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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만 솔라옵틱스 회장 

광섬유 조명 혁명 

장진원 기자
글로벌 대기업들이 포기하다시피 한 측면발광 광섬유를 국내 스타트업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조명이 넘볼 수 없는 효율과 성능은 LED가 대세로 자리 잡은 조명 시장에 파란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배석만 회장이 독자 개발한 측면발광 광섬유 ‘OSL’을 직접 시연하고 있다.
조명의 발전은 문명 도약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동물 기름을 연료로 쓰던 램프의 시대가 18세기 말 가스등이 등장하면서 자취를 감췄고, 1879년에는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했다. 이후 인류는 전기를 활용한 조명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최근 대세로 자리 잡은 발광다이오드(LED)에 이르기까지 조명의 효율을 끌어올리는 시도는 지금껏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효율을 극대화한 조명 개발이 끊이지 않는 건 각각의 시대를 풍미한 조명들이 가진 한계 때문이다. 고래기름 램프를 주로 쓰던 유럽에선 동물학대를 넘어 멸종 문제가, 가스등은 환경오염 문제가 풀 수 없는 숙제였다. 백열등 역시 전력효율과 수명 면에서 형광등과 LED에 자리를 내주었다. 요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LED도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과거에 비해 덜하지만 발열, 눈의 피로를 가중하는 블루라이트 발생, 높은 가격대 등은 여전히 단점으로 지적된다. 다만 LED는 형광등이나 백열전구, 네온사인 등에 비해 높은 효율과 긴 수명으로 조명 시장의 패러다임을 급속도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최근 국내 스타트업이 기존 LED 대비 진일보한 조명 원천기술을 선보여 화제다. 광응용 소재 전문기업 솔라옵틱스다. 지난해 12월에는 세계 최대 종합화학기업인 일본 도레이인터내셔날과 업무협약을 맺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솔라옵틱스가 독자 개발한 측면발광 광섬유 ‘OSL(Optical fiber Side Lighting)’의 판매 권한을 도레이인터내셔날에 주고, 양 사가 함께 OSL 글로벌 사업을 추진한다는 협약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광섬유 생산과 판매를 주도하고 있는 도레이가 한국 스타트업이 만든 광섬유 신소재를 유통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한편 도레이는 오는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조명 박람회 ‘2024 라이팅페어(Lighting fair)’에서 “OSL을 소개하자”는 제안도 먼저 던졌다. 부스 전체를 OSL로 꾸미는 건 물론이고 부스 설치 비용까지 대겠다며 OSL을 세계 무대에 알리자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까지 이 박람회에 도레이가 참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굳이 박람회에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글로벌 사업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이런 도레이가 박람회 참여까지 제안하자 업계에선 OSL의 사업적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라고 평가한다.

대체 OSL이 무엇이길래 광섬유 세계 1위 기업이 한국의 작은 기업에 구애의 손길을 뻗친 걸까. OSL 원천기술을 개발한 배석만 솔라옵틱스 회장은 “간단히 말하면, 섬유 말단에서만 빛을 내던 기존 광섬유를 측면, 즉 광섬유 전체에서 발광하도록 만든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고순도 플라스틱 광섬유 내부를 초정밀 가공기술로 깎아내 내부에서 빛이 반사·산란되고, 이를 통해 광섬유 전체가 발광하는 방식이다. 얇은 광섬유 내부를 깎아 나노 수준의 오목렌즈를 새겼다고 이해하면 쉽다.

이런 시도가 이론적으로 처음 등장한 건 아니다. 도레이나 미국 3M 등 광섬유를 제조·공급하는 글로벌 소재·화학사들도 측면발광의 효용을 간파하고 도전했지만 과도한 산란 등으로 인해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측면발광 광섬유를 조명용·산업용 소재로 활용할 만큼 완벽한 성능으로 구현한 건 배 회장이 세계 최초다.

