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피의자 신병 확보도 못해 투자자만 속앓이 

합성선물 매도로 장 막판 코스피 2.7% 급락 불협조-소환 불응에 공판·심리 ‘올스톱’ 

김유경 이코노미스트 기자 neo3@joongang.co.kr

Issue 도이체방크 ‘옵션쇼크’ 그 후 4년


도 이체방크의 ‘옵션쇼크’ 당시 서울을 방문한 요제프 아커만 전 회장은 과도한 자본의 흐름과 환율 움직임을 막기 위해 각국의 정책적 조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내 주식시장을 뒤흔든 도이체방크의 ‘옵션쇼크’ 사태가 발생한 지 어느덧 4년이 흘렀다. 당시 수많은 개인·기관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더구나 단 한 곳의 외국계 투자회사가 얼마나 손쉽게 우리 증권시장을 휘두를 수 있는지도 여실히 보여줬다. 사건 발생 직후 금융당국은 행정처분과 함께 시장의 공정 질서를 교란한 혐의로 도이체방크를 사법부에 넘겼다. 그렇지만 재판부는 어찌된 일인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이체방크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다.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는 이렇다. 2010년 11월 11일 개장부터 보합 흐름을 보이던 코스피 지수가 장 마감 10분을 앞두고 돌연53.12포인트(2.78%) 급락했다. 마감 동시호가 때 한 외국계 증권사 창구로 매도 폭탄이 쏟아지며 지수가 가파르게 떨어진 것이다. 매물을 쏟아낸 곳은 바로 도이체방크. 도이체방크는 마감 동시호가 때 자그마치 2조 4000억원 규모의 현물과 연계된 합성선물을 팔았다. 특히 삼성전자(-2.91%)·포스코(-4.07%)·현대차(-4.57%) 등 대형주 중심으로 매물을 쏟아냈다.



현물·콜옵션 투자자 모두 피해

파장은 곧바로 선물시장으로 이어졌다. 마침 이 날은 코스피200 옵션 만기일. 코스피200 선물 콜옵션(살 권리)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과도한 주가 하락 여파로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당시 개인·기관투자자들의 손실액은 14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일부 투자자들은 “휴지조각이 됐다”며 아예 권리 행사를 포기하기도 했다. 반대로 풋옵션(팔 권리)을 갖고 있던 투자자들은 최대 500배의 수익을 올릴 기회를 얻었다. 당시 지수 하락을 이끈 도이치증권도 미리 풋옵션을 갖고 있던 덕분에 홍콩법인 436억 원, 한국법인 12억 원 등 총 448억 원의 돈을 손에 넣었다.

금융·증권 당국은 곧바로 조사에 착수해, 도이체방크가 ‘옵션쇼크’ 직전에 풋옵션을 사들였고 의도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려 부당 이득을 챙겼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도이치증권 한국지점에 영업정지와 제재금 부과 등 행정조치를 취했다. 또 홍콩법인 매매 관계자 3명, 뉴욕 도이치증권 직원 1명, 한국도이치증권 직원 1명 등 5명을 불공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도이체방크 서울법인과 홍콩법인이 거래 직전 e메일을 주고 받은 정황을 포착했다. e메일에는 “지수가 너무 많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 “더 떨어져도 괜찮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또 서울·홍콩 법인 담당자 간에 여러 차례 통화를 통해 세부적인 내용을 모의한 정황도 잡았다. 이와 관련해 도이체방크 측은 “한 법인의 매매로 인해 다른 법인이 피해를 입는 일을 막기 위한 단순한 업무 조율”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이체방크가 매도 주문을 넣으면서 증권당국에 ‘합성선물이 없다’고 허위 신고한 점과, 허위 신고를 통해 거래가 정지된 시간에 매매를 한 점도 시세조종 혐의로 꼽힌다. 합성선물은 콜옵션과 풋옵션을 결합해 선물 포지션을 만드는 전략으로,주로 현물이나 선물과의 차익거래에 활용된다. 합성선물은 도이체방크가 일으킨 옵션쇼크처럼 대형 투자자들이 현물시장을 조작해 선물에서 쉽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매매 전에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특히 마감 동시호가 주문이 끝나는 오후 2시 45분 이후로는 거래할 수 없다.

