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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기간에 무상 수리는커녕 리퍼폰 쓰라니…하지만 공정위는 사실상 애플 편을 들었다. 박성용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장은 “지난해 7월 경실련이 약관 심사를 청구한 데 대해 공정위는 해당 약관이 국내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 심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올 3월 말 통지했다”고 말했다. 경실련이 제기한 애플 A/S 약관의 위법성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한국이 위법성 여부를 논하기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박 위원장은 “애플이 홈페이지에 한글로 수리 약관을 명기(明記)했음에도, 공정위는 일부 모호한 조항을 근거로 국내에서 적용되지 않는 약관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실제로 그간 애플 홈페이지(www.apple.com/kr)에서는 애플이 한국어로 A/S 약관을 표기한 부분이 보였지만 조항 중 약관 적용 국가들을 명기한 8항에서 대한민국은 교묘히 빠져 있었다. 한국어로 된 서비스는 하면서 약관 적용 국가에서 한국은 슬쩍 빼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이 부분이 경실련 측에서 문제를 제기한 ‘일부 모호한 조항’이다. 애플로서는 ‘해당 약관은 해외가 아닌 국내의 소비자와는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뒷짐 지고 한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경실련의 약관 심사 청구를 기각한 것 또한 이 같은 조항이 애매하다고 판단해서다. 대한민국이 약관에서 빠졌으니 약관 자체를 심사할 권리가 한국 정부에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경실련 관계자는 “애플은 오씨와의 법정 싸움이 있기 전과 달리, 해당 약관이 한국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소비자들에게 주장하고 있다”며 “또한 약관에 해당하는 ‘수리접수서’의 문구를 일부 변경하는 등의 방식으로 편법을 써가며 회사에만 유리한 수리 계약을 할 것을 소비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경실련 측이 받은 소비자 제보에 따르면 최근 애플의 수리접수서에는 ‘수리를 의뢰한 제품에 대해 Apple 진단 수리센터를 통해 수리가 진행되며, (약 3~4일 소요/휴일 제외) 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경우 수리가 거부될 수 있고, 수리가 진행되는 중에는 취소가 불가함을 안내받고 확인하였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소비자는 여기에 서명을 해야 수리를 접수할 수 있다. 이 수리접수서 내용 또한 오씨와의 법정 싸움에서 패소한 후 애플 측에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 김윤석(33)씨는 “고장 난 아이폰을 센터에 맡겼더니 유상 수리를 결정하면서 내가 수리를 받고 싶지 않아도 수리비를 내야만 기기를 찾아갈 수 있다고 해 황당했다”며 “세계 최첨단 IT기기를 만드는 기업에서 A/S는 전근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민법 제673조에는 ‘수급인이 일을 완성하기 전에는 도급인은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수급인에게 아무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도 도급인은 일을 마치기 전까지 수급인의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권리가 있음을 담은 내용이다. 애플 제품의 수리가 민법이 명시한 도급과도 유사한 성질을 갖는다는 점에서, 애플이 법적으로 보장된 한국 소비자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공정위 판단대로 애플의 A/S 약관이 한국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애플 제품에 대한 A/S는 회사 측의 일방적인 방침 대신 공정위 고시(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조건 소비자 탓만 하는 관행 고쳐야애플의 폐쇄적인 A/S 정책과 관련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때마다 애플코리아는 본사 정책만 운운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애플코리아와 공정위의 ‘모르쇠 경쟁’ 속에 소비자 피해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4100만여명의 국내 스마트폰 소비자 중 33%인 1300만여명이 애플 아이폰을 쓰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소비자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애플은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도 무조건 소비자 탓만 하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본지는 애플코리아 홍보팀에 이 같은 내용에 대해 문의하면서 ‘경실련 측의 문제 제기 중 객관적이지 못한 부분 위주로 설명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애플코리아 측은 대응을 하지 않았다. 어떤 해명도 반박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