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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관심 끄는 현대그룹 인사 - ‘현정은 사람들’ 경영 전면에 등장 

 

옛 현대그룹 적자(嫡子) 대거 물러나 … 그룹 관련 정보 유출에 민감한 반응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그룹의 총수로 올라선 이후 10년 동안 현대그룹에는 풍파가 끊이지 않았다. 경영권 갈등, 파생상품 손실에 이어 노조와의 갈등도 불거졌다. 그간의 풍파를 떨쳐버리려는 의중일까. 현정은 회장은 최근 대대적 인사를 단행했다. 최근 인사의 특징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현대차그룹·현대중공업그룹 등으로 분가된 구(舊)현대그룹 계열사 출신 CEO(최고경영자)가 대거 물러났다. 구현대그룹이란 현대건설을 모태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창업한 기업을 말한다. 현재는 현대차그룹·현대중공업그룹 등으로 나뉘었다.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과 구분하기 위해 구현대그룹이라고 부른다.

주요 계열사 CEO 대부분 교체

이번에 물러난 CEO는 모두 구현대그룹에서 ‘적자(嫡子)’로 불리던 사람들이다. 3월 말 임기 만료한 김종학 현대아산 사장은 1975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부사장까지 올랐던 인물. 비슷한 시기에 물러난 노영돈 현대로지스틱스 사장과 유창근 현대상선 부회장도 구현대그룹에서 승승장구했다.

1953년생 동갑내기로 둘다 현대종합상사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노영돈 사장은 2010년 현대로지스틱스(당시 사명 현대로지엠)으로 이동하기 전 현대종합상사 대표였다. 유창근 부회장은 현대건설에서 8년 가량 근무하다 1986년부터 현대상선에 합류했다. 현재 현대종합상사는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건설은 현대차그룹 계열사다.

둘째, 이들과 정반대로 현대상선과 현대로지스틱스 등에서 외길을 걸어온 인사들이 대거 CEO로 올라섰다. 2월 19일 현대로지스틱스는 임시이사회를 열고 이재복 현대로지스틱스 국내사업본부장을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선임했다. 이어 3월 3일 조건식 전 현대아산 사장을 4년 만에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내정했고, 3월 12일에는 이석동 현대상선 미주본부장을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내정했다. 현대엘리베이터와 매물로 내놓은 현대증권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핵심 계열사 CEO가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대부분 교체된 셈이다.

이들은 모두 분가한 구현대그룹 계열사에는 몸담은 적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석동 대표는 1983년 현대상선에 입사해 줄곧 컨테이너 영업을 전담했다. 이재복 대표도 마찬가지. 1981년 현대상선으로 입사한 뒤 1988년 현대로지스틱스 창립멤버로 참여해 지금까지 한우물을 팠다. 재영입된 조건식 사장도 구현대그룹과는 무관하다. 대통령비서실·통일부에서 근무한 관료출신이다. 2008년 7월 북한에서 박왕자씨 피격 사건이 발생하자 현 회장이 영입했다. 이밖에 연임 중인 한상호 현대엘리베이터 사장도 LG 출신으로 구현대그룹과 무관하다.

셋째, 이번 인사로 현정은 체제 구축이 완료됐다. 현정은 체제를 대표하는 CEO 선임에 이어, 이들을 보좌할 사람들도 그룹과 계열사로 분산됐다. 이백훈 현대그룹 전략기획1본부장이 그룹에서 현 회장을 보좌한다. 대신 또 다른 ‘실세’로 불리는 주요 임원들은 계열사로 배치됐다.

현대그룹에서 전략기획2본부장을 맡았던 이남용 부문장은 지난해 현대상선 기획지원부문장으로 이동했다. 김현겸 상무는 현대증권 글로벌사업부문장 겸 해외사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진정호 상무는 현대엘리베이터 브라질법인장으로 근무하며 글로벌 사업을 책임진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현정은 사람들’의 주요 계열사 분산 배치가 완료된 형국이다.

넷째, 내·외부 인사의 조화다. 현재 실세로 불리는 이들은 상당수 현 회장이 영입한 외부 출신이다. 그룹에서 인사·법무·대외전략을 총괄하는 이백훈 부사장은 SK해운에서 일하다 2007년 현대상선에 합류한 인물. 하나은행 출신 이남용 전무는 솔로몬투자증권 부회장으로 일하다 2011년 현대그룹에 합류했다. 김현겸 상무와 진정호 상무는 각각 하나대투증권과 삼성물산 전략기획본부 등에서 일했다. 이들이 내부 출신 CEO를 보좌하는 구도가 완성됐다는 게 현대그룹 측의 설명이다.


외부 출신 ‘실세’도 득세

현 회장이 구현대그룹 인사를 배제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는 “현대그룹 관련 자료가 자꾸 외부로 유출되는 일이 반복되자 현정은 회장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귀띔한다. 특히 최근 불거진 현대그룹의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한다.

범현대가와 다툼 과정에서도 미심쩍은 일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 회장은 2003년 취임 한 달 만에 시숙부인 정상영 KCC명예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2006년 5월엔 시동생인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지분을 매입하며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10년 9월엔 시아주버니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현대건설 인수를 두고 경쟁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현대그룹 계열사 사람들이 기존 동료들과 모임을 가졌다는 정보가 올라오면, 현 회장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는 해석이다.

만 10년 동안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이번 인사로 자신감을 표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까지는 구현대그룹 인사 없이 그룹을 이끌어가기 힘들었지만, 현정은 사람들이 계열사 곳곳에 포진한 상황에서는 구현대그룹 적자들과 거리두기가 가능해졌다는 분석이다.

내부 인사의 CEO 승진은 현대그룹 내부 임직원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포석이란 시각도 있다. 한 관계자는 “외부 영입 인사가 전략기획본부나 핵심 포스트에 지나치게 많았다. 이를 두고 오너가 내부 직원을 못 믿는다는 불만도 있었다”며 “내부 인사를 CEO에 중용해 이런 불만을 달래려고 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주요 임원직에 외부 인사 비중이 크다는 지적에 현대그룹은 “주요 포스트에는 외부 인사가 많지만 실무진은 현대그룹 내부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부 인사와 외부 인사가 조화를 이룰 때 좋은 방향으로 (회사가) 갈 수 있다”고 언급했다.

1230호 (201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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