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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다양한 옵션 마련하고 확률 따라 행동 

영화 <골!>의 ‘혼합전략’ 비즈니스에서도 동일한 패턴 반복 말아야 

박용삼 KAIST 경영공학 박사

올해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는 단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었다. 전 세계 축구 팬들 중 누군가에는 허탈함으로, 누군가에는 분노로, 또 누군가에는 영광으로 기억될 것이다. 월드컵 시즌만 되면 축구 영화를 떠올리게 되는데 단연 최고는 2005년 개봉한 영화 <골!(Goal!)>이다. 주인공 산티아고 뮤네즈(쿠노 베커)는 열 살 때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불법 이민자이다. 미국 국경을 넘을 때 수중에 가지고 있던 것은 단 두 가지, 축구공과 낡은 월드컵 사진 뿐. 그만큼 축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LA에 정착한 가난한 이민자 신분으로 먹고 살기 급급한 처지이지만, 틈틈이 축구 연습을 하며 실력을 키워 나간다.

어느 날 행운이 찾아온다. 전직 프로축구 선수였다가 부상으로 은퇴한 글렌 포이(스테펀 딜런)의 눈에 우연히 띄게 된 것. 그의 도움으로 산티아고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 팀인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을 기회를 얻는다.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할머니가 몰래 마련해 준 돈으로 간신히 비행기표를 구해서 도착한 잉글랜드. 하지만 골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동료들의 텃세 때문에 산티아고는 입단 데뷔전을 망치고 마는데???.

축구 경기에서 최고의 스릴은 승부차기이다. 90분의 전·후반과 30분의 연장전을 통해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을 때, 각 팀에서 5명이 키커로 나와 골키퍼와 일대일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키커와 골키퍼 모두 피가 마른다. 사실 승부차기는 이론상 키커가 이기는 싸움이다. 볼을 차는 지점과 골대와의 거리는 11m, 키커의 발을 떠난 볼이 골라인에 도달하는 시간은 대략 0.4초다. 그런데 골키퍼가 공의 움직임을 보고 몸을 날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0.6초. 따라서 제대로 차기만 한다면 득점 성공률이 100%가 돼야 한다. 그런데도 월드컵 승부차기 성공률은 70%대에 머문다.

