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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귀농·귀촌 5년새 10배 … 청년 창업 급증 

지난해 4만4586 가구로 사상 최대 … 30~40대 큰 폭 늘어 

귀농·귀촌은 이미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2008년 2200가구에 불과했던 귀농·귀촌 가구는 지난해 4만4000가구를 넘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와 고단한 도시를 떠나 전원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2030 세대가 귀농·귀촌 붐을 이끌고 있다. 특히 30대 ‘농촌 창업가’도 늘고 있다. 귀농·귀촌 희망자들이 눈여겨볼 만한 마을과 성공적인 정착 사례, 농업·농촌에서 주목할 만한 유망 직업도 살펴봤다

▎충북 괴산에서 귀농 생활을 시작한 박중애씨 가족.
#1. 김명수(가명·47) 부장은 명예퇴직 대상자다. 해외사업이 부진한 탓에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원치 않는 퇴직이었지만 그나마 명퇴 기회라도 얻어 다행이라 여긴다. 마음을 비운 그는 얼마 전 강원도 홍천을 다녀왔다. 귀농 준비를 위해서다. 치킨집이나 커피 전문점 창업도 고민했지만, 목돈이 필요했다. 여기에 3년이면 80% 넘게 문을 닫는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인생 2막의 출발지를 농촌으로 잡고 지금 귀농학교에서 ‘열공’ 중이다.

#2. 외국계 회사를 다니던 유기환(가명·38)씨는 지난해 직장을 그만뒀다. 그는 지난 8년간 회사를 5번 옮겼다. 적성에 맞는일을 찾기 어려웠다. 어느 곳에 가나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을 살았다. 가족과 거리도 점점 멀어졌다. 그는 아내와 상의끝에 귀촌을 결심했다. 사교육과 시험성적에 목매는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지 말자고 부부는 동의했다. 농촌 경험이 전무한 탓에 유씨 부부는 일단 귀촌부터 할 생각이다. 작은 집을 얻어 천천히 농촌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일을 찾을 계획이다.

지난해 무려 4만4000가구가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농촌으로 향했다. 사상 최대치다. 통계청에 따르면 귀농·귀촌 가구수는 2011년 1만 가구를 돌파한 뒤 2012년 2만7008가구, 2013년 3만2424가구 등으로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해왔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비교적 젊은 세대의 귀농·귀촌 움직임이다. 지난해 가구주가 40대 이하인 귀농·귀촌 가구는 1만7611가구였다. 2013년 1만2318가구보다 43.0% 급증했다. 이는 모든 연령대중 가장 높은 수치다. 귀농·귀촌 가구 평균 증가율(37.5%)보다도 높다.

귀농·귀촌이 큰 폭으로 늘어난 배경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1955년~1963년 사이 출생한 세대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4.6%인 712만명에 달한다. 은퇴를 해도 자녀 교육이나 결혼자금 마련, 노후생활비 부족 등의 경제적 이유와 길어진 노후 탓에 일을 놓을 수 없는 세대다. 전체의 82.8%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50% 이상은 농촌이 고향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66.3%가 은퇴 후 농촌 이주를 희망하며, 그중 88.5%가 10년 이내에 농촌으로 이주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2010년은 1955년생이 정년퇴직 연령인 만 55세에 도달한 시점. 2011년 귀농귀촌자수가 크게 늘기 시작한 시점과 궤를 같이 한다.

올해 귀농·귀촌 5만 가구 넘을 듯


여기에 갈수록 힘겨워지는 도시 생활과 경제적인 이유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4년 귀농·귀촌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농촌을 찾는 이유로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껴서(24.8%)’와 ‘새 일자리를 구하고자(22.2%)’가 많았다. 경제가 저성장 기조를 이어가면서 취업문이 좁아진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점 역시 귀농·귀촌인구를 늘렸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되고 기대수명이 늘면서 장년·노년층의 탈도시화 흐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청장년층도 고용 여건이 불안정해지자 농촌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올해 귀농·귀촌 규모는 5만 가구를 넘어설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은퇴자가 증가하고 기대수명도 더 늘어나면 도시인들의 귀농·귀촌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시에서 열리는 각종 귀농·귀촌 관련 행사장에는 농촌으로의 귀환을 꿈꾸는 도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귀농·귀촌 인구를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농촌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는 농촌에 새로운 인구, 그것도 젊은층의 유입은 말 그대로 새로운 활력소다. 농촌지역으로의 인구 유입은 인구 감소세를 완화하고 사회·경제적 역동성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 화성시농산물유통사업단의 임경수 이사장은 “귀농·귀촌 정책을 단순히 인구 이동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농촌공동체 형성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촌에서 구할 수 있는 직업은 농사일 이외에도 다양하다. 직매장, 직거래 프로세스, 문화·예술 교육까지 범위가 넓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현지 생활에 적응하며 인생 2막의 본업을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임경수 이사장은 “여윳돈이 있다면 처음엔 가서 1~2년 그냥 살아본 다음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가진 기술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정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현지인과 갈등 겪으면 십중팔구 실패


실제로 귀농·귀촌인이 지역 리더 역할을 담당하고, 가공·유통·체험산업을 창업하거나 창의적 노동력을 제공해 지역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전북 고창과 진안이 좋은 예다. 고창군 마을이장 12%, 진안군 마을이장 17%, 부녀회장 6%가 귀농·귀촌인 출신이다. 청년회·작목반·귀농·귀촌모임 등 지역사회와 교류도 활발하다. 참여 비율이 무려 76.6%에 달한다.

물론 농촌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도시와 농촌은 문화와 생활 여건이 다르다.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경제적 여건과 가족의 동의, 건강 등의필요 요건이 많다. 여기에 농업·농촌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정보 수집, 교육과 농업에 대한 지식 등 농촌에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농촌 주민들과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주의도 필요하다.

귀농·귀촌에 성공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자립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이 기본이다. 다음으론 지역민과의 관계가 있다.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준이 돼야 비로서 마을에 정착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귀농생활을 접고 다시 돌아온 귀농·귀촌인의 상당수는 현지 주민들과의 갈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농촌경제연구원과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귀농·귀촌인 중 73.6%가 현지 주민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갈등을 겪는 이유로는 귀농·귀촌인에 대한 현지인의 선입견과 텃세가 33.9%로 가장 많았고, 주택이나 토지 등 재산권 침해가 24.3%, 농촌사회와 문화에 대한 귀농·귀촌인의 이해 부족 등이 15.4%로 그 뒤를 이었다. 귀농귀촌종합센터 관계자는 “당장 친해질 생각을 버리고, 천천히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서며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귀농·귀촌 가구가 농촌에 더욱 원활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기존 입지 제한 기준을 완화하고 조합설립도 기존 20명 이상에서 5명 이상으로 낮췄다. 지자체와 연계해 빈 집 정보, 농지 확보 방안 등도 제공한다. 체류형 농업 창업지원센터를 지역 거점 위주로 육성하고, 특히 수요자 특화 교육을 확대할 방침이다. 김정철 귀농사모 부대표는 “단순히 귀농·귀촌인을 늘리는 양적인 확대 정책엔 한계가 있다”며 “이들이 농촌사회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더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1287호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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