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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씨앤씨인터내셔널 대표, K뷰티 제2 전성기 이끈 숨은 공신 

 

신윤애 기자
2009년 매출액 10억원대였던 작은 화장품 제조사가 15년 만에 시가총액 7770억원대에 이르는 규모의 성장을 이뤄냈다. K뷰티의 두 차례 전성기를 함께하며 날개를 단 이 기업은 올해 또다시 역대급 실적을 달성할 전망이다.

▎배수아 씨앤씨인터내셔널 대표는 2009년 매출액 10억~15억원대였던 회사를 15년 만에 매출액 2000억원대로 키운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K뷰티 시장이 다시 들썩인다. 중국을 중심으로 열풍을 일으켰던 K뷰티가 미국, 유럽, 일본 등으로 주력 시장을 확대하며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 성공 신화를 쓴 주인공은 인디 브랜드라고 불리는 중소기업들이다. 이들은 트렌디한 제품을 내세워 올리브영 등 드러그스토어와 SNS를 활용해 해외 고객을 공략하는데, 올 상반기 화장품 수출 시장에서 인디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68.7%에 이를 정도로 성과가 좋다.

K뷰티 열풍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주역은 ODM(제조업자개발생산) 업체다. 역사가 오래된 대기업 브랜드부터 이제 막 발을 뗀 신생 브랜드까지 모두에게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줬다. 그 결과 제조 진입장벽이 낮아져 참신하고 품질 좋은 화장품이 대거 탄생했고 지금처럼 다양하고 경쟁력 있는 생태계가 완성될 수 있었다.

씨앤씨인터내셔널은 최근 큰 보폭으로 성장하며 업계에서 주목받는 화장품 ODM사다. 2021년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이후 생산 시설 투자를 늘려 생산 능력을 확보한 씨앤씨인터내셔널은 2022년 처음으로 매출액 1000억원을 돌파하며 본격적으로 성장 가도에 진입했다. 이듬해인 지난해에는 전년 동기 대비 68.7%가 성장한 2203억원으로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도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 722억원, 성장률 56.2%를 이뤄내 다시 한번 기록을 경신할 것이란 추측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14일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씨앤씨인터내셔널의 제품개발본부에서 배수아 대표를 만났다. 씨앤씨인터내셔널의 창업주인 배은철 회장의 2세인 배 대표는 2009년 씨앤씨인터내셔널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2018년 부사장으로 승진, 올해 7월엔 공동대표직에 올라 회사를 이끌고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실행력으로 무장한 그는 입사 이후 15년간 제품 개발과 영업 일선에서 고군분투했고 지금의 성장을 이끌어낸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배 대표는 “2009년 입사할 당시 씨앤씨인터내셔널은 임직원 10명 남짓에 매출액 10억~15억원 정도 되는 작은 회사였다”며 “그럼에도 기술력 등 저력이 충분했기 때문에 젊은 영업력을 더하자 곧바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2010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2배가량 씩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씨앤씨인터내셔널은 1997년 배은철 회장이 설립한 화장품 ODM사다. 1981년부터 10여 년간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에서 근무한 경험으로 회사를 창업했고 스틱으로 된 펜슬이라는 단일 카테고리를 취급했다. 배 대표는 “아이라이너, 아이브로 등에 쓰이는 화장용 펜슬인데 2009년까지 10여 년간 이 제품만으로 회사를 운영했다”고 설명했다.

배 대표는 입사 당시를 어려운 시기로 기억한다. 유일한 제품이었던 화장품용 펜슬도 다른 ODM사보다 시작이 늦었던 데다 단일 품목으로는 성장 동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0년대 들어 K뷰티가 국내를 넘어 중국에서 인기몰이를 하며 전성기를 맞이했고, 경쟁사들이 이 기회를 잡고 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등판한 배 대표는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우리가 잘해오던 펜슬 영역부터 시작했습니다. 기존 제품에 트렌드를 입혀 변주를 주었죠. 크레용, 파스텔 같은 제형의 립 펜슬이 대표적이에요. 새로운 질감과 쓰임새에 많은 소비자가 좋아해줬습니다. 이는 아이라이너와 아이브로에 집중돼 있던 제품군을 립 시장으로 넓히는 계기가 되었고요. 그다음엔 틴트 같은 액상 영역으로 넘어가며 립 제품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배 대표는 영업 방식에서도 새로운 전략을 취했다. 넘치는 아이디어를 들고 직접 브랜드를 찾아다니며 제안하기 시작했다. 브랜드가 ODM사를 찾아 제품을 의뢰하면 그에 맞는 제품을 제공해주는 일반적인 프로세스를 거스른 방식이었다. 그는 “우리가 개발해온 제형, 제품들을 설명하며 먼저 제안했더니 우리를 파트너사로 선택하는 고객사가 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늘 새로운 제품에 목말라 있는 브랜드사에 배 대표의 트렌디한 아이디어는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씨앤씨인터내셔널은 고객사를 늘려가며 전성기에 한 걸음씩 다가섰다.

