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투기자본에 은행 허투루 넘긴 ‘원죄’ 

론스타 사태가 남긴 숙제 

매각 과정에서 법과 원칙 소홀 … 금융 당국 관리·감독 체계 강화해야



검사: 여태까지 쟁점이 되지 않은 부분인데, 사실은 금융주력자인지(금융자본)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는 당해 자본이 국내외에서 비금융 부문에 25% 이상 투자해서는 안 되며, 또한 비금융 부분 자산 합계가 2조원이 넘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금융위원회 S사무관: 예.

검사: 론스타가 이에 해당하는지 면밀하게 검토한 사실이 있는가요?

S사무관: 그때 승인 안건은 금감원에서 작성했고, 금감원 실무자를 통해 그런 서류들을 김앤장을 통해 받고 있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검사: 그런데, 2003년 7월 25일에는 금융감독위원회 비상임위원 비공식 간담회를 열어서 (론스타에 예외 승인을 해줄 것이라는) 구두 확약을 주었는데, 그 구두 확약을 주기까지 사이에 금융주력자인지 여부에 대한 검토가 없었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S사무관: 예, 맞습니다. 내부적으로 크게 검토는 없었습니다.

2006년 검찰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을 수사할 때 작성된 공판조서 내용이다. S사무관은 론스타 매각을 담당한 금융위 실무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당시 금융 당국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론스타 사건의 핵심은 ‘먹튀 논란’이 아니다. 론스타는 사모펀드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수익을 남기는 게 목적인 투기 자본이다. 1999년 제일은행을 5000억원에 인수해 5년 뒤 1조6000억원을 받고 판 뉴브리지캐피털, 2000년 한미은행 지분을 사서 4년 뒤 7000억원 차익을 남기고 판 칼라일이 모두 사모펀드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지분을 인수해 9년 뒤 5조원 가량의 차익(배당금 포함)을 남기고 떠났다. 단기 차익이 목적인 사모펀드에 ‘먹튀’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대응일수 있다.

그보다는 사모펀드에 시중은행을 파는 게 합당했나, 적절한 법과 원칙을 따랐나, 불가피했다면 매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나, 그 과정에서 금융 당국의 오판과 직무 유기는 없었나, 론스타 사태로 불거진 한국 금융제도의 허점은 보완했나, 재발 방지책은 세웠나 등을 명확히 따지는 게 론스타가 남긴 숙제다. 그래야 제2, 제3의 론스타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산업자본의 정의 …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론스타 진실 공방의 핵심은 ‘론스타가 산업자본인가, 금융자본인가’다. 10년을 끈 논란이다. 이미 금융·사법당국이 금융자본이라고 판단했지만, 일부 시민단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론스타는 처음부터 산업자본이었고 정부가 이를 알면서도 인수 승인을 해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은행법은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이 금융회사의 의결권이 있는 지분 4% 이상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만약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면 외환은행 인수 자체가 불법이고 무효가 된다. 그런데, 2003년 당시 금융 당국은 이 중차대한 문제를 ‘내부적으로 크게 검토하지 않았다’고 실무자가 실토한 것이다.

당시 금융 당국은 론스타의 인수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3년 7월 초 작성된 외환은행 내부 문건에 따르면 당시 이달영 외환은행 부행장은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통화하면서 “(론스타의) 인수 자격 문제를 딜 협상에 레버리지로 사용해도 좋은가”라고 묻는다. 변 전 국장은 “좋다”고 답한다. 론스타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인수 자격 문제를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금융위는 론스타가 산업자본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인수 승인을 내렸다. 심지어 은행법 8조 2항의 예외승인 조항을 들어 론스타가 취득할 수 있는 법적 지분 한도를 초과해 인수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은행법 8조 2항은 내용은 이렇다.

‘금융감독위원회는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제5조(한도 초과 보유 주주의 초과 보유 요건)의 요건을 갖추지 아니한 경우에도 그 승인을 할 수 있다.’ 론스타는 사모펀드여서 은행 지분 10% 이상을 소유할 수 없었지만, 정부가 외환은행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판단하면서 인수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 2007년 3월 초 감사원은 ‘론스타에 주식 한도초과 보유를 승인한 처분은 론스타 측의 로비 등 부정한 청탁에 따라, 부실 규모를 과장해 왜곡 산출된 자기자본비율(BIS) 전망치를 근거로 위법부당하게 이뤄진 하자 있는 처분’이라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금융위와 금감원은 반박 보도자료를 통해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했다. ‘당시 불확실한 경제 상황과 외환은행 경영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외 승인이라는 차선의 대안을 선택한 것은 하자 있는 결정이 아니다. 론스타의 한도 초과 보유를 승인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당시 정부 입장에서 외환은행 매각은 다급한 사안이었다. “외환은행이 제때 매각되지 않았으면 부도를 막을 수 없었다(김진표 전 부총리)” “만일 그때 자본 유치가 안 됐다면 외환카드가 부도나고 그것 때문에 외환은행도 어려워지면서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올 수 있었다(변양호 전 국장)” 등의 위기 의식이 팽배했다. 법원은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한 관료들에게 대부분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후 ‘변양호 신드롬’이란 말이 유행했다.

