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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 

‘러쉬코리아’는 ‘캠페인 브랜드’다 

조득진 선임기자
포지션에 성공한 브랜드는 힘이 세다. 동물·자연·사람의 조화를 꿈꾸는 글로벌 뷰티 브랜드 러쉬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우미령 대표가 이끌고 있다. ‘러쉬코리아’라 쓰고 ‘캠페인 브랜드’로 읽을 만 하다.

▎러쉬코리아에서 캠페인은 곧 마케팅이다. 우미령 대표는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지키는 여정에 직원과 소비자와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시작한 핸드메이드 화장품 ‘러쉬(Lush)’는 의류 파타고니아·H&M, 업사이클링 프라이탁 등과 함께 대표적인 친환경 브랜드로 꼽힌다. 신선함, 핸드메이드, 동물실험 반대, 에티컬 바잉(Ethical Buying, 윤리소비), 고 네이키드(Go Naked, 포장재를 쓰지 않음), 100% 베지테리언·95% 비건 등 러쉬의 6가지 ‘기본철학’에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좇되 자연·환경의 재생가능성을 중심에 두는 가치소비가 담겨 있다. 제품의 70%가량이 포장재를 쓰지 않는 ‘벌거벗은(naked) 화장품’이고, 다양한 친환경 활동으로 유명하다. 현재 전 세계 52개국에서 950여 개 매장과 15개 스파를 운영한다.

한국은 러쉬의 네 번째 해외 진출국이다. 2002년 12월 명동에 첫 번째 매장을 오픈한 이후 20년이 넘도록 윤리적 리더십을 선보이고 있다. 창업 당시 5명으로 시작한 러쉬코리아는 2024년 8월 기준 전국 73개 매장과 3개 스파를 운영하는 임직원 600여 명의 회사로 성장했고, 2021년 매출 1000억원 돌파 이후 꾸준히 1200억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러쉬 진출 국가 중 글로벌 3위 성적이다. 트렌드가 급변하는 한국 뷰티 시장에서 20년 넘도록 하나의 브랜드로 꾸준히 성장한, 흔치 않은 지속성장 사례로 꼽힌다. 배스, 보디, 샤워, 페이스, 헤어, 메이크업, 프래그런스(향수), 기프트 등의 제품을 판매한다.

러쉬코리아 창업자 우미령 대표는 비즈니스의 근본을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에 두었다. 서울 강남 러쉬코리아 사옥에서 만난 그는 “‘동물·자연·사람이 조화로운 세상’이라는 우리의 가치가 수익 창출로 연결된다는 것, 고객이 항상 옳다는 것을 믿는다”며 “신선함, 유기농이라는 단어가 마케팅적 의미 이상의 정직함을 지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러한 가치 실현은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직원, 소비자와 함께 그 여정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팬데믹에도 매장 늘려 고객 경험 제공


▎러쉬코리아는 지난 6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해양 쓰레기 심각성을 알리는 ‘고 네이키드(Go Naked)’ 10주년 캠페 인을 진행했다.
우미령 대표가 러쉬 브랜드를 처음 만난 것은 2001년이다. 보석 공부차 미국을 방문한 그는 지인에게서 ‘러쉬’ 브랜드를 소개받았다. “화려하고 멋들어진 패키징도 없이 오로지 컬러와 향기만으로도 생기를 뽐내는 것이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는 우 대표는 “게다가 환경과 인권, 동물 친화적인 철학까지 갖추고 있어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장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영국 본사에 연락을 했고, 5개년 계획을 보내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 후 1년여의 설득 끝에 국내의 쟁쟁한 대기업들을 물리치고 러쉬의 한국 판권을 따냈다. 후에 본사 관계자로부터 들은 ‘낙점’ 이유는 “러쉬 브랜드를 잘 키울 수 있는 베이비시터 같은 사람”이었다고.

