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일본에서는 약 126만명이 사망했다. 이미 2006년 사망자 수가 처음으로 출생자 수를 앞질렀다. 전형적인 인구감소 사회의 모습이다. 사망자 수는 2040년에 정점을 찍고 출생자수의 2.5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반세기 뒤인 2060년에는 인구의 40% 정도가 65세 이상이 될 전망이다. 이처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일본에서는 과거 비교적 언급을 꺼리던 ‘죽음’을 나와 가까운 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다가올 임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슈카츠(終活, 임종을 준비하는 활동)’ 비즈니스 붐이 일본에서 일고 있다. 슈카츠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뜻대로 살기 위해 생전에 장례나 묘 준비, 상속 등 사후 대책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슈카츠라는 제목이 붙은 세미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라이브 연주하는 음악장례 인기‘소규모 화장 장례 17만8000엔’. 인터넷 장례 중개업체인 유니퀘스트가 내건 장례 광고다. 보통 일본에서 장례비용이 100만엔 이상 드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광고문구는 충분히 시선을 끈다. 유니퀘스트는 2009년부터 추가 요금 없는 ‘작은 장례식’ 시리즈를 내놨다. 이 회사 고객의 절반가량이 선택하는 장례 방식은 ‘직장(直葬)’이다. 츠야(通夜,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밤을 지새는 장례풍습)를 포함한 추모식이나 고별식은 생략하고 화장만 한다.승려의 추모독경을 원하면(일본의 장례는 불교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옵션으로 5만5000엔이 추가된다. 다나카 토모야 유니퀘스트 사장은 장례업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꿨다. 유니퀘스트는 불필요한 부분을 철저히 생략했다. 장례식도 중소 장례업자에게 맡긴다.인건비 등을 제외한 고정비는 1건당 2만엔이 되지 않는다. 관의 도매가는 8000엔을 넘지 않는다. 운구 차량으로는 중대형 세단이 아닌 경차를 쓴다. 그동안 소비자가 장례 중개업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는 요금 비교와 시세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유니퀘스트의 저가 전략은 업계에 신규 수요를 창출했다. 덕분에 이 회사의 자산은 현재 50억엔으로 불었다.사업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유니퀘스트는 올 1월 대형 상조업체 알파클럽 무사시노에 인수됐다. 이로써 알파클럽 무사시노는 장례업 브랜드 ‘사가미 덴레이’과 더불어 인터넷 장례중개 업체 유니퀘스트를 동시에 거느리게 됐다. 자회사가 된 유니퀘스트는 2015년 7월까지 도쿄 증권거래소 마더스 상장을 노리고 있다. 전통의 오프라인 브랜드와 인터넷 브랜드의 의외의 조합에 업계는 잔뜩 긴장하며 이 회사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일본 대형 유통업체 이온그룹은 2009년 장례중개업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도 저가 전략을 내세웠다. 다소 부담스러운 장례비용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츠야나 고별식을 생략한 장례 진행 가격은 추가 요금 없이 19만8000엔이다. 히로하라 후미타카 이온라이프 사업부장은 “이온의 고객 구성이 점차 고령화하고 있어 노령 인구를 상대로 사업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본 장례지도사 아카데미 교무연구실의 후타무라 유스케는 “지금 소비자들의 관심은 싼 가격에 집중되고 있지만 장례는 가격 이외의 부가가치도 중요하다”며 “가격을 떠나 좋은 장례회사를 구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일본의 장례 스타일도 복잡한 형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최근 주목 받는 장례 형식은 CD나 DVD가 아닌 라이브 연주를 하는 ‘음악장(音樂葬)’이다. 바이올린 등 현악4중주 외에 하프·플룻·키보드로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곡을 전문가들이 연주한다. 연주되는 곡은 클래식에서 비틀즈 음악까지 다양하다. 장례식에서의 식사도 서서 먹는 서양식이 등장했다. 디저트 위주의 뷔페식이다.대형 장례회사처럼 정해진 요리업체와 제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취향에 맞출 수 있다. 장례식답지 않은 장례식을 추구하는 후발업체들이 등장하면서 가능해졌다. 한 후발업체 관계자는 “결혼식 같은 장례식을 원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소규모라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 중소 후발업체가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감동 장례’ ‘드라마틱 장례’도 등장했다. 음악장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주문형 장례다. 장례업체 어반푸네스(urban-funes) 코퍼레이션이 고안했다. 이 회사는 원래 하우스웨딩의 선구자다. 최근 ‘100이면 100, 각자의 장례식이 있다’를 외치며 새로이 장례사업에 뛰어들었다.어반푸네스의 특징은 업계 관습을 과감히 벗어 던지는 형식 파괴다. 전통 있는 음식점의 가이세키요리(일본 고급 연회요리)를 내놓는 호화로운 장례식을 실시하기도 하고, 사망한 오토바이 동호회 친구를 기리기 위해 화장터까지 오토바이로 영구차를 인도하기도 한다. 해외 유학 중인 자녀에게 무료인터넷 통신서비스 스카이프로 장례식에 참가하도록 한 사례도 있다.가입자와의 소송 패소로 상조업계 위기어반푸네스의 매출은 올 9월 기준 21억엔이다. 해외 진출도 노린다. 대만 등지에 진출해 5년 후 매출 100억엔을 올리는 게 목표다. 가토 츠토무 어반푸네스 사장은 “일본 사망자 수가 정점을 찍는 2040년이 앞으로 27년밖에 남지 않았다”며 “장례사업도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례사업의 새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는 신흥 세력의 움직임이 낡은 관습에 얽매인 장례업계를 바꿀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일본 장례업계는 주변 산업으로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형 화훼판매업체 히비야화단(日比谷花壇)이다. 이 회사는 소매점뿐 아니라 결혼식·장례식에 생화를 판다. 호텔 등에서 치러진 행사에서 화환을 본 사람들의 장례식 납품 요구를 받아들여 2004년 장례업계에 진출했다. 제단용 생화 외에도 관에 넣는 헌화나 식장 입구를 장식하는 화환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회사 내 도매업체를 가지고 있어 조달이 용이해 수익성이 좋은 편이다. 히비야화단의 장례사업 매출은 아직 5억~6억엔 정도지만 성장 잠재력이 크다.뜨는 일본 장례 산업에도 그림자는 있다. 일본 장례시장은 약 1조7000억엔 규모다. 이 중 전문장례사와 함께 점유율 30%를 차지하며 업계에서 큰 세력을 형성한 것이 상조회사다. 일본 전국에 290개 상조회사가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 상조회사는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교토의 한 소비자단체가 대형 상조회를 상대로 ‘상조 계약을 해약할 때 고객이 적립한 금액(선수금)에서 수수료 명목으로 떼가는 돈이 지나치게 많다’고 제기한 소송에서 1·2심 모두 상조회사 측이 패소한 때문이다. 현재 양쪽 모두 최고재판소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 결과에 따라 상조회의 근간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아직 해약이 늘어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자칫 상조업계에 ‘뱅크런’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얼마 되지 않는 수수료로 해약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지면 각지에서 해약이 급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자본력이 있는 JA(농업협동조합)그룹이나 인터넷 계열 등 타업종이 장례업에 뛰어들며 경쟁은 심화됐다. 상조회사의 신규 회원 모집은 매년 어려워져 선수금 규모도 정체될 것으로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성장세던 일본 상조회사는 이래저래 힘든 시기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