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안전 문제 정치 공방으로 번져 국방부는 서울 잠실동 일대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
▎서울 강변 테크노마트에서 바라본 서울 송파구 잠실동 전경. 아파트 숲 사이로 높이 올라선 건물이 50층 높이까지 공사가 진행된 제2 롯데월드다. 123층 높이로 2015년 말 완공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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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헬기가 도심 고층 아파트와 충돌한 사건의 불똥이 롯데월드타워(제2 롯데월드)로 옮겨 붙었다. 제2 롯데월드 주변 비행안전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롯데그룹은 예정대로 공사를 진행한다는 입장이지만, 안전성 논란이 인허가 특혜 의혹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서울 한복판에 세계에서 여섯째로 높은 초고층 빌딩을 지으려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숙원 사업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20년 우여곡절 끝에 2011년 6월 착공한 롯데월드타워(제2 롯데월드) 안전성 문제가 정치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교통대란·환경오염·부실공사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555m(123층)를 향해 치솟던 제2 롯데월드 공사에 제동이 걸릴 조짐이 보인다. 민간 건물을 짓기 위해 군 공항 활주로 방향까지 바꾸며 건축 허가를 내준 이전 정부와 서울시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이미 허가” vs “다시 안전진단”지난해 건물 메가 기둥에 100여 개의 균열이 발견되고, 올 6월 공사장 거푸집이 붕괴돼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어도 제2 롯데월드 공사는 차질 없이 진행됐다. 현재 공정률 25%. 중앙 골조는 50층 높이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11월 16일 민간 헬기가 고층 아파트와 충돌한 사고 발생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언론을 통해 도심 비행 안전성 문제가 집중 거론되자 정치권이 치고 나왔다.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먼저 나섰다. 이 최고위원은 11월 18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제2 롯데월드는 국민 안전에 대한 확실한 안전 확보 방안이 마련되고 국가 안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허가된 층수를 모두 완공하지 않고 잠정 보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롯데월드 인허가 관련 의혹도 제기했다. “(인허가 당시) 전문가들과 국민의 우려가 반영되지 않았다.조종사의 75%, 군 관제사의 85%가 충돌 위험이 있다고 진술했지만 묵살되고 강행됐다. 또한 성남 서울공항의 동편 활주로를 3도 변경하더라도 제2 롯데월드와의 이격 거리가 최대 1500m밖에 되지 않아 최소 안전 이격 거리인 장애물 회피 기준 1852m를 확보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묵살한 채 동편 활주로를 2.71도 변경해 강행했다.”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도 했다.박원순 서울시장은 반박했다. 박 시장은 11월 2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미 오랜 논의를 거쳐 건축 허가가 났고 이것을 바꾸려면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시가 (층수 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절차상 서울시가 결정하는 과정은 있었지만 과거 국무총리실에서 정한 것을 시가 바꿀 큰 권한은 없다”며 “롯데가 소송이라도 걸면 시가 100% 진다”고 말했다.이어 “건립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는데 시민 안전에 결정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아직 그런 게 없다”고 했다. 책임을 중앙정부에 넘기면서, 동시에 문제가 있다면 재검토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일각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출마의사를 밝힌 이혜훈 최고위원이 박원순 시장에 공세를 편 것으로 본다. 우원식 민주당 최고위원은 “그렇게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허가를 내준 것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새누리당”이라며 “공사를 강행한 장본인이 누군데 누구한테 책임을 묻겠다는 건가”라고 말했다.이에 대해 이혜훈 최고위원은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제2롯데월드 안전성에 대해 여전히 불신과 의혹이 있기 때문에 제3의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안전진단을 해보자는 게 왜 정치 공세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안전진단에 몇 년이 걸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안전진단을 해보자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롯데 측 “층수 조정은 고려할 사안 아니다”롯데그룹은 제2 롯데월드 주변 비행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월드타워는 건축 심의와 인허가를 거쳐 공정한 계획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층수 조정은 전혀 고려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롯데그룹은 공식 입장을 통해 “군사기지와 군사시설보호법에 설정된 비행안전 구역 밖에 입지해 있고, 비행 안전 측면에서도 국내외 항공 및 유관 분야 전문가와 전문가기관의 검토를 통해 원칙적으로 안전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그렇다면, 비행안전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은 무엇일까. 