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강호의 생각여행(63) 

지베르니 정원에서 모네를 만나다 

인상파의 원조인 모네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모네의 정원과 집이 있는 지베르니를 찾았다. 평생을 쏟아부은 모네의 예술 세계와 아름다움에 감탄하다, 영감을 현실로 만들어낸 거장의 노력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모네의 대표작인 ‘수련’ 연작의 배경이 된 지베르니 정원. ‘물의 정원’의 아름다운 풍광.
프랑스 파리에 들를 때면 항상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모네의 지베르니(Giverny) 정원을 방문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동 시간만 왕복 두세 시간인 데다 정원을 돌아보면서 모네가 살았던 집과 작품들을 보려면 꼬박 하루가 걸리기 때문에 매번 실행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번엔 드디어 짬을 냈다. 파리 북서쪽에 있는 지베르니 정원을 향해 차를 달렸다. 파리 시내를 벗어나서 지베르니 마을에 가까이 오면 큰 강을 건너게 되는데, 그 강이 바로 유명한 센강(Seine River)이다.

실제로 본 센강은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했다. ‘이렇게 폭이 넓다니’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그동안 파리에서 항상 보아왔던 소박한 크기의 센강이 머리에 각인된 탓이었다. 이제서야 우리 회사의 팀장이 신혼여행으로 ‘센강 크루즈’를 했다고 했을 때 ‘그 좁은 강에서 어떻게 크루즈를 하지’ 했던 의문이 풀렸다.

센강을 건너 조금 더 차를 달려 지베르니 마을에 있는 모네의 정원에 도착했다.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오래전 일본 나오시마에 있는 지중 미술관에 전시된 모네의 대형 작품 ‘수련’을 본 이후였다. 지하에 자연광이 간접조명으로 비추도록 준비된 ‘모네실’의 대형 공간에 전시되어 있던 거대한 ‘수련’ 대장식화. 정말이지 너무도 아름다워 큰 감동을 받았다. 특히 지중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프랑스의 지베르니 정원을 그대로 묘사해서 수련과 아이리스 등 그의 작품에 등장했거나 평생 수집한 식물 150여 종과 나무 40종, 꽃 200여 종으로 조성된 연못을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원 벤치에 앉아 차분히 그 분위기를 느끼며 언젠가는 프랑스 현지를 꼭 찾아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깊어졌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네의 흔적


▎다양한 꽃과 식물로 조성된 ‘꽃의 정원’을 바라보고 서 있는 모네의 집.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는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 시절을 프랑스 서북부 대서양에 있는 항구도시이자 센강 하구 오른쪽에 자리한 르아브르(Le Havre)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주로 바다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그린 프랑스의 풍경화가 부댕의 문하생이 되어 정식 미술교육을 받았다. 이후 1859년 파리로 진출했다. 그곳에서 스위스 출신으로 주로 파리에서 활동하던 마크 가브리엘 샤를 글레르(Marc Gabriel Charles Gleyre)의 작업실에서 피사로, 시슬레, 르누아르, 바지유 등과 교류했다. 글레르는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나 클로드 모네 등 후대에 이름을 널리 알린 여러 젊은 예술가를 가르친 화가다.

모네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보았다. “클로드 모네는 생동감 넘치고 인상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로,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상파의 창시자이자 개척자다. 그는 종종 자연, 풍경, 정원뿐만 아니라 수련과 지베르니의 다리를 그린 일련의 그림을 묘사했다. 모네는 주변 세상에 대한 순간적인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붓과 물감의 획을 사용하여 그의 작품에서 빛과 색상 변화의 효과를 포착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작품은 예술 발전에 중요하게 평가되며 세계 회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상파 화가들은 풍경을 비추는 빛을 더욱 자세하게 그림에 담아내기 위해 야외 사생을 즐겼다. 특히 모네는 마네의 밝은 화풍에 끌려 밝은 야외 광선 묘사에 주력했다. 모네는 르누아르, 피사로, 드가, 세잔 등과 함께 신예술 창조에 전력했다. 1871년, 보불전쟁 중에는 런던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터너 등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더욱 밝은 색조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귀국 후 1874년 동료 화가들과 함께 제1회 인상파 전람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출품된 작품이 물체 본래의 색깔을 쓰지 않고, 신선하고 밝은 색채로만 그려진 데 대해 비난과 공격이 쏟아졌다. 특히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가장 심한 비난을 받았는데 ‘인상파’라는 말은 이때 모네의 작품을 야유한 데서 나온 말이다. 클로드 모네는 1926년 12월 5일 폐암으로 86세 나이로 사망했다.”

