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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곡동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대학생 이현동(23·가명)씨는 지난해 추석 연휴기간 있었던 일만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 거린다. 이씨의 부모님은 귀향길에 오르고, 이씨는 서울에 남아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집에서 가스불을 안 끄고 나온 것 같다. 얼른 확인해봐라.” 급하게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이씨는 눈 앞의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매캐한 연기가 집안을 가득 채웠고 부엌 일부는 타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이씨의 경우처럼 순간적인 부주의로 집에 가스불을 켜둔 채 그대로 볼일을 보러 나왔다가 뒤늦게 생각나서 낭패를 본 경험이 가정마다 더러 있을 것이다. 때로는 큰 화재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스마트홈 시대가 열리면서 이 같은 사고 발생 가능성은 많이 사라질 전망이다. 집 밖에서 원격으로 가스공급을 차단할 수 있다면 굳이 먼 길을 전전긍긍하며 돌아가지 않아도, 혹은 돌아가는 길이 늦어져 화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 기업들이 전자·건설 업계를 필두로 이런 일이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홈 대중화에 나서면서 소비자들도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조명부터 냉·난방, 가스 밸브까지 원격 제어
스마트폰과 TV 시장에서 세계 1위 입지를 굳힌 삼성전자는 최근 들어 스마트홈 대중화를 빠르게 추진하면서 또 한 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4월 한국과 미국·영국 등 11개국에서 집안 가전들과 IT기기들을 통합 플랫폼으로 연동하는 ‘삼성 스마트홈’을 공식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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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절약과 보안성 강화에 효과적
LG전자의 기세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LG전자가 선보인 대표적인 스마트홈 서비스는 ‘홈챗(HomeChat)’이다. 홈챗은 ‘카카오톡’과 ‘라인’ 등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가전제품과 일상 언어로 채팅하는 업계 최초의 서비스로 LG전자가 지난 4월 상용화했다. 홈챗에서 사용자가 “과일즙 얼룩을 제거하려면?”이라고 물으면 홈챗이 얼룩 제거에 효과적인 세탁 코스를 알려주고 작동까지 도와준다.냉장실에 보관 중인 식품의 상태를 물어보면 냉장실 안에 탑재된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사진을 보내준다. 사용자 편의성을 고려했다. 올해 IFA에서는 이런 홈챗 서비스가 적용되는 기기를 세탁기·냉장고·오븐·에어컨 등 기존 생활가전 위주에서 로봇청소기·스마트 조명·무선 멀티룸 오디오 등으로 확대·공개했다.기능도 한층 다양해졌다. 집 주인이 집을 비웠을 때 로봇청소기가 전면에 탑재한 전용카메라를 통해 집안 모니터링을 하다가 동작을 감지하면 사진을 촬영해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전송해 주는 ‘홈 가드(Home Guard)’ 기능으로 보안성을 강화했다.또 생활가전 에너지 사용량 모니터링 기능, 생활에 유용한모드(외출·귀가·휴가·장보기·취침·휴식)별 통합 상황제어 기능 등을 적용했다. LG전자 역시 삼성전자처럼 올조인(AllJoyn) 등 글로벌 스마트홈 플랫폼 업체들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개방형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다.스마트홈 대중화를 향한 노력은 전자 업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주거환경을 만드는 건설 업계도 이 시장에 관심이 많다. 현대건설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대기전력 자동 차단 절전형 콘센트’는 무선 제어가 가능한 콘센트다. 거주자가 가전제품을 사용할 땐 전원을 공급하지만 사용을 끝내면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해 각 가정에서 전기 사용량의 10~20%를 절감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의 전자제품 리모컨으로 전원을 켜거나 끌 수있어 사용자가 편리한 스마트홈 시스템이다. 현대건설은 서울반포힐스테이트 등의 아파트 단지에 적용한 이 기술을 앞으로 시공하는 모든 힐스테이트 단지에도 쓸 계획이다.현대건설은 스위치를 껐다가 켰다가 하지 않아도 되는 지하주차장 조명 시스템 ‘그린-아이티(Green-IT) 시스템’도 인천검단2차 힐스테이트 등에 적용 중이다. 이 시스템은 지하주차장 조명을 차와 사람이 감지된 구역에서는 100% 밝기로, 인근구역 밝기는 40~60%로, 이용자가 없는 구역의 밝기는 5~10%로 알아서 제어한다. 기존 형광등보다 약 60%의 전기료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1~2년 전부터 견본주택을 통해 스마트홈 시스템이 도입된 아파트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며 “관리비 절감 효과에다, 입주자가 중시하는 보안성 강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예비 입주자들에게서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이처럼 건설 업계에서도 스마트홈 대중화 바람이 불고 있다. 한동안 친환경 아파트 건설 바람이 불었던 건설 업계의 최신 트렌드다. 대우건설은 올해 분양한 서울 용산 푸르지오 써밋 등의 아파트 단지마다 ‘스마트 도어 카메라’를 장착했다. 기존의 디지털 도어록과는 별도로 설치된 카메라가 문 앞의 사람을 감지해 작동하는 스마트홈 시스템이다. 허현 대우건설 과장은 “협력사가 납품하는 카메라로 보안성 강화에 나서고 있다”며 “고가 자산인 아파트에 스마트홈 시스템이 탑재됐다는 이유 하나로 (예비 입주자들이) 입주를 선택하지는 않지만, 이런 작은 부분에까지 신경을 쓰는 건설사라는 이미지가 생겨 영업에도 그만큼 탄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중견·중소기업에도 ‘스마트홈’은 기회리홈쿠첸·코맥스 등 기존 사업 노하우에 신기술 접목
TV나 냉장고 같은 대형 가전에만 스마트홈 기술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밥솥이나 비디오폰 등 대기업보다는 중견·중소기업들이 잘 파고드는 가전 업계 ‘틈새시장’에서야말로 스마트홈 열풍을 새로운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전기밥솥 등 생활가전을 전문으로 만드는 리홈쿠첸은 지난해 2월 국내 최초 근거리무선통신(NFC) 기술을 탑재한 ‘스마트 NFC 밥솥’을 출시했다. NFC는 두 단말기가 10㎝ 이내 거리에서 무선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술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원하는 요리를 선택한 다음 밥솥에 접촉하면 자동으로 취사가 시작된다. 제품이 고장 났을 경우 알아서 점검해 스마트폰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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