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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소비가 이끈 가격혁명 - 가방부터 수입차 부품까지 싸게 더 싸게 

 

문희철 이코노미스트 기자
유통업계 판도와 가격정책 흔들어 정부도 해외 직구·병행수입 적극 지원



‘코치 대란’. 1월 18일 주요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 최상위권에 오른 단어다.

한 해외 직접 구매 사이트에서 명품 브랜드 코치의 버건디 반지갑을 24.3달러(약 2만6000원)에 판매하면서다. 4만7000원~5만원 정도에 팔리던 제품이 거의 반값에 나오자 블로그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타고 입소문이 퍼졌다. 요즘 유행인 해외 직접 구매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정보기술로 무장한 똑똑한 소비자는 해외에서 싸게 살 수 있는 제품을 국내에서 비싸게 사지 않는다. 독점 수입업체나 유통업계에서는 속이 쓰릴 일이다. 그러나 ‘스마트 소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은 가격을 슬슬 내리고 있다.

물가안정이 급한 정부도 적극 나섰다. 해외 직접 구매와 병행수입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법과 제도를 바꿔가고 있다. 유통혁명과 가격혁명을 이룬 다양한 스마트 소비의 현장을 살펴봤다.


지난해 11월 초 결혼한 신부 박모씨는 혼수용품 구입 시점을 결혼 이후로 미뤘다. 잠시 불편을 참고 미국 최대 쇼핑할인행사가 벌어지는 일명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 11월 마지막 금요일)’에 온라인 직접 구매를 통해 혼수를 장만했다. 냄비는 물론 TV·청소기·세탁기까지 해외 직접구매로 마련했다. 박씨는 “배송비를 다 더해도 우리나라 할인매장에서 사는 것보다 30% 저렴했다”고 말했다.

박씨 같은 똑똑한 ‘알뜰족’이 늘고 있다. 이들은 해외 온라인 사이트에 직접 접속하거나 병행수입된 상품을 쏙쏙 골라내는 식으로 국내 온·오프라인에서보다 싸게 산다. 인터넷 카페나 파워 블로거를 적절히 활용해 상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판매자끼리 최저 가격을 흥정하는 역경매 시장을 기웃거리며 최저가에 원하는 상품을 낙찰 받는 경우도 많다.

소비자가 직접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입해 해외 배송업체를 통해 제품을 인도받는 직접 구매는 불과 수 년 전만 해도 드문 거래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일본 문화 매니어가 한국에서 판매되지 않는 피규어나 캐릭터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일본 온라인 쇼핑몰을 들락거리는 정도였다. 언어적 장벽과 결제 시스템의 한계가 활성화의 걸림돌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바뀐 계기는 인터넷 카페와 커뮤니티 활성화였다. 주로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2000년대 후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아용품이나 의류를 단체로 구매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됐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파워 블로거나 인터넷 카페를 활용한 이른바 ‘블로그 경제’ 규모는 전체 온라인 쇼핑몰 거래액의 10%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블로그나 카페에서는 주로 1~2만원대 소액 제품을 공동구매 하는 경우가 많아 거래 건수로 보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게 심주은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국 전자거래과장의 설명이다.

SNS 입소문 퍼지자 알뜰족 급증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동일한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해 이른바 ‘대박’났다는 경험담이 이어졌다. 입소문은 직접 구매 열풍을 불렀다. 지난해 온라인 쇼핑족 4명 중 1명이 해외 직접 구매를 경험했을 정도다. 지난해 8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온라인 쇼핑족 1650명을 상대로 실시한 ‘해외 직접 구매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4.3%가 “해외 인터넷 쇼핑몰이나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 상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국내 동일 상품보다 가격이 싸고(67%), 상품 종류가 다양하며(35%), 품질이 우수하다(20.3%)는 게 이유였다(복수 응답).

이런 유형의 소비가 가파르게 늘어난 배경에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활용한 활발한 정보 공유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SNS에 제품 구매 경험 정보가 누적되면서 소비자들은 많은 정보를 손쉽게 확보했고, 구매의사 결정의 문턱을 낮출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커뮤니티에는 직접 구매 방법, 관세율 계산법, 가격 비교, 해외쇼핑몰 할인 기간 등 다양한 정보가 있어 사람들이 쉽게 해외 직접 구매에 뛰어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문 배송업체의 등장도 스마트 소비 활성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초기 해외 직접 구매는 국내 배송 가능한 곳이 제한적인데다, 배송 기간이 한 달 이상으로 오래 걸렸다. 구매대행업체 만으론 해외 직접 구매가 늘어나기 어려웠다. 구매의사를 철회하거나 불량품이 배송될 경우 환불 과정도 번거로웠다. 전문 배송업체는 이런 소비자의 불편을 줄여주는 틈새전략으로 스마트 소비자를 공략했다. 실제로 몰테일(2009년)·아무(2010년)·맘스(2010년) 등 전문 배송업체가 설립된 시점과 해외 직접 구매가 급증한 시점이 거의 일치한다.

더불어 구글 자동 번역 서비스도 제3국 직접 구매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내 소비자의 해외 직접 구매 물량에서 중국과 독일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에서 2012년 각각 9.7%, 5.2%로 증가했다.


▎전문 배송업체의 등장으로 스마트 소비 활성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사진은 직구 배송업체 몰테일의 미국 칼슨 물류센터.




