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출장은 다양하고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주는 업무 가운데 하나다. 특히 멀리 그리고 장시간 떠나는 해외 출장이라면 그런 마음이 더 하지 않을까 싶다. 가슴 설레는 여행의 느낌이 그럴 것이다.특히 해외라는 지리적 공간이 가져다 주는 일탈의 기대감은 더욱 크다. 못된 상관이나 바쁜 회사 업무로부터 해방되는 것도 기쁨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영자에게도 이런 사례가 적용될까? 얼마 전 나의 출장은 아래와 같았다.비행 시간에 맞춰 인천공항에 허겁지겁 도착했다. 출근해서 일 보고 나와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출발 임박해서야 온 것이다.출국수속을 간단히 마치고 면세점을 지날 즈음 선물을 사나마나 하는 잠깐의 갈등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괜히 견물생심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해 ‘지름신’이라도 강림할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게이트로 향한다. 해당 탑승구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니 출발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다.이때 경영자의 고질병이 나오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괜히 회사에 전화를 건다. 별일 없는지(당연히 별일 없고 별일 일어날 시간도 없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거나 메시지 남기라는 부질없는 당부를 한다.비행기가 굉음을 울리면서 힘차게 날아오르면 괜스런 상념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회사 일도 바쁘고 다른 사람을 보내도 되는데 굳이 내가 가는 건 아닌지, 일정을 다음으로 미룰 걸 그랬나하는 가벼운 후회 등이 그것이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어쩔 수 없으니 최대한 성과를 내고 오자는 쪽으로 급선회 한다.이런 상념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건 바로 기내방송이다. 비행기가 안정궤도에 오름과 동시에 내 마음도 비로소 평안을 찾는다. 그러면 날짜가 바뀌고 시간이 달라지는 긴 비행시간 동안 읽으리라 다짐한 두터운 교양서적이나 내공 있는 보고자료를 뒤적거리며 읽는다. 기내서비스가 시작되고 음료를 마시다 보면 여유없이 사는 자신이 불쌍한 생각이 들면서 책이나 보고서를 덮는다. 잠시 음악을 듣거나 경제 잡지를 뒤적인다. 그것도 잠시. 다시 업무보고서를 들고 있다.현지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손이라도 씻으려고 세면대를 보니, 회사 브랜드와 함께 1748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정말 부럽다’는 생각과 더불어 우리 회사의 미래도 그려본다. 낮 시간 동안 거래처와 일을 보고 저녁 무렵 호텔에 되돌아오면 당연한 듯 노트북을 펼치고 e메일을 확인하고 기안결제를 살핀다. 그러다 한국의 근무시간에 맞춰 회사에 다시 한번 전화를 건다. 행여 찾는 임원이나 간부가 없으면 “거봐 거봐, 내가 없으면 이렇다니까” 하는 불안증세를 보인다. 나만 이런 걸까?출장을 마치고 귀국길에는 인천공항이 가까워짐과 반비례해서 회사 일에 대한 걱정이 커진다. 그러나 문득 ‘공장장이 없으면 공장 생산라인이 더 빨리 돌아간다’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다 보면 어느 새 공항에 도착한다. 그래 훌훌 털고 단절의 세계를 맛보는 것이 여행이요, 출장이 아닌가? 잔소리 다하고, 간섭 빼놓지 않고, 수시로 체크하고,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믿음을 가지자! 자신과 직원과 조직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