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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대만이 신흥국 체면치레 

신흥국 옥석 가리기 

경상흑자 이어가고 경제구조 개혁 효과 양적완화 축소 후폭풍 지켜봐야



신흥국 시장에 빨간 불이 켜졌다. 2013년 말에 쏟아진 대부분의 투자 전망을 보면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자본 이동을 점친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도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2014년에는 선진국 경제가 개선되고 신흥국 성장세는 둔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국 경제의 둔화는 이미 2013년부터 조짐을 보였다. 대표적 신흥국인 브라질·터키·중국 증시의 하락폭이 컸다. 브라질은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잇따라 올린 게 악재로 작용했다. 터키는 국내총생산(GDP)의 6%대에 이르는 고질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해결하지 못했다.

최근엔 검찰이 비리사건에 연루된 장관 2명의 아들을 구속시키고 정부가 수사 중인 경찰을 파면하는 초유의 스캔들이 터지면서 투자자들의 신뢰까지 잃었다. 중국은 외부 경제환경이 좋지 않았고 시진핑 주석의 각종 경제개혁 작업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양적완화 축소에 신흥국 흔들흔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가 양적완화 축소를 전격 실시한 점도 신흥국에 불안 요소다. 연준은 2013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양적완화 축소를 결정했다. 매달 850억 달러씩 하던 자산 매입 규모를 2014년 1월부터 750억 달러로 줄이기로 했다. 양적완화 축소는 2013년 내내 신흥국 경제에 골칫거리였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면 신흥국 시장에서 부터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통화가치가 급변하고 투자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양적완화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신흥국 통화가치는 요동쳤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는 2013년 들어 달러화 대비 26.2% 떨어졌다. 고점에 비해서는 26.8%나 하락했다. 터키 리라화도 올해 들어 17.3%, 브라질 헤알화도 15.9% 떨어졌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터키 리라화, 태국 바트화는 FOMC 이후에도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2014년 신흥국 증시는 차별화가 진행될 전망이다. 신흥국은 각기 다른 산업구조를 지니고 있다. 바뀌는 글로벌 경제구도가 각 신흥국에 미치는 여파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도 옥석 가리기가 한창이듯이 신흥국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더 이상 ‘선진국’과 ‘신흥국’으로 묶는 이분법적 시각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양적완화의 축소는 미국 경제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길게 보면 긍정적인 점도 있다. 선진국 경기가 회복되면 그만큼 미국의 수입 수요가 증가한다. 유럽의 경기회복도 같은 효과를 낸다. 경기가 안 좋을 때 허리띠를 졸라매다가, 이제 숨통이 트인 선진국이 돈을 쓰기 시작할 거라는 얘기다.

다만 2008~2013년 글로벌 증시에서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탈동조화(디커플링) 현상이 두드러졌다. 선진국 중심의 경기회복과 수요회복이 신흥국의 생산과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신흥국 시장의 관건은 선진국 경기회복의 수혜를 누가 받을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금융권을 대표하는 10명의 전문가들은 2014년 투자 유망 신흥국으로 중국과 한국·대만을 꼽았다. 중국은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을 상대로 하는 수출 규모가 크다. 김인응 우리은행 투체어스 잠실센터장은 “유럽의 경기회복에 직접적인 수혜를 입는 중국이 수출 부문에서 회복세를 보이면서 증시도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내적인 경제 여건 변화도 중국을 유망 신흥국으로 꼽는 이유다. 중국 정부는 시장 개방, 정부에서 민간으로의 역할 이전, 토지·금융 개혁 등 전방위적인 경제 개혁을 정책 목표로 내걸었다. 7%대로 떨어진 성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방안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밝혔다. 따라서 눈앞의 성장보다 장기적인 불확실성 해소에 정책 목표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 때문에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예년만 못할 것이란 게 중론이지만 금융시장은 다르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경제성장률과 주가상승률이 비례할 거라는 생각이 함정”이라고 말했다. “구조개혁은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나쁜 기업을 퇴출시킨다는 얘기고 그만큼 질적 성장 구도에서 살아남은 기업의 이익은 더 커지기 때문에 주가는 더 오른다”는 설명이다. 신동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도 “구조개혁과 함께 자본시장을 육성하면서 투자에서 소비 중심으로의 변화가 가시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홍 한화생명 강남FA센터장 역시 “중장기적 경제구조 개혁의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고 외국인 투자제한 완화도 주가에 반영될 것”이라고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다만 계속 문제가 되는 ‘그림자 금융(은행을 통하지 않는 자금 대여)’은 중국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실제로 시중은행들이 급전을 빌릴 때 부담하는 은행 간 단기금리가 급등하는 등 중국에서 신용경색이 반복되면서 이 문제가 구조개혁의 발목을 잡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 대만은 수출을 바탕으로 선진국 중심 경기회복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중국과 비슷하다. 김현석 교보생명 노블리에센터장은 “선진국 경기회복은 수출 중심의 신흥국 시장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특히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된 한국·대만에 대한 자금 유입이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조용준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상품가격 안정으로 원자재 소비국인 관점에서 동아시아 공업국가가 유망하다”고 내다봤다. 또 김기용 외환은행 영업부WMC 센터장과 조재영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강남센터 PB부장은 “경제 성장 대비 주가 상승률이 저조해 상대적으로 저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측면을 고려하면 내년에는 좀 더 긍정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선진국-신흥국 산업구조 따져봐야

그러나 일각에서는 과연 한국과 대만이 아직도 선진국 경기에 좌우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글로벌 산업구조가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만에서 부품을 수입하던 중국은 자체 생산에 들어갔고, 미국 기업들도 자국으로 돌아가는 등 ‘자급자족’을 준비 중이다. 정보기술(IT)·석유화학 등 일부 산업에서는 오히려 선진국과 경쟁할 위치에 놓였다. 한 금융 전문가는 “선진국의 성장은 경쟁이 심화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국이 투자 중심에서 소비 중심 경제로 바뀜에 따라 브라질·호주 등 원자재 수출국은 부침을 겪을 전망이다. 강방천 회장은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의 대부분이 중국의 ‘생산’에 따른 수혜를 봤던 국가”라며 “중국이 생산에서 소비로 돌아선 이상 브릭스라는 말 자체가 한 묶음으로 설명되는 시대가 지났다”고 말했다.

1219호 (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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