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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김태완의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⑤ - 도시 디자인의 중심은 사람 

삶의 질 높이는 도시 계획이 기본 … 인위적인 부분 없애고 자연스러움 살려야 

김태완 ‘완에디’ 디자인컨설팅 대표

지난 10월 12일 오후 서울역 고가도로가 44년 만에 보행자 전용도로로 일시 개방됐다. 서울시는 안전도 D등급을 받아 철거 대상이었던 이 도로를 2016년까지 미국 뉴욕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와 같은 ‘공중정원’으로 새롭게 조성하기로 했다.
도시 기능이 복잡해지고 미의 기준이 높아지면서 도시 디자인도 빠르게 변화한다. 도시 디자인은 도시 경관을 개선하고 도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도시 계획이 기본이다. 국내에도 몇 해 전부터 각종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은 매뉴얼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예가 간판 정비와 가로등··벤치 같은 공공 시설물의 교체다. 하지만 그보다 도시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디자인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게 선행돼야 한다.

어느 도시나 가장 중요한 건 건물도 자동차도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을 위한 도시가 돼야 하며 디자인은 이런 도시를 만들기 위한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뉴욕시의 도시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끈 아만다 버든(Amanda Burden)은 “도시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먼저다. 그리고 사람들이 움직이고 만나는 공공의 공간(Public Space)이 중요하다. 이 공간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삶을 변화시키도록 하는 힘이 있고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디자인은 단순히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개인의 특별한 경험에 기초를 두고 있다”며 도시 디자인의 외적인 의미보다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역할을 강조했다.

아만다 버든은 동물 행동 심리학자였지만 도시 내 공공의 공간에 대한 프로젝트를 계속하면서 도시 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2002년부터 11년 간 뉴욕시의 도시 계획 책임자로 일할 때 시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계획을 수립했다. 일시적인 도시 경제 부흥보다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의 가치를 내세워 공원 조성과 카페의 야외 테라스 허용 같은 공공 공간을 창조하는데 성공했다. 대형 쇼핑몰을 건설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공간으로 이용하자는 도시 개발자들의 주장을 마다하고 끝까지 관철한 공공의 공간은 오늘날 뉴욕의 ‘하이 라인(HighLine)’ 공원으로 조성돼 뉴욕 시민들의 쾌적한 생활을 빛내고 있다. 하이 라인은 공중에 철로가 있던 곳을 허물지 않고 공원으로 조성해 하늘을 걷는 느낌을 갖게 한 도시 공원이다.

공중의 철로 허물지 않고 공원으로 조성

도시 내 공원은 사람으로 치면 폐에 해당한다. 도시 사람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기관이나 마찬가지다. 공원은 고층 빌딩 숲 속 삭막한 도시에서 살면서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안식처이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로움 속에 건강한 에너지를 얻는 곳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사람과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짙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해야 한다. 이때 가장 자연스럽게 다가가야 하는 게 도시 디자인의 역할이다. 어찌 보면 디자인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역으로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해 인위적인 부분을 없애는 게 도시 디자인의 핵심이다.

서울에도 크고 작은 공원들이 있다. 20여년 전 서울의 중심부인 용산 미군 골프장 부지를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와 서울시의 계획이 나왔을 때만 해도 “서울에도 영국의 하이드 파크와 같은 공원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공원 부지에 덜컹 박물관을 건축하면서 공원 면적은 반 이상 줄었다. 대신 보도 블록만 잔뜩 깔린 넓은 광장과 주차장이 만들어졌다. 물론 박물관도 역사와 문화를 보전하는 의미에서 중요하지만 도시 공원을 위한 자리에 만들어진 건 지금까지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때로는 도시 디자인이 특정한 목적에 의해 계획되는 경우도 있다. 낙후된 공장이 도시에서 사라지면서 생긴 빈 공간을 쓸모없는 공간에서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시키는 것도 요즘 도시 디자인의 핵심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그렇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벌써 다섯 번째 다녀왔다. 갈 때마다 미술관 자체가 뿜어내는 에너지와 빌바오 도시와의 조화가 잘 맞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빌바오는 15세기부터 조선업을 비롯한 철강산업의 메카였던 곳이다.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도시의 기능이 상실됐고 황폐한 터만 남게 될 상황이었다.

이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1991년 빌바오시와 주민들은 다시 일어설 유일한 방법은 문화산업이라고 판단했다. 7년에 걸쳐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에 의뢰해 구겐하임 미술관을 완공했다. 뉴욕의 핫 플레이스인 첼시 마켓도 낡고 오래된 과자 공장을 리뉴얼해서 대형 식품 매장으로 만든 도시 디자인의 대표 사례다. 낡은 공장의 구조와 분위기가 독특해 관광객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리는 명소다. 당연히 뉴욕 시민들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디자인 도시는 하루 아침에 꿈같이 펼쳐질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매뉴얼에 의존해 획일적으로 바꾼다고 해서 성공적인 디자인 도시가 되는 건 더더욱 아니다. 2010년 서울시가 ‘세계 디자인 수도(World Design Capital) 서울’이라는 표어로 대대적인 홍보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서울시의 맨홀 뚜껑이 교체되고 정류장의 판매대가 허름한 모습에서 새롭게 변신했다.

일부 지역의 휴지통이 깔끔하게 바뀌었고 미디어 폴이 설치돼 IT 강국이라는 위용을 과시했다. 이것 말고도 당시 서울은 작고 큰 변화를 맞았다. 하지만 디자인 도시라는 타이틀은 얼마안 돼 금세 잊혀졌고 일부 시민들은 “서울시가 도대체 뭘 한 건지 모르겠다”며 혹평을 하기도 했다.

폐허 빌바오시 되살린 구겐하임 미술관

최근 경기도 광명시가 한국디자인진흥원(KIDP)과 디자인 도시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했다. 광명시를 국제 디자인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이 가진 디자인 정책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보기에도 좋고 기능성도 뛰어난 변화를 주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다. 업무 협약 이후 공공 디자인 협의체를 구성하고 경관 계획과 공공 디자인 가이드 라인을 만든다고 한다.

도시 디자인을 정립하는 전문가들은 시민들이 디자인 도시에 살면서 직접 혜택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 미의 기준을 높이고 삶의 질도 높아질 수 있도록 말이다. 사실 자연은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실제 많은 디자이너가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 프랑스 제품 디자이너 필립 스탁은 레몬 착즙기인 ‘쥬시 살리프(Juicy Salif)’를 오징어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도 빛의 교회, 물의 교회 등 자연과 최대한 가까운 콘셉트를 살려 최고의 건축가 반열에 올랐다.

도시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서는 사람과의 소통이 기본이다. 그리고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저 디자인을 하니까 도시가 좋아지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섣불리 시작했다가는 오히려 도시에 혼란만 주고 얻는 게 없을 수 있다. 도시 디자인의 시작은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안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라면 가장 자연스러운 도시가 되지 않을까 한다.

김태완: ‘완에디’ 디자인컨설팅 대표. 미국 브리검영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영국 왕립예술학교(RCA)에서 디자인 석사를 받았다. 자동차·항공기를 디자인하는 영국 IAD(후에 대우 워딩연구소)에서 일하다 이탈리아 피아트로 옮겨 친퀘첸토(피아트500)의 컨셉트 모델을 디자인했다. 이후 한국GM 디자인 총괄 부사장을 지냈다. wanedesign@gmail.com

1263호 (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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