은 외국인을 타깃으로 한 테크 기반 이머시브 공연을 성공적으로 론칭해야 한다. 이후 미국과 싱가포르, 두바이, 마카오 등 관광도시를 중심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이미 마카오의 신축 리조트에서 [폴리팝]공연이 두 달간 예정돼 있다. 리조트·호텔산업과 엔터테인먼트가 합쳐지면 엄청난 시너지가 생긴다. 우리도 싱가포르와 마카오를 계속 두드리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브로드웨이보다 우리가 훨씬 혁신적이라 자부한다. 한국은 이미 전시 분야의 기술적 이머시브에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공연은 전시보다 훨씬 강렬한 경험이다. 곧 공연계에서도 BTS나 [오징어게임] 같은 슈퍼 IP가 나올 거다. 브러쉬씨어터가 그 분야를 개척해 시장을 이끄는 리더가 되고 싶다. 어려운 길은 그만큼 소중한 수업과 자산이 된다. 멋지게 하는 것보다 하나씩 단단하고 다르게 하는 게 중요하다. 무조건적인 성공은 없다. 작은 기회들을 하나씩 잡아서 성공시켜 근육을 키우면 보기 좋으면서도 운동능력이 뛰어난 멋진 몸이 될 거다.

※ 최영찬 -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07호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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