시장조사 등 준비 기간을 거쳐 2002년 12월 24일 명동에 첫 번째 매장을 오픈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포장 없는(Naked) 입욕제와 고체 샴푸 등은 그저 낯선 수입품이었다. 세관에서 ‘이게 비누 맞냐, 왜 포장이 없냐’ 등의 질문을 받으며 새벽 3~4시까지 조사를 받기도 했고, ‘비건 화장품’을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게다가 마이크로비드 사용금지, 천연운모 반대, 에그 프리(Egg Free), 팜오일 배제, 소셜미디어(SNS) 중단 등 러쉬 브랜드의 까다로운 철학과 원칙에 동의하는 구성원도 찾기 힘들었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실험을 거친 원재료조차 사용하지 않는 방침 역시 시대를 앞선 개념이었다.

오픈 당시는 뷰티 브랜드들이 오프라인 직영점을 속속 선보이고, 로드숍 화장품 브랜드가 하나둘 등장하던 때. 광고나 프로모션 예산이 충분치 않았던 우 대표는 브랜드 윤리에 충실하며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당장 눈앞의 수익을 따지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정성’을 보여주자는 전략이었다. 우 대표는 “러쉬는 마케팅과 광고, 홍보 비용을 모두 제품에 투자하고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개발한다”며 “사회적 책임이라는 일관된 메시지와 러쉬만의 고품질 전략이 맞아떨어지면서 재구매율이 상승하는 등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1년에 출시한 ‘수퍼 밀크’의 매출 신장률(2022년 90%, 2023년 57%)을 보면 러쉬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퍼 밀크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비건 제품으로, 물을 아끼면서 편리성까지 갖춘 노워시 트리트먼트다. 러쉬코리아의 주고객인 MZ세대 취향을 고려했는데, ‘미닝 아웃(Meaning Out)’ 정신에도 맞았다. 이렇게 윤리소비, 가치소비 시대가 열리면서 러쉬코리아는 2020년 회계연도(2020년 7월~2021년 6월) 1018억원 매출을 올리며 처음으로 1000억원을 돌파한데 이어 2021년에는 1234억원을 기록했다.

적극적인 오프라인 진출도 눈에 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도 매장 문을 닫지 않았고, 오히려 리노베이션과 신규 진출로 매장 수를 늘렸다. 우 대표는 “러쉬 매장은 고객을 직접 만나고 우리의 핵심가치를 경험케 하는 곳”이라며 “최근 제주 산방산 자락에 오픈한 ‘러쉬 제주점’ 역시 자연이 주는 평온함과 생태계 공존을 추구하는 러쉬 브랜드 이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캠페인을 ‘한국화’하다


