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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대 그룹 경영 전략] 어려운 경제환경, 공격 투자로 돌파한다 

삼성·SK·롯데 등 주요그룹 사상 최대 투자…내실 기하며 신성장·전략사업 육성 


국내 10대 그룹의 매출 총액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약 80%에 이른다.

10대 그룹은 매출의 80%를 수출로 번다. 이들의 실적이 한국경제의 성적표고,경영 기조가 한국경제의 방향타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10대 그룹은 과감한 투자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 왔다. 올해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코노미스트 취재 결과 국내 10대 그룹은 어두운 경제전망에도 투자를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내실을 기하면서 전략적인 투자를 확대한다는 게 주요 그룹의 공통된 목소리다. 그룹별 2012년 경영전략을 자세히 들여다 봤다.


2012년 10대 그룹 신년사에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위기’였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볼 수 없었던 ‘침체, 불황, 불확실, 급변, 어려움’ 등의 단어도 눈에 확 띌 만큼 늘었다.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이 그만큼 올해 경제를 어렵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본지는 매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자산총액 상위 10개 그룹의 신년사 전문을 분석해 왔다. 신년사 전문을 입수해 어떤 단어가 많이 쓰였는지 분석하는 방식이다(올해는 검찰수사 여파로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은 SK그룹은 제외했다. 정준양 회장이 신년사 대신 새해 구상 프레젠테이션을 한 포스코는 보도자료로 대체했다).

‘위기’는 ‘재정위기’ ‘경제위기’ 등을 포함해 22회 쓰였다. ‘침체’ ‘불황’ ‘둔화’ 등의 단어를 포함하면 37회 등장한다. 불확실한 세계경제 전망을 대변하듯 ‘불확실·불안정·격변·급변(13번)’ 등의 단어도 많이 쓰였다. ‘어려운(12회)’도 심심찮게 등장한 말이었다. ‘어려운’ 앞뒤에는 ‘경영환경·경제여건(19회)’이 붙었다.

매년 신년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글로벌’은 21회 쓰였다. ‘성장·신성장(20회)’ ‘고객·고객가치(20회)’도 10대 그룹 총수들이 강조하는 화두였다. ‘미래(18회)’ ‘변화·혁신(17회)’ ‘대비·대처(15회)’ ‘도약·약진(13회)’ ‘차별화(12회)’ ‘투자(12회)’도 많이 쓰였다.

특히 ‘사회적 책임·사회공헌’ ‘동반성장·공생발전’이 예년에 비해 부쩍 늘었다. 각각 21회, 20회 쓰였다. 이밖에 ‘기술·연구개발(11회)’ ‘지속적·영속적(11회)’ ‘역량·핵심역량(10회)’ ‘인재(9회)’ ‘도전(9회)’ 등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2010년 신년사를 장식했던 ‘그린·녹색’은 지난해에 이어 올 10대 그룹 신년사에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10대 그룹의 2012년 신년 출사표를 요약하면 이렇다. “세계경제 앞날이 불확실하고 경영환경은 어렵지만, 내실을 다지며 미래에 대한 투자로 성장을 이어가겠다.”

본지가 취재한 국내 10대 그룹의 2012년 경영전략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그룹이 아직 투자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대부분 투자를 늘리거나 적어도 올해 수준은 유지할 것이라고 답했다. 내실을 기하면서 신성장 동력에 집중 투자한다는 것도 공통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10대 그룹의 올해 투자 규모는 120조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43조원을 투자했던 삼성그룹은 올해도 사상 최대 투자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그룹 차원의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삼성 안팎에서는 투자 규모가 5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월 2일 신년 하례회에서 “우리나라 경제상황을 봐서는 투자를 더 적극적으로 해 다른 기업도 투자를 많이 하도록 유도를 하는 게 좋지 않느냐”고 말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2011년 삼성그룹 매출은 185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영업이익은 21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잠정치대로라면 매출은 13%, 영업이익은 31% 늘어난 것이다. 삼성은 이 여세를 몰아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헬스케어·바이오 분야 등 신수종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 분야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10대그룹 신년사 ‘위기’ 단어 가장 많이 등장

현대자동차는 올해 경영 기본방향을 ‘내실 다지기’로 잡았다. 정몽구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올해는 보다 내실 있는 경영 활동을 통해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자 한다”고 밝혔다. 현대차 관계자는 “토요타, GM 등 경쟁사의 공격 경영이 예상되는 가운데 무리한 물량 증대보다는 품질 경영으로 제값을 받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60만대를 판매하는 등 2009년 이후 3년 연속 두자릿수 성장을 했던 현대차는 올해 판매 목표를 700만대로 잡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7자가 갖는 상징성을 감안해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는 소폭 늘릴 계획이다. 현대차는 연구개발(R&D)에 전년 대비 10.9% 늘어난 5조1000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이 중 90%는 친환경 미래차와 고효율 신차 개발에 집중한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최태원 회장, 최재원 부회장의 검찰수사 여파로 새해 경영 계획 수립에 고심했던 SK그룹은 1월 5일 파격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SK그룹이 밝힌 투자 규모는 19조원. 지난해 투자액(9조원)의 두 배가 넘는다. SK는 지난해 인수한 하이닉스에 약 4조원, 시설부문에 약 1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R&D와 자원개발에는 각각 1조8000억원, 2조원을 투자한다. SK그룹의 올해 경영 슬로건은 ‘SK 4.0’이다. 그룹 관계자는 “1980년대 유공, 1990년대 한국이동통신에 이어 하이닉스 인수에 성공한 SK는 제3의 도약을 꿈꿀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SK는 올해 반도체와 고부가가치 제품 투자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내실·질적 성장’도 주요 화두