세계 최초 측면발광 광섬유 개발

경기도 동탄 소재 본사에서 만난 배 회장은 직접 OSL 조명을 시현했다. 평범해 보이는 광섬유 양 끝단을 전원에 연결하자 곧장 광섬유 전체가 환하게 불을 밝혔다. 통신용이나 해저케이블 등에 쓰는 유리 소재 광섬유가 아닌 플라스틱 소재라 휘어짐도 자유로웠다. 그만큼 응용성과 활용도가 높다는 의미다. 국내 대표 특허법인 중 하나인 리앤목 특허법인은 OSL의 기술가치(측면발광 광섬유를 이용한 태양광 발전 기술)를 8조6000억원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LED는 반도체 소자입니다. 광원이 점 하나하나로 이뤄져서 성형이 어렵죠. 반면 OSL은 고순도 플라스틱 재질이라 자유자재로 휘어집니다. 자동차 엠비언트 라이트, 선박, 스마트팜, 도로표지판, 가전제품 조명 등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무궁무진하죠.”

이쯤 되면 OSL 원천기술을 개발한 배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1968년생인 배 회장은 경북 경산에서 6남매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출생 직후 중증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고, 지금도 휠체어나 목발이 없으면 거동이 자유롭지 않다. 최종 학력은 중졸이다. 제도권 안에서 언뜻 떠올리기 어려운 독특한 성장 배경은 광화학 분야의 원천기술 개발자라는 현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두 살 때 중증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어요. 어릴 때는 스스로 앉아 있지도 못해서 누워 있거나 벽에 기대 앉아야 했죠. 목발 짚고 100m만 가도, 휠체어도 몇 킬로만 가도 힘에 부쳐 포기하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처지를 비관한 건 아니지만, 방황의 시기를 오래 겪었어요. 중학교 성적은 꼴찌 수준이었고, 겨우겨우 들어간 고등학교도 1년 다니고 그만뒀습니다. 자포자기 비슷했죠.”

집안의 골칫거리 막내로 속을 썩일 즈음,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찾아왔다. 큰매형이 사다준 노트북컴퓨터였다. 1984년, 그의 나이 16살 때였다. 배 회장의 매형은 ‘물박사’로 유명한 성익환 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다. 당시 유엔개발기금(UNDP) 지원사업의 연구책임을 맡았던 성씨는 휴대용 컴퓨터를 지급받았고, 이듬해 영국으로 연수를 떠나면서 살던 아파트를 정리해 270만원짜리 노트북을 처남인 배 회장에게 선물했다. 일본 엡손에서 나온 세계 최초 노트북컴퓨터 HX-20이었다.

“집안 환경이 유복했어요. 그 덕에 백수처럼 시간을 때웠죠. 매형이 선물해주신 노트북도 1년이나 처박아뒀다가 호기심이 생겨 꺼내봤어요. 영어로 된 교재 몇 권이 달려 있었는데, 알파벳 순서도 제대로 모를 정도니, 사전을 끼고 단어 하나하나 찾아보며 공부했어요. 그렇게 컴퓨터에 푹 빠져 2년 반을 매달렸습니다.”

컴퓨터 전문가에서 광학 전문가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올림픽이 한창일 즈음, 배 회장은 컴퓨터라는 신세계에 빠져들었다. 1984년은 스티브 잡스가 최초의 PC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적용한 ‘매킨토시’를 선보인 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윈도는 아직 세상에 등장하기도 전이었다. 컴퓨터가 뭔지 보지도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시절, 세계 최초 노트북에 2년 넘게 빠져 있던 배 회장은 어느새 국내 최고 수준의 컴퓨터 전문가이자 프로그래머가 돼 있었다.

“컴퓨터 기능사 자격증을 따서 집 안에 교습소를 차렸어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수강생이 줄을 섰고, 19살 돼서는 영남대 앞에 아예 정식 컴퓨터학원을 차렸습니다. 영남대 교수 한 분이 신분을 감추고 제 수업을 듣고는 대학에 추천했고, 총학생회와 계약을 맺어 컴퓨터 특강도 나섰죠. 그렇게 8년 정도 컴퓨터 전문가·강사로 활동했어요. 20대에 이미 사장님, 원장님 소리 들어가며 많게는 한 달에 2000만원까지 벌었습니다.”

소문을 듣고 수강생이 몰려든 대학 특강은 800명 정원의 강당이 꽉 차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28살 무렵 배 회장은 돌연 잘나가던 컴퓨터 전문가 생활을 접었다. 돈은 넉넉히 벌어놓은 데다, 불편한 몸으론 이것 이상으로 할 게 없다는 자조와 회의감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독학으로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을 익힌 그답게 새로운 학문 영역에 도전하기로 맘먹었다.