수많은 방문객이 아름다운 지베르니 정원을 찾고 있어서 매우 붐볐지만 안내 화살표를 따라 질서 있게 정원에 들어섰다. 조그만 냇물을 따라서 대나무가 울창하게 벽을 이루는 듯 보이는 길을 도니 조그만 초록색 구름다리가 나왔다. 이내 구름다리, 수련과 함께 구성된 ‘물의 정원(WATER GARDEN)’이라는 안내판이 나왔다. 조금 더 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그 유명한 수련 작품의 배경이 된 잔잔한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위에는 수련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무리 지어 떠 있었다. 다양한 식물과 온갖 종류의 꽃이 호수를 둘러쌌고, 중간중간에 크고 작은 나무들이 우뚝 서 있었다. 날씨가 화창해 하늘에는 흰 뭉게구름이 여기저기 두둥실 떠 있었다. 구름이 호수 위에 비치고 수련이 동글동글 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아마도 모네가 그 모습에 흠뻑 취해 캔버스 위에 그림으로 남기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모네의 작품이 여럿 걸려 있는 집 안 전시실.
연못 위 수련을 바라보면서 가장자리를 걸으며 예쁜 꽃들과 파란 하늘, 흰 구름을 벗 삼아 ‘물의 정원’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었다. 수련 그림에 종종 나오는 구름다리 위에서 다시 호수와 수련을 바라보았다. 모네는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250점에 달하는 ‘수련(Nymphéas)’이라는 유화 연작을 남겼다. 이 수련 정원은 189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30여 년에 달하는 오랜 세월 동안 모네가 집중해서 그린 소재였다. 연작에 속한 모든 그림의 소재가 정원의 수련이라는 점에서, 연작 자체를 가리킬 땐 ‘수련’이란 제목으로 부른다. 그러나 그림 한 점한 점은 연작의 명칭 그대로 ‘수련’인 것도 있으나 ‘수련 - 구름’, ‘수련 - 해 질 녘’, ‘수련 - 연못에 비친 구름’ 등 다른 제목이 붙여진 것도 많다.

모네의 수련 연작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갖고 있는지는 작품들이 소장된 미술관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프랑스 정부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한 쌍의 타원형 전시실을 마련해 모네의 수련 벽화 8점을 상설 전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전시실은 모네가 죽은 지 몇 달 뒤인 1927년 5월 16일 대중에 처음 공개됐다. 이 밖에 주요 소장처로는 프린스턴대학 미술관, 마르모탕 모네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세인트루이스 미술관, 넬슨-앳킨스 미술관, 카네기 미술관, 웨일스 국립박물관, 낭트 미술관, 톨레도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포틀랜드 미술관 등이 있다. 2020년에는 미국 보스턴 미술관이 개관 150주년 기념으로 ‘수련’ 연작 1점을 공개했다. 2022년에는 대한민국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을 통해 ‘수련이 있는 연못’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모네의 대형 사진이 방문객들에게 인사를 전하는 듯하다.
앞서 언급한 일본 나오시마의 지중 미술관도 대작을 보유하고 있다. 이 ‘물의 정원’에서 수련이 떠 있는 모습에 영감을 받아 그렇게 엄청난 대작들을 전 세계에 남겼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못과 수련,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여러 각도에서 음미해보며 발걸음을 ‘꽃의 정원’으로 옮겼다.

상상을 현실로 이뤄내는 노력


▎모네가 살던 집 주방의 요리 도구들이 재미있게 걸려 있다.
‘꽃의 정원’에서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개해 방문객들을 맞고 있었다. 모네는 정원을 디자인할 때 색상과 조화를 중시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다양한 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예쁜 꽃들 사이로 걸으니 순간 행복한 기분에 온전히 젖어들었다. 이 꽃 저 꽃 사이를 걷다가 멋진 핑크색 장미꽃 덩굴을 만났다. 걸음을 더 재촉하니 핑크색 장미꽃으로 만든 아치가 나오고 이내 모네의 집이 나타났다.

