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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관치 금융에 론스타만 미소 

론스타 10년, 끝나지 않은 진실 공방 

외환은행 매각 무효 논란 재점화 … 론스타-정부 ISD 장기 소송전 돌입



2003년 8월 27일 미국계 투자회사 론스타는 한국외환은행의 주인이 됐다.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론스타는 거액의 차익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하지만 론스타 진실 공방은 끝나지 않았다. ‘먹튀 자본’이라는 비난에도 론스타는 한국 정부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다. 시민단체와 일부 학자는 외환은행 매각 자체가 불법이고 무효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법정 싸움도 진행 중이다. 강산이 한 번 변하도록 지리하게 이어지는 론스타 사건을 재조명했다.

2003년 초 ‘매각을 추진 중인 외환은행이 론스타와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관가와 금융가에 퍼졌다. 그 해 4월 초 당시 이강원 외환은행장은 “5000억원 규모의 외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지만 지분을 론스타에 매각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진화에 나섰다. 같은 날 론스타도 지분 매입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한 달 후, 론스타가 외환은행 실사 작업에 착수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비슷한 시기에 이강원 행장이 권오규 청와대 경제수석을 면담한 직후 스티븐 리 론스타코리아 대표를 만난 것, 론스타가 2002년 10월에 이미 경영권 인수를 전제로 한 투자의향서를 외환은행에 제출했다는 사실은 몇 년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비밀리에 진행된 외환은행 매각 계획은 2003년 7월 15일 청와대·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외환은행 관계자 10명이 조선호텔에서 회동한 후 급물살을 탔다. 비밀 회동 일주일 후 김진표 당시 경제부총리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론스타에 외환은행 매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해 8월 27일 이강원 행장과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은 서울 롯데호텔에서 주식 매각 본계약서에 서명한다. 남은 것은 한국 정부의 승인 절차. 9월 초 론스타의 법률 대리인인 김앤장은 외환은행 주식 51% 취득 승인 신청서를 금융감독위에 제출했다.

이튿날 재경부는 승인을 적극 검토해달라는 공문을 금감위에 보낸다. 결국 9월 26일 승인이 떨어졌고, 10월 30일 론스타는 인수 대금 1조3833억원을 납입했다.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한 론스타의 시나리오 작전명 ‘프로젝트 나이트(Project Knight)’가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다급한 정부 졸속 매각 의혹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시 관료들은 여러 면에서 무리수를 뒀다. ‘외환은행을 사줄 곳은 론스타뿐이고 매각하지 못하면 부도가 난다’는 초조함이 앞섰다. 법과 원칙을 우회해 편법이 동원됐다. 훗날, 매각에 관여한 관료들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토로했다. 검찰과 법원은 그들에겐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후유증은 컸다.

첫 단추를 잘못 꿴 탓에 외환은행 인수·매각 의혹은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었다. 고소·고발이 잇따랐다. 론스타는 산업자본이기 때문에 ‘금산 분리’ 원칙에 따라 대주주 자격이 없다고 일부 시민단체와 학자들은 주장했다. 헐값 매각 논란과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도 불거졌다. 2004년 말부터 2년 동안 700명 가까운 관련자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전·현직 경제부총리와 장관급 인사는 물론,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된 내·외국인이 망라됐다. 검찰이 100여 곳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만 약 1000박스 분량이었다고 한다.

2006년 1월 초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국내외 은행이 론스타와 접촉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론스타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2011년 말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직후 금융위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초과 지분을 매각하라고 명령한다.

하루라도 빨리 매각 승인을 내달라고 우리 정부를 닦달한 론스타는 속으로 웃었을지 모른다. 지난해 1월 27일 금융위는 ‘론스타는 산업자본이 아니다’라는 최종 결론을 발표하고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했다. 론스타는 그 해 2월 9일 배당 이익과 지분 매각 차익 4조6635억원을 챙겨 떠났다. 론스타 사건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그 후 ‘먹튀 논란’이 재점화됐다. 참여연대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론스타가 부당이익 3조원을 반환해야 한다는 주주대표 소송도 제기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역시 ‘론스타를 산업자본이 아닌 금융자본으로 본 금융위판단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론스타는 반격했다. 지난해 11월 22일 론스타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 2조원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앞서 대법원은 9월 1일 “금융 당국은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꺼진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론스타가 금융자본인가’라는 논란이 다시 뜨거워졌다. 공개된 자료를 통해 금융위가 10년 전 론스타의 인수 자격을 사실상 심사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2003년 9월 삼정회계법인이 ‘론스타는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작성해 금융위에 제출한 적격 확인서 역시 금융 당국의 외압에 의해 급조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금감원 내부 문건을 통해 론스타 투자금 중 일부가 ‘검은 머리 외국인 자금’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입 자금을 납입하기 하루 전인 2003년 10월 29일에 투자자를 바꿔치기한 금감원 문건도 공개됐다. 투자자 변경은 금융위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론스타가 제출한 투자자 변경 문건은 금융위에 보고조차 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올 2월에는 박원석 정의당 의원과 참여연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론스타가 대주주로 외환은행을 지배하는 기간 내내 산업자본이었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론스타는 2002년 일본의 아수엔터프라이즈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2011년 말 기준으로 자산이 1조6000억원 정도 되는 문화재 전문 관리회사였다. 시민단체는 이를 근거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이미 산업자본이었다고 거듭 주장했다. 국내 은행법은 비금융 부분의 자본 비중이 25% 이상이거나, 자산 합계가 2조원 이상이면 법률상 은행을 소유할 수 없는 산업자본으로 본다.

올 7월 말에는 우리 정부가 론스타의 인수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정황이 담긴 문건이 세상에 나왔다. 2003년 7월 23일 추경호 재경부 은행제도과장(현 기재부 1차관)이 당시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에게 보고한 ‘론스타의 한도초과보유 승인 관련 금감위 간담회 계획’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보고서에는 ‘은행법상 은행의 인수자가 산업자본인 경우에는 예외 승인도 불가능하다’고 돼 있다.

하지만 2003년 9월 금융위는 외환은행 매각 심사 당시 론스타는 금융자본이고 외환은행은 잠재적 부실 은행에 해당되므로 산업자본이 최대로 보유할 수 있는 지분 10% 대신 51%를 예외적으로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2003년 10월 말, 외환은행 인수 하루 전 새롭게 투자자로 참여한 ‘KEB Investor Ⅱ’의 실질 소유주가 미국 스탠퍼드대라는 문건도 함께 공개됐다. 박원석 의원은 “지난 10여년 간 산업자본이었던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소유할 자격은 물론 ISD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론스타=산업자본’ 확인서 급조 의혹도

지난달 말에는 외환은행이 대출금리를 조작해 수백억원의 부당 이득을 얻었다는 검찰 발표도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무단으로 대출금리를 조작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303억원의 이자를 추가로 받은 혐의로 외환은행 임직원 7명을 7월 26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외환은행이 론스타 등 주주들에게 배당을 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기 위해 금리조작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인수 이후 1조7000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현재 론스타 사건 관련 위헌 소송과 외환은행 주주대표 소송, 외환은행 주주총회 무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정부와 론스타 간 ISD 중재 재판은 내년 말에 첫 재판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3~4년 이상 걸리는 장기전이 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론스타는 금융자본’이라는 기존 금융·사법당국의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민단체나 일부 정치권에서는 특검이나 국정조사, 감사원 재감사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진실은 밝혀질까. 10년을 끈 론스타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1201호 (201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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