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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떠났던 언니가 돌아온다 

늘어나는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 

CJ·신세계 등 ‘시간제 일자리’ 늘려 … 이전 직장과의 업무 연계성이 재취업 열쇠

▎8월 CJ그룹 본사에서 열린 ‘CJ리턴십 프로그램’ 1기 합격자 오리엔테이션 모습. 150여명의 합격자들은 6주 간의 인턴 과정을 거쳐 10월 최종 선발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34일간의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문제부터 챙겼다. 그는 10월 8일 미래전략실 고위 간부들을 소집한 회의에서 시간제 일자리 시행 방안 마련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뿐만 아니다. 시간제 일자리가 재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현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 재계에 권고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목표로 잡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선 경력단절 여성을 다시 일터로 부르는 게 필수적이다. 이미 CJ·SK텔레콤·신세계 등은 올 하반기 들어 ‘리턴(Return)십’이라는 명목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일부 시행하고 있다. 결혼·육아 등으로 불가피하게 직장을 떠난 능력있는 ‘언니’들이 과연 양질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일터로 향하는 오영아(39)씨의 발걸음이 가볍다. 오씨는 8월 말부터 일을 시작한 새내기 직장인이다. 그의 일자리는 서울 여의도동 CGV 여의도점이다. 이곳에서 오씨는 단체 대관 업무를 맡았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4시간 일한다. 그는 “출근 시간이 늦어 아이들 등교를 도와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오영아씨는 결혼 전 공연기획자로 일했다. 하지만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사표를 냈다. 달리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그 후 12년 간 오씨는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삶을 살았다. 두 자녀가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여유를 찾았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경력단절 기간을 인정해주는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오씨는 우연히 ‘CJ리턴십 프로그램’을 접했다. CJ그룹이 경력단절 여성들의 직장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맞춤형 인턴 제도다. 오씨는 공연기획자로서의 경험을 살려 CJ그룹 계열사인 CGV에 지원했다. 그는 6주 간의 인턴 과정을 마치고 10월에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처음에는 가족들도 시큰둥한 반응이었어요. 집에만 있던 엄마가 이제 와서 갑자기 일을 하겠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일하면서 활력도 찾고, 집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니 아이들도 응원해주더라고요. 어렵게 잡은 기회인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CJ그룹은 6월 국내 대기업 최초로 출산이나 육아 문제로 직장을 떠난 여성 인력을 상대로 재취업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근무형태는 하루 4시간제와 전일제로 나뉜다. 면담을 통해 원하는 근무 시간대 조정도 가능하게 했다. 만약 시간 제한을 어기고, 초과근무를 시킨 상사는 경고 조치를 내려 5회 이상 경고가 쌓이면 연말평가 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리턴십 케어 시스템’도 도입했다.

오영아씨는 “다른 직원들이 일하는 시간에 퇴근을 하려니 좀 어색하고, 미안했다”며 “상사가 먼저 나서서 근무 시간을 지켜준 덕분에 가사일과 병행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으로 시행한 CJ리턴십 프로그램 1기 인턴에 선발된 인원은 총 157명. CJ그룹 관계자는 “32개 직무 150여명 인턴 모집에 총 2530여명이 지원해 평균 17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며 “여성 재취업에 대한 큰 관심을 실감했다”고 설명했다.

지원자는 대부분 30대(51%)와 40대(36.6%)로, 학력은 초대졸 이상이 86.5%였다. 이 가운데 석사 이상 비중도 9.5%(240명)에 달했다. CJ그룹 관계자는 “연 2회 리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여성 직무 개발과 창업·취업 컨설팅 등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며 “그룹 안팎으로 최대 5000개의 여성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150명 모집에 2500명 몰려

능력 있는 여성 인력의 재취업을 위해 기업이 적극 나서고 있다. 이는 정부가 6월에 발표한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일자리 로드맵’의 일환인 시간제 일자리 창출과 관련돼 있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 확충이 경력단절 여성을 고용시장에 끌어들일 방안으로 보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2분기에 실시한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조사자료를 보면, 15~54살의 기혼 여성 974만7000명 가운데 20.3%(197만8000명)가 결혼·임신·출산 등으로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집계됐다.


이정연 여성가족부 사무관은 “육아 부담 탓에 전일제보다는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력단절 여성과, 정부정책에 호응하려는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최근 시간제 일자리 채용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CJ그룹을 비롯해 여성이 많은 직종인 유통·서비스업계를 시작으로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여성 직원 수가 많은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를 시작으로 여성 인력 활용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스타벅스는 8월에 출산·육아를 이유로 퇴사한 전직 점장·부점장 출신을 대상으로 시간제 일자리 채용을 실시했다. 그 결과 18명의 직원이 10월 1일, ‘리턴맘 바리스타’로 채용됐다. 이날 입사식에 참석한 1기 리턴맘은 서류접수부터, 온라인 인적성 검사와 채용 면접의 과정을 거쳐 최종 선발됐다. 이들은 하루 4시간, 주 5일 근무를 하는 정규직 시간제 매장관리자로 일하게 된다.

