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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이 만난 혁신 리더(22) 장지상 아셈스 대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접착제 

장진원 기자
아셈스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접착제를 만들어낸 기업이다. 이형지가 필요 없는 필름형 접착제를 비롯해 접착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최초’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연구원 출신으로 창업에 나선 장지상 대표의 20년 개발 노하우가 집약된 성과다.

▎장지상 아셈스 대표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무이형지 접착제 제조설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접착제처럼 일상에 널리 쓰이는 화학제품도 드물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쓰는 풀부터 각종 테이프류, 신발과 의류 같은 공산품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제품을 들춰보면 어김없이 접착제를 활용한다.

아셈스는 부산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몇 안 되는 제조 상장사다. 지난 2022년 2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아셈스는 지방 중소 제조업체의 성공적인 상장 사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접착제 하나로 기업공개까지 성공한 아셈스의 저력은 단연 기술력에 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접착제가 아닌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접착제, 세상에 없는 접착제, 그리고 이를 생산할 기계설비까지 자체 힘으로 만들어낸 기업이 바로 아셈스다. 연구원 출신으로 대학 창업보육센터에서 출발해 독보적인 기술력을 쌓아온 장지상 대표를 만났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유일무이한 접착제 스토리를 직접 들었다.

처음에는 연구원으로 출발했다고 들었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1998년부터 3년간 고려물산 기술개발 부문에서 일하며 수성 점착제를 연구했다. 기존 유성 점착제는 인체에 너무 해로웠다. 솥단지에 점착제 연료를 넣어 끓이고, 다 되면 빼고 다시 넣고를 반복하는데, 나중에는 솥 안에 누룽지처럼 유해 물질이 쌓였다. 이걸 닦아낸 작업자들이 침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할 정도였다. 암에 걸리고 췌장, 신장까지 망가지는 일도 숱했다. 수성 점착제도 유성보다 덜하긴 하지만, 몸에 해로운 건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사라져야 한다.

어떻게 창업에 나서게 됐나.

회사를 나온 후 2002년 동아대학교 대학원 화학공학 과정을 마쳤다. 동아대 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으로 2003년 아셈스를 설립했다.

기업 연구원 출신이 대학 인큐베이팅을 받아 지역에서 창업하고 상장까지 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

무이형지 필름형 접착제 개발에 성공하면서다. 문구점에서 파는 스티커를 생각하면 쉽다. 스티커의 접착면을 보호하는 종이가 바로 이형지다. 우리는 이형지 없이 필름형으로 만든 접착제(핫멜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무이형지 핫멜트를 생산하는 장비도 당연히 없었기에 자체 개발했고, 현재는 접착제뿐만 아니라 설비와 생산 기술까지 수출하고 있다. 현재 회사가 보유한 특허만 100여 건이 넘는다.

세상에 없는 제품을 고객사에게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았겠다.

그랬다. 처음에는 접착제가 아니라 웬 필름을 가져왔냐고 물었다. 녹은 필름이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을 보더니 놀라더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등산인구가 엄청 늘었는데, 신발이라도 좋은 걸 신자며 트랙스타 브랜드가 크게 유행했다. 우리 제품이 처음 들어간 신발이다. 나이키에선 먼저 연락이 왔다. 점프 동작이 많은 농구화 특성상 강한 힘을 받으면 인솔과 아웃솔이 분리될 때가 많은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를 찾아왔다. 처음엔 1차 벤더에 납품을 요구했고, 1년 후인 2006년부터 지금까지 독점 공급 중이다. 아디다스도 우리 제품을 쓴다.

무이형지 접착제는 환경 이슈에서 자유롭나.

유성·수성 점착제가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지 알고 연구를 시작했다. 우리 제품에는 유화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세계적인 기준도 ESG가 대세다. 나이키는 이미 1998년부터 수성 접착제만 사용했다. 이미 자체적으로 유독성, 중금속 기준 등을 철저하게 지킨다. 나이키가 가장 싫어하는 게 톨루엔, 솔벤트 같은 휘발성 유기화합물이다. 우리는 제품 자체뿐 아니라 작업 환경도 깨끗해 최고의 ESG 시스템을 자랑한다.

필름형 접착제가 신발 외에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하다.

섬유·의류, 가죽제품, 자동차, 산업용 자재에서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하다. 자동차의 경우 파노라마 선루프 원천기술을 가진 1차 벤더에 우리 접착제로 개발한 원단을 납품한다. 자외선, 가시광선이 통과하면 안 되고 친환경성까지 갖춰야 한다. 우리 제품이 필요한 이유다. 세계 최초로 나이키사의 핫멜트 접착필름과 합포(두 가지 이상 원단을 접착해 붙인 원단) 임가공업체로 등록되어 있는 등 신발산업에 광범위하게 공급하고 있다. 가방, 의류, 자동차, 전자 등 타 산업으로 적용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사업 내용을 찾아보니, 접착제 기술이 엄청나게 다양하게 활용되더라.


