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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임원에 오른 재계 3세들 - 아버지 그늘 벗어난 독자 행보가 관건 

김동관·박세창·유석훈 등 이름 올려 ... 이재용·정용진 부회장은 ‘그림자경영’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 /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 /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태양광 전문업체 한화큐셀은 지난 3월 4일 김동관(32) 한화큐셀 최고고객책임자(CCO·상무)를 사내이사로 선임했다고 공시했다. 김 상무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2010년 1월 한화에 입사해 한화솔라원 기획실장,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말 상무로 승진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박세창(40) 금호타이어 부사장은 3월 1일 아시아나애바카스 대표이사에 올랐다. 아시아나애바카스는 아시아나항공의 예약 발권 시스템을 담당하는 정보기술 회사다. 박 부사장은 3월 31일 금호타이어 대표이사로 선임됐지만 채권단의 반대로 이틀 만에 사임했다. 유진기업도 3월 27일 주주총회에서 유경선 회장의 장남 유석훈(33) 경영지원실 총괄부장을 등기임원으로 선임했다. 제지·펄프기업인 무림그룹 이동욱 회장의 장남인 이도균(37) 무림페이퍼 전략기획실장(전무)도 주총에서 무림페이퍼·무림SP· 무림P&P 등 3개 계열사의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영향력 커지는 이사회에 참석해 경영권 행사

그동안 일선 현장과 아버지 뒤에서 보좌했던 재계 3세들이 최근 주주총회에서 등기임원에 오르면서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그룹 내 입지를 다이는 동시에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분석했다. 재계 3세들이 등기임원에 오르는 것에 대해 기업들은 통상 ‘책임경영’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등기임원은 기업 경영 전반에 의사결정을 하고 그에 대한 법률적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등기임원은 등기이사·감사(위원회)·집행임원제로 구성된다. 그러나 자산 2조원 이상의 기업은 이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인 집행임원제는 자율적으로 선임하고 감사도 따로 뽑기 때문에 등기임원은 등기이사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재계에서는 3세들이 등기임원에 오르는 것에 대해 책임경영 말고도 다른 의미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사회의 권한 강화다. 등기임원과 비등기임원을 구분하는 기준은 이사회 참여 권한 유·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책임경영을 위한 측면도 있지만 2011년 상법 개정 이후 이사회에서 회사 경영의 중요한 안건들이 결정되고 있다”며 “이사회에 참석하려면 등기임원에 올라야 하기 때문에 기업을 키웠던 1, 2세대와 달리 앞으로 먹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3세들에겐 (이사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2년 4월에 시행된 상법 개정안에는 기업 재무제표와 배당 등을 주주총회에 회부하지 않고 의사회의 결의만으로 통과시킬 수 있도록 했다. 대한항공·한진해운·효성그룹·현대글로비스 등은 재무제표(이익배당)를 이사회 결의로 가능하도록 예외조항을 신설했다. 여기에 사외이사의 견제도 포함된다. 사외이사는 기업 경영 전반에 걸쳐 조언하는 역할로 상법 542조 8항에 따르면 사외이사는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회사의 경우 3명 이상으로 하되, 이사 총수의 과반수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전삼현 교수는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최근 자격 요건이나 책임론이 거세지면서 이들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과 달리 여전히 비등기임원인 3세도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2008년 삼성전자 전무 시절 일본 소니와 삼성전자의 TFT-LCD 제조 합작 법인인 S-LCD를 설립한 후 등기이사직에 오른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삼성 계열사 등기이사직에 오른 적은 단 한차례도 없다. 이재용 부회장과 사촌지간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2013년 3월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대표이사·등기이사 임기가 만료됐지만 재선임 안건으로 본인을 올리지 않는 방식으로 등기임원에서 물러났다. 재계 2위 기업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장남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기아차·현대제철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 6곳에 등기임원으로 올라 있는 것과 대조된다.

3세들이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비등기임원으로 있다는 것. 책임경영을 회피하려는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상인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의 경우 경영권 승계가 기정사실인데도 등기임원에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큰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연봉 공개 등과 같은 것에 부담을 느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등기임원에 대한 보수 현황이 공개됐다.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지난해 현대백화점(38억9700만원)과 현대그린푸드(6억700만원)에서 총 45억400만원의 보수를 챙겼다. 재계 3세들 가운데 ‘연봉킹’ 자리에 올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지난해 26억1500만원,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총 24억91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부터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등기임원 보수공개 의무화 제도를 시행키로 하면서다. 박상인 교수는 “연봉 공개가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이들은 속내는 가능한 노출을 피하고 싶은 의지가 더 클 것”이라며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리지 않아도 이들은 이미 기업의 대표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등기임원이란 자리가 이들에겐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3세들 등장, 기업 긍정적 영향 미칠 수도


재계에서는 앞으로 재계 3,4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나이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 김동관 한화큐엘 상무는 1983년생, 유진그룹 유석훈 경영지원실 총괄부장은 1982년생으로 30대 초반이다. 전삼현 교수는 “앞으로 3,4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나이는 갈수록 어려질 것”이라며 “조기 경영수업을 통해 이들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빠르게 경영에 참여해 실력을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이미 대내외적으로 인정 받은 3세도 있다.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는 2013년 한화큐셀의 전략마케팅실장 자리에 앉은 이후 적자였던 한화 큐셀을 1년여 만에 흑자로 돌려놨다. 이후 다시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복귀해 한화솔라원·큐셀의 통합을 주도했다.

3세들이 경영전면에 나서는 것이 기업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젊은 후계자에게 경영을 맡기는 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 산업 변화에 보다 민첩하게 대응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스크도 분명 있다. 등기이사로서 경영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경우 후계구도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다.

1280호 (20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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