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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이 맞는 게 중요하다
벤처의 장점, 탄력적인 사업 방향 전환이들은 2005년 2월 ‘유튜브닷컴(Youtube.com)’도메인을 사들였다. 당신 또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유(You)’와 텔레비전을 의미하는 ‘튜브(Tube)’를 결합해 모든 사람이 시청자 겸 제작자라는 걸 강조했다. 같은 해 5월에 베타 사이트를 열었지만 그다지 사용자는 늘지 않았다. 하지만 유튜브 사용자들이 다른 사이트에 유튜브 콘텐트를 얼마든지 퍼 나를 수 있도록 허용했다. 로그인하지 않고도 링크를 통해 누구나 영상을 볼 수 있게 했다. 이 결정으로 유튜브는 급성장한다. 사용자들은 다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동영상을 퍼뜨렸다. 동영상 유통을 허용하자 별도의 마케팅도 필요 없었다. 늘 동영상에 유튜브 마크와 링크 주소가 따라다녔기 때문이다.그 무렵 채드와 스티브가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했다는 소문이 페이팔 마피아 사이에 퍼졌다. 페이팔 이사였던 키스 보아가 유튜브 소식을 로엘로프 보다에게 이메일로 알렸다. 맥킨지 출신인 로엘로프는 페이팔 CFO(최고재무이사)로 페이팔 상장과 이베이 매각을 추진한 바 있다. 이듬해 그는 실리콘 밸리 대표 벤처캐피털인 ‘세쿼이아 캐피탈’에 파트너로 합류했다. 그 해 11월 로엘로프의 추진 아래 세쿼이아 캐피탈이 시리즈A(첫 번째 투자 라운드를 일컫는 투자용어)로 유튜브에 35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 돈은 서버와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데 쓰였다. 사무실도 차고에서 일식당 위 2층 사무실로 옮겼다. 다음달 직원이 20명으로 늘었고, 유튜브 사이트가 대중에게 정식 공개됐다. 회원 수가 늘면서 유튜브는 서버 비용으로만 월 1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해야 했다. 세퀘이아 캐피탈은 아르티스 벤쳐스와 함께 800만 달러의 시리즈B(2차 투자)를 단행했다. 세퀘이아 캐피탈이 투자한 회사라는 소식이 퍼지면서 유튜브는 관심의 대상이 됐다.직원이 30명이던 유튜브는 하루 조회수 1억 건를 넘기며 떠오르는 별이 됐다. 날이 갈수록 관심은 높아졌다. 한 시간에 전화가 무려 260통씩 걸려오는가 하면 일주일에 인터뷰 요청만 400건이 넘었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되어 유투브의 영향력은 기존의 미디어 대기업들과 맞먹는 수준이 됐다. 하지만 일이 너무 많아지자 직원 모두가 한계를 느꼈다. 해외 진출, 모바일 서비스 시작 등으로 하루 24시간 꼬박 일에 매달리는 직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직원들은 매주 100시간 이상 일했다. 데이터센터도 필요했고 서버와 인터넷 망도 확충해야 했다. 큰 기업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데 직원 모두가 공감했다.
구글 동영상팀을 압도한 정예 멤버유튜브는 세쿼이아캐피탈이 가진 네트워크에 힘입어 여러 곳에서 인수제안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구글과 야후를 저울질 한끝에 그들은 구글을 택했다. 공식 출시가 채 1년도 안 된 2006년 10월 구글은 유튜브를 16억5000만 달러(약 1조85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유튜브 직원 수는 70명이었다. 그 해 시사주간지 [타임]은 유튜브를 ‘올해 최고의 발명’으로 선정했다. 유투브가 구글에 인수될 때 기술책임자는 4명밖에 없었다. 그 4명이 세계에서 트래픽이 가장 많은 사이트를 구축하고 유지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직원 70명 대부분이 대학 중퇴생들이지만 고학력자로 구성된 구글 동영상팀을 제압했던 것이다. 현재 유튜브의 하루 동영상 검색 횟수는 수십억 회를 넘는다. 지난해 매출은 40억 달러를 넘었다. 오늘 날 유튜브는 구글과 페이스북 다음으로 많은 방문객을 보유한 사이트다.
홍익희- 배재대 교수. KOTRA 근무 32년 가운데 18년을 뉴욕·밀라노·마드리드 등 해외에서 보내며 유대인들을 눈여겨보았다. 유대인들의 경제사적 궤적을 추적한 [유대인 이야기] 등을 썼으며 최근에 [달러 이야기], [환율전쟁 이야기], [월가 이야기]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