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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UAL BRIEF 2024] 인터뷰 |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오피스 빌런과 기업문화 

이진원 기자
25년 경력의 기업 노동변호사가 기업이 오피스 빌런을 어떻게 상대할지를 다룬 저서 『선 넘는 사람들』을 최근 출간했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노동 관련 사건과 자문을 다수 맡으며 오피스 빌런이 조직문화에 끼치는 막대한 악영향과 기업의 고충을 많이 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피스 빌런의 정의와 심각성

오피스 빌런은 최근 이슈로 떠오른 키워드다. 기존에는 복장이 불량하거나 남 험담이 많은 직원 등 귀여운 정도의 의미였으나, 최근에는 윤리의식 부재, 인격상 결함으로 인해 기업 경영상 문제까지 야기하는 임직원을 일컬으며 그 심각성이 확대됐다.

“오피스 빌런의 특징은 윤리의식 부재, 인격상 결함이 커서 개선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고질에 가깝죠. 이들은 직장 분위기를 망치고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가합니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 사건까지 발생합니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빌런 행위를 무력하게 지켜보는 제3의 구성원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가 큽니다. 기업문화는 무력감에 빠지고 냉소적 분위기가 형성되곤 합니다.”

지난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사회적으로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확대되면서 인권의식이 높아졌고, 이제는 직장으로 이런 이슈가 옮겨왔다. 조 변호사는 “더는 괴롭힘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사회 저변에 정착됐다”며 “학교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성장한 MZ세대가 직장으로 유입되면서 기존 직장 내 관행에 반발심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즉, 인권의식의 성장과 직장 내 기존 관행 사이에서 괴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괴리가 심화될수록 직장 내에서 서로를 신뢰하고 생산성, 협업 중심의 수준 높은 기업문화는 멀어져간다. 오피스 빌런과 피해자에 대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면 기업에는 평판 리스크로 작용한다. 당국이 개입하고 노동부 조사까지 사건이 번진다면 사실상 기업의 위기가 초래된다.

조 변호사는 “피해자의 고통, 소속된 조직 구성원의 심리적 부작용 등으로 현상 자체가 악영향을 증폭시킨다”며 “당국에서도 이런 사건을 예의 주시하고 있고 강력한 제재가 따른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전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문제의 오피스 빌런이 한 명이 아니라 다발적일 경우 건전한 기업문화는 급속도로 퇴색하고 기업들의 고민은 커진다”고 덧붙였다.

오피스 빌런의 유형과 사례

오피스 빌런 사건의 유형은 정신적 괴롭힘, 성희롱, 고소·고발을 비롯한 무분별한 법적 조치 등 다양하다. 특히 권력을 기반으로 한 괴롭힘, 성희롱 사건과 더불어, 오피스 빌런이 자신을 피해자로 설정하고 조직 내 여러 사람을 악질적으로 신고하거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조직적으로 배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조 변호사는 각각 2가지 사례를 들었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윤리의식의 결함으로 인해 공갈·협박을 일삼는 사례입니다. 한 중견기업의 고위직에 계신 A씨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오피스 빌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죠. 기업문화 설문조사를 해보니 A씨가 직원들에게 막말을 한다는 민원이 접수됐습니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자에게 퇴사하라는 말을 한 것 등이었죠. 경위를 조사해보니 A씨는 모든 것을 부인했지만 피해자들의 진술에서 막말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오피스 빌런은 자기 성찰이 없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자신이 잘못했을 가능성을 전혀 열어두지 않죠. 기업의 징계는 A씨의 해고였지만 당사자는 이에 불복하고 부당해고로 당국에 고발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익명으로 경위를 진술했기 때문에 증거 부족으로 징계가 번복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상황을 들은 직원들은 용기를 내 실명을 밝히고 증언에 나섰습니다. 결국 A씨는 회사를 떠났지만 그 이후에도 고위직으로서 알 수 있었던 내부 정보를 이용해 다른 이슈로 법적 조치를 취하며 보복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유력하고 결정적인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조 변호사는 다른 공갈·협박 사건을 소개하며 기업이 현명하게 대응한 사례를 전했다.

