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막 오른 대기업 상반기 공채 - 無스펙에 역사·인문학·이공계 중시 

채용 축소에 ‘장수생’ 증가로 취업문 더 좁아져 … 금융권 채용 한파 여전 


▎사진:뉴시스
올 상반기 대기업 공채의 막이 올랐다. 올해 채용 규모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불확실성의 여파로 예년에 비해 더욱 줄 것으로 보인다. 잡코리아 좋은일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75개 기업이 대졸 신입직원을 선발하는데, 예상 채용인원은 1만4029명으로 지난해(1만5610명)보다 10.1% 감소할 추산이다. 316개 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올해 대졸 신규 공채를 진행할 것이라고 답한 기업은 55.4%에 불과했다. 24.4%는 신규 채용 계획이 아예 없었다. 이런 가운데 취업 장수생 누적으로 구직자 수는 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여 취업난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특히 올해는 지원자의 인문학적 소양과 역사·한자 등 폭넓은 역량을 요구하는 곳이 많아 취업 준비생들의 철저한 준비와 차별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이번 공채 시즌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삼성그룹이다. 삼성그룹은 올해 상반기까지만 기존의 전형을 유지하고, 하반기에는 대폭 변경한다. 지금까지는 영어·학점 기준만 만족하면 ‘삼성고시’라 불리는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누구나 볼 수 있었던 데 비해, 하반기부터는 직무에세이 평가 등을 새로 도입해 이를 통과한 지원자만 치르게 할 계획이다. 때문에 기존의 익숙한 전형으로 채용심사를 거치려는 지원자들이 몰려 삼성의 상반기 공채는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보일 전망이다. 채용규모도 예년의 4500~5000명보다 10~20% 줄어든 4000명 안팎에 불과하다. 지난해 하반기 SSAT 지원자는 10만명에 달했다. 여기에 삼성전자 등 대다수 제조 계열사들의 경우 최대 90% 안팎을 이공계 출신으로 뽑을 계획이다. 삼성증권 등 일부 금융계열사는 상반기에 신입사원을 뽑지 않을 방침이라 인문·상경계 출신은 더욱 상황이 어려워졌다. 다만 지방대 35%, 여성 30%, 저소득층 5% 이상 채용은 유지하기로 했다. 삼성은 3월 20일까지 원서접수를 받고, 4월 12일 SSAT를 치를 계획이다. 올해 SSAT는 인문학적 지식, 특히 한국사와 세계사 등 역사 문항 비중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지난해 삼성전자 제품이나 서비스 등을 묻는 문제가 다수 출제됐던 점도 참고해야 한다.

무자격 SSAT 올해가 마지막, 취준생 몰릴 듯


현대자동차는 올해 대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7500명(생산직 포함 950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지난해보다도 400명 정도 늘린 규모다. 대기업 가운데 올해 채용인원을 늘린 곳은 현대차와 롯데그룹 두 곳뿐이다. 현대차는 여타 기업보다도 역사·논술을 중시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역사 에세이를 써야 한다. 대신 서류전형에서 동아리·봉사활동란을 없애는 등 요구 스펙은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회사의 글로벌 전략과 발맞춰 이와 관련한 과제를 내는 한편 면접 영어회화 평가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번 공채에는 이공계 출신만 지원할 수 있다.

SK그룹은 지난해보다 소폭 줄어든 800명 안팎의 신입사원을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SK는 채용시장의 무스펙 바람에 발맞춰 서류에 외국어 성적과 IT활용능력, 해외연수 경험, 수상 경력, 업무 경험, 논문 등을 제외키로 했다. 지원자의 사진도 받지 않기로 했다. 또 스펙 없는 인턴사원을 선발하는 ‘바이킹 챌린지’ 비중을 2배 확대, 전체 채용인원의 20%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SK그룹 역량평가시험인 SKCT에도 한국사 10문항을 출제해 역사적 소양도 물어볼 방침이다. LG그룹은 전자·화학·이노텍·하우시스·유플러스 등 계열사의 신입 공채를 개시했다. LG의 올해 전체 채용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한 2000명 수준. LG는 최대 3개 계열사까지 중복 지원할 수 있도록 해 지원자의 선택과 기회의 폭을 넓혀줬다. 또 인문학 강화의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LG 적성검사인 LG웨이핏테스트에 한자와 한국사 문제 20문항을 포함시켰고, 이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밖에 GS그룹은 계열사별로 공채를 진행하는데 전체적으로 400명 가량을 뽑을 계획이다. 롯데그룹은 지난해보다 100명 늘린 1000명을 올 상반기에 선발할 예정이며, 한진그룹은 지난해보다 250명 정도 줄어든 총 2748명(생산직 포함)을 채용한다. 오는 13일부터 전형을 시작하는 CJ그룹은 지난해와 비슷한 채용 규모를 유지할 전망이다. 포스코는 지난해와 비슷한 3000여명의 신입사원(생산직 포함)을 선발하고, 최근 인원을 감축한 현대중공업은 650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할 방침이다. 지난해 상반기 공채를 돌연 취소했던 KT는 3월 중순 이후 구체적인 채용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올해도 갈 곳 없는 인문계

다수의 대기업이 상반기 공채에서 이공계 출신 위주로 뽑기로 하면서, 인문·상경계 출신 지원자들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은행·보험·증권 등 금융업종이 이들을 소화해줬으나, 올해는 채용 규모를 줄일 전망이라 취업문은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매년 200~300명의 신입 행원을 뽑아 온 KB국민은행은 지난해보다 채용 규모를 소폭 줄일 전망이다. 올해는 경영진 교체와 희망퇴직 등 내부 경영상의 문제로 채용을 늘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해 상반기 100명을 뽑았던 신한은행도 아직 구체적인 채용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개인 금융 서비스직군을 100명 채용할 계획이며, 기업은행은 2013년 수준인 400명 안팎을 채용할 예정이다. 하나·외환은행은 통합 여파로 사실상 신규 채용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 역시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창의적 사고와 인문학적 통섭 역량, 국사와 논술 등을 중점 평가 대상으로 꼽고 있어 지원자는 이에 맞는 준비가 필요하다.

경기 악화와 투자심리 부진으로 최악의 경영 한파를 겪고 있는 증권업종도 신규 채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형 증권사 10곳 가운데 올해 상반기 대졸 신입 채용를 진행하는 곳은 한국투자증권이 유일하다. 그나마 지점텔러 업무를 담당하는 6급 계약직 사원이다. 지난해 하반기 인력을 소폭 충원한 KDB대우증권·하나대투증권·미래에셋증권은 새로 직원을 채용하지 않기로 했고, 신한금융투자와 현대증권도 신규 채용 계획을 잡지 않았다. 증권사들은 업황이 좋지 않아 경영여건에 따라 하반기 채용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의 경영실적이 턴어라운드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위기 인식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 전체적으로 인력 감축과 지점 통합 등 긴축 경영이 진행되며, 지난해 국내 58개 증권사 직원 수는 3만6561명으로 전년 대비 11% 이상 감소한 상태다.

1277호 (2015.03.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