15년이 지난 현재 씨앤씨인터내셔널은 립, 아이, 치크 등 색조 제품의 모든 품목을 다룬다. 아직 비중은 적지만 3년 전부터는 스킨과 로션 등 기초 제품도 생산 중이다. 제품 라인업을 모두 합치면 1년에 1000개가 넘는 제품군을 생산한다고 배 대표가 설명했다. 그는 “입사 이후 립 제품을 강화하며 전체 카테고리에서 60% 가까운 비중을 차지했지만 이젠 카테고리를 더욱 확장해 베이스, 치크, 하이라이터, 컨실러 등 모두 고른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카테고리의 다양화는 코로나19로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낼 수 있는 구원투수가 돼주기도 했다. 온종일 마스크를 써야 했던 팬데믹 시절은 화장품 대부분의 판매량이 곤두박질쳤고 그중에서도 립 제품은 가장 큰 직격탄을 맞았다. 립 제품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씨앤씨인터내셔널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절망적인 일이었다.

“다행히도 코로나19가 시작되기 1년 전에 아이 제품을 대폭 확장했습니다. 아이라이너, 아이섀도 등이죠. 마스크로 가리지 않아도 되는 눈은 화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으니 다른 제품군에 비해 판매량이 어느 정도 유지됐어요. 립의 저조한 실적을 만회할 수 있었죠. 만약 아이 제품으로 카테고리를 확대하지 않았다면 씨앤씨인터내셔널은 정말 많이 어려웠을 겁니다.”

어려웠던 팬데믹을 무사히 넘긴 씨앤씨인터내셔널은 코스닥 상장 이후 생산 능력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2021년 코스닥시장에 입성하면서 확보한 400억원가량의 재원 대부분을 생산 시설 투자에 활용했다. 그렇게 씨앤씨인터내셔널은 2023년 기준 피플카운티(본사)에서 8234만여 개, 그린카운티(용인)에서 9522만여 개, 중국 C&C 상해에서 5540만여 개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올해 9월부터는 2공장 증축분을 완전 가동하며 연간 1억 개 넘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팬데믹 시기 잠시 주춤했다면, 앞으로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셈이다.

장인정신으로 만드는 트렌디한 제품


▎씨앤씨인터내셔널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뛰어난 품질력으로 전 세계 500여 개 브랜드의 화장품을 제조하고 있다.
색조는 화장품 중에서도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카테고리로 알려져 있다. ‘돌아서면 유행이 바뀌어 있다’고 할 정도다. 배 대표는 “이전엔 신제품을 출시하면 2년 정도 반응이 유지됐는데, 현재는 1년도 지속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다만 너무 새로운 콘셉트는 시장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트렌디하되 너무 앞서 가지는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색조 트렌드를 이끄는 MZ세대는 기존의 것을 금방 식상해하고, 전에 없던 신기한 제형을 좋아합니다. 뚜껑을 열었을 때 눈에 띄게 다르고 신기한 느낌을 선호하죠. 요즘엔 젤리처럼 쫀쫀하면서 탱글탱글한 제형이 인기입니다. 하지만 독특한 제형이라고 무조건 좋아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몇 년 전 한국에서 새로운 제형을 출시한 적이 있는데 너무 앞서간 탓인지 잘 팔리지 않았어요. 기존의 크리미한 스틱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액상타입의 스틱이었어요. 아쉬운 마음에 2~3년 후 다른 브랜드에 제안해서 새로이 출시했는데 이번엔 미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거예요. 굉장히 센세이셔널했습니다. 그제서야 한국 소비자들도 반응하더군요. 이때 너무 앞서지 않는 선에서 트렌드를 이끌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잘되는 기업은 늘 본질을 추구한다. 제조사의 본질은 누가 뭐래도 좋은 품질을 유지하는 일이다. 트렌드를 제시해야 하는 화장품 제조사도 마찬가지. 그래서 씨앤씨인터내셔널은 품질을 글로벌 기준으로 엄격하게 관리한다.

