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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반쪽 짜리 반도체 강국 못 벗어난 한국 

돈 되는 비메모리 언제 1등 하나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비메모리 독려 … 웨어러블 기기, 사물인터넷에서 새 기회 찾아야

▎삼성전자의 반도체 제조 공정.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세계 1위인 삼성전자는 최근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점유율이 떨어졌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뿐만 아니라 시스템LSI 등 비메모리 분야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4월 15일 반도체사업(DS)부문 임직원에게 보낸 ‘2분기 경영현황 메시지’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권 부회장은 “1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늘었지만 메모리에 비해 시스템LSI는 다소 부진했다”며 “메모리 반도체는 반도체 산업의 극히 일부다. 진정한 강자가 되려면 반도체 모든 부분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점유율 1위를 기록한 삼성전자이지만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점유율 4.7%(2013년)로 전년(10%)보다 떨어졌다. 애플이 삼성전자에 위탁생산 하던 물량이 TSMC로 옮겨간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독보적 1위

권 부회장의 이 같은 ‘채찍질’은 한국 업체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처음으로 일본을 따돌리고 2위를 기록했다는 최근 조사 결과가 나온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반응이다.

시장조사기관 HIS 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업체의 반도체 판매액은 515억1600만 달러로 미국에 이어 2위 점유율(16.2%)을 기록해 13.7%인 일본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이 와중에 굳이 ‘부진’을 지적하는 삼성전자의 속사정은 무엇일까.

공급자 중심으로 재편된 지난해 시장에서 국내 반도체 업체는 사상 최대의 성과를 거뒀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48.7% 증가하고 영업이익 3조3800억원을 올리며 흑자 전환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6조8900억원으로 전년 대비 65% 늘었다.

스마트폰·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낸드플래시 수요가 급증했고 D램 가격도 지난해 내내 오른 덕분이다. 특히 SK하이닉스에 호재가 많은 한 해였다. 삼성전자가 모바일 D램 생산에 집중하느라 PC용 D램 생산 비중을 줄인 사이 시장에 공급 부족 현상이 일어나 PC용 D램 가격이 급등했다. SK하이닉스의 중국 우시 공장에서 화재가 난 것도 공급 부족을 부채질 했다.

세계 D램·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점유율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반도체 전체 시장에서 83% 차지하는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5%에 불과하다.

‘반쪽 짜리 반도체 강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지금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스마트폰 등 모바일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정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제품을 다변화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비롯한 시스템 반도체는 고급 인력을 바탕으로 한 고도의 설계 능력을 필요로 한다. 퀄컴·ARM 등 시스템반도체 부문의 강자들은 설계만 도맡아하기 때문에 설비 투자에 따른 리스크가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과거 PC 위주의 시장에서는 마이크로프로세서 공급 대부분을 담당하던 인텔이 시스템반도체 부문의 독점적 강자였다. 고사양 스마트폰의 등장을 시작으로 모바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통신기술을 보유한 퀄컴, 저전력 기술이 강점인 ARM이 이 분야에서 점유율을 늘려나갔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SK하이닉스와 달리 삼성전자는 자체 모바일 AP인 ‘엑시노스’를 내놓고 시스템반도체의 한 종류인 이미지 센서에서도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에 출시된 갤럭시S5 국내판매 제품에는 엑시노스 대신 퀄컴의 '스냅드래곤801'이 탑재됐다. 엑시노스는 LTE-A 지원이 어려워 LTE가 도입되기 시작한 일부 국가에 출시되는 제품에만 탑재됐다. 삼성전자 AP의 경쟁력이 아직은 퀄컴을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SK하이닉스도 3월 21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CMOS 이미지 센서와 파운드리(위탁생산) 매출 성장에 따라 비메모리 부문 사업의 기여도도 확대됐다”고 밝히며 메모리 사업 중심의 경영 전략을 공개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단계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아직 이렇다 할 만한 비메모리 제품이 없고 생산 라인도 없어 투자하고 수익을 내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성철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가장 수익성이 높고 기술 집적도가 높은 중앙처리장치(CPU), AP 제품군은 인텔·퀄컴 등 세계 시장에서 쟁쟁한 기업들도 전력투구를 하며 경쟁하는 상황”이라며 “중국을 비롯한 후발주자들까지 나서 비메모리 분야 LTE 제품을 개발해 기존 강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삼성전자의 AP는 선도기업 제품의 90% 수준까지 쫓아가 조만간 선두 기업과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 진출이 더뎠던 것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데다 기존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AP·CPU를 비롯해 비메모리에서도 고부가가치 분야는 그만큼 개발이 어렵고 기존 업체의 경쟁력이 뛰어나 진입이 힘들다. 비메모리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개발이 쉬운 제품에 집중하려 해도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과열 경쟁이 붙어 수익성이 낮다”고 털어놨다.

시스템반도체 분야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시장 포화상태에서 가격 경쟁까지 붙어 매출이 감소하는 추세다. 인텔의 지난해 매출이 1% 줄었고 퀄컴은 2014 회계연도 1분기(10~12월)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 줄었다.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없다면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다.

D램 제조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20나노 4Gb(기가바이트) DDR3 D램 생산을 시작했다. 회로를 더 가늘게 그려 전력 소모를 줄이고 수율을 높이는 미세화 공정을 진행한 것이다. 문제는 이 미세 공정 기술 개발이 현실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학계에서는 사실상 앞으로 2단계 정도 더 미세화 공정이 진행되고 나면 그보다 작은 단위로 회로를 그려 만드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라고 본다.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수직으로 웨이퍼를 쌓는 3D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고 양산도 시작했지만 이 역시 일정 단계가 지나면 한계에 부딪치게 되는 방식이다. 새로운 소재, 또는 새로운 구조의 반도체를 개발하는 식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 유망

‘제 2의 스마트폰’이 될 만한 유망한 신시장을 발굴하는 것도 기업의 과제다. 웨어러블(wearable) 기기, 사물인터넷 제품의 상용화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시장은 차량용 반도체다. IC인사이츠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2016년 277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일본과 유럽, 미국의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이 시장을 점령한데다 기술장벽이 높아 국내 업체가 진입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1235호 (201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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