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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상 세종문화회관 CEO 

차별화된 경험을 파는 공간 

정소나 기자
자체 제작 역량을 키워 제작 극장으로서 정체성을 다지는 데 집중해온 세종문화회관. 이제 단순히 공연을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관객들의 삶 속에서 함께하는 새로운 극장 경험을 제안했다. 명실상부한 서울의 새로운 문화 랜드마크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전방위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는 안호상 사장을 만났다.

▎관객들의 삶 속에서 함께하는 새로운 극장 경험을 제안하며 변화를 이끌고 있는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최근 놀랍도록 뜨거워진 한국 예술에 대한 기대와 욕구를 체감합니다. 전 세계가 한국에서 어떤 작품이 나오는지 주목하고 있어요. 전 세계 예술의 중심이 아시아의 문화 수도 서울을 향하는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전통에 현대성을 가미한 고유의 콘텐트로 우리 문화와 예술을 널리 알릴 때입니다.”

‘동시대 공연예술을 선도하는 세계 수준의 콘텐츠 제작 극장’을 표방하는 세종문화회관의 무대는 한국을 넘어 이제 세계를 향하고 있다. 자체 제작 레퍼토리인 [일무]의 링컨센터 진출을 이뤄냈고, 2024년에도 서울시예술단의 작품 24편을 비롯해 기획 2편과 공동주최 3편까지 총 29개(총 229회) 작품으로 구성하는 등 자체 제작 공연을 차근차근 늘려가고 있다. 매년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해리 포터 필름콘서트’를 필두로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는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이 밖에도 구독 서비스와 맞춤형 패키지, 스위트석 제도 등 관객들과 일상을 공유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도입했다.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는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있다. 그는 1984년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국립중앙극장, 서울문화재단 등 국내 주요 문화기관들을 거쳐 2021년 10월 1일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취임한 극장 전문가이자 전문 예술 경영인이다.

지난 1월 1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안호상 사장을 만나 그가 그리는 세종문화회관의 미래, 예술 경연인의 사명과 소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 경연인이다. 문화예술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있나.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학교 게시판에서 가칭 예술의전당 건립 준비단에서 낸 구인 공고를 봤다. 서초동 700번지 일대에 복합예술센터를 건립하는데 거기서 일할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 행정요원을 찾는다는 공고였다.

어려서부터 건축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을 정도로 건축에 관심이 많았는데, 새로 건물을 짓는다는 말에 마음이 끌렸다. 게다가 ‘최초’라는 수식어를 보니 이왕 전공과 다른 분야에서 일하게 된다면 완전히 새로운 쪽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 공채 1기로 합격해 예술의전당 건립부터 참여했고 이후 국립극장, 서울문화재단 등을 거쳐 세종문화회관에 몸담게 됐다.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여서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다.

예술적 백그라운드나 문화 자본도 거의 없이 낯선 분야에서 이렇게 오래 일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웃음) 잠깐 있다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입사했지만,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식견도 없던 탓에 일을 하면 할수록 자격지심 같은 게 생겼다. 같이 입사한 동기 중에 음악적 조예가 깊은 이를 볼 때마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는 생각도 한동안 했던 것 같다.

모르기 때문에 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배워나갔다. 극장을 짓는 일이니 극장에 대해 잘 알아야 했기에, 내로라하는 건축가들과 소통하고 극장 설계를 도와주는 영국과 프랑스 등의 해외 컨설팅 업체와 많은 대화를 하며 극장에 대한 개념을 조금씩 배울 수 있었다.

극장에 대해 알면 알수록 궁금증이 커졌다. 세계적인 공연장인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에 10년 치 애뉴얼 리포트를 보내달라고 요청해 한 장씩 넘겨보며 독학했는데 공부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나머지 리포트도 받아본 후에는 미국 워싱턴 케네디센터에 애뉴얼 리포트와 공연 브로슈어를 부탁해 열심히 공부했다. 해외 자료들을 살펴보며 극장이 움직이는 원리와 극장의 목표 등에 조금씩 눈뜨게 됐고, 건축 설계 담당자에게 우리의 요구를 전달하는 일을 하면서 점점 극장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게 됐다.

이렇게 극장에 대해 잘 알게 되니 예술 장르별 특성을 깊이 이해하게 됐고, 극장 전문가이자 예술 경영자로서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국내 주요 문화기관들을 모두 거쳤다. 각 기관에서 활동한 경험이 세종문화회관을 이끄는 데 어떤 영향을 줬나.

