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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대신 빵으로 맛·건강 챙긴다 

성인 10중 2.8명 식사 대용으로 빵 즐겨…빵류 매출 늘고 종류도 다양해져 

김성희 기자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제빵업계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2.8명이 식사 대용으로 빵을 즐기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빵 시장 규모는 6조원대로 커졌다. 웰빙·친환경 바람에다 유학파 제빵사가 늘면서 빵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국내 빵업체는 동남아부터 미국까지 해외로 적극 진출하고 있다. 입맛과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커지고 있는 빵시장과 빵창업 현황을 살펴봤다.



10월 9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테이크어반 베이커리. 오전 8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계산대 앞에는 여러 명의 손님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50개가 넘는 테이블에는 절반 이상 손님들로 차 있다. 매장 가운데 선반에선 직원이 빵을 잘라 내놓자마자 손님들이 접시에 빵을 담아갔다. 5000원선의 음료를 주문하고 1000원만 더 내면 곡물빵과 바게뜨빵 등 10여개 종류의 빵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빵 뷔페다. 아침을 거르는 직장인을 위해 오전 8시부터 9시 30분까지 운영한다.

직장인 강신환(29)씨는 “일주일에 두어 번 이용한다”며 “수원에서 출근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회사 근처에 와서 아침을 해결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20~30대의 젊은층뿐만 아니라 40대 직장인도 꽤 많이 찾는다. 40대 중반인 김성환씨는 “일주일에 절반은 밥 대신 빵으로 아침을 해결한다”며 “종류가 다양하고 영양분이나 든든함에서 밥 못지 않기 때문에 식사대용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테이크어반 채수정 주임은 “평일에는 직장인 중심으로 100여명 정도가 들르는데 주말에는 손님 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난다”며 “아침 빵 뷔페가 전체 매출의 20% 정도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빵으로 끼니를 채우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출출할 때 먹는 간식으로 여겨지던 빵이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식사빵’으로 변하고 있다. 식사빵의 인기는 달라진 식 문화의 한 단면이다. 요즘 인기 있는 빵집의 주력 제품은 담백한 기본 빵과 몸에 좋은 발효 빵이 많다. 서울 홍대입구 근처에 있는 ‘폴앤폴리나’의 블랙 올리브빵과 허브빵, ‘퍼블리크’의 타르트, 이태원의 ‘베이커스 테이블’의 뮈슬리빵(견과류와 오트밀 등 곡물로 만든 독일식 빵)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흐름은 프랜차이즈형 제과점과 백화점 베이커리 등이 이끌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지난해 969명의 소비자를 조사한 결과‘밀 본연의 자연스럽고 쫄깃한 맛’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답을 얻었다. 그래서 내놓은 상품이 ‘먹으면 먹을수록 순수秀담백’ 식빵이다. 신세계백화점 베이커리의 ‘달로와요’도 올 들어 건강빵 종류를 30% 정도 늘렸다. 설탕이나 기름기 없이 주(酒)종, 건포도종, 호밀종 등으로 숙성시킨 발효빵과 견과류가 들어간 잡곡빵들이다. 매출은 약 30% 늘어났다. 달로와요 관계자는 “빵 한 덩이에 7000~8000원이면 비싼 편이지만 가격에 대한 저항은 예전보다 덜 하다”고 말했다.

빵의 위상 변화는 통계에서 엿볼 수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1명은 33.4㎏의 밀과 71.2㎏의 쌀을 소비했다. 쌀 소비량이 밀보다 두 배 이상 많지만 쌀의 소비량은 통계를 작성한 1971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반면 통계청에 따르면 빵과 케이크의 출하량(수퍼·편의점에서 파는 양산빵(봉지빵) 기준)은 2006년 27만5480t에서 2010년 37만4000t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매출액도 1조9700억원에서 3조5000억원으로 78% 증가했다.

빵류 매출 4년 새 78% 늘어

개인·프랜차이즈 빵 시장의 규모는 현재 2조5000억원으로 매년 3000억원씩 늘어나고 있다. 국내 빵 시장 규모는 6조원에 이르는 것이다. 대한제과협회에 따르면 전국 제과점 수는 2009년 9724개에서 2011년 1만474개로 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문을 닫은 제과점이 늘면서 2008년(1만1725개)보다 줄었지만 2009년 다시 늘기 시작했다. 대한제과협회 관계자는 “제과업종은 수요층이 넓고 이용빈도가 높아 창업자들이 많이 몰렸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을 수 있는 하나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빵은 포르투갈어인 ‘팡’이 일본에서 변형돼 우리나라에 소개된 말이다. 일반적으로 밀과 호밀 같은 곡분에 물과 이스트, 다양한 재료를 넣어 발효시켜 구운 음식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빵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구한말인 1885년 선교사인 언더우드나 아펜젤러가 빵을 구운 것을 한국 최초의 빵으로 보고 있다. 이후 1902년 서양식 호텔 ‘정동구락부’에서는 ‘면포(麵包)’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빵이 팔렸다.