“B씨는 회사를 잘 다니다 회사와의 관계가 나빠져 퇴직 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기업에 요구한 사항은 보상과 지위 유지로, 개인 이익과 연결된 것이었죠. B씨는 금전적 보상이 없으면 언론과 당국에 알리고 신고하겠다고 경영진을 협박했습니다. 이런 경우 기업은 내부자 신고이기 때문에 매우 곤란하고 고심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다만 해당 기업은 B씨의 위협에 당당하게 대응했습니다. 문제 사항이 있으면 당국에 고발하라는 입장이었죠. ‘잘못된 사항에는 책임지겠다’며 맞선 동시에 B씨의 금전적 보상 요청에는 공갈로 형사 고발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결국 B씨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조 변호사는 B씨 사건에 대해 “기업이 당당하게 대응해서 잘 처리된 사례였다”며 “모든 경우가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만 기업이 용기를 내고 당당하게 대응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신중한 초기 대응이 핵심

유형별로 오피스 빌런 문제가 발견되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초반 갈림길부터 정식으로 적절하게 대응하라고 조 변호사는 주문한다. 만일 괴롭힘 등 문제 제기가 있을 때 이를 달래거나 무마하려 한다면 피해자에게는 2차 가해이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문제 제기 상황을 가볍게 다루면 안 됩니다. 대응이 신중하지 않으면 초기부터 복잡해집니다. 아무리 선의로 잘 이야기하려는 의도였다고 해도 형사 고발로 번지거나 극단적 선택을 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피스 빌런과 피해자 모두 다룰 때는 왜 신고가 있었고 문제 제기가 있는지 공정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커지고 보복성 신고가 이어집니다. 외부에서는 기업과 대응 담당자를 비난합니다.”

조 변호사는 기업이 이런 갈등, 정의 문제에 대한 기능에 특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그는 “오피스 빌런 문제는 원칙적으로 상사가 개별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며 “문제에 대해 달래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피스 빌런은 잘못한 게 있더라도 쟁점을 능숙하게 흐리고, 절차와 대응 과정에서 부적절한 게 있을 시 문제 제기에 특화돼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기강이 강한 조직일수록 사내 갈등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곤 하는데,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됩니다.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첫째, 조사 절차를 밟는 것에 유념해야 합니다. 둘째, 문제에 상응하는 조치여야 합니다. 장기 분쟁까지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 구성원과 당국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합니다. 조치가 너무 가볍거나 과도하게 정의 실현에 초점을 맞춘 것도 모두 적절하지 않습니다.”

지속가능한 조직문화의 보호

조 변호사에 따르면, 오피스 빌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조사와 조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놓는 것이 예방과 대응 차원에서 효과적이다. 규정, 문제 발생 시 조사 절차, 대응 조치 등을 미리 제도적으로 정비해놓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구성원 사이에서 오피스 빌런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공동의식이 생긴다. 그리고 문제 조짐이 있을 때 기업이 바로 주목하고 처리하는 사례가 구성원에게 공유되면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냉소적 분위기는 사라진다. 그는 “경영진의 철학이 위기 상황에서도 관철될 수 있어야지 진정성이 있고, 그렇지 못하면 위선이 된다”며 “건강한 철학이라면 제도를 준비하고 문화로 승화해야 하며, 문제가 발생할 때는 작동해야 한다”고 메시지를 던졌다.

“오피스 빌런 문제는 단순히 법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철학, 제도, 인사, 위기관리, 협상, 커뮤니케이션, 기업문화 등 기업의 종합적 역량이 모두 결부된 사항이란 점을 유념하길 바랍니다.”


※ 조상욱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졸업, 제38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28기 수료, 미국 코넬대로스쿨(LLM),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인터내셔널(GEll) 한국지사사내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노동팀장, 중대재해센터장, 노동조사·분쟁대응센터장(현)

-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02호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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