“한국의 MZ세대는 품질도 꼼꼼하게 따져봅니다. 아무리 흥미로운 제품이어도 발색이나 지속력 등이 떨어지면 절대로 재구매하지 않죠. 우리 회사는 로레알, 에스티로더, LVMH, 코티 등 글로벌 4사에서 제시한 글로벌 오디트(audit) 기준의 CGMP를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이는 품질은 물론 사회적·환경적인 이슈, 지속가능성 등이 전반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뜻이에요.”

씨앤씨인터내셔널은 ODM만 고집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배 대표에게 회사 소개를 부탁하자 그는 ‘ODM 외길을 걷는 화장품 제조사’라고 답했다. 설비 능력, 기술력, 아이디어를 두루 갖췄으니 자체 브랜드를 운영할 만도 한데 의아했다. 그 궁금증에 배 대표에게 물어보니 ‘고객과 신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을 내놨다.

“아이디어가 중요한 이 시장에서 우리가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순간 고객들이 고민에 빠질 것이 분명합니다.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마음 놓고 말해도 될까 걱정하게 되죠. 우린 브랜드들의 경쟁사가 아닌 든든한 파트너가 되고 싶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모든 고객의 브랜드를 우리가 만든 브랜드처럼 여기며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브랜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더는 브랜드 욕심이 없습니다.”

이제 씨앤씨인터내셔널은 사명처럼 ‘인터내셔널’한 기업이 됐다. 2024년 기준 국내와 해외 고객사의 비중은 50:50이라고 한다. 한국의 크고 작은 브랜드를 넘어 미국, 유럽, 일본, 중국, 중동 국가의 브랜드까지 섭렵한 것이다. 국내외는 물론 세계적인 뷰티 그룹인 로레알, 에스티로더, LVMH를 비롯해 전 세계 500여 개 브랜드가 씨앤씨인터내셔널의 고객이다.

“입사할 당시 코스모프로프 홍콩 박람회에 나가긴 했지만 해외 진출 준비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해외 진출을 시작한 건 10년 전쯤이고, 8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고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최근엔 미국 뉴욕과 LA를 중심으로 확장하고 있고 중동 국가와의 접점도 생겼습니다. 중동에서 가장 큰 브랜드인 후다 뷰티라는 브랜드인데, 후다라는 메이크업아티스트가 만든 색조 브랜드예요. 올해 출시한 블러셔를 저희와 함께 만들었어요. 중동은 물론 북미 지역에서도 화제가 된 제품입니다. 인기에 힘입어 현재 후속 제형과 컬러를 개발 중인데 이 또한 저희와 함께하고 있죠.”

입사 이후 매출 규모를 200배 이상 키워내고, 국내외로 존재감을 확장한 배 대표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배은철 회장과 함께) 공동대표 자리에 올랐다. 수많은 2세 경영인이 그러하듯 배 대표도 창업 정신을 지키면서 혁신을 이뤄내야 하는 부담감이 있진 않을까 궁금했다. 그는 대표로서의 겸손함, 회사의 기본 철칙과 미래 비전 이야기로 답을 대신했다.

“화장품이나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15년간 실무에서 경험을 축적했습니다. 직접 발제한 아이디어가 성공과 실패를 겪는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우고 느끼기도 했죠. 그래서 대표가 된다고 해서 실무를 완전히 놓고 싶진 않았습니다. 회장님께 ‘지금까지 하던 일을 그대로 유지하며 경영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앞으로도 아이디어를 멈추지 않고 브랜드와의 미팅도 지속할 예정입니다. 대표로서는 아직 배울 게 많은 새내기입니다. 그렇기에 직원들에게 더 귀 기울이고, 더 겸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씨앤씨인터내셔널의 기본 철칙도 잘 지켜야 하고요. 회장님께서 이런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장품 제조사로서 ‘품질, 납기일, 트렌디한 감각’은 꼭 챙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인정신으로 감각적인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일이 어려운 과제이지만 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려고 합니다. 나아가 씨앤씨인터내셔널은 젊은 여성이 많이 다니는 기업인데, 이들을 위해 일과 육아를 양립할 수 있는 회사로 만드는 것이 제 원대한 목표입니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11호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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