스마트 소비로 왜곡된 유통구조 바꿔

최근에는 역경매 방식의 흥정시스템, 소셜커머스 등을 적극 활용해 스마트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도 늘었다. 이들의 증가세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3년 한국 거주자의 카드 해외 사용 실적에 따르면, 국내 거주자가 외국에서 사용한 카드 금액은 2009년 약 53억 달러에서 지난해 105억 달러로 늘었다. 관세청도 2001년 1300만 달러(약 139억원)였던 해외 직접 구매 금액이 지난해 10억 달러(약 1조720억원)로 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2012년과 비교하면 111%나 증가한 수치다. 권광욱 인천공항세관 특송통관과 관세행정관은 “해외 직접 구매를 통해 특급탁송이나 우편물 형태로 수입되는 물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특송 수입 물량을 종류별로 봐도 대부분의 품목에서 수입량이 동시다발적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특송 물량은 매월 평균 23~28% 증가하고 있다.

소비품목도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다. 직접 구매는 소비 지형도를 바꿔놓기도 한다. 이혜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존에는 배송 절차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 의류·건강식품을 중심으로 해외 직접 구매가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커피, 초콜릿 등 기호식품이나 전자제, 수입차 부품 등 다양한 제품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세관장 신고 물품을 기준으로 2009년까지는 의류와 신발·건강식품·화장품이 직접 구매의 60%를 차지했다. 하지만 스마트 소비 바람을 타고 거래되는 품목도 늘었다. 과거 무겁고 파손 위험이 커 해외에서 사려고 생각지도 못했던 대형 전자제품이 눈에 띈다.

배송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미국에서 구입한 제품을 1년 동안 무상보증 한다고 발표한 이후 TV를 해외에서 구매하는 소비자가 크게 늘었다”고 귀띔했다. 가격자율화 정책으로 일률적인 판매가를 규정하긴 어렵지만, 우리나라 매장에서는 약 200만원 안팎에 판매되는 삼성전자 스마트 LED TV 55인치(출고가 300만원)의 미국 직접 구매가는 약 144만원에 불과하다. 배송대행업체에게 배송을 맡길 경우 약 30만원의 배송비가 추가되지만, 여전히 국내보다 저렴하다.

캠핑 열풍을 타고 레저용품 직접 구매도 인기다. 산악자전거나 텐트·침낭·랜턴·식기세트 등의 수요가 최근 증가했다. 아예 캠핑카 구매 대행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사이트도 나왔다. 김기록 몰테일 대표는 “캠핑카 구매 대행 전문 사이트인 카라반테일(www.caravantail.com)을 이용하면 국내보다 저렴한 가격에 캠핑 캐러밴과 관련 부품을 구입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국내에서 약 5000만원 후반에 판매되는 캠핑카는 이 사이트에서 3000만원 안팎에 살 수 있다.

직접 구매는 유통업계 판도와 가격정책을 바꿔놓을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수입차 부품 직접 구매가 대표적이다. 미국 이베이 모터스(eBay Motors) 사이트는 와이퍼나 엔진오일은 물론 주요 수입차 범퍼나 바퀴 휠 등 약 63만개의 부품을 판매 중이다. 이곳에서 수입한 부품은 국내 정비소에 맡기면 차량에 장착할 수 있다. 수입차 부품 직접 구매가 늘자 이를 통해 들여온 제품을 전문적으로 차량에 탈부착하거나 수리하는 전문 정비업체도 등장했다.

메르세데스-벤츠 등 수입차 업체가 주요 부품 가격을 인하한 것도 직접 구매 영향이 크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지에서 10만원 정도 하는 부품이 국내에서는 9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유통구조가 왜곡돼 있다”며 “미국에서 많이 판매되는 포드나 GM, 크라이슬러 등의 부품을 직접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수입차 업체가 주요 부품가격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 브랜드 ‘폴로’로 유명한 랄프로렌도 지난해 알뜰족에게 두 손을 들었다. 인터넷 직접 구매로 싼 값에 옷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늘자 랄프로렌은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아동복 제품 가격을 40%가량 내렸다. 랄프로렌은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는 아동복의 60%가 직접 구매나 병행수입 제품으로 파악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해외 직접 구매가 전체 소비재 수입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최근 스마트 소비가 주목 받는 건 정부도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뿐 아니라 물가안정도 중요한 정부로선 스마트 소비가 활성화되면 고가 수입 브랜드 등 공산품 가격이 떨어져 물가를 낮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관세청은 합동으로 2012년 병행수입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병행수입 물품 통관 인증제를 시행 중이다. 병행수입 물품이 정식으로 세관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인증하는 제도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병행수입 물품이 정식 수입된 진품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병행수입과 해외 직접 구매 활성화를 위해 1월 9일 물가관계부처회의를 통해 병행수입 시장 활성화 방안도 발표했다. 구체적인 방침도 3월 중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통관 인증 기준을 완화해 통관인증제를 확대하고, 수입 경로를 다변화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관세청도 2월 28일 ‘전국세무관서장회의’를 통해 병행수입 통관인증업체의 선정 기준을 완화했다. 더불어 관세청은 해외 직접 구매족을 지원하기 위해 전자상거래 수입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전자상거래업체 관리체계도 마련해 해외 직접 구매의 기반을 넓히겠다는 방침이다.

관세청, 통관인증제 등으로 스마트 소비 장려

스마트 소비가 각광받고 있지만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스마트 소비의 품목이 주로 의류·구두·액세서리 등 패션잡화와 가방·지갑 등 피혁류라는 점을 감안하면, 스마트 소비가 국내 소비시장 위축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정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병행수입이나 해외 직접 구매가 늘어나 기존 유통업체의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스마트 소비자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음식료 등의 상품을 대형마트가 직접 병행수입 할 경우, 또 다른 기회가 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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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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