공무원이 사후에 책임질 것이 두려워 중요한 정책 결정을 꺼리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단기 수익이 목적인 사모펀드에 시중은행을 팔면서 적법한 절차를 생략한 채 밀실 행정을 통해 졸속 매각한 것에 대한 면죄부를 주기는 어렵다. 『론스타, 그 불편한 진실』을 쓴 유효상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업자본 논란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에 산업자본의 정의를 정확하게 내리지 않은 것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웠다는 얘기다.




론스타 대주주 적격성 심사 안 해

금융 당국의 직무 유기가 얼마나 큰 국가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지도 론스타 사태가 남긴 교훈이다.

지난해 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이후 금감원은 6개월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해야 함에도 2011년 3월까지 단 한 차례도 적격성 심사를 하지 않았다”며 감사원에 감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1월 27일 금융위는 론스타가 산업자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절차상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시인했다. 당신 금융위는 ‘론스타의 일본 내 계열사인 PGM이 한 때 일본에 2조8000억원짜리 골프장이 있었기 때문에 해당 골프장을 보유한 기간에는 론스타를 산업자본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1년 말 론스타가 골프장을 매각했기 때문에 지금은 산업자본이 아니다는 애매한 논리로 논란을 키웠다.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법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론스타는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로 판단했지만 2011년 12월 31일부터는 산업자본이라고 하기에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결했다. 금융당국이 관리·감독 의무를 다했다면 소모적 논란은 좀 더 일찍 끝났을지 모른다. 키코(KIKO) 사태, 저축은행 비리 사건 역시 금융 당국의 직무유기가 낳은 결과였다.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금융 수장의 적절치 않은 처신도 드러났다. 2011년 9월 폭로 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 전문 중에는 미국 대사관이 작성한 ‘론스타, 은행 민영화, 금융규제 완화에 대한 금융위원장의 견해’라는 전문이 있다. 2008년 7월 24일 전광우 당시 금융위원장이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기밀) “이것은 당신의 방문에 대한 선물”이라면서 전 위원장은 HSBC은행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 여부를 처리하는 심사를 주중에 발표하기 희망한다고 대사에게 말했다. 전 위원장은 한국 정부는 금융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7월 31일 이전에 시작하기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자격 심사에 관해 한국 정부 내에 다른 의견들이 있지만 “나는 이것을 밀어붙일 것이다.

이 나라 경제와 금융부문을 위한 올바른 처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의장은 결정이 아직 발표되지 않은 점을 고려해 대사에게 자신의 발언을 발설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대사는 이 사건의 민감성을 이해한다며 한국 정부가 언론이 휴간을 하는 추석 명절 연휴 저녁에 최종 결정을 발표해 줄 것을 제안했다. 전 위원장은 가능한 빨리 론스타 사건이 해결되길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우리금융 인수전에도 사모펀드 참여?

실제로 금융위는 전광우-버시바우 대사 면담 다음날 론스타와 HSBC 간에 2007년 9월 체결된 인수 계약에 대한 심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금융수장이 발표에 앞서 미국에 먼저 정보를 준 것이다. 전 전 위원장은 그 해 6월 말, 한 포럼에 참석해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에 대해 감독 당국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기 힘들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이 외교 전문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전 위원장은 외환은행에 맞선 일부 대중의 저항이 다른 한국 은행들에 의해서 진두 지휘되고 있다. 이들 은행은 HSBC의 인수 시도가 좌절되기 바라고 있는데, 결국 대신 그들이 외한은행을 사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냉소적인 발언을 했다.’ 외은에 눈독을 들이는 국내 은행이 HSBC를 방해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 해 9월 19일 HSBC는 외환은행 인수 계약을 돌연 철회했고,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2조원대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제기한 빌미가 된다.

론스타가 그 해 7월 초 전 전 위원장에게 외환은행 지분 매각 승인 심사를 촉구하는 서신을 보낸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론스타는 2009년 2월과 지난해 1월에도 금융위에 서신을 보내 ‘한국 정부는 지분 매각 승인 지연 등 론스타에 대한 차별적인 조치를 지속해 한·벨기에 투자보호 협정을 위반했다”고 통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대외에 알리지 않았다.

단기 차익이 목적인 사모펀드에 국부 성격이 있는 은행을 파는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여실히 드러났다. 금융 선진국에서도 상업은행을 사모펀드에 매각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윤영로 외환은행장은 지난해 말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는 외국계 사모펀드에 은행을 팔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론스타가 대주주로 있는 동안 영업점·자산을 늘리지 않은데다 사람을 키우는 데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외환은행은 2003년부터 8년간 충성고객 100만명이 이탈했다. 고액 배당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외환은행 임직원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소연하는 이유다.

6월 말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우리금융지주 매각 계획을 발표하면서 “법과 규정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7월 4일에는 외국계 금융사와 가진 간담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금융 민영화에 외국계 금융회사를 포함한 모든 투자자에 동등한 참여 기회를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지부진한 우리금융 매각 속도를 높이기 위해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가 끼어 들 문을 열어준 것이다. 정부는 론스타의 교훈을 잊은 듯하다.

1201호 (201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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