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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 둘러싼 게임업계 동상이몽 - 살얼음판 같은 적과의 동침 

엔씨-넷마블 불안한 협력 관계 ... 느긋한 넥슨, 지분 매각 가능성 


▎(왼쪽부터) 김정주 넥슨 회장. 방준혁 넷마블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 사진:뉴시스
3월 27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엔씨소프트 판교사옥. 넥슨과 갈등 중인 엔씨소프트는 이날 주주총회에서 진땀을 뺐다. 넥슨과 소액주주들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부인인 윤송이 사장의 승진과 넷마블에 대한 3900억원의 투자에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1월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 참가’로 변경 공시하며 엔씨소프트 경영진을 압박하기 시작한 넥슨 측은 일단 김 대표 재선임에 찬성했다.

그러나 김정욱 넥슨코리아 전무는 이날 주총에서 “넷마블과 지분 교환을 통한 협업이 주주가치와 기업가치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며 “투자 결정과 관련한 설득력 있는 설명과 근거자료를 제공해 달라”고 말했다. 엔씨소프트는 2월 17일 모바일게임사 넷마블게임즈에 자사주 195만주(지분율 8.93%)를 3911억원에 매각하고, 넷마블 주식 2만9214주를 3803억원에 매입했다. 최대주주인 넥슨(15.08%)과 갈등이 한창인 시점에 이뤄진 지분 맞교환이었다. 결과적으로 엔씨소프트 입장에서 우호 지분을 늘린 모양새였다.

김택진 대표는 넷마블 관련 질문에 대해 “넷마블 지분 인수 가격은 적정했다”며 “넷마블은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회사로 매우 잘한 투자”라고 답했다. 또 윤 사장의 승진에 대해서는 “적자이던 북미 사업을 흑자로 돌려놨다”며 “모바일시장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자 사장으로 임명했다”고 설명했다. 부인과 동생(김택헌 전무) 등이 핵심 임원으로 참여하는 가족경영 방식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가족경영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주주총회에선 진땀 끝에 한숨 돌려


엔씨소프트는 넥슨의 파상 공세를 막아냈다. 그러나 긴장을 늦추기에는 아직 이르다.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1대 주주라는 점은 변함이 없고, 김정주 넥슨 회장의 속마음도 가늠하기 어렵다. 넥슨은 2차 공습을 앞두고 주변 환경과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씨소프트로서는 추가적인 대응책 마련과 더욱 많은 우군을 확보해야 안심할 수 있다. 경영권을 위협받고 있는 엔씨소프트,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넥슨,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넷마블. 동상이몽인 이들 기업의 노림수는 뭘까.

엔씨소프트는 꺼낼 수 있는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 일단 넷마블과의 지분스왑을 통해 18.88%의 의결권을 확보, 최대주주 넥슨(15.08%)을 앞선 점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김택진 대표의 지분율이 9.98%에 불과하다는 점은 여전히 불안 요소다. 스스로 많은 지분을 갖지 않고서는 언제든 기업 사냥꾼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일견 김 대표의 자금력은 막강해 보인다. 1조원대 주식 부자이고, 보유 현금도 넉넉하다. 지난 2012년 미국의 게임회사 일렉트로닉아츠(EA) 인수를 추진했을 때 자신이 보유한 엔씨소프트 지분을 넥슨에 넘겨 확보한 자금 8045억원이 아직 남아있다. 물론 이 지분 매각이 경영권 분쟁의 단초가 됐지만. 김 대표가 마음만 먹으면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사들여 넥슨과 지분 경쟁을 벌여볼 만도 하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넥슨의 유보 현금도 1조원이 넘고, 엔씨소프트 지분률은 김택진 대표보다 5% 이상 높다. 김택진 대표가 지분 경쟁을 벌이려면 넥슨보다 2배 이상의 현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서로 지분 매입 경쟁을 벌인다면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떨어지는 김 대표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 대표가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거나, 주주배당 유상증자를 단행하는 일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넷마블과의 연합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사실 넷마블로서는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싸움에 끼어들기 부담스러운 입장이었다. 엔씨소프트에서 김 대표는 막강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여기에 넥슨이 진검을 뽑았으니, 누군가의 편을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구나 넷마블은 과거 게임 공동 개발 및 퍼블리싱 문제로 엔씨소프트와는 관계가 껄끄러웠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지분 0.4%를 추가 매입하며 압박을 시작하자, 엔씨소프트는 급해졌다. 당시 김택진 대표는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이사회 의장과도 접촉했으나 협상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군이 절실했던 김 대표는 명분과 자금력을 갖춘 넷마블과 접촉했고, 다양한 당근책으로 넷마블의 협력을 이끌어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엔씨소프트는 2조원에 불과한 넷마블의 기업가치를 4조원으로 평가해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신주 2만9214주(9.8%)를 사들이는데 시장가치의 2배인 3800억원을 썼다. 황성진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넷마블 지분 인수가격의 적정성 여부에 대해서는 차후 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엔씨소프트는 또 넷마블과 지적재산권(IP) 사용계약까지 했다. 엔씨소프트는 그동안 IP는 핵심 자산이라며 대주주인 넥슨과도 공유하지 않았다. 엔씨소프트는 국내 게임업체 중 가장 높은 기술력을 가진 회사다.

