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Issue - 제당 3사 40년 독과점 쓰디쓴 설탕시장 

김태윤 기자의 ‘경제가 기가 막혀’ 

시장점유율 5:3:2 고착, 설탕 가격 낮출 관세 인하 또 무산



이코노미스트는 신년호(1219호)부터 ‘김태윤 기자의 경제가 기가 막혀’를 연재합니다. 본 지면은 생활경제 속에서 벌어지는 불공정·독과점 문제, 편법·위법·탈법 행위, 불합리한 시장 관행 등을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실패한 경제 정책이나 예산 낭비, 구조적인 경제 범죄에도 관심을 갖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거의 반세기 동안 시장점유율이 변하지 않은 신기한(?) 시장이 있다. 독점은 아니고, 세 업체가 과점 하는데 40여년째 시장점유율이 ‘5:3:2’다. 어떤 산업, 어떤 시장이든 경쟁이 있으면 기업의 부침이 있게 마련인데 이곳은 예외다.

그렇다고 국내 이동통신 ‘빅3(SK텔레콤·KT·LG유플러스)’처럼 수 조원의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 고객을 뺏고 뺏기는 혈투를 벌이지도 않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처럼 가만히 있어도 시장점유율은 고정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독과점 구조를 갖췄다는 오명을 받는 곳, 바로 ‘설탕 시장’이다.

2013년 초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2006~2010년 독과점 구조를 유지한 국내 47개 산업 실태를 조사해 발표했다. 설탕시장은 맥주와 함께 상위 3사의 시장점유율을 합한 ‘시장집중도(CR3)’가 100%였다.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세 곳이 시장을 완전 장악했다는 뜻이다. 한국제당협회 회원사도 세 곳이 전부다.

이들은 어떻게 변치 않는 시장점유율을 유지했을까. 이유가 있었다.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제당업계 3사가 설탕 출고량과 가격을 담합해 온 사실을 적발했다. 조사 결과 담합은 1991년부터 15년 간 계속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3사는 CJ제일제당 48.1%, 삼양사 32.4%, 대한제당 19.5%로 내수시장 물량 반출 규모를 정했다. 3사 임직원은 수시로 만나 서로 합의를 잘 지키는지 특별소비세 납부실적까지 교환했고, 가격을 짬짜미했다.

공정위는 소비자들이 15년 간 수천 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 이상의 피해를 봤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처벌은 약했다. 3사에 부과된 과징금은 511억원. 심지어 자진 신고해 과징금을 50% 감면받은 CJ제일제당은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황금 시장점유율 비결은 담합

과연 15년뿐이었을까.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책이 있다. 제일제당에서 1982년부터 15년 간 근무한 박창기 에스카 대표(전 팍스넷 창업자)는 2012년 말 출간한 『혁신하라 한국경제』에서 설탕시장 카르텔을 폭로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1960년대 이후 제당 3사는 불법적인 담합을 통해 제일제당 49.2%, 삼양사 32.8%, 대한제당 18%로 시장점유율을 고정하고 있었다. 가격도 거의 동시에 같은 수준으로 올리고 내렸다. 그러다가 1984년 설탕 전쟁이 벌어졌다.

대한제당이 18%가 너무 작으니 점유율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제일제당과 삼양사는 반대했다. 그러자 대한제당은 담합된 물량 이상을 출고했고 시장 가격이 급락했다. 제일제당은 일시적으로 큰 적자가 발생했다. 실무를 담당했던 나(박창기 대표)는 이 과정에서 1960년대 시장점유율을 고정하는 데 합의한 비밀 합의문서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몇 달간 실랑이와 협상 끝에 제일제당이 1.1%, 삼양사가 0.4%를 양보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이들은 담합을 지속했다.

고위 관료 몇 명에게 로비와 향응을 제공하면 판매 가격을 조정할 수 있었다. 상대방 창고에 가서 출고 물량을 정기적으로 감시하고, 2001년에는 3사의 설탕 제조량 자료를 매달 상호 교환하는 합의서를 만들기도 했다.’ 실제로 2007년 공정위 적발 때 대한제당 점유율은 19.5%로, 1984년보다 정확히 1.5% 늘었다. CJ제일제당과 삼양사가 양보했다는 그 1.5%다. 제당업계는 이 책 출간전·후로 출판금지 가처분이나 명예훼손 같은 어떤 소송도 제기하지 않았다.

담합도 문제지만, 국내 설탕시장이 독과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또 있다. 정부의 과보호, 특히 관세정책이다. 현재 우리나라 설탕 수입 관세 기본세율은 30%다. 참고로 밀가루 수입 관세는 3%, 콩기름은 5%, 소금은 8%다. 높은 관세로 수입이 차단된 내수 시장에서 제당 3사는 관세가 3%에 불과한 설탕 원료인 원당을 들여와 정제해 팔았고 담합으로 폭리를 취했다.

분위기가 바뀐 건 2011년 이후다. 설탕 고관세를 지지했던 정부는 이때부터 관세 인하를 통해 설탕시장 독과점 구조를 깨려했다. 2011년에는 35%였던 설탕 관세를 30%로 낮췄다. 2012년 세제 개편 때는 설탕 관세를 5%로 대폭 인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업계 반발에 막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대신 한시적으로 관세를 낮추는 할당관세를 적용해 설탕 관세를 5%로 낮췄다. 시중가보다 20% 정도 저렴한 수입 설탕이 들어오면서 설탕 가격은 내려갈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할당관세는 임시방편이다. 세율이 언제 바뀔지 모른다. 때문에 외국 설탕 수출업체나 국내 수입상이나 할당관세만 믿고 사업을 벌이기는 힘들다. 정부 정책이 바뀌어 낮췄던 할당관세가 폐기되면 큰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탕을 대량 매입하는 제과·제빵·식품·외식 업계도 마찬가지다. 할당관세로 저렴해진 수입 설탕을 구입했다가 나중에 제당 3사에 보복을 당할 수 있다.

할당관세의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한 정부는 2013년 8월 8일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 다시 한 번 설탕 관세율 인하를 추진했다. 2014년 1월 1일부터 현행 30%인 기본세율 대신 20%의 잠정세율을 적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잠정세율은 탄력적으로 관세를 인하하는 수단으로, 기본세율보다 우선해 적용된다. 한 번 인하하면 다시 올리기 어려운 기본세율을 손대는 대신 잠정세율을 통해 설탕 관세를 낮추자는 취지였다. 정부 입장은 확고했다.

2013년 11월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설탕시장은 관세 인하가 필요하다”며 “소비자 중심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또 무산됐다. 12월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여야는 설탕 관세를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국내 제당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시 제당 3사의 승리로 끝났다.

원당 가격 급락해도 국내 설탕값 요지부동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설탕 소비량은 22kg이다. 쌀 소비량이 60kg이니 결코 적지 않은 양이다. 고착된 설탕시장 독과점의 피해자는 결국 소비자다. 삼양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설탕 1t당 내수 가격(2013년 1월 1일~9월 30일 평균)은 89만8000원, 수출 가격은 71만8000원이다. 최근 뉴욕 국제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3월물 원당 가격은 파운드당 16.3센트로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국내 설탕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12월 26일 오리온은 원재료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설탕·밀가루가 주성분인 초코파이 가격을 20%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박창기 에스카 대표는 “2007년 공정위 적발 이후에도 시장 점유율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며 “설탕 관세를 5% 이하로 내리지 않는 한 독과점 구도는 결코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탕이 기가 막힌다.

1219호 (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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