도이체방크의 주문이 접수된 시간은 오후 2시47분. 이에 도이체방크가 매매 당시 합성선물이 없다고 허위신고를 하고, 거래가 금지된 시간에 주문을 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시세조종의 의도성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를두고 도이체방크측은 두 지점 간 의견교환은 일상적인 업무 통화였으며, 허위신고도 단순한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도이체방크는 이코노미스트의 입장요청에 ‘어떠한 시장 조작에 개입하거나 승인한 바 없으며, 모든 혐의가 풀릴 것’이라는 서면 답변을 보내왔다.

그런데 범죄 여부를 가려야 할 사법부는 4년이나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수사당국이 핵심 피의자인 해외 법인 직원 4명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옵션쇼크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도이체방크 해외 직원들은 사건의 책임자로 혐의를 입증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검찰은 수사 초기 해외 직원들을 여러 차례 국내로 소환했으나, 이들은 불응으로 맞섰다. 해외 직원 4명은 시세 조종 사건 직후 퇴사했으며 법률 대리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도이체방크도 회사를 그만둔 직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의무가 없다며 당국의 협조에 불응했다. 이에 검찰은 “나름대로 법리적 판단을 하겠다”는 내용의 경고와 함께 인터폴 수배나 범죄인 인도청구 요청 등을 검토했으나, 결과적으로 소환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도이체방크 한국법인 직원과 해외직원을 함께 묶어 기소했는데, 해외 직원들을 소환조차 못하다보니 국내 피의자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하는 상태다. 재판 자체가 사실상 손발이 묶인 것이다.

검찰이 과연 수사 의지를 갖고 있느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핵심 피의자를 다루는 데 있어 초기 대응이 미흡했고 구인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유에서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이미 종적을 감춘 뒤에야 검찰이 소환한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일각에서는 수사 중에 법원의 정기 인사로담당 판·검사가 바뀐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시간이 많이 지체되면서 재판부는 해외 직원에 대한 공판은 빼고, 국내 부문부터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 관계자는 “해외 직원들이 출석에 불응해 재판이 진행되지 않고 있어 이들을 빼고 올해 하반기부터 심리를 재개할 것”이라며 “검찰도 이들에 대한 추가 혐의 입증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외 직원 가운데 주동자는 누구이며 윗선도 이를 알고 있었는지, 도이체방크의 책임은 어디까지등을 밝혀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민사 소송도 지난해 7월 이후 스톱

민사 소송도 지난해 7월 공판 이후 스톱 상태다. 와이즈에셋자산운용 등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들은 도이체방크의 시세조종 행위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2011년 2월 수십억 원대의 피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일단 민사 재판부는 도이체방크의 의도성 여부와 피해자들의 실제 손실 규모를 파악해 왔다. 의도성 여부는 형사 재판부의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도이체방크는 합성선물의 신고를 누락한 혐의는 인정하지만, 단순히 업무상 착오였다고 항변 중이다. 규정은 위반했지만 의도성은 없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도이체방크의 매도 물량이 주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입증해보라고 반격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거래소에 사건 당일 적정 마감 주가에 대한 시장평가를 요청한 상태다. 도이체방크의 매도 물량이 없었다면 당시 종가가 얼마로 마감했는지 추정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 수치가 나오면 비교적 정확한 피해 규모를 산출할 수 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이 문제가 외국에서 발생해 입증이 어렵고, 핵심 피의자들이 외국인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라고 본다.

금융·증권 소송 전문인 김주영 변호사는 “판결이 늦어질수록 피해자들이 흩어지고 추가 소송 가능성도 작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경이니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쥐락펴락 놀이터처럼 다루는 것 아니겠냐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1254호 (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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