LG그룹의 화두는 ‘변화’다. LG그룹은 주력인 LG전자, LG디스플레이가 지난해 저조한 실적을 내면서 그룹 내에 위기감이 팽배하다. 구본무 회장이 신년사를 통해 “책상에 앉아서 자료만 놓고 판단하는 관리자가 아닌 몸소 흐름을 알고 판을 짤 수 있는 사업가가 되어 달라”고 말했을 정도다. LG그룹은 탄탄한 실적을 내고 있는 LG화학을 기초 동력으로, 스마트폰 시장에 재도전하는 LG전자와 롱텀에볼루션(LTE) 고객 유치전에 뛰어든 LG유플러스에 투자를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LG전자는 옵티머스 LTE 스마트폰에 ‘올인’할 계획이다. LG그룹 관계자는 “옵티머스 LTE 스마트폰은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상품이고, 전 계열사 생산품이 부품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서 “LG그룹 전체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2011년 안정적인 성장을 한 롯데그룹은 올해 ‘해외시장 확대’에 승부를 건다. 롯데의 주력 사업인 할인마트·백화점·편의점 등은 국내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다. 세계 경제가 불황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것도 롯데로선 악재다. 롯데그룹은 최근 3년 동안 연평균 109% 성장한 해외 사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베트남, 러시아,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마트와 백화점을 공격적으로 늘려나가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사업 다각화를 통해 탈출구를 모색한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12월 8일 하반기 사장단 회의에서 “기존 사업을 튼튼하게 유지해 경영 효율을 높이면서 인접사업으로 분야를 적극 확대해 나가는 전략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매물로 나온 하이마트를 롯데그룹이 인수할 것인가도 관심 거리다.

포스코는 위기극복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전략이다. 정준양 회장이 들고 나온 카드는 ‘패러독스(역설) 경영’. 최고 품질의 제품을 가장 낮은 가격에 공급해 수익성을 제고한다는 것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가 쉽게 반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좀 더 긴 호흡으로 안팎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이를 통해 글로벌 경쟁사와 영업이익률 격차를 현재보다 2% 포인트 이상 더 벌리겠다는 전략이다.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철강뿐 아니라 마그네슘·리튬·티타늄 등 모든 소재를 공급하는 종합소재기업으로 거듭나는 기반을 만든다는 게 기본 전략”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올해 철강시황 악화 전망에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대하기 위해 국내외 생산벨트 확장에 주력할 계획이다.

그룹별 전략사업 윤곽 드러나

현대중공업은 올해 경영 키워드를 ‘혁신과 도전’으로 삼았다. 조선 산업 불황이 점점 깊어지고 있지만, 투자를 줄이지 않겠다는 것이 현대중공업 입장이다. 올해 투자 목표는 지난해와 비슷한 2조2000억원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시가총액이 40%나 줄 만큼 조선산업 한파 영향을 받았지만, 매출과 수주는 오히려 늘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11척의 드릴십을 수주하는 등 특수선 분야에서 선전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올해도 매출과 수주 목표를 전년보다 올려 잡았다. 수주 목표는 305억 달러, 매출 27조5000억원이다. 그룹 전체 매출 목표는 64조원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올해 일반상선 수요는 부진하겠지만, LNG, LPG, 드릴십 등 특수선과 육해상 플랜트 수주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해양플랜트, 건설장비, 전자장비 분야의 해외 생산거점을 늘려 글로벌 경영체계를 확고히 할 방침이다.

GS그룹의 올 경영 핵심전략은 ‘안정 속 도전’으로 요약된다. GS는 그동안 낮은 부채비율과 현금 동원력으로 인수합병(M&A) 시장의 다크호스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하이마트, 현대오일뱅크, 대한통운, 대우조선 인수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확실한 미래사업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GS그룹은 올해 대형 M&A가 없다는 판단 아래 튼튼한 실탄을 바탕으로 에너지 부분 투자를 늘릴 방침이다. 정유·유통 등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신재생에너지에 투자를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지주사인 GS가 보유한 GS칼텍스 주식 전부를 물적 분할해 설립한 GS에너지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GS에너지는 2차 전지의 핵심 소재인 음극재와 양극재, 탄소 소재, 플라즈마 방식 폐기물 처리기술 등 GS칼텍스가 보유 각종 연구개발 부문을 양도받아 본격적으로 사업 나설 계획이다. GS그룹의 올해 투자 목표는 지난해보다 48% 늘린 3조1000억원이다.

한진그룹의 올해 경영 기조는 ‘수익성 있는 성장’이다.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으로 성장하겠다는 것이다. 조양호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올해는 지난 수년 간 지속된 변화의 바람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강력한 체질개선과 혁신을 통해 성장의 질적 개선을 도모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조 회장이 내실경영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주력인 대한항공 상황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저가항공사의 거센 도전 속에 매출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절반으로 줄었다. 대한항공 측은 “올해 항공기는 투자는 전년 대비 30% 줄어든 1조5600억원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장거리 노선을 확대하고,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화물운송분야에서는 다양한 노하우와 운송품질관리에 주력, 서비스로 승부한다는 전략이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이 사활을 걸고 키우고 있는 태양광 사업에 ‘올인’한다.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는 한화그룹은 태양광 사업을 전담하는 한화솔라원과 한화솔라에너지를 중심으로 태양광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태양광 사업에 대한 김승연 회장의 의지는 재계에서도 유명하다. 지난 연말 인사에서는 장남인 김동관 그룹 회장실 차장을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승진시켰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태양광 제조·R & D 분야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고, 한화금융네트워크의 금융 노하우를 효과적으로 접목해 글로벌 태양광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투자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한 1조7000억원 또는 소폭 늘 것이라는 게 한화그룹 측 설명이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

1121호 (201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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