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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카 스트랜드핼 스웨덴 보건사회부 사회보장장관 - “연금개혁에 남녀 간 차이 반영 계획” 

복지 줄인 우파연합 정권 잃어 ... 부모 휴직수당 국가가 내서 기업 부담 줄여 


▎사진:전민규 기자
‘복지 천국’ 스웨덴의 복지정책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바람직한 복지국가의 전형이나 다름없는 이 나라 역시 경제성장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해 7.5%였던 스웨덴 실업률은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평균 경제성장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치를 웃돈다.

2008년 불어닥친 세계 금융위기 한파에도 스웨덴은 독일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강인한 모습을 보였다. 1920년 창당 이후 60여년 간 장기 집권했던 사회민주당이 2006년 온건당 주도의 우파연합에 정권을 내준 데는 ‘복지나라’ 국민들의 성장에 대한 기대가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우익 집권 8년 만에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일한 만큼 복지 혜택을 주겠다(이코노미스트 1166호 참조)’고 공언한 덕에 경제 성장은 이어갔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우익 정권은 4차에 걸쳐 소득공제제도를 도입했다. 일하는 국민에게는 더 많은 세제 혜택을, 실업이나 병가로 인해 복지급여로 생활하는 국민에게는 지급률을 대폭 인하하는 정책을 펼쳤다. 더 많은 국민을, 더 빨리 노동 시장에 복귀하게 함으로써 복지병을 해소하고,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약자를 비인간적으로 대우하고, 사회 양극화를 조장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육·의료·양로요양 부문의 민영화가 확대되며 복지가 줄고, 주택가격과 가계부채가 증가한 것도 민심을 떠나게 했다.

다시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며 우파 주도의 친기업적 시장주의 강화와 복지 효율화 정책은 갈수록 힘을 잃어갔다. 결국 우파 정권은 우수한 경제성적표를 들고도 집권 8년 만인 지난해 말, 사회민주당에 정권을 내줘야 했다. 줄어든 복지 혜택으로 한 차례 쓴 맛을 본 스웨덴 국민들의 복지제도에 대한 열망은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지난해 보건사회부 사회보장장관으로 임명된 아니카 스트랜드핼(40) 장관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23일부터 나흘 간 빅토리아 스웨덴 왕세녀 내외와 함께 방한한 스트랜드핼 장관을 만나 스웨덴 복지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최근 복지정책이 어떻게 달라졌나?

“지난 몇 년 간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강조하고 싶은 점은 우리의 복지 모델이 공고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대해 복지와 남녀평등을 가장 먼저 떠올릴 만큼 강력한 복지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는 이미 1990년대에 조세·연금제도를 개혁해 현 복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스웨덴도 인구고령화 문제가 심각한데, 이를 고려한 연금제도 개선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한국도 연금개혁 논란이 한창이다. 스웨덴에선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스웨덴 연금개혁은 1995년에 이뤄진 후 20년 간 큰 변화가 없었다. 이와 달리 기대수명은 매년 1년씩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에도 정년은 1995년과 마찬가지로 65세다. 우리는 65세 이상이 일할 수 있도록 고용시장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한데, 여성은 남성보다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비중이 크다. 경제적 상황이나 연금 수준은 남성에 못 미치는데 여성들의 기대 수명은 더 길다. 연금을 받아야 할 기간도 그만큼 더 늘어난다. 앞으로 시도할 연금개혁은 이러한 남녀의 생태학적 차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하고, 세계에서 남녀 평등지수가 가장 높은 수준(OECD국가 2위)인 나라에서 복지 실현에 있어 남녀 간 차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연금제도는 성(性)에 중립적이나 연금은 평생 수입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는 점을 들고 싶다. 우리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남녀가 평등한 국가라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연금제도를 개혁하는데 있어서는 장기적인 관점의 남녀평등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성은 일생 동안 아이를 낳고, 남성에 비해 직장에 휴직이나 병가를 내는 날이 더 많다. 이런 특성 탓에 일하는 여성의 30%는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그결과 노후에 남성보다 30% 더 적은 연금을 받게 된다. 따라서 부모보험제도 등으로 그 차이를 줄이려 노력한다.”

부모보험제도가 얼마나 효과를 거뒀나?

“부모보험은 부모 휴가의 수당을 사회보험 비용에서 충당하는 제도다. 이때문에 고용주들이 직접적으로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 생후 1년 미만의 영유아에 대해서는 정부가 어린이집 지원을 하지 않는다. 대신 부모에게 480일간의 유급휴가를 제공해 아이를 가정에서 양육할 수 있게 했다. 480일 중 390일간은 부모 수입의 80%가 지급되고, 나머지 90일 간은 한달에 1800~29만5500크로나(약 25만~300만원)가 차등 지급된다. 부모의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지급 비용이 높다. 특히 약 16개월 중 2개월은 ‘아버지의 달’로 규정해 아버지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휴직기간이 2개월 삭감된다(어머니에게 양도 불가능). 이 정책을 시행하기 전까지는 육아휴직을 주로 여성만 사용했는데 아버지가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할 수 있게 한 다음부터는 남성 10명 중 9명이 육아휴직에 동참하게 됐다. 나 역시 11살, 6살 난 딸 둘을 키우는데 남편과 50대 50으로 기간을 나눠 육아휴직을 썼다.”

여성이 일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 복지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나?

“스웨덴에서는 일하지 않으면 세금을 내지 않으니 그만큼 보육 혜택이 줄어든다. 만약 부부 중 한 명만 일한다면 그들의 자녀에게는 아주 기초적인 보육 밖에 제공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부부가 모두 돈을 벌면 각각 많은 세금을 낸다. 정부는 그 세금을 거둔 만큼 국민에게 복지 혜택으로 되돌려준다. 기업으로서도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 인력이 일하지 않는 것은 손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부모로서 자녀 양육에 필요한 휴직 기간은 사회보장보험으로 동등하게 보장받을 수 있다. 각종 복지 혜택을 부부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식이 여성의 사회 진출과 복지 재원 마련에 도움이 된다.”

스웨덴 정부는 3월 20일 부모보험에 대한 세 번째 개선안을 내놨다. 이른바 ‘더 세련된 부모보험제도(A more modern parental insurance system)’다. 현 제도가 16개월의 육아휴직 기간 중 최소 2개월의 의무기간을 아버지에 부여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의 육아 부담이 남성에 비해 더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금까지는 부모에게 주어지는 480일의 육아휴직일 중 60일만 남성이 사용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부모가 각자 90일씩 사용하도록 규정해 남녀 차이를 줄일 계획이다. 제도를 이용하는 부모에게는 성 평등 보너스로 1만500크로나(약 135만원)를 지급하고, 육아휴직 수당 역시 7500크로나(약 96만원)를 추가로 받게 된다. 이번 개선안은 이르면 내년 1월 1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스트랜드핼 장관은 “부모보험을 비롯한 사회보장 보험과 연금제도의 목적은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데 있다”며 “국민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스웨덴 복지제도의 원칙”이라고 밝혔다.

1279호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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