엔씨-넷마블 개발 철학, 경영 스타일 딴판


그러나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의 관계가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점과 넷마블이 굳이 넥슨과 대치할 이유가 없다는 점, 그리고 이미 얻을 수 있는 것을 모두 얻었다는 점에서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의 밀월관계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해관계로 뭉친 사이라면 언제든지 다시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도 김택진 대표와 넥슨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주주 이익에 부합된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며 중립적 자세를 취했다. 엔씨소프트로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셈이다.

물론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이 협력관계를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안정적인 협업 체계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성과가 나온다면 넷마블로서도 엔씨소프트 경영진과 거리를 둘 이유가 없다. 그러나 중국 진출 등 글로벌 협력 사업의 성과가 미진하고, 혹시라도 마찰이 생길 경우 넷마블은 오히려 엔씨소프트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또 다른 적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엔씨소프트는 대작 중심의 PC 기반 게임을, 넷마블은 캐주얼 중심의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오는 등 두 회사의 개발 철학과 경영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엔씨소프트는 긴밀한 협력을 유지할 파트너가 절실하다. 아직 넷마블과의 협업이 초기 단계이지만 잠재적 우군을 미리 포섭하는 편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이런 회사로는 권혁빈 대표가 이끄는 스마일게이트가 가장 많이 거론된다.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1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규모 있는 회사로, 영업이익은 넥슨에 이어 업계 2위다. 스마일게이트는 현재 매출 대부분을 크로스파이어라는 게임으로 중국에서 올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수익 다변화를 위해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이 과정에서 MMORPG의 최강자인 엔씨소프트와 협력 체제를 구축 중이며, 두 회사의 관계도 새롭게 주목 받기 시작했다. 양사는 주력 분야나 시장에서 겹치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적잖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엔씨소프트는 자회사 엔트리브소프트 온라인사업부를 스마일게이트에 넘기는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한 대형 게임회사 관계자는 “자금력과 규모, 사업 의지 등을 따져봤을 때 엔씨소프트를 거들어 줄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그중에 스마일게이트는 MMORPG 분야가 취약해 엔씨소프트와 협력적 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넥슨의 경우 1차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지만 급할 건 없다. 엔씨소프트의 대주주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고, 자금력도 앞서기 때문에 주변 여건과 시기만 잘 고르면 언제든 다시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 일단 이번 주총에서 나온 발언과 결과를 종합하면 넥슨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여러 경영적 판단에 대해서는 날을 세우면서도, 대표이사 재선임 등 주요 안건에 대해서는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소액주주 등 의결권에서 우세를 점하면서 시기를 가늠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특히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최대 실적을 올린 덕에 경영 실패에 대해 날을 세우기도 어려웠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번 주총에서 경영 판단과 관련해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넥슨의 발언이 많지 않았을 뿐 경영 논란은 계속될 것”이라며 “앞으로 배당정책과 게임개발 등과 관련한 의견과 요구가 많이 제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中 텐센트, 엔씨 지분 살까?

일각에서는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정리하고 빠지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물론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매입 가격보다 20%가량 떨어져 손실이 불가피하고, 경영권 분쟁만 야기시키고 빠졌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넷마블의 참여로 당분간 경영권 획득이 어렵게 됐다면, 엔씨소프트 지분을 현금화시켜 다른 사업에 투자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만약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판다면 누가 관심을 보일까. 인수 후보로는 텐센트의 이름이 가장 많이 오르내린다. 아직 가능성에 불과한 이야기다. 하지만 텐센트의 한국 게임회사 사랑은 워낙 유별나고, 실제로 2000년대 중반부터 네시삼십삼분·파티게임즈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벌여왔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특히 텐센트는 이번에 엔씨소프트와 손을 잡은 넷마블의 3대 주주이기도 하며, 넥슨의 자회사 네오플이 개발한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중국 시장에 퍼블리싱하고 있다. 텐센트가 그동안 국내 게임 회사들에 눈독을 들여온 만큼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엔씨소프트에 욕심을 내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는 이유다.

1280호 (20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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