예술의전당에서는 주로 국내외 유명 예술가들의 초청공연을 기획했고, 국립극장에서는 상주 예술단체의 창극이나 한국무용 프로그램으로 1년 내내 공연하는 레퍼토리 시스템을 운영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일하면서는 다양한 계층의 예술적 요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껏 일하며 배워온 경험들은 단단한 근육이 되어 여전히 큰 자산으로 남아 있다.

이 세 문화예술기관을 합쳐놓은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세종문화회관이다. 많은 예술가에게 꿈의 무대이며, 최고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선보이는 제작 극장으로, 특정 계층만이 아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예술 놀이터로 관객들이 선택하고 찾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

지난 2021년 부임 후 ‘제작 극장’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는데.

그동안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공연 팀을 초청하는 데 주로 관심을 가졌다면, 그 관심을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예술단에 쏟고자 했다. 예술단체 자체 작품 제작 편수를 늘리고, 수준을 끌어올려 관객들이 여느 외부공연 못지않게 믿고 기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것이 제작 극장으로의 전환이다.

제작 극장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충성고객군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검증된 예술가들을 예술감독으로 영입하고, 예술단 창작 예산을 대폭 증액해 정기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자체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역량 있는 감독이 초빙되니 감독과 단원들 간의 신뢰가 강화돼 작품 완성도가 높아졌고, 관객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며 우리 예술단의 작품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었다.

덕분에 2024년 1년 동안 산하 예술단의 모든 공연을 할인된 가격으로 만날 수 있는 구독권은 오픈하자마자 매진되었고, 장르 패키지도 거의 다 팔렸다. 우리 예술단체와 작품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것 같아 고무적이다.

공연장이 아닌 더현대· 인스파이어 같은 백화점과 호텔을 라이벌로 지목한 것이 신선했다.

여의도 더현대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인천 인스파이어 리조트는 엔터테인먼트를 전면에 내세워 차별화했다. 소비재를 파는 전통적인 역할을 뛰어넘어 새로운 경험을 파는 공간으로 일상 속에 스며든 것이다.

예술도 생존에 필요한 절대적 욕구가 아닌,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이기에 그런 면에서 백화점이나 호텔 같은 기관과 경쟁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단순히 공연을 감상하는 공간과 영역을 뛰어넘어 차별화된 관람 체험 서비스로 관객의 삶 속에서 함께하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먼저 가치 있고 매력적인 콘텐트들로 가득 채워 관객들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수많은 공연에 관심을 갖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싱크 넥스트(Sync Next) 23’에서 국내 공연계 최초로 도입하여 화제를 모았던 구독 서비스를 ‘세종시즌’으로 확대했다. 서비스를 구독하는 고객들이 언제든지 원하는 세종시즌 공연을 최대 40%까지 할인된 가격에 구매하여 관람할 수 있는 모델로, 더 많은 관객이 더 자주 찾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했다.


▎안 사장은 “국악계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배출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1월에는 대중음악, 2월에는 오페라, 3월에는 무용 공연을 관람하는 식으로 관객들의 일상 속에 늘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가고 싶다.

세종문화회관은 전통과 품격이 있는 공연장이다. 기존의 클래식한 이미지에 젊은 MZ세대를 포용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있다면.

연간 공연 구독 서비스를 만들고, 대기 없이 티켓을 수령하고 케이터링과 함께 굿즈를 제공하는 스위트석을 운영하는 등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세대를 위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기획했다.

프로그램으로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영화 [기생충]의 음악감독으로 잘 알려진 뮤지션 정재일 콘서트를 비롯해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대중음악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또 지난 2022년부터 장르, 작품 형식 등 관습적 기준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컨템퍼러리 시즌 ‘싱크넥스트(Sync Next)’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젊은 관객층의 니즈에 부합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MZ 팬덤을 이끄는 우국원 작가가 시즌 키 비주얼을 맡고 아티스트로도 참여해 젊은 층을 공략할 예정이다.

대중성과 다양성이 확장된 프로그램으로 젊고 신선한 기운을 주입해 MZ세대에게 세종문화회관이 일 년에 한두 번은 가야 하는 곳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싶다.

지난해 서울시무용단의 작품 [일무]가 링컨센터에 진출해 큰 화제를 모았다. 한국 예술의 매력이 뭘까.

K팝과 K드라마의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K아트에 대한 세계 예술계의 관심이 높아졌다. 그 결과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를 뉴욕 링컨센터 무대에 올려 전석 매진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2년 전 영국을 방문했을 때도 로열 페스티벌 홀 예술감독이 한국을 주제로 동아시아 페스티벌을 하고 싶다며, 한국 예술가들을 소개해달라고 하더라. K아트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 예술은 스토리의 독창성뿐 아니라 스토리텔링 능력도 뛰어나다. 또 그것을 무대화해 시각화하고 영상화하는 능력 또한 돋보인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실력으로 프로그램을 소화해내는 퍼포머들이 어우러져 세련되면서도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해 대중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우리 나라 고유의 언어와 문자라는 중요한 자산이 있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K팝 부문을 세분화해 시상할 정도로 하나의 장르가 되었듯이 이제 한국 예술도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서 인정받게 된 것 같다.