기본 급여 외에 상여금·성과급·의료비·학자금 지원 등 정규직과 동일한 복리 후생 혜택을 적용 받는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이번에 입사한 직원들은 2주간의 교육 과정 후 하루 4시간씩 본인이 희망한 인근 매장에서 근무한다”며 “본인이 원할 경우, 내부 절차를 통해 하루 8시간, 일반 근무 시간으로의 전환 기회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02년 퇴사 후 이번에 복귀하게 된 원정은(35)씨는 10월부터 서울 종로 광교점에서 일한다. 세 자녀를 둔 그는 둘째를 낳고서도 바리스타로 활약한 ‘열혈 직원’이었다. “셋째 아이를 출산한 후 더 이상 직장을 다니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10년 동안 일하며 쌓은 경력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컸죠. 오랜만에 직장에 돌아오니 기계도 바뀌고, 배울 것도 많지만 앞으로 들어올 리턴맘에게 모범이 되고 싶어요.”

이석구 스타벅스 대표는 “스타벅스 리턴맘 재고용 프로그램은 정부가 지향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며 “매년 지속적인 시간제 일자리 채용을 통해 출산이나 육아 문제로 퇴사한 여성들의 채용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기업은행이 포문을 열었다. 이 은행이 9월 선발한 109명의 행원은 금융권 최초의 시간제 근로자이다. 이들 역시 명예퇴직이나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경우이다. 이들은 하루 4시간 근무하는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정년이 보장되고, 보수와 복지 등 근로 조건도 하루 8시간 근무하는 일반직 근로자와 동일하다. 일하는 시간대를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어 채용 때 경쟁률이 20대 1을 웃돌았다.

합격자들의 출신도 다양하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전직 행원 출신이다. 서울·조흥은행 등 2000년대 초반 사라진 시중은행 출신도 40%를 차지한다. 평균 근무기간도 10년을 웃도는 베테랑들이다. 합격자 가운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자발적으로 명예퇴직을 한 이들도 있다.

한 합격자는 “당시 인수합병(M&A)으로 인한 노사 갈등이나 합병 은행 내 출신에 따른 대립 등으로 금융권에 회의를 느끼고 떠난 이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력에 따라 창구 텔러, 사무 지원, 전화상담원 등에 배치됐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이번 시간제 근로자 채용은 고객에게는 대기시간을 줄여 만족도를 높이고 채용인력에게는 은행 경력을 되살려 일과 가정을 병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정체된 여성 고용률 향상을 위해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출산·육아 등을 이유로 퇴사한 직원 18명을 ‘리턴맘 바리스타’로 채용했다.



금융권에선 기업은행이 앞장 서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는 7월 여성가족부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민·관이 함께 경력단절 여성 350명을 뽑아 직업교육·훈련을 시켜 SK에 재취업시킨다는 목표이다. SK텔레콤은 상품·서비스 상담을 하는 자회사 서비스탑과 서비스에이스에서 일할 콜센터 직원 250명을 뽑는다. 기존에 일하던 직원 4000여명과 동일한 복리후생, 승진 기회 등을 제공받는 정규직이다. 이 역시 가사·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은 하루 4시간(주 20시간)으로 정했다.

SK브로드밴드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등의 신청 접수·개통·장애처리를 담당하는 협력업체인 행복센터 정규직 100명의 취업을 알선한다. 한국폴리텍대학에 무료 훈련과정을 개설해 우선 20여명을 취업시킨 뒤, 11월부터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경력단절 여성 취업지원서비스인 ‘새일센터’를 통해 80여명을 추가 모집할 예정이다.

SKT 관계자는 “기존 상담직원 4000여명 가운데 기혼 여성 비율이 30% 정도”라며 “결혼·출산·육아 경험을 가진 여성들이 상황 대처능력이 뛰어나고 감성이 풍부해 상담 업무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화 상담이 몰리는 점심시간 등에 직원을 추가 투입시켜 노동강도가 줄고 상담품질은 높아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단순 업무 많고 지속성도 의문

경력단절 여성을 채용하려는 기업의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지속적인 실효성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특히 여성 시간제 일자리 대부분이 여전히 마트 판매원, 전화 상담원 등 단순 업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또한 이전 경력과의 연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도 있는 문제점이 있다. 실제로 CJ그룹과 기업은행 합격자들은 “리턴십 채용 역시 경력직 채용이다보니 이전 직장과의 업무 연계성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의 리턴맘 프로그램 역시 퇴사한 자사 직원을 대상으로만 한 채용이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다른 기업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업무 특성상 시간제 일자리가 나올 수 있는 직무가 한정돼 있”며 “지속적인 채용 방식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종숙 여성정책연구원 여성일자리·인재센터장은 “일·가정 양립 정책이 사업장의 여건은 그대로인 채 기혼 여성의 가정부담을 완화하는 지원방식에 머물게 되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남성 중심적 기업문화를 바꾸고, 남성의 육아 참여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경력단절 여성 수를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1209호 (201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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