▎러시 제품의 60~70%는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는다. 성수점 매장 모습.
러쉬코리아에서 캠페인은 곧 마케팅이다. 우 대표 역시 “우리는 마케팅을 캠페인으로 한다”고 말한다. 러쉬코리아가 부침이 강한 한국 뷰티 시장에서 자리매김을 할수 있었던 배경엔 사람과 동물, 자연의 조화로운 상생을 꿈꾸자는 캠페인 효과가 있다. 우 대표는 “우리는 동종업계의 트렌드가 아닌 에티컬 브랜드의 움직임을 본다. 그게 애플일 수도 있고 파타고니아나 스타벅스일 수도 있다”며 “고객이 감동받는 지점, 고객이 필요한 시장에 저희가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형 러쉬 캠페인’으로 연결됐다. 새터민·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캠페인, 이태원 참사 후 피아노 음악회, 발달장애 예술가와 함께하는 아트프로젝트 등 러쉬코리아만의 ‘한국형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것. 우 대표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고객이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러쉬 본사가 각 파트너들의 로컬라이제이션(현지화) 여지를 충분히주고 있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러쉬의 시그니처 용기인 ‘블랙팟’ 캠페인이 인기다. 100% 재활용된 플라스틱 용기 PP(폴리프로필렌)로 만드는 러쉬 블랙팟은 재활용이 가능하고, 생산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배출되지 않는다. 러쉬코리아는 블랙팟 5개를 모아 매장을 방문하면 블랙팟 1개당 제품 구매 시 1000원을 지원하거나 페이스 마스크로 교환해준다. 지난해 한국에서 회수된 러쉬 블랙팟은 모두 21만8948개로 글로벌 러쉬매장에서 1~2위를 다툴 정도였다. 우 대표는 “무엇보다 더는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것이 근원적 해결책이다. 러쉬가 패키징이 필요 없는 제품을 만드는 이유”라며 “일상 속 플라스틱 사용 절감을 위해 고 네이키드 캠페인을 10년째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쉬코리아는 2022년부터 전국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발달장애 예술가들과 함께 ‘러쉬 아트페어’를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러쉬에서 펼치는 장애 아티스트와 협업의 일환으로, 한국에서는 발달장애 예술가와 함께 풀어내고 있다. 2022년 발달장애 예술가 이야기 ‘예술에 편견은 없다’, 2023년 자생식물 보호 이야기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에 이어 올해는 파괴되고 있는 해양 생태계를 다룬 ‘바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를 진행하고 있다. 발달장애 예술가 46명의 작품을 팝업 갤러리 형식으로 9월부터 12월까지 전시한다. 우 대표는 “지난해 전시회에서 한 발달장애 예술가께서 ‘우리는 그림 천재, 러쉬코리아는 마음 천재’라고 말씀해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우 대표는 몇 해 전부터 ‘한국 키친’ 설립에 힘을 쏟고 있다. 러쉬는 모든 제품을 손으로 만들기에 생산 공장을 키친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영국·독일·크로아티아·호주·일본·캐나다 등 6개국만이 자국 내 키친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진천 공장에서 프레쉬 페이스 마스크 등 일부 제품을 생산 중이지만 더 많은 제품을 한국에서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우 대표는 “최근 농식품부와 국산 두류의 수요를 창출하고 소비 다양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며 “한국 키친 설립은 국내에 일자리를 만드는 효과뿐 아니라 수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비혼식 지원에 반려동물수당까지

러쉬의 철학을 실천하는 여정에서 우 대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구성원’이다. 이 때문에 회사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공감하고, 함께 행동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우 대표는 “러쉬의 브랜드 신념서에는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는 구절이 있다”며 “최근 MZ세대가 주축이 된 미닝 아웃, 클린뷰티, 비거니즘, 윤리 소비 트렌드에서 러쉬라는 브랜드가 자주 언급될 수 있었던 것은 일관성과 진정성을 가지고 메시지를 전한 러쉬코리아 구성원들의 역할 덕분”이라고 말했다.

러쉬코리아는 네 가지 비즈니스 원칙(Work Hard, Play Hard, Be Kind, Get Together)을 바탕으로 개인의 개성과 삶을 존중하며 다양성을 실현하는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All are welcome, Always!’ 이념하에 진행하는 비혼식 지원, 반려동물수당 지급이다. 러쉬코리아에서는 비혼자나 성소수자가 비혼식을 하면 결혼식을 한 직원과 똑같이 열흘간의 휴가와 축의금을 준다. 7년 동안 비혼 선언제도를 사용한 직원은 25명이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면 자녀 양육비처럼 수당을 주고, 반려동물과 함께 출근하는 제도는 이미 업계에서 유명하다.

우 대표가 꿈꾸는 러쉬코리아의 모습은 ‘톱(Top)이 많은 회사’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대기업이 즐비한 뷰티 시장에서 매출 1등은 못 하더라도 윤리적 화장품 1위, 직원 만족도 1위, 비건 화장품 1위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업계를 선도하고 싶다는 포부다. 그는 “성공한 회사보다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다. 직원 개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조직 안에서 마음 놓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삶에 맞춘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조득진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10호 (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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