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테이크어반 베이커리. 오전 8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계산대 앞에는 여러 명의 손님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50개가 넘는 테이블에는 절반 이상 손님들로 차 있다. 매장 가운데 선반에선 직원이 빵을 잘라 내놓자마자 손님들이 접시에 빵을 담아갔다. 5000원선의 음료를 주문하고 1000원만 더 내면 곡물빵과 바게뜨빵 등 10여개 종류의 빵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빵 뷔페다. 아침을 거르는 직장인을 위해 오전 8시부터 9시 30분까지 운영한다.직장인 강신환(29)씨는 “일주일에 두어 번 이용한다”며 “수원에서 출근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회사 근처에 와서 아침을 해결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20~30대의 젊은층뿐만 아니라 40대 직장인도 꽤 많이 찾는다. 40대 중반인 김성환씨는 “일주일에 절반은 밥 대신 빵으로 아침을 해결한다”며 “종류가 다양하고 영양분이나 든든함에서 밥 못지 않기 때문에 식사대용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테이크어반 채수정 주임은 “평일에는 직장인 중심으로 100여명 정도가 들르는데 주말에는 손님 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난다”며 “아침 빵 뷔페가 전체 매출의 20% 정도 차지한다”고 말했다.이처럼 빵으로 끼니를 채우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출출할 때 먹는 간식으로 여겨지던 빵이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식사빵’으로 변하고 있다. 식사빵의 인기는 달라진 식 문화의 한 단면이다. 요즘 인기 있는 빵집의 주력 제품은 담백한 기본 빵과 몸에 좋은 발효 빵이 많다. 서울 홍대입구 근처에 있는 ‘폴앤폴리나’의 블랙 올리브빵과 허브빵, ‘퍼블리크’의 타르트, 이태원의 ‘베이커스 테이블’의 뮈슬리빵(견과류와 오트밀 등 곡물로 만든 독일식 빵) 등이 대표적인 예다.이런 흐름은 프랜차이즈형 제과점과 백화점 베이커리 등이 이끌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지난해 969명의 소비자를 조사한 결과‘밀 본연의 자연스럽고 쫄깃한 맛’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답을 얻었다. 그래서 내놓은 상품이 ‘먹으면 먹을수록 순수秀담백’ 식빵이다. 신세계백화점 베이커리의 ‘달로와요’도 올 들어 건강빵 종류를 30% 정도 늘렸다. 설탕이나 기름기 없이 주(酒)종, 건포도종, 호밀종 등으로 숙성시킨 발효빵과 견과류가 들어간 잡곡빵들이다. 매출은 약 30% 늘어났다. 달로와요 관계자는 “빵 한 덩이에 7000~8000원이면 비싼 편이지만 가격에 대한 저항은 예전보다 덜 하다”고 말했다.빵의 위상 변화는 통계에서 엿볼 수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1명은 33.4㎏의 밀과 71.2㎏의 쌀을 소비했다. 쌀 소비량이 밀보다 두 배 이상 많지만 쌀의 소비량은 통계를 작성한 1971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반면 통계청에 따르면 빵과 케이크의 출하량(수퍼·편의점에서 파는 양산빵(봉지빵) 기준)은 2006년 27만5480t에서 2010년 37만4000t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매출액도 1조9700억원에서 3조5000억원으로 78% 증가했다.빵류 매출 4년 새 78% 늘어개인·프랜차이즈 빵 시장의 규모는 현재 2조5000억원으로 매년 3000억원씩 늘어나고 있다. 국내 빵 시장 규모는 6조원에 이르는 것이다. 대한제과협회에 따르면 전국 제과점 수는 2009년 9724개에서 2011년 1만474개로 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문을 닫은 제과점이 늘면서 2008년(1만1725개)보다 줄었지만 2009년 다시 늘기 시작했다. 대한제과협회 관계자는 “제과업종은 수요층이 넓고 이용빈도가 높아 창업자들이 많이 몰렸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을 수 있는 하나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빵은 포르투갈어인 ‘팡’이 일본에서 변형돼 우리나라에 소개된 말이다. 일반적으로 밀과 호밀 같은 곡분에 물과 이스트, 다양한 재료를 넣어 발효시켜 구운 음식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빵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구한말인 1885년 선교사인 언더우드나 아펜젤러가 빵을 구운 것을 한국 최초의 빵으로 보고 있다. 이후 1902년 서양식 호텔 ‘정동구락부’에서는 ‘면포(麵包)’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빵이 팔렸다.특히 카스텔라는 ‘눈처럼 희다’는 뜻에서 ‘설고’라 불리며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서는 1945년 ‘상미당(SPC그룹의 전신)’을 필두로 고려당과 뉴욕제과·태극당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빵집의 형태도 변화를 거듭했다. 창문을 통해 내부가 보이는 ‘윈도 베이커리(개인 빵집)’와 ‘프랜차이즈형 제과점’, ‘카페형 제과점’이다. 고려당, 뉴욕제과 등 개인 빵집이 체인점을 내고 파리바게뜨나 크라운베이커리 등 기업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등장하면서 제빵시장은 활성화됐다.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퍼진 커피·브런치(brunch)·디저트 문화로 카페와 베이커리가 합쳐진 카페형 제과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건강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유기농과 웰빙·친환경 원료를 사용하며 빵도 생겨났다. ‘식빵은 A집이, 호밀빵은 B집이 잘한다’고 소문이 날 정도다. 빵이 식탁 위에 오르는 빈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하는 서유진(37)씨는 요즘 평소보다 한 시간 가량 늦잠을 잘 수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