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 간 국내 7대 시중 은행에서 일어난 금융사고가 195건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금액은 5357억원에 이른다. 올해 1분기 국내 은행 전체 영업이익 중 이자수익을 제외한 5508억원에 맞먹는 손실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금융당국이 작성한 ‘최근 5년 간 금융사고 현황’과 각 사고별 ‘금융사고 조사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국내 7대 은행들은 수천 만원에서 수천 억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고에 시달렸다. 고객의 돈을 은행원들이 유용하거나 횡령한 사건이 태반이다. 사고를 낸 은행은 어떤 사고를 얼마의 금액으로 냈는지 이제까지 고객들에게 스스로 밝힌 적이 없다. 금융사고 내역은 금융감독원 검사국 데이터베이스에만 비공개로 저장돼 왔다. 자신의 귀중한 재산을 맡기는 투자자와 예금자 등에게 반드시 공개돼야 할 정보지만 은행은 금융사고를 일으킨 사람의 개인정보와 은행의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공개를 꺼려왔다.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많은 금액의 금융사고를 일으킨 은행은 KB국민은행이다. 지난해 KB국민은행 도쿄지점의 불법 대출 사건을 포함해 5년 간 26건 2796억원을 날렸다. 사고가 가장 잦은 곳은 신한은행이다. 5년 간 66건의 금융사고로 1064억원을 손해봤다.이외에도 우리은행 46건(574억원), 외환은행 12건(534억원), SC제일은행 12건(286억원), 하나은행 27건(66억원), 씨티은행 6건(37억원) 등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있었다. 단일 사고로 가장 큰 금액은 단연 KB국민은행 도쿄지점의 업무상 배임사고다. 무려 2337억원의 손실을 냈다. 이외에도 2010년 신한은행은 금강산랜드에 대한 불법대출 사고로 719억원의 손실을 냈다. 같은 해 외환은행은 선수촌PB지점의 유용사고로 499억원을 날렸다.국내 은행에서 벌어진 금융사고에 대한 전체 통계와 각 은행이 밝힌 구체적인 사고 내역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금융사고를 덮기에 급급했다. 손실이 발생해도 이를 은행 결산에서 손비 항목 총액에 합산시켜왔다. 투자자나 은행 이용자들이 사고발생 여부와 내용을 알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초우량 은행이라고 자랑하던 시중 은행들의 실제 모습은 잘못과 문제를 덮고 가리는 데 익숙했다.영업비밀이란 이유로 공개 거부현재도 금융사고가 발생한 은행은 사고 내역과 처리 결과 등을 공시할 의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자기자본 총계의 100분의 1 상당액’ 이상의 사고금액에 대해서만 공시의무를 진다. 은행은 사고내용을 언론기관에 배포하고 은행이나 전국은행연합회 홈페이지 등 전자매체에 이를 공시해야 한다.하지만 이런 규정은 현실성이 없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자기자본 총계는 23조7000억원이 넘는다. 이에 따라 2370억원 이상되는 금융사고만 공시를 통해 공개하면 된다. 은행은 업종 특성상 자기자본액이 상당히 크다. 이 때문에 초대형 금융사고가 터지지 않고 은행과 금감당국이 이를 덮어둔다면 일반인은 어떤 금융사고가 일어났는지 알 길이 없다. 실제 최근 5년 간 국내 은행권에서는 7대 시중은행을 포함해 720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하지만 공시의무가 발생한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했다. 2010년 경남은행 구조화금융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지급보증서와 채권양수도 계약서를 임의로 발급하는 등 업무상 배임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경남은행의 자기자본액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공시 의무가 생긴 것뿐이다. 지난해 말 일어난 KB국민은행의 도쿄지점 사건에서 연결된 모든 손실 규모를 합하면 모두 2337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일어났다. 하지만 KB국민은행은 동경지점 사건에 대한 공시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 손실액이 공시를 하기에는 ‘적기’ 때문이다.발생 연도별로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8건에서 2010년 29건으로 사고 빈도가 줄어드는 듯 보이다 2011년에 47건으로 부쩍 늘었다. 이후로 2012년 45건, 2013년 36건으로 다시 사고가 줄고 있다. 하지만 사고 금액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10년에 1612억원(건당 평균 56억원), 2013년에 2875억원(건당 평균 80억원)으로 사고 횟수가 적은 해에 사고 금액이 더 컸다. 5년 동안 연간 사고 건당 평균 사고 금액은 15억원 수준이다.‘한 번 일어나면 큰 문제가 터진다’는 은행권 금융사고의 전형을 보여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절대로 고객의 돈에 손을 대서는 안 되지만 금융지주사 체제가 만들어진 이후 현장에서 은행원 업무 중에 증권이나 보험 등 다른 투자사가 관여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금융위기 이후 투자 손실이 생긴 부분 등을 만회하기 위해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지르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이코노미스트는 구체적인 금융사고 조사보고서도 입수했다. 조사보고서는 사고가 난 각 은행이 자체 조사 직후 금융감독원장에게 사고조사 내역을 설명하는 서류다. 금감원이 조사에 들어가기 전에 받아보는 최초 보고서로 금감원 조사의 기초가 되는 자료다.먼저 2009년 3월 16일 발각된 외환은행 선수촌WM센터지점장 횡령사건을 보자. 고객의 통장과 도장을 직접 관리하던 지점장이 예금을 횡령해 위험한 기업에 투자한 사건이다. A지점장은 코스닥과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 대표이사에게 고객 돈을 마음대로 빌려줬다.하지만 상장회사가 부도를 내면서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 못하자 거금의 손실이 발생했다. 사고 금액은 약 465억원, 당시 지점장은 “내가 모집한 고객의 펀드가 손실을 입자 이를 만회할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A지점장은 3명의 고객으로부터 돈을 빼내 한 코스닥 기업에 185억원을 투자했다. 이 상장사는 그 해 4월 상장폐지됐다.또 모 유가증권시장 종목에 141억원을 넣었지만 이 회사 역시 이듬해 3월 상장폐지됐다. 다른 에너지 관련 기업에도 115억원을 빌려줬다가 역시 상장폐지되면서 손실을 봤다. 부도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높은 수익을 기대하고 고객의 돈을 빼서 넣었다가 한꺼번에 날린 사고다. A지점장이 투자금을 회수해 고객의 예금에 다시 입금했다면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다.이 사건은 상장폐지로 거금을 날린 지점장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주변에 포착됐고, 외환은행 감사부가 특별감사를 벌이면서 전말이 드러났다. 하지만 조사보고서에는 이 지점장이 부도 위험 기업에 투자하면서 리베이트 등을 챙겼는지 여부가 기록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