대중적인 주제의 전시를 다양하게 선보이며 호응을 받고 있다. 2024년 계획 중인 전시 중 주목할 만한 전시가 있다면.

1월 26일 오픈하는 후지시로 세이지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인 [오사카 파노라마 전], 4월부터 열리는 [스튜디오 지브리 타카하타 이사오 전]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전시가 되리라 기대한다.

5월에는 매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해리 포터 필름콘서트’의 다섯 번째 시리즈 [해리 포터와 불사조기사단 인 콘서트]가 계획되어 있다.

이 밖에도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과감하게 해체한 다채로운 공연을 준비 중이니 기대해달라.

개관 50주년인 2028년을 목표로 새로운 변신을 준비 중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지금 아주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4년 후면 건립 50주년이 되고, 당장 올해가 재단법인으로 발족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동안 서울의 중심 광화문에 자리한 대관 극장으로서의 역할, 6개 상주 단체와 청소년 단체까지 9개 단체의 홈으로서 맡은 역할을 모두 해내야 하다 보니 우리만의 주체성을 유지하는 게 어려웠다.

개관 50주년을 기념하며 여의도에 준비 중인 제2세종문화회관은 뮤지컬과 오페라, 발레, 대형 전시를 수용할 공간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또 이곳 광화문은 클래식 전용 공간으로 리빌딩해 역할과 기능을 차별화할 것이다.

이제 서울은 사실상 아시아의 문화 수도 역할을 하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지난 20세기에 전 세계 젊은이들이 공연을 보러 뉴욕에 몰려들었다면, 21세기에는 아시아는 물론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서울로 몰려드는 새로운 문화 수도가 되리라 기대한다.

극장 운영부터 프로그램, 예술단체 운영 등을 재정비해 서울이 글로벌 문화예술 수도가 되는 시대에 세종문화회관이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빈틈없이 준비할 생각이다.

오랜 기간 공연계에 몸담아오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아티스트를 만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국내에서는 극단 가교의 상임 연출가로 활동하고, 극단 신시를 창단했던 고 김상열 연출가와 함께했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같이 작업했던 조용필씨도 늘 존경하는 아티스트다.

해외 아티스트로는 라트비아의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미국의 재즈 트럼펫 연주가 윈튼 마살리스를 꼽고 싶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인정받는 연주자임에도 젊은 연주자들과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꾸리고 직접 레퍼토리를 선정하며, 단원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손수 챙기고, 희생적으로 단체를 이끄는 기돈 크레머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다음 날 내한 공연을 앞두고 한국에 입국한 윈튼 마살리스는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강남의 재즈 클럽으로 안내를 부탁했다. 피곤한 줄 모르고 늦은 새벽까지 한국 아티스트들과 즉흥 연주를 즐기며 재즈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은.

공연장에 연간 기획 프로그램인 시즌제를 안착시키고, 레퍼토리 시스템을 도입한 것을 꼽고 싶다. 또 서울시무용단의 [일무], 국립극장에서 선보였던 국립무용단의 [묵향], [향연] 등 무용 작품과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같은 창극을 선보여 전통을 기반으로 한 동시대적인 공연으로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장르를 만든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우리나라 전통을 바탕 삼은 고유의 레퍼토리로 한국 관객들을 사로잡고 더 나아가 세계인이 보고 즐길 수 있게 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느낀다.

남은 임기 동안 꼭 이루고 목표가 있나.

지난 2016년, 국립창극단의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현대 공연예술의 메카인 파리의 떼아트르 드 라 빌(Théâtre de la Ville-Paris) 무대의 시즌 프로그램으로 공식 초청됐다. 4회 공연에 전석 매진이 될 정도로 호평을 받으며 프랑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7월, 링컨센터 무대에 오른 서울시무용단의 [일무] 역시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막을 내렸다.

공연이 끝나고 자리를 빼곡히 채운 관객들이 넋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 모습을 바라볼 때 느끼는 환희나 희열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환희와 희열을 계속 느끼기 위해서는 젊은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배출되어야 한다. 국악을 작곡하고, 창극과 판소리를 하고, 한국무용을 하는 예술가들이 대를 이어 훌륭한 레퍼토리를 확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자 목표라고 생각한다.

-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02호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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