▎아셈스가 개발한 접착제 코팅사 제조설비 앞에 선 장지상 대표와 최영찬 대표.
그렇다. 상장심사 때 “접착제 회사가 왜 염색 사업을 하느냐”고 묻더라. 우리가 개발한 코팅사와 이를 이용해 짠 핫멜트 텍스타일(상품명 멜텍스)이 대표적이다. 특정 원사에 접착제를 코팅한 실이 코팅사다. 접착 기술을 활용해 만든 실이다. 특히 멜텍스는 아셈스만의 핫멜트 기술로 생산한 세계 최초 제품이다. 핫멜트 코팅사로 짠 텍스타일로 다양한 형태로 성형이 가능하고, 별도 접착제 없이 다른 자재에 접착할 수 있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풀림 현상도 없다.

접착 기술이 이렇게 다양하게 쓰이는 게 놀랍다.

이뿐만 아니다. 3D 프린팅 기술도 있다. 축구화 바닥 등에 여러 색을 입힌 입히는 ‘염착’을 우리만의 진공 기술로 해결했다. 굴곡 있는 면에 진공 프린팅을 이용해 특정 염료를 한 번에 올리는 기술이다. 진공 상태에서 염료를 뿌리면 직진성을 갖게 돼 원하지 않은 공간으로 번지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모두 세계 최초 기술인가.

맞다. 작은 기업일수록, 우리처럼 자본이 부족할수록 오히려 ‘세계 최초’에 매달려야 한다. 경쟁 제품군으로 갈수록 가격경쟁력에서 기존 강자에 밀릴 수밖에 없다. 단가가 얼마인지 고민하기보다 개발 기간이 길더라도 시장에서 고유의 가치를 인정받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스타트업 입장에선 당연하지만 어려운 주문 같다.

많은 제조 스타트업과 창업가가 실수하는 것 중 하나가 시장의 니즈를 모르고 무작정 달려든다는 점이다. 자기 맘대로 ‘이거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다. 기초 기술이 있다면, 정말 그 기술이 시장과 고객 니즈에 부합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들이 뭘 원하는지 알고 나서 연구개발에 뛰어들라고 조언하고 싶다. CEO는 개발도 좋지만, 시장에서 사람 만나는 데 더 힘써야 한다. 고객사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몇 다리만 건너도 다 만날 수 있다. 우리만 해도 파노라마 선루프 원단 개발에 4년이 걸렸다. 시장에서 누가 뭘 필요로 하는지, 그걸 만들기 위해 어떤 물성이 필요한지 알아내는 데 2년이 걸렸고, 제품 개발과 양산에 또 2년이 지났다. 어떤 제품을 기업이 개발·생산해 손익분기점을 넘기까지 보통 8년은 걸린다는 게 내 경험이다. 물이 필요 없는 무수염색은 아셈스의 또 다른 혁신 제품인데, 여기에 투자한 지도 4년 됐다. 물 없이 염색하니 오염이 없다. 이 역시 시장의 니즈를 반영한 기술개발이었다.

나이키 납품도 그런 과정이었겠다.

당연하다. 나이키 같은 글로벌 신발 제조사들은 1년에 몇 켤레라는 시장 사이즈가 명확하다. 친환경 소재 니즈도 까다롭다. 그러니 무이형 핫멜트 개발에 성공하면 어느 정도 매출이 나오는지 비교적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자동차도 멜텍스도 마찬가지다.

상장에 나선 이유가 특별히 있나.

상장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상장을 통해 비즈니스를 더 크게 확장할 수 있다는 비전이 있었다. 기존 전방산업이 신발, 섬유, 자동차 등이었다면 이젠 전기차용 헤드라이너, 친환경 공법을 적용한 염색 기법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상장 후 유치한 자금은 연구개발(R&D)과 해외 생산라인 확충 등에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아셈스를 어떤 기업으로 만들어갈 계획인가.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하든, 우리가 인수합병되든 회사 규모를 계속 키워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지금은 1000톤급 배지만 나중에는 항공모함이 돼야 한다. 직원들이 행복하고 성장하는 회사도 만들고 싶다. 20년 동안 기업을 운영하면서 한 번도 내 배당이나 상여를 챙긴 적이 없다. 대신 직원들에겐 실적이 날 때마다 상여를 지급하고 자사주도 세 번이나 나눴다. 우리는 5시 퇴근이 원칙이다. 최근에는 시험적으로 주 4일 근무에 나서 한 달에 한 주는 4일만 일한다. 생산만 컨트롤할 수 있으면 크게 무리가 없다. 결국엔 재택근무가 확대되리라 예상한다. 오더가 늘면 라인도 늘리고 사람도 더 뽑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서도 지난 20년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었다. 세계 유일의 독점 품목 덕분이다.

※ 최영찬 -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최재승 객원기자

202403호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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