“강의하면서 프로젝터를 쓰다 보니 영상기기에 취미가 생기더군요. 물리광학에 관심이 커졌는데, 우리나라에는 해당 분야에 대해 공부할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어요. 남는 게 시간이니 하루에 해외 논문을 3~4편씩 독파했습니다. 그렇게 6~7년을 매달렸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동안 번 돈을 다 쏟아부어 연구 인력을 데려오고 실험 장비도 사들였죠. 4년 만에 가진 돈이 바닥나더군요. 어디 가서 돈 빌리기도 어려웠습니다. 기술보증기금 같은 곳에 가도, 하다못해 제2금융권에 가도 중졸 학력의 개발자를 받아주는 곳 자체가 없었어요. 결국 어떻게든 다시 돈을 벌어야겠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학위 없는 광학 전문가’가 다 된 배 회장은 암막 커튼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수천만원짜리 프로젝터를 대신해 스스로 고휘도 스크린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착안해 아예 프로덕션 창업에 나섰다. 컴퓨터로 작동하는 옥외광고 사업이었다. 2006년 들어선 도레이의 광섬유 직조 기계 5대를 들여와 씨름한 끝에 1000인치에 달하는 초대형 옥외광고 시스템 ‘플렉스비전’ 개발에 성공했다. 지금도 그때 매스컴에 오르내리던 관련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당시 경쟁사의 대형 스크린 최대치가 300인치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1000인치짜리 화면이 시장에 던진 충격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플렉스비전 사업은 이후 유야무야 자취를 감췄다. “재미가 없어 그만뒀다”는 게 배 회장의 설명이지만, 회사 관계자는 특허분쟁에 시달리다 사업을 접었다고 귀띔했다. 사업에선 손을 뗐다지만 광학에 대한 탐구는 계속됐다. 1990년대 초반 들어 한국에 광섬유가 도입되기 시작했고, 광학 전문가인 배 회장의 눈에도 들어왔다.

“고향인 경산에 광섬유로 도로표지판을 만드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기술지도 요청을 받고 갔는데,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장애인들이 독한 본드 냄새를 맡아가며 광섬유 수백 가닥을 하나하나 자르고 붙이고 있었습니다. 저도 장애인이지만 다른 장애인을 보며 눈물을 훔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당장 타고 간 차를 팔아 1800만원을 장애인 직원들의 밀린 월급으로 내놓고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광섬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섬유 말단이 아니라 전체가 발광하면 장애인 직원들이 일하기도 휠씬 편해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때마침 불어닥친 인터넷 바람은 배 회장 특유의 ‘독학’에 날개를 달아줬다. 세계 유수 대학의 논문을 앉은 자리에서 맘껏 찾아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배 회장의 연구도 물리광학에서 케미컬광학, 즉 소재 분야로 확대됐다.

“광섬유 자체가 고분자 플라스틱 섬유의 일종입니다. 온라인에서 연구에 필요한 온갖 논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사실 제게는 연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학문적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지금 당장 필요한 걸 공부하는 거죠. 어쩌다 보니 광섬유 연구에 30년 연구개발 역량을 다 쏟아부은 것 같습니다. 제일 하고 싶은 걸 했기 때문이죠.”

첫 시작은 태양광용 소재 개발이었다. 당시 배 회장의 원천기술인 측면발광 광섬유를 적용한 태양광발전설비를 한국재료연구원과 공동 개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광섬유 전체, 즉 측면발광이라는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했지만, 연구원 수백, 수천 명을 둔 글로벌기업도 구현하지 못한 프로젝트였으니 개발 과정이 힘든 건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기존 연구 성과도 전무하다시피 했고, 측면발광 광섬유를 생산할 설비조차 없어 자체 제작에 나서야 했다.