국방부는 18일 김민석 대변인을 통해 “제2 롯데월드로 인한 서울공항 이착륙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민간 헬기와 군용 항공기는 비행 과정에서의 위험을 기술적으로 보완하는 시스템에 많은 차이가 있어서 그런 (충돌)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관련, 국방부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과거 협의가 끝나 적법한 과정과 절차에 따라 (건축이) 이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국방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이런 공식 입장이 아니어도, 이미 국방부는 제2 롯데월드 인근 지역을 ‘비행 안전 구역’으로 인정했다. 최근 논란과 관련해 언론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지난 9월 30일 국방부는 제2 롯데월드가 들어서는 서울 잠실동 일대를 군사시설보호구역에서 해제했다.인근 신천동·풍납동·석촌동·가락동과 중랑구 면목동·상봉동,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성남시 분당동·서현동 등도 해제 지역으로 조정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성남 서울공항 동편 활주로의 각도를 2.71도 변경함에 따라 비행 안전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해제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에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된 곳은 비행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국방부가 공식 인정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롯데그룹으로서는, 비행 안전성 논란보다 정치권이 인허가 문제를 거론하는게 더 부담스럽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한 중진의원은 “서울시가 롯데월드 인허가를 다시 살펴보겠다고 했는데, 검찰에서도 이미 인허가 관련 수사를 어느 정도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서울시가 허가를 내 준 사안이지만, 그 과정에서 특혜나 비리가 있었다면 재조사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제2 롯데월드 안전성 문제를 공론화한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 역시 “사정당국에서 롯데월드 인허가 과정을 조사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당 차원에서 이 문제를 공식 제기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선 이슈가 모든 것을 삼키고 있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지만, 좀 더 지켜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 관계자는 “제2롯데월드 인허가 절차를 다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제2 롯데월드 건립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숙원 사업이다. 롯데그룹은 1987년 서울시로부터 부지를 사들여, 1990년대 중반부터 초고층 빌딩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선 정부와 공군의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부지 5.5km 인근에 전시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는 공군 성남비행장(서울공항)이 있어 비행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였다.이 사업이 탄력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된 후다. 인·허가권을 가진 서울시는 2002년 8월 롯데그룹이 기존 35층(143m)에서 112층(524m)로 바꿔 제출한 설계 변경안 인허가 심사에 착수했고, 이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임기 마지막 해에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국방부와 공군은 거세게 항의했다. 국방부는 국무총리실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 협의조정을 신청했다. 결국 4개월에 걸친 비행안정 영향평가 결과를 토대로 정부는 2007년 7월 112층 건축을 불허한다는 결정을 내렸다.하지만 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상황이 돌변했다. 2008년 4월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이상희 국방부장관에게 제2롯데월드 건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같은 해 12월 서울시는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 이 문제를 재상정했다. 2009년 1월 조정위는 성남비행장의 활주로를 3도 정도 변경하는 안을 마련한다.민간 건축물을 짓기 위해 군 공항 활주로를 변경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15년 간 반대 입장을 고수한 공군도 이 즈음에 입장 변화를 보인다. 활주로를 3도 틀고, 비행 안전시설 지원 비용을 롯데그룹이 전액 부담한다는 조건을 수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끝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한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이 경질되기도 했다.결국 2009년 3월 31일 조정위는 9일 만에 작성된 비행안정 용역 보고서를 바탕으로 제2 롯데월드 건축 허용을 최종 확정한다. 그 해 6월 서울시는 112층 건축 허가를 승인했고, 같은 해 11월 롯데는 112층을 123층(555m)로 설계 변경한 후 2011년 6월 착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