옅은 핑크색 벽에 큼지막한 초록색 창문이 여럿 있는 모습이 무척 특이하고 인상적이었다. 창문 사이에는 핑크색 장미꽃 덩굴이 벽을 따라 담쟁이처럼 올라가고 있었다. 건물 입구의 초록색 계단을 올라 모네가 살았던 집의 내부로 들어갔다. 첫 번째 방은 꽤 큰데, 양쪽 벽에 모네의 그림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그중에 제일 위에 걸린 ‘파라솔을 든 여인’ 두 개의 작품은 서로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벽에 걸린 그림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조그만 계단으로 연결된 옆방으로 이동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꽃의 정원’은 또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모자랄 정도다. 이 방엔 가구 위에 청자 같은 도자기가 놓여 있고, 벽에는 놀랍게도 일본 판화가 여럿 걸려 있었다. 다음 방은 침실이다. 침대가 놓인 방의 큰 창문 두 개 너머로 ‘꽃의 정원’을 내려다보니 꽃과 푸른 나무들이 다양한 식물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광을 만들어냈다.

다음은 식당인데, 벽이나 모든 가구, 식탁 의자들이 전부 노란색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큰 식탁과 어울려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에도 가구 위에는 청자들이 있고 벽에는 일본 판화들이 걸려 있었다. 다음은 주방이다. 구릿빛 각종 조리 기구들을 벽에 걸어놓았다. 각각의 방에서 창문을 통해서 다른 각도로 보이는 ‘꽃의 정원’과 파란 하늘 속의 흰 구름, 초록빛 나무들의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집에서 나와 다시 꽃 속을 걸었다. 방문객들도 아름다움에 취해 여기저기 놓인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는 듯했다. 모네가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과 ‘물의 정원’과 ‘꽃의 정원’을 돌아보며 그의 예술 세계를 몸과 마음과 눈으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출구로 나오는 곳에 모네의 대형 흑백사진 두 점이 보였다. 챙이 큰 둥근 모자를 쓰고, 엄청나게 넓고 길어 얼굴만큼이나 큰 흰 수염을 기른 모네의 모습이 작별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았다. 가슴속에 아름다운 여운을 안은 채 모네와 작별했다.


▎모네의 집 앞에 조성된 아름다운 ‘꽃의 정원’과 핑크색 장미로 꾸민 아치.
지베르니 정원을 떠나 파리를 향해 호젓한 프랑스의 전원을 달리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거장 모네의 정원에서 느낀 것은 우선 영감(inspiration: 靈感)과 상상력, 창의력(imagination)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꽃과 나무, 연못과 다양한 식물이 어우러진 상상의 정원을 현실화한 창의력과 실행력이 돋보였다.

그다음으론 모네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엄청난 가치를 지닌 모네의 대작은 과연 경매 시장에서는 어떻게 평가되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해 자료를 찾아보았다. 오랜 기간에 걸친 경매 이력 중에 2014년 5월 6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수련이 있는 연못’이 2700만 달러에 낙찰됐고, 같은 해 6월에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수련’이 5400만 달러에 낙찰됐다는 기록이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이런 엄청난 대작들을 완성하기 위해서 모네는 캔버스 위에 얼마나 많은 붓질을 했을까? 100번? 1000번? 1만 번? 인류를 위해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 모네와 같은 거장을 보며, 『중용』의 기천정신(己千情新)을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100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1000번을 하여야 한다(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인일능지 기백지 인십능지 기천지).’ 모네의 일생을 돌아보며 ‘아름다움’에 대한 영감과 창의력, 상상을 현실로 실행해내는 ‘노력’의 소중함을 깊이 음미해본다. 거장 화가가 수없이 많은 붓질을 하듯이 상상하여 영감을 얻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또다시 노력하면 목표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범인들도 상상과 영감을 현실로 실천해낼 수 있을까?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세계 최대 펌프 제조기업인 덴마크 그런포스그룹의 한국 법인 창립 CEO 등 33년간 글로벌 기업 및 한국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고, 2014년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KCMC) 회장 및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와 2세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을 컨설팅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503호 (20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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