“OSL을 설계하고 제작하려면 고분자화학, 물리광학, 회전역학, 수학, 기계설계, 온습도 같은 환경적 요인 등 고려해야 할 메커니즘이 예닐곱 개에 달합니다. 이걸 다 맞추려니 대기업도 엄두를 못 내는 거죠. 우리가 개발을 완료했다니 ‘사기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살면서도 사기꾼이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죠. ‘장애인이, 대학도 안 나온 사람이 뭘 얼마나 했겠느냐’는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사기라는 비아냥과 폄훼는 도레이와 업무협약을 맺은 후론 자취를 감췄다. 1m 길이 광섬유 내부에 마이크로렌즈 약 1000개를 깎아 새길 기계 설비도 지난해 자체 제작에 성공했다. 솔라옵틱스는 광섬유 측면발광 기술, 광섬유를 이용한 태양광발전 분야에서 특허 34개 등록을 마쳤고, 현재 60여 개 특허를 출원 중이다. 배 회장은 올해 안에 20여 개가 넘는 새 특허를 등록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조명 시장 공략 박차

도레이와의 업무협약을 기점으로 OSL의 경쟁력을 확인한 각지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도레이는 “금액은 얼마든 상관없으니 지분투자를 하고 싶다”는 제안까지 내놓았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도료표지판 전문 제작사인 부경산업과는 기존 광섬유를 대체한 ‘발광형 도로표지판’ 사업 계약을 완료했다.

국내 굴지 완성차 기업에 엠비언트 라이트를 납품하는 1차 협력사와도 OSL 납품과 제품 개발을 협의 중이다. 솔라옵틱스 자체 추산으로는 국내 자동차 엠비언트라이트 시장 규모만 해도 1조원, 전 세계 간접조명 시장은 4000조원에 달한다. 현재 엠비언트 라이트 시장은 미국 3M과 LED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지만, 발열과 효율 면에서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파친코 머신도 공략 대상이다. 배 회장은 “도레이 방문 때 일본 파친코 시장 이야기를 했더니 무릎을 치더라”고 소개했다. 카지노 슬롯머신 모니터와 조명 등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국내 기업 코텍과도 OSL을 활용한 설계를 논의하고 있다. 화려한 조명이 필수인 카지노 기계에 들어가는 LED는 엄청난 발열과 전력 사용량 등이 업계의 골칫거리였다. 배 회장은 “OSL은 발열과 블루라이트 발생이 제로에 가깝다”며 “6W 전력으로 약 50m까지 균일한 밝기를 유지할 수 있고, 광원을 레이저로 활용하면 100m까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글로벌 가전기업에 조명을 납품하는 1차 협력사에서도 제안을 받아 제품 개발을 논의 중이다.

자동차 간접조명을 비롯해 대기업들이 너나없이 전장사업에 뛰어드는 가운데, OSL은 엠비언트 라이트뿐 아니라 테일램프(미등)나 외부 조명으로도 활용 가치가 크다. 배 회장은 “크루즈선 같은 선박의 경우 OSL 활용 가치가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며 “크루즈 한 대에 들어가는 조명이 자동차 1만 대 수준과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솔라옵틱스의 비즈니스 계획과 비전을 묻는 질문에 배 회장은 “기술 기반 기업은 기술 그 자체로 승부해야 한다”며 선문답 같은 답을 내놓았다. 더불어 30년 넘는 연구개발(R&D) 경험으로 얻은 기술 창업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라면, 기술개발의 완성도가 70%를 넘기 전에는 절대 투자받을 생각을 하지 마세요. 99% 개발했다 해도 진입장벽이 낮은 기술이라면 금방 따라잡히고 맙니다. 또 기술개발이 완료되기도 전에 가능성만 보고 몇십억, 몇백억씩 투자받기도 합니다. 그런다고 회사나 기술 가치가 그 수준이라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착각이 없습니다. 결국 투자받은 이나 투자한 사람이나 돈 잃고 후회할 확률만 커집니다. 기술개발의 가치는 해당 기술개발이 완료됐느냐 아니냐에만 있을 뿐이에요. 재무제표를 아무리 그럴싸하게 만들어놨어도, 기술이 완전하지 못하면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기술 회사는 기술이 100% 그 자체여야 합니다.”

배 회장은 “솔라옵틱스는 매출 목표 같은 건 따로 세우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기술과 제품 개발에 대한 계획만 세울 뿐이라는 설명이다. “목표를 잘못 세우면 욕심이 돼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 사진 최기웅 기자

202402호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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