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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은근히 ‘자랑질’하는 셀카족의 심리 

제품 아닌 경험을 과시 고급스러운 소품 판매 급증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네가 휴가를 갔어도 인증샷이 없으면 간 게 아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통하는 방식이 보편화하면서 ‘사진 찍기’는 일상이 됐다. 이미지로 소통하는 시대에 인증샷을 남기지 않으면 본 것도 경험한 것도 아니다. 올해 하반기 혜성 같이 등장한 셀카봉도 좀 더 손쉽게 내 모습을 담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은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모습을 직접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로 정의되는 ‘셀피(selfie)’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수시로 자신의 삶을 찍어 올리며 타인에게 중계하는, 그야말로 셀카족 전성시대다.

셀카 찍는 행동은 그 자체로는 아주 사소할 수 있지만, 사실 사람들의 소비패턴을 완전히 바꿔놓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셀카는 사람들의 과시 행동 자체를 변화시킨다. 베블렌은 사람들이 자신이 값을 치를 수 있는 범위 밖의 제품을 무리해서 구매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행동을 ‘과시 소비’라 명명했다. 베블렌의 설명에 따르면 무도회는 가장 사치스럽고 낭비적이며 과시적인 재화였다. 이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자면 월급에 비해 비싼 자동차를 구매하고, 품질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명품을 구매하며 자신의 ‘부유함’을 과시하는 것과 비슷하다.

스마트폰·SNS 열풍에 셀카족 전성시대

셀카를 찍는 사람들은 이런 ‘과시’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 대놓고 하는 직접적인 과시보다는 은밀한 과시를 즐긴다. 예를 들어 멋진 자동차를 구매했을 때 예전에는 자동차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찍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밤늦은 시각 드라이빙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마치 파파라치가 촬영한 것처럼 찍어 SNS에 올린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자동차의 브랜드를 유추할 수 있는 로고나 상징적인 컬러가 셀카의 배경으로 아주 조금 노출돼야 한다는 점이다. 무심하게 자랑하는 신종 ‘자랑질’ 방법이다.

SNS에 올리는 셀카는 행복한 순간을 단면으로 잡아야 하므로 마치 영화의 미장센처럼 완벽하게 연출돼야 한다. 가령 어느 주부가 친구들을 초대한 작은 모임을 열었다고 가정해보자. 예전에는 맛있는 요리가 담긴 접시를 사진마다 하나 가득 담았다. 하지만 요즘 셀카는 다르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전체 장면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찍힌다. 집주인이 신경 써서 꾸며놓은 작은 소품이나 주인장의 센스를 엿볼 수 있는 액자가 사진의 배경으로 등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콘셉트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셀카놀이 덕분에 사람들이 과시하는 제품도 덩달아 변하고 있다. 크기가 크고 값비싼 제품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장면을 하나하나를 연출하며 최대한 자연스러운 사진을 추구하기 때문에, 나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고 수시로 교체할 수 있는 작은 소품이 오히려 인기를 끈다. 몇 년째 이어지는 경기 침체로 럭셔리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가방의 매출은 줄어들었는데, 이에 비해 향초, 디퓨져, 명품 브랜드의 팔찌처럼 고급스러운 소품 판매는 오히려 증가한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유명 브랜드의 소품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고른 이의 안목까지 과시할 수 있어 제격이다.

좀 더 나아가 셀카를 찍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떤 좋은 경험을 했는지를 기록하는 ‘경험의 과시’가 더 중요해진다. 한 번 구매하면 교체할 때까지 반복해서 찍기가 민망한 ‘제품’과 달리 ‘경험’은 매 순간이 달라지므로 셀카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여름에 방문한 락 페스티벌, 아이들과 함께 간 체험학습, 회사에서 나간 자원봉사까지 다양한 경험을 사진으로 남기면서 자신의 경험을 과시한다. 사야 할 것들로 빼곡하던 ‘위시 리스트’가, 경험해야 할 것으로 가득 찬 ‘버킷 리스트’로 교체되는 순간이다.

안목 자랑할 작은 소품 판매 늘어

뭐든 기록으로 남기고 모든 제품과 경험을 셀카의 배경으로 삼는 신종 자랑질 방법이 보편화하면서, 기업도 이에 적합한 대응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셀카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화면을 채우고자 한다는 점이다. 즉, 과거처럼 하나의 브랜드에서 웬만한 것을 모두 구매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A브랜드에서 하나를 사고, B브랜드에서 다른 것을 구매해 자신만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안목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여러 회사·브랜드·라인을 넘나들며 자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여기는 형태로 제품군을 ‘편집’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포괄적인 라인 상품보다 각 브랜드별로 '스타 상품’을 내세우는 전략이 훨씬 더 유용할 수 있다.

그동안 기업이 신경 쓰지 않았던 사소한 영역에 새롭게 눈을 돌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셀카족에게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침실이나 욕실 같은 사적인 공간도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집안 구석구석을 노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제품 영역이 새롭게 부상 할 수도 있다. 맛있는 요리를 담은 그릇 브랜드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무심하게 않게 놓여있는 테이블웨어와 작은 꽃 한 송이까지 신경 쓰는 사람들이란 의미다. 작은 자랑질로만 여겨지던 ‘셀카찍는 문화’가 산업 전반의 무게중심을 흔들 만큼 큰 파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전미영 -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수석연구원.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트렌드차이나>로 중국인의 소비 행태를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산업과 연계하는 컨설팅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1267호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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