특히 카스텔라는 ‘눈처럼 희다’는 뜻에서 ‘설고’라 불리며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서는 1945년 ‘상미당(SPC그룹의 전신)’을 필두로 고려당과 뉴욕제과·태극당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빵집의 형태도 변화를 거듭했다. 창문을 통해 내부가 보이는 ‘윈도 베이커리(개인 빵집)’와 ‘프랜차이즈형 제과점’, ‘카페형 제과점’이다. 고려당, 뉴욕제과 등 개인 빵집이 체인점을 내고 파리바게뜨나 크라운베이커리 등 기업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등장하면서 제빵시장은 활성화됐다.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퍼진 커피·브런치(brunch)·디저트 문화로 카페와 베이커리가 합쳐진 카페형 제과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건강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유기농과 웰빙·친환경 원료를 사용하며 빵도 생겨났다. ‘식빵은 A집이, 호밀빵은 B집이 잘한다’고 소문이 날 정도다. 빵이 식탁 위에 오르는 빈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하는 서유진(37)씨는 요즘 평소보다 한 시간 가량 늦잠을 잘 수있게 됐다.


아침을 밥 대신 빵으로 해결하면서다 서씨는 그동안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자녀와 남편에게 아침밥을 지어주기 위해 새벽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다. 밥솥에 밥을 앉히고 찌개를 끊이고 간단한 밑반찬까지 차리려면 적어도 1시간 남짓 시간이 걸려서다. 이씨는 “밥상을 차리고 아이들과 남편을 깨워 출근시키려면 2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말했다.

제빵 사내대학도 생겨

그러나 이씨는 최근 친구들 모임에 나갔다가 아침밥 대신 빵을 먹는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었다. 가족이 먹는 아침상에 밥 대신 빵을 식탁에 올린다는 게 낯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가 자주 간다는 빵집을 소개 받았다. 서울 홍대 근처에 있는 폴앤폴리나다. 서씨는 이곳의 빵을 먹은 후 이 집 매니어가 됐다. 서씨는 “그동안 빵이라고 하면 건강을 해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가보니 맛과 영양을 모두 갖춘 빵이 많았다”고 말했다.

서씨는 일주일에 두 번 이곳을 들려 부드럽고 담백한 화이트 치아바타와 설탕과 버터 대신 올리브오일을 듬뿍 넣은 허브빵을 산다. 쟁반에 4~5개 담고 여기에 바게뜨 등 빵 한두 개를 더 얹으면 가격은 금새 2만원을 넘는다. 서씨는 “가격이 싼 편은 아니지만 요새 식재료 물가가 올라 시장에 가도 기본이 2만원”이라며 “오히려 밥 대신 빵 먹는 게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씨처럼 밥 대신 빵을 주식으로 삼는 성인도 늘고 있다.

파리바게뜨가 5월 457명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0명 중 2.8명이 빵을 식사 대용으로 삼는 것으로 조사됐다. 파리바게뜨 관계자는 “20~30대가 식사 대용으로 하는 비중이 65% 가까이 차지했지만 40대도 26%가 빵을 주식으로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빵이 인기를 끌면서 빵을 만드는 직업을 택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취업포털 사이트 알바천국이 7월 전국 13~18세 청소년 남녀 1027명을 대상으로 장래희망 직업을 조사한 결과 서비스 직종 중 장래희망으로 제빵사·요리사가 1위(21.5%)를 차지했다.

알바천국 관계자는 “빵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하나의 전문 직종으로 제빵사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1993년 국내 처음으로 개설된 한국예술전문학교 호텔제과제빵학과의 경쟁률도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년의 교육과정으로 정원 100명 모집에 매년 300여명의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이곳에서 제빵기능사나 베이킹마스터 등 자격증을 취득해 졸업 후 제빵업계에서 일할 수 있다.

기업도 인재양성을 위해 나서고 있다. 식품전문기업인 SPC그룹은 2010년 8월 국내 최초로 SPC식품과학대학을 설립했다. 식품 부문 첫 사내대학이다. 제빵 전문으로 베이커리(제과·제빵)학과를 운영한다. 2011년 1기 과정에 25명이 입학한 데 이어 올해도 24명이 새로 입학했다. 2년제 전문학사학위로 2년 6학기제다. 2010년 특성화고인 신정여자상업고와 인재육성 산학협약을 맺고 1년 반 동안 이 학교 3학년생 15명에게 제과·제빵 교육을 했다. 이들은 모두 파리크라상, 파리바게뜨 등 그룹 내 계열사에 취업했다. 이 가운데 우수학생 2명을 사내대학에 입학시켜 교육 중이다.

1159호 (201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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