축구의 승부차기에서도 혼합전략이 유리

심리전이기 때문이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의 환호와 야유, 같은 팀 동료와 상대팀 선수들의 노려보는 시선, 그리고 전 세계 시청자들의 엇갈리는 주문. 성공하면 영웅이고 실패하면 역적이다. 오죽하면 승부차기를 ‘11m의 러시안 룰렛’이라고 할까. 그래서 키커들은 가급적 땅볼로 차는 걸 선호한다. 크로스바를 넘기는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골키퍼는 웬만하면 좌우로 다이빙을 한다. 중앙에 가만히 서 있으면 무성의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키커든 골키퍼든 주변의 시선과 실패에 대한 중압감으로 인해 스스로 최적 행동에서 멀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승부차기에 임했을 때 어떤 전략이 가장 좋을까?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슛이나 점프 방향을 정하는 것은 어리석다. 대신 가능한 옵션들에 대해 미리 확률을 정해 놓고 여기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최적이다. 게임이론에서는 이를 ‘혼합전략(Mixed strategy)’이라고 부른다. 이와 달리 몇 개의 선택 옵션 중 하나만을 골라 실행하는 전략은 ‘순수전략(Pure strategy)’이라고 한다. 가위 바위 보를 할 때 줄곧 한 가지만 내는 사람은 멍청한 사람이고, 랜덤하게 아무거나 내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이다. 대부분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또 상대의 과거 전략이 어땠는가에 따라 가위 바위 보를 어떤 비율로 낼지에 대해 생각을 하고 게임에 임한다. 혼합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프로축구 리그에서는 선수들이 승부차기를 할 때 암묵적으로 혼합전략을 택한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유럽 프로축구 선수들의 300여건의 승부차기 데이터를 분석해 봤더니 골키퍼의 점프 방향은 (골키퍼 쪽에서 봤을 때) 왼쪽, 중간, 오른쪽이 각각 49%, 6%, 45%였고, 키커의 슛 방향은 (키커 쪽에서 봤을 때) 왼쪽, 중간, 오른쪽이 각각 39%, 29%, 32%였다. 그 결과로 나타난 최종적인 슛 성공률은 약 85%, 월드컵 경기에서보다 훨씬 높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즉흥적으로 슛을 하는 것보다는 사전에 정해놓은 확률에 따라 혼합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한결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가 전략도 요긴하지만 매번 되풀이해서야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강아지는 카드게임을 잘하지 못한다’는 유머가 있다. 왜냐고? 좋은 패가 들어오면 꼬리를 흔들기 때문이란다. 비즈니스 협상에서 강아지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자신의 패를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가 필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한 방향으로 고지식하게 행동하지 말고 때로는 강하게 밀어 붙이고 때로는 순순히 물러서는 것과 같은 유연함을 발휘해야 한다. 즉, 몇 가지 전략 옵션을 놓고 혼합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전략적 치밀함을 높임과 동시에 상대방의 예측가능성을 저하시켜 결과적으로 내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조선이나 화공, 발전 플랜트 등 해외 수주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산업의 최근 실적이 매우 저조하다. 매번 지적되는 얘기지만 주된 이유는 저가 수주 때문이다. 수주를 딴 후에 몇 년 간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 봤자 결국 남는 거 없이 손해라는 얘기다. 물론 해외 수주 실적이 다음 번 수주의 레퍼런스가 되기 때문에 때로는 저가 수주, 출혈 수주도 필요한 전략이다. 하지만 한국 업체들끼리 매번 동일한 패턴이 이어졌다는데 문제가 있다. 더군다나 중국 업체들까지 같은 전략을 들고 나온 마당에 기존의 수주 전략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상황에 따라 가격, 품질, 부대 사업, 운영권 등을 변수로 혼합전략을 짜 내는 것이 한가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자, 다시 영화 이야기. 데뷔전을 망친 산티아고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갈등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의 급작스런 사망 소식까지 듣는다. 하지만 평생을 키워온 꿈을 저버릴 수는 없다. 산티아고는 이를 악물고 다시 연습에 몰두한다. 지성이면 감천. 드디어 숙적 리버풀과의 시합에 출전하게 되고 2:2 마지막 프리킥 찬스에서 멋지게 골을 성공시킨다. 경기가 끝난 후 그동안 자신을 미워하는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가 생전에 TV 중계를 보면서 열심히 응원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버지와도 화해하게 된다. 영화에는 지네딘 지단이나 데이비드 베컴 같은 축구계의 별들이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풍성한 볼거리가 담겨 있다. 영화의 흥행과 전 세계적 축구 열풍에 힘입어 골!2(2007)와 골!3(2009)이 연속으로 제작됐다. 이들 속편에 대한 관객들의 평은 100% 일치한다. 전편 만한 속편은 결코 없다는 것.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우승국 독일은 승부차기 최강국이기도 하다. 1982(준결승)·1986(8강전)·1990(8강전)·2006(8강전) 월드컵에서 승부차기를 모두 이겼다. 이들 경기에서 도합 18번의 승부차기 슈팅 중에 무려 17번을 성공시켰다. 동서 통일의 위업, 수백 개의 히든챔피언 기업들, 유럽연합의 중심 역할에 이어 승부차기까지. 이래저래 독일은 배울 점이 참 많은 나라다.

박용삼 - KAIST 경영공학 박사로 포스코경영연구소 산업전략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정보통신 기술정책 수립 업무를 맡았다. 포스코에서 10년 넘게 신사